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39
제239화
슈바벤의 뒤로는 마법사들이 만든 빛이 있었다.
민담에 나오는 귀신과 유령은 어둠으로 제 얼굴을 숨긴다고 한다.
불야성의 백귀는 빛으로 얼굴을 숨겼다.
마법사들이 만든 광원에서 나오는 빛은 오래 보면 눈이 손상되고 계속 보면 눈이 멀어버릴 밝기를 가졌다.
초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초인들의 눈은 범인을 뛰어넘지만, 백귀의 후광은 초인의 눈에도 영향을 줄 수준이었다.
마르할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마르할의 눈은 빛에 가려진 백귀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했다.
세 번째 잔을 비운 슈바벤이 입을 열었다.
“나는 협상할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마르할은 물건과 지식으로 자기 능력을 증명했다.
이번엔 슈바벤이 역으로 마르할에게 묻고 있었다.
자신은 이 자리에 앉을 자격과 능력이 되는 사람이냐고.
동시에 마르할이 아젠만을 통해 전달한 조건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마르할은 말했다.
높은 사람이 올수록 협상이 원활해진다고.
그러면, 공국의 왕은 원활한 협상을 이끌 대상이 되냐고.
“제가 거스름돈을 내야 할 수준이죠. 살아서 귀신을 보는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빛나는 귀신을요.”
“이제 불러주는 사람도 없는 별명이지.”
“후일 만천하가 알게 될 이름이기도 하죠. 몇 년이 지나도 백귀는 여전할 테니까요. 수백 년이 지나도요.”
“그래, 내가 죽어도 불야성은 불야성일 것이고, 백귀는 백귀일 거야.”
몇 번이나 만났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진행되는 대화에 오금이 떨리는 사람은 재상이었다.
슈바벤 베르그번은 야망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공국 역사에 있었던 많은 왕들 중 한 명으로 생을 마감할 생각이 없다.
불야성을 만들었다.
불야성 아래를 거니는 백귀가 되었다.
슈바벤의 목적은 영원한 불야성과 불멸의 백귀다.
단순한 공국의 왕이 아닌, 불야성이라는 건물의 귀신.
고의로 쌓는 특이한 역사.
기행.
왕의 행동은 마법사들의 기행과 근본이 같다.
왕의 목적도 마법사와 같다.
왕이 죽으면 왕의 아들은 불야성의 백귀가 될 것이고, 아들의 아들도 불야성의 백귀가 될 것이다.
불야성과 그 안에 사는 백귀는 만인의 입에서 오르내릴 것이며, 모든 일은 역사가 되어 불야성의 백귀를 이름뿐인 귀신이 아니라 진짜 귀신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사람을 꿰뚫어보고 비밀을 들춰내는 권력의 귀신으로.
왕과 재상을 포함해 왕의 측근 몇 명만이 아는 비밀이다.
남자는 태연하게 왕의 비밀을 까발렸다.
너무 당당했기에 그게 특별한 대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저희 거래도 백귀가 존재하는 한 유지된다고 봐도 될까요?”
“귀신은 변덕이 많아서 잘 모르겠군.”
무책임하게 수십 년을 입에 담았다면, 마르할은 슈바벤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낮췄을 것이다.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른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은 오히려 믿을 수 있다.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다고 할까.
“스트레킬. 그걸.”
“몇 권?”
“전부요.”
스트레킬이 짐 꾸러미에서 네 권의 책을 꺼냈다.
한 권은 반쪽짜리였고, 두 권은 두꺼웠으며, 한 권은 얇았다.
마르할은 스트레킬에게 받은 책을 탁자 위에 늘어놓았다.
책의 세 권은 제목이 보였다.
“본론, 결론, 그리고 실천. 무시무시한 제목이군.”
슈바벤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성황국도 똑같은 책을 가지고 있을까?
있으면 성황국의 의학을 따라갔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것도 작은 성과는 아니다. 건국왕을 제외한 공국의 역대 왕 중 최고의 치적이다.
만일, 이 책이 성황국에 없다?
성황국에 복귀한 성인이 어떤 외부 활동도 없이 칩거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정말, 진짜로 성황국과 교황청도 모르는 지식이 이 안에 있다?
성황국의 기세를 크게 꺾을 수 있다.
‘성황국의 견제도 받게 되겠군.’
성황국은 공국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마족이 사라진 직후 공국이 서부 개척을 시작하려고 할 때 가로막은 정도?
슈바벤에게는 이가 갈리는 일이었지만, 성황국에게는 가벼운 견제에 불과하다.
성황국이 작정하고 공국을 말려 죽이려 하면 공국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교회를 철거하고 모든 사제를 성황국으로 불러들이면 막 태어난 공국의 젖먹이들 반이 죽을 것이고, 오지에 있는 영지에선 성인들도 병에 죽어 나갈 것이다.
그만큼 성황국이 동부 전역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공국이 성황국 이상의 의학을 가지게 되면? 성황국이 동부 전역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근간을 흔들어 버리면?
성황국의 진짜 견제가 시작된다.
슈바벤은 성황국의 모든 수작을 막아내며 공국 의학을 키워야 한다.
“생각이 많아 보이시는데, 한 잔 받으시죠.”
“고맙게 받지.”
슈바벤은 마르할이 따라주는 술을 받았다.
밀주는 마실수록 취하기는커녕 정신이 맑아지는 기이한 술이었다.
그 자체로 영약이라 불리는 밀주에 진짜 영약인 황금 잉어까지 들었다.
불로장생의 약이 실존한다면 아마 이 밀주일 것이다.
“재상. 책을 챙겨라.”
재상은 책을 챙겨 품에 꼭 품었다. 이걸 가져가려면 먼저 자기부터 죽이라는 기세였다.
“이걸로 공국과 성황국의 전쟁은 정해졌군.”
“군대가 오가는 전쟁도 아닌데 엄살도 심하셔라.”
“흐르는 피의 숫자는 그보다 적겠지. 하지만 유무형의 피해들도 적을까.”
“꼭꼭 숨겨두실 건 아니죠?”
“이걸 그렇게밖에 쓰지 못한다면, 자리에서 물러나야지.”
공국이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도 있다.
마르할이 준 책을 왕가의 비전으로 삼는 것이다.
슈바벤도 아젠만이 보낸 반 권짜리 책을 읽었다.
반쪽짜리 서론에는 족히 100년은 앞서간 의학 지식이 담겨 있었다.
왕가가 지식을 독점하고, 무기로 삼으면, 공국은 손해 없이 이익만 볼 수 있다.
교황청의 의심을 받긴 하겠지만, 공국 왕가가 대대로 하던 연구가 결실을 보았다고 하면 그들도 할 말이 없다.
마르할은 슈바벤에게 마지막 선택까지 뺏어갔다.
책을 겁쟁이처럼 숨겨둘 거냐?
성황국과 똑같은 놈들이 될 거냐?
거짓말로 무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건 슈바벤 베르그번이 아니라 공국의 왕, 불야성의 백귀고, 이건 역사에 남을 거래다.
여기서 행하는 모든 행동은 역사가 되어 후대에 전해지고, 후대 백귀의 힘이 된다.
공국 역사상 최고의 치적에 거짓을 끼얹을 수는 없다.
“언변술 스승이 누군가?”
“못 알려드려요. 이름을 대면 안 되는 사람이라서요.”
이름을 말하기 꺼려지는 사람이 역사상 몇 명 있긴 하다.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이단들과 관련된 이름은 대개 금기가 되어 입에 올리는 것도 죄악시되었고, 그러다 잊혔다.
하지만 공국 왕의 물음에도 말하면 안 되는 그런 이름은 아니다.
슈바벤의 질문에도 입에 담아선 안 되는 이름이 있긴 했다.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은폐하고 매장하는 네 개의 이름.
바스타.
아르고.
마르 실라나티엘.
율란 에고만.
“그 말이 오늘 최고의 성과군.”
용사 일행에게 가르침을 받고, 직접 쓴 책까지 받을 수 있는 인간을 만났다.
용사 일행 모두가 모습을 감춘 현재, 유일할지도 모르는 용사 일행과 이어지는 끈이다.
“값을 잘 쳐주리라 믿을게요.”
“성황국을 막아주기만 하면 되나?”
서부에 노골적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성황국. 때마침 만남을 바란 서부의 대지주는 공국과 성황국의 마찰을 노골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마르할의 목적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번에 땅을 많이 얻으셨더라고요.”
“소중한 땅이지.”
“본인 땅을 망치든 키우든 그건 지주 마음이죠. 하지만 그 땅이 서부에 있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서요.”
“유의하지.”
더는 나눌 말도 없다.
슈바벤은 남은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잔 마시지도 않은 밀주에 그의 시선이 닿았다.
“선물로 드릴까요?”
“아니. 받아 가면 며칠은 술독에 빠져 지낼 것 같군.”
“다행이네요. 이건 저한테도 남다른 물건이라서요.”
슈바벤은 왔을 때와 같이 빛을 뿌리며 떠났다.
불야성의 모습을 한 마차가 숲에서 멀어졌다.
숲은 다시 어둠에 잠겼다. 숲에는 여전히 주향이 감돌았다.
향기에 끌린 짐승들은 탁자 가까이에 왔다가, 땅에서 솟아난 은빛 송곳에 몸이 꿰뚫려 죽었다.
스트레킬이 숲 전체에 묻어준 쇳덩이였다.
협상이 전투로 번지면, 스트레킬이 신비를 사용해 기사와 마법사를 무력화한다는 계획이었다.
“와서 앉아요. 밀주는 향이 날아가기 전에 마셔야 하거든요.”
마린은 슈바벤이 앉았던 의자에 앉았고, 스트레킬은 탁자 위에 앉았다.
그의 무게에 탁자가 기울었지만, 땅속에서 나온 은빛 쇳물이 탁자를 붙잡았다.
마르할은 추가로 잔을 꺼내 스트레킬과 마린에게 밀주를 따라주었다.
“독하군.”
“맛있긴 한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스트레킬은 밀주의 오묘한 맛 안에 숨겨진 독함에 혀를 내둘렀고, 마린은 코끝에 감도는 향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약간 인상을 썼다.
“밀주를 마시는 사람은 독 내성이 있는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독하지 않으면 술 취급도 못 받죠. 맛은… 몇 번 마셔본 저도 정확히 설명 못 하겠네요. 술의 특성상 병마다 맛이 달라서요.”
그게 또 밀주를 마시는 재미다. 술에 취미가 있는 대귀족들은 밀주를 한 번 맛보면 눈이 돌아가 밀주를 얻으려고 황실에 충성하기도 했다.
황족도 쉽게 맛보기 힘든 술.
병마다 맛은 천차만별, 그러나 모두 천상의 맛.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명예까지.
술꾼에게 최고의 술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고, 황권 강화의 수단도 된다.
스트레킬의 잔 안에서 달이 흔들렸다. 황금빛 비늘 하나가 달 옆에서 반짝였다.
“경사가 있는 해에 황금 잉어로 술을 담았다고?”
“맞아요. 그것도 딱 한 병만요.”
스트레킬은 바체아 제국의 역사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제국의 경사라면 그도 얻어들은 게 하나는 있을 법했다.
20여 년 전 바체아 제국에 있었던 경사?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스트레킬은 자기 옆에 앉아 술을 마시는 남자를 보았다.
마르할의 나이가 몇 살이지? 본인에게 들은 바는 없다.
바체아 제국 황제에게는 한 가지 소문이 있었다. 황제의 성기능이 시원치 않다는 소문이다.
다소 추잡하고, 또 남자의 자존심과 관련된 소문이기에 오히려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가 막 기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들었던 소문이니, 30년까지는 안 됐고, 20년은 확실히 더 되었다.
동서를 불문하고 후계자의 탄생은 국가의 경사다.
불능 소리를 듣던 황제에게서 둘째가, 그것도 아들이 태어났다면, 그건 제국의 경사였을 것이다.
“왜 그래요?”
“아니, 술이 참 괜찮군. 담그는 방법은 실전된 건가?”
“황제에게 진상된 공물 중에서도 최고의 물건을 골라, 평생을 주조에 바친 장인들이 만든 물건이에요. 비슷하게라도 만들려면, 서부 특산품부터 찾아야죠.”
멸망한 서부를 재건하고, 서부 전역의 특산품을 긁어모아야 간신히 시도라도 해볼 수 있는 작업이다.
“죽기 전에 한 번은 먹어봤으면 좋겠군.”
“저도 그래요.”
바람에 흔들리는 수풀 소리와 떨어지는 달빛을 안주 삼아, 셋은 잔을 기울였다.
* * *
달리는 마차 안에서 슈바벤이 재상에게 물었다.
“서부에 변화가 있나?”
“아스파룸 총사령관이 급사. 임시 총사령관이 군을 지휘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도록.”
“이름은 셰르도. 서부 출신이며, 세운 공적만 따지면 중앙에 입성할 수도 있었지만, 서부에서 데려온 부하들과 함께하고 싶다며 승진을 거부하던 인물입니다.”
“승진을 거부하던 인간이, 갑자기 지휘권을 잡았군.”
“…알아보겠습니다.”
협상이 무난하게 끝나나 싶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화약이 터졌다.
저기 서부에서 터진 화약은 그가 수습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늦었다. 이미 당했어. 어디부터 손을 뻗치고 있는 건지.”
“지금이라도 마차를 돌립니까?”
평소에 입을 잘 열지 않는 호위가 말했다.
그의 눈에는 정제된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러면 3만이나 되는 군사를 파견해 얻은 땅을 모조리 잃겠지. 오늘은 마르할이라는 인간을 대면한 것으로 족하다.”
저런 남자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서부에 손을 쓸 때는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행동에 유의하면 된다.
“그래, 서부에 보낸 개는 어떻지? 쓸 만한 사냥개인가? 아니면 맹수인가?”
“어떤 소식도 없습니다.”
“피를 보지 못해 안달인 놈이다. 죽이지 않았을 리는 없고, 약한 놈만 골라서 죽였을 리도 없다. 상당한 피를 보고 소문조차 나지 않았으니… 맹수로군. 교활하고 이빨이 날카로운 맹수야. 좋은 일이다.”
자기 이름도 대지 않고, 단지 도둑의 후계자라고 자칭하는 살인귀.
쓸 만해 보여 기르긴 했는데, 예상외의 우량 매물로 판명되었다.
“운이 좋다면, 서부의 목덜미에 송곳니 하나는 꽂을 수도 있겠어.”
불야성의 백귀는 홀로 만족해 고개를 주억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