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43
제243화
에란이 이끄는 반서부파는 하나의 사상 아래 모인 규칙성 없는 집단이었다.
서부인과 서부 문명은 사라져야 한다는 공통 의견을 빼면 그들 사이에 공통점은 없었다.
출신도, 성별도, 나이도 제각각이다.
반서부파란 이름도 그렇다. 직관적인 건 좋지만, 너무 직관적이라 서부에 사는 사람들의 반감을 산다.
언제까지 서부 멸망을 부르짖으며 철딱서니 없이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광기를 원동력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은 무한하지 않다.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을 찾으면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이다.
광기가 꺼질 즈음 체계를 잡고 집단으로서의 모습을 갖춰야 했다.
사상을 공고히 하고, 서부와 관련된 것들을 대차게 몰아치며 조직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 했다.
이름도 새로 만들어야지.
서부를 향한 적대감을 일으키면서도 그럴싸한 이름으로.
아직은 모든 게 그저 계획이다.
암묵적 동의로 우두머리 행세를 하고 있긴 하지만, 에란은 반서부파의 우두머리라 정식으로 인정받은 게 아니었다.
진짜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려면 그만한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말만으로는 안 된다. 반서부파 상당수가 용병이거나 과거 전쟁으로 손에 피를 묻힌 적이 있는 자들이다.
힘의 논리에 따르는 자들 위에 오르려면 피를 보여줘야 한다.
“공터에 자리 잡은 오염물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보란 듯이 천막까지 치고 생활하는 걸 두고 보면 반서부의 기치가 땅에 떨어질 겁니다!”
에란을 보필하는 자들이 말했다.
에란은 저들에게 자신을 보필하란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권력이 모이자 눈 깜짝할 사이 에란 곁에 달라붙은 인간들이었다.
에란은 그들을 방치했다.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이단을 계몽시키기 위해 갈고닦은 언변은 사람의 마음을 휘저을 수 있지만, 계속 잡아둘 수는 없다.
광기가 타오를 장작을 끝없이 넣어줘야 하는데, 에란이 24시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장작을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란이 쉴 때는 저들이 도시를 돌며 광기에 장작을 공급했다.
“작은 제국에서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대량으로 유입되었습니다. 황야에서 모인 동지들도 도시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유일하게 쓸 만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저자는 성기사였다.
교황청 소속 성기사.
기사 사이에서도 다양한 기사가 있듯, 성기사도 마찬가지다.
에란이 얼굴마담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면, 저들은 은근히 사람들을 부추기며 에란을 보좌하는 일을 했다.
이단심문관만이 아니라 성기사까지.
교황청이 이번 일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증거였다.
용병으로 신분을 숨긴 성기사가 다시 말했다.
“남쪽에서 사제들이 온다는 소문이 은밀히 돌고 있습니다.”
“오오. 고귀한 사제들께서 오다니. 실로 경사로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선민들이라면 능히 서부의 저열함과 열등함을 설파해주실 겁니다.”
사실상 성황국의 영역인 남쪽엔 반서부파의 영향력이 약했다.
신에게 선택받은 사제를 두고 귀천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게 사람들의 의견이었다.
성기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제들께서 도착하기 전에, 저희도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교회의 사제들마저 저희의 올바름을 인정한다면, 누구도 저희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반서부파의 결기를 보여야 할 때입니다!”
성기사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
권력을 보고 몰려든 자들답게 이런 방면으로는 눈치가 빨랐다.
“좋습니다. 저도 행동으로 보여야지요. 얼마 전 불탄 공터. 그곳에 대지주도 있다고 했습니까?”
이번에도 답한 건 성기사였다.
“맞습니다. 대지주 마르할. 대지주이며, 서부 출신입니다. 서부의 열등함을 세상에 알리는 데 그보다 적합한 상대도 없습니다.”
“사람을 소집하세요. 내일, 해가 가장 높이 떴을 때, 그들에게 위대한 동부의 기상을 보여줄 것입니다.”
대지주라는 이름이 서부에서 가지는 의미는 작지 않다.
교황청이 직접 내린 임무의 마무리로 적절한 대상이었다.
* * *
해가 머리 꼭대기에 떴다.
에란은 반서부파 사람들을 거느리고 공터를 찾았다.
반서부파가 생겨난 이후 방화로 생겨난 공터가 몇 개나 된다고 들었다.
공터는 모두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쉼터로 쓰이고 있으며, 이곳은 그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다.
과연 그러했다.
보이는 천막만 백 개가 넘었고, 오가는 사람은 천 명은 족히 넘었다. 어쩌면 이천이 넘지 않을까.
공터에서는 식사가 한창이었다. 그 사이에 에란의 눈을 사로잡는 남자가 있었다.
이미 초상화로 얼굴은 접했다. 그러나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대지주 마르할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 식사하고 있었다.
텅 빈 솥 옆에서 아낙 몇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숟갈을 들었다.
마르할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에란을 발견하고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었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에란은 역사의 순간을 기다리는 반서부파 사람들에게 명령했다.
“서부의 흔적은 재조차 남기지….”
명령하려 했다.
경계 전역, 서부 전역에서 모인 에란의 추종자는 수백에 달했다.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실제 전투가 가능한 사람의 숫자만 수백이었다.
그들은 싸움이라고는 모르는 약자들이 모인 공터를 넓게 포위하고 있었다. 그 일각이 십수 초 만에 붕괴했다.
금발의 여인이었다. 그 얼굴 또한 초상화로 한차례 보았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제국 황족이 사람과 무기를 통나무처럼 썰어 버렸는데, 그녀의 검에 죽은 사람의 수가 스물이 넘었다.
그녀를 뒤따르는 수십의 사람들도 하나에서 둘을 베었으니, 백에 가까운 인원이 창졸간에 사라졌다.
“어쩐 일이신지요?”
마르할이었다. 어느새 접근한 그가 에란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이쪽의 목적을 모를 리가 없다.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웃으며 에란에게 용무를 물었다.
우라하와 메라는 한 발 떨어진 장소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안 되겠다.”
우라하는 여유로운 마르할을 보고 직감했다.
저건 에란의 상대가 아니다.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하지만 우라하는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등을 찔렀고, 그림자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쉽게도, 당신네들이 낄 자리는 저기 없어.”
“공국의 영웅이군. 전신 갑옷만 믿고 교황청의 이단심문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우라하는 가지고 있던 단검 하나를 양손 검지와 엄지로 잡았다. 그리고 종이를 찢듯이, 검집과 함께 단검을 찢었다.
땡그랑.
쇠로 된 단검이 종잇장처럼 찢겨 땅에 떨어졌다.
성황국에도 귀족이라 부를 계층은 있지만, 그들도 종교와 신이라는 절대적 가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종교를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그들은 타국에서는 불가능한 일들도 가능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신분의 벽에 막혀 힘 좋은 촌부로 생을 마감했을 이들도 성황국의 품에서는 재능을 만개할 수 있다.
드넓은 성황국 영토에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재능 있는 자들을 추리고 추린 인재.
그게 이단심문관이다.
우라하가 보여준 신비는 놀랍긴 해도 그걸로 끝이었다.
성황국에서 추리고 추린 이단심문관, 그 이단심문관 중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는 자라면 쇠를 맨손으로 부수고 찢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재주가 대단한데, 저잣거리에서 광대나 해보는 게 어때?”
“허세가 네 죽음의 이유임을 알거라.”
우라하가 스트레킬에게 달려들었다.
우라하의 손은 특이했다.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을 구부려 맹수처럼 만들었다.
하긴, 철을 찢어버리는 손을 가지고 있다면, 괜히 주먹으로 드잡이질할 시간에 상대의 몸을 잡아 뜯어버리는 게 편하다.
스트레킬은 검을 뽑지 않고 우라하의 손에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아둔하구나!”
우라하는 전신 갑옷과 함께 스트레킬의 팔을 뜯어버릴 생각이었다.
손과 손이 부딪혔다.
“왜 그러지? 뜯어버리는 거 아니었나?”
스트레킬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스트레킬은 손에 힘을 주었다. 우라하의 손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우라하가 뒤로 빠지려 하기에, 스트레킬은 그를 놓아주었다.
마르할의 명령은 이들의 개입을 막는 거지 여기서 죽이는 게 아니었다.
“우직하게 쌓은 싸움꾼의 역사가 아니군. 마법사의 마법에 가까워. 손에 닿는 것의 강도를 약하게 하는 신비인가?”
뒤에 있는 마린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이었다.
신비의 정체를 한 번에 간파당한 우라하가 인상을 썼다.
“…너는 뭐냐.”
“일상을 수호하는 기사.”
“무슨 헛소리를. 메라. 도와라.”
“뒤에 있는 살기는 어쩌고요?”
우라하의 뒤에 있던 메라가 슬쩍 자리를 비켰다. 가공할 살기가 우라하의 뒤통수를 찔렀다.
우라하는 앞에 있는 고위 기사도 잊고 몸을 돌릴 뻔했다.
이단을 상대하며 암습과 암살에 익숙해진 우라하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살기였다.
“한순간의 압박이 아니었나.”
경고용의 일회성 살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살기가 사라진 건 메라가 살기와 살기의 주인을 틀어막고 있어서였다.
숙련된 암살자가 목숨을 건 공격에서나 뿜어낼 살기를 쉬지 않고 뿜어내고 있다.
살기와 투기는 정신이고, 의지다. 저만한 살기를 계속 뿜어내는 건 고위 기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지켜만 보쇼. 나도 굳이 싸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또 모르지. 당신 제자란 놈이 성공할지도.”
우라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목숨을 걸고 덤벼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워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반대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우라하는 손을 내렸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 * *
“어쩐 일이신지요.”
마르할의 질문에 에란은 대답이 없었다.
눈가를 파르르 떨며 마르할을 바라봤다.
마르할에게는 익숙한 반응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한 사람의 표정이었다.
해서, 마르할은 다시 물었다.
“볼일이 있으십니까?”
뒤편에서 온갖 욕설이 들렸다.
광기였다.
저들을 움직이는 원동력.
대화할 자리를 마련해도, 상대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광기에 몸을 맡긴 사람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마르할은 저들에게서 광기를 벗겨낼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티머시가 뿔피리를 불었다. 손바닥보다 약간 큰 뿔피리가 사방에 신호를 보냈다.
도시에는 빈집이 많았다.
반서부파에게 죽은 사람들, 또 반서부파를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집이었다.
그 안에 숨어 있던 붉은 해골 용병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 말고도 백여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에란과 반서부파를 넓게 포위하고 무기를 겨누었다.
“무슨….”
에란이 당황했다.
광기에 물든 사람들도 제정신을 찾았다.
중간중간 숨어 있는 성기사들이 사그라드는 광기에 불을 지르려 했지만, 저들은 이단에 빠진 광신도가 아니었다.
광기에 목숨을 바칠 인간들이 아니었다.
“그거 아세요? 대지주란 자리는 수만 명의 목숨을 짊어진 사람이에요. 대지주의 정체를 암암리에 아는 사람은 상당히 많아요. 그런데 왜 대지주가 죽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을까요? 대지주를 죽여 얻을 이익이 어마어마한데.”
열등한 서부를 멸망시켜야 한다며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대지주를 죽여 얻을 이익이 많다면, 대지주를 지켜서 얻을 이익도 많다. 단지 그뿐이에요.”
마르할은 맨땅에 앉았다. 그리고 한 손으로 땅을 두드렸다.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에요. 대화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죠.”
-우리 이야기나 할까요?
마르할과 대화한다.
마르할을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피할 행동이었다.
차라리 검을 휘두르다 죽으면 죽었지, 마르할과 대화는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한가득했다.
에란도 정보로는 접했다. 마르할과 대화를 나누면 안 된다고.
하지만 종이에 새겨진 보고서는 온전한 경험을 전달하지 못한다.
에란은 자리에 앉았다.
마르할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