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42
제242화
사람이 죽었다.
베스타롤라 출신 기사가 죽었다. 등에 칼이 꽂혔다.
지주 대리를 하던 뉘테가 독을 먹었다.
상회를 운영하던 케티아 사람 하나가 상점과 함께 야밤에 타 죽었다.
죽은 건 서부 출신들만이 아니었다.
서부 멸망을 이야기하던 남자가 칼에 죽었다.
더러운 케티아 사람은 받지 않겠다던 창부가 칼에 죽었다.
서부의 저열함을 설파하던 아낙이 칼에 죽었다.
칼에, 칼에, 칼에.
그들은 모두 칼에 죽었고, 칼의 주인은 베이올라였다.
베이올라에게서 흐르는 피가 마르지 않았다. 검과 몸에서 흐르는 피는 그녀가 흐르는 피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신발 밑창이 질척였고, 옷은 축축했다.
작은 제국에서 서부를 욕하는 사람은 사라졌고, 그제야 베이올라의 옷에 묻은 피가 말랐다.
찌든 피는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아 그녀의 갑옷은 검붉게 물들었다.
베이올라는 쉬지 않고 말에 올랐다.
베이올라가 칼질하는 동안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도 생겼다. 그들도 베이올라를 따라 남쪽으로 향했다.
“대지주 마르할이 서부 출신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밤이슬이었다.
그는 자신이 마법사라는 걸 은근히 드러냈지만, 한 번도 직접 실력을 발휘한 적은 없었다.
베이올라도 딱히 밤이슬의 도움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래? 그 사람이 할 법한 행동이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보고 정해야지.”
“의외군요. 그냥 가서 다 죽이겠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요.”
“그 사람이니까.”
마르할의 행동이 어디로 튈지는 그녀조차 모른다.
그녀의 행동이 마르할의 뜻과 반대된다면, 마르할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옛정을 생각해서 봐준다는 건 낙관을 넘어선 방관이다.
작은 제국에서야 지주의 이름과 황족의 이름으로 지원을 얻어내며 방해 없이 행동했다.
지금 가려는 곳은 마르할의 땅이었다.
작은 제국에서와 같은 상황을 기대해선 안 된다.
마르할이라면 알아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래도 그녀는 움직여야 한다.
하일리와의 약속을 이행하고, 하일리의 지지를 얻어내야만 유렐을 죽일 기초가 마련된다.
작은 제국과 마르할의 도시 사이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베이올라는 성벽 없는 도시에 도착했다.
사실상 성황국 손에 들어간 남쪽 도시도, 작은 제국도 성벽을 가졌다.
토지 경주가 끝나고 공성 기사와 건축 관련 마법이 가능한 마법사들을 천금을 주고 고용해 지었다고 들었다.
공국과 땅을 접한 경계 도시 중 성벽이 없는 도시는 이 도시밖에 없었다.
성벽 없는 도시에선 연기가 올라갔다.
“속도를 낼까요?”
“아니. 무의미해.”
몇 사람의 힘이 더해 끌 수 있는 불길이라면 진즉 꺼졌을 거고, 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합류해도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네가 직접 불을 끌 거라면, 움직여도 돼.”
“저는 여기서 얻어갈 게 없어서요. 그보단 당신이 중요합니다.”
“그렇겠지.”
밤이슬은 그녀의 신변에 큰 문제라도 닥치지 않는 이상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당장 역사가, 기행이 필요한 베이올라에게는 그게 더 편하기도 했다.
베이올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몇 번이나 왔던 도시의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착 가라앉아 있었다.
도시의 생기가 죽었다.
음울함 안에 죽음의 냄새가 났다.
시체 썩는 냄새와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베이올라는 도시로 들어갔다. 지켜보는 시선이 몇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밤이슬은 베이올라에게 한 가지는 확실히 약속했다.
허무한 함정에 죽는 일은 없도록 해주겠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서부에서 비명횡사하지 않는다.
얼마나 큰 축복인가.
도시 구조는 기억하고 있다.
베이올라는 거칠 것 없이 도시를 가로질렀다.
“따라오지 마.”
베이올라의 추종자들은 그녀의 말을 잘 지켰다.
그녀가 사람을 학살하는 모습을 보고 따르는 인간들이다. 제대로 된 군상은 아니었다.
베이올라는 한 저택 앞에 멈췄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목적지가 여기라면, 제가 도움이 될 건데요?”
“어떻게?”
밤이슬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저택 정문으로 다가가자 문지기가 알아서 문을 열었다.
밤이슬이 몸을 돌려 말했다.
“이렇게요.”
“…알아서 해.”
베이올라는 기다리는 시간 없이 원하는 사람을 만났다.
아젠만 리안틀은 피로가 짙은 얼굴로 서재에 앉아 종이에 글을 끄적이고 있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군. 내가 자네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제국 황족? 서부의 유력 지주? 그도 아니면, 마르할이 데리고 다니는 애송이?”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뽑힌 검이 아젠만의 이마를 겨눴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땅에 떨어졌다.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젠만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마지막에 반응했군. 하긴, 그놈 그림자가 커다랗긴 해. 단기간에 떨쳐낼 수 있는 게 아니지.”
“서부의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하! 황족도, 지주도 아닌 서부! 그놈한테 잘 보이려는 건가?”
베이올라의 시선에 살기가 실리기 시작했으나, 아젠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베이올라를 따라 아젠만의 눈에도 정광이 더해지는 듯했다.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은 공국이다. 내가 공국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나를 그런 눈으로 본 게 몇 놈이나 있을 것 같으냐?”
아젠만에게 자리를 뺏긴 관리와 귀족, 자금 지원이 끊어진 유파의 주인과 해체된 기사단의 기사들까지.
무수한 사람이 아젠만에게 살기를 보냈고, 실제로 아젠만을 죽이려 한 사람도 많았다.
뻔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보다는 웃고 있는 마르할이 열 배는 더 무서웠다.
그놈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웃는 얼굴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인간이었다.
“도시 상황을 알고 싶어.”
“알면, 무얼 할 수 있고?”
“청소.”
“네가 할 수 있는 걸, 나랑 그놈이 못 할까.”
“대신 피를 묻혀줄 수는 있어.”
“과장 조금 보태 나에게는 천만금이 있다. 대신할 손도 구하지 못할까.”
베이올라가 입을 다물었다. 악물린 이빨이 갈렸다.
하일리와의 협상에서는 그녀가 약간 우위에 있었다.
하일리에게는 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고, 베이올라는 하일리가 가지지 못한 땅도 가지고 있었다.
대지주와 대등한 위치에서 얼굴을 맞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대지주도 아니었다.
아젠만 리안틀.
한 국가의 최고라 불렸던 남자.
문장 하나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을 흔들었고, 투명한 눈빛이 흔들리는 심정을 읽어냈다.
“그놈이 움직이고 있다. 모든 걸 끝낼 준비를 했겠지. 내가 해줄 말은 이게 전부다. 대가는 필요 없다. 선배 지주로서 후배에게 주는 선물인 셈 치지.”
아젠만이 손을 내저었다.
축객령이었다.
베이올라를 따라 방을 나가는 밤이슬에게 아젠만이 물었다.
“새로운 거처는 지낼 만한가?”
“그럭저럭 흥은 납니다.”
“방은 건드리지 않았네. 출구도.”
밤이슬의 방은 아젠만이 비상 탈출구를 뚫으며 겸사겸사 마련한 장소였다.
출구를 알면 언제든지 아젠만의 집 지하로 들어갈 수 있었다.
“빚을 졌군요.”
“받은 걸 갚는 거지. 자네 덕에 얻은 이익이 얼만데.”
“그럼, 필요할 때 사양하지 않고 쓰겠습니다.”
밤이슬까지 나가고, 홀로 남은 아젠만은 피가 흐르는 이마를 쓰다듬었다.
“철을 벤다는 소문이었나.”
베이올라 므에실리고의 등장이 화제가 된 건 그녀가 천하를 담은 땅의 지주가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힘을 숨길 생각도 없이 검을 휘둘렀고, 베이올라가 철을 베는 모습을 봤다는 증언이 상당했다.
사실상 확정된 정보였다.
제국은 강자를 숭상한다. 검증된 강자라면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철을 베는 무력을 가진 황족.
게다가 미모도 아름답다.
므에트 제국 사람들이 원하는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베이올라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과장일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설마 축소되어 있을 줄은.”
베이올라의 검은 아젠만의 이마 앞에 멈췄다. 그러나 아젠만의 이마는 찢어졌다.
베이올라는, 검에 닿지 않은 것을 벴다.
용사의 경지.
철을 베는 기사 이후 나타난 새로운 초월의 증표.
공국에서도 같은 신비를 가진 놈이 나타났다는 소리는 들었다.
아젠만도 기억하는 고위 기사였다.
가진 바 재능이 스트레킬과도 비교되던 자였다. 그런 놈이 평민을 학살하며 겨우 손에 넣은 신비를 막 검을 쥔 제국의 황녀가 손에 넣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묻고 싶군.”
감당 못 할 괴물을 만들어버린 건 아니냐고.
아니면, 그 괴물이 마르할을 죽여도 좋겠다.
지금 마르할이 죽으면 비교적 온전히 도시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아젠만은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
개인의 몸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 * *
베이올라는 마르할을 찾았다.
도시에는 몇 번인가 화재가 있었던 듯했고, 마르할은 불이 났던 자리 중 하나에 있었다.
재만 남은 자리에 천막을 세우고, 사람을 들였다.
여자와 아이와 노인이 주를 이뤘고, 남자의 숫자도 상당했다.
족히 천 명은 되어 보였다.
그들의 옷은 새것이었지만, 소매와 바지 밑단은 벌써 더러웠다.
사람들의 걸음마다 재가 휘날렸다.
재는 열기와 함께 하늘까지 올라가 눈발처럼 흩어졌다.
마르할은 그 안에 있었다.
잿더미 사이에서 몇 명만을 대동한 채 모든 걸 잃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마르할은 다양한 일을 했다.
넘어진 아이를 일으켜 상처에 약을 바르고 천을 감아주었다.
아낙이 음식을 만드는 모닥불 옆에서 덕담을 건네고 식재를 함께 씻었다.
남자들을 격려했고, 그들이 천막을 치고 장작을 패는 일을 도왔다.
완성된 음식을 땅에 앉아 함께 먹었고,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베이올라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저기 모든 걸 베풀고, 모든 걸 나누는 사람이 있다.
고통도 웃음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베이올라도 한때 저 남자가 가진 걸 나누었다.
베이올라는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
피로 물든 신발이 보였다.
그녀는 피 웅덩이 안에 있었다. 웅덩이는 깊고 질척해 그녀의 다리를 잡아끄는 듯했다.
“무른 방법입니다. 저래선 광인들에게 얕보일 뿐입니다. 옳은 건 황녀님입니다.”
베이올라의 추종자 하나가 말했다.
“맞습니다. 근원을 제거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 허울입니다. 저것 보십시오.”
재가 흩날리는 공터에 무장한 무리들이 나타났다.
숫자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모두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술을 갈고닦은 자들이었다.
무기를 손에 든 그들은 이미 피를 묻힐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도와야 합니다.”
베이올라의 추종자들이 나설 기회는 오지 않았다.
마르할이 대동하고 있던 남자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들은 깔끔하게 진형을 이루고 무장 도당의 숨통을 끊고, 시신을 잿더미 구석에 던졌다. 시신의 위로 재가 쌓였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시신에 재를 부었다.
자세히 보니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은 잿더미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돌아가자. 여기 우리가 할 일은 없어.”
그녀가 머물던 자리에 발자국이 남았다.
진눈깨비처럼 떨어진 재는 베이올라의 심장 어름에 떨어져 스몄다.
* * *
식량을 풀었기에 음식은 맛있었다.
식사하던 마르할이 고개를 들었다.
베이올라가 있던 자리에는 발자국만이 남았다.
여기서도 검을 뽑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티머시. 어때요?”
“반서부파가 집결하고 있어. 네가 말했던 대로 에란이라는 남자가 중심이야.”
“샤힐레는요?”
“어제 도착해서 쉬고 있어. 준비는 끝났다더라.”
“셰르멜의 교육은 어땠어요?”
티머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셰르멜이 말하기를 그가 받은 교육은 속성 교육이랬다.
쓸 만한 지휘관이 없을 때 개새끼 하나 사람 만드는 교육이라고.
빨리 현장에 복귀하길 바랐던 티머시는 개새끼를 사람 만드는 교육을 받았고, 왜 그게 개새끼를 사람으로 만드는 교육인지 알았다.
“그래도 능력은 확실한 사람이에요.”
“그건 뼈저리게 알았어.”
셰르멜. 마르할이 거느린 군대의 총사령관이자 서부에 군대를 완벽히 숨겨두고 조율하는 사람이다.
고위 기사와 맞먹는 본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사람을 부리는 용인술이 말이 되지 않았다.
기사의 종자로, 그리고 용병으로 활동하며 군대의 생리를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던 티머시지만, 셰르멜을 만나고 알량한 자존심은 완전히 박살 났다.
진심으로 진저리 치는 티머시를 보며 마르할은 웃음을 띠었다.
“첫 임무예요. 잘 유도할 수 있죠?”
티머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마르할은 건물이 전소하며 만들어진 공터에서 에란과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