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45
제245화
마르할의 무표정은 찰나였다.
그 얼굴을 본 사람은 에란밖에 없었다.
에란조차 눈의 착각으로 치부했다.
그만큼 빠르게 지나간 표정이었다.
그보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동요가 번졌다. 마른 들판에 불을 지른 것보다 빠른 속도였다.
마르할은 웃었다.
사상을 죽이는 건 쉬우면서 어렵다.
토지 경주에서는 한 놈이 제언자였다.
입 산 놈 하나가 선각자 행세를 하며 떠들었고, 오롯이 한 사람의 권위가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래서 그놈을 처참하게 밟아 죽였다.
먼저 깨달은 사람이 죽었으니, 깨달음을 이어갈 사람이 없었다. 또한 이어갈 가치가 없는 깨달음이기도 했다.
경계 도시에서 일어난 일은 곡창지대와는 또 달랐다.
광기는 깊이 침습했고, 술집마다 주정뱅이들이 떠들어대니 제언자의 수는 헤아리는 게 의미가 없었다.
다만, 광기는 깊으나 뇌리를 물들이지는 못해 축제의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과 비슷했다. 분위기를 바꿔주기만 하면 머리의 광기는 알아서 빠져나올 터였다.
제각각이 논리도 논지도 없이 선각자 행세를 하려고 드니 한번 기세를 꺾어버리면 다시는 떳떳한 곳에서 제언자 노릇을 하지 못할 터였다.
마르할은 제 아비를 보고 달려 나간 아이를 반은 예상했고, 반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타난 변수가 기꺼워 마르할은 입매를 다잡았다.
“열등한 서부 사람을 죽인다 하였지요. 그런데 저 아이는 서부의 핏줄인가요?”
“…….”
에란은 말이 없었다.
이미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어떠한 것보다 확실한 증거를 두고 입을 여는 건 자기 목을 죄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저 아이의 어머니에게 들었어요. 아버지는 잡부에 가까운 용병이라더군요. 며칠째 소식이 없어 불안하던 차에 반서부파가 집에 불을 질렀다 하였어요.”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비의 등이 떨렸다.
저 사람도 불을 지르고 다니던 방화범 중 한 명일까.
아니면 저 사람이 반서부파에서 사귄 동포 중 방화범이 있는 것일까.
“저는 대지주로서, 보호가 필요한 모든 사람을 보호하고 있어요. 서부 출신만이 아니에요. 공국, 제국, 성황국은 물론이고, 부모 잃은 아이, 도망친 창녀, 부당하게 노예가 되어 팔다리 힘줄이 끊어진 청년까지. 제가 보호하고 있는 사람은 이토록 다양해요. 동부와 서부 사람이 고루 섞여 있죠. 그런데, 당신들은 앉은뱅이가 사는 집에 불을 지르고, 힘줄이 잘려 바느질도 겨우 하는 남자에게도 검을 휘두르더군요.”
광기가 차갑게 식는다.
축제의 흥취는 하룻밤으로 끝내야 한다.
술, 담배, 분위기. 그게 뭐가 됐든 오래 취하는 건 좋지 않다.
취기는 일상의 고단함을 몰아내는 잠깐의 여흥에 그쳐야 한다.
취기가 삶의 이유가 되고, 취기를 따라 움직여서야 그게 짐승이지 사람인가.
“하나 묻고 싶었어요. 당신들은 자신들이 그리 열등하다 말하는 서부 사람과 동부 사람을 구분할 수나 있나요?”
“문화가 다릅니다. 몸에 새겨진 언어가 다릅니다. 그래서 그들의 열등함은 숨길 수 없는바. 저희는 그들을 구분해낼 방법을 알고 있으며, 그 수법은 나날이 증진하고 있습니다. 서부가 열등하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우리는 의무를 다해야 하며! 자그마한 장애물에 걸려 의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에란이 외쳤다. 그의 눈길이 유리구슬을 훑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 아니다.
유리구슬을 거쳐 퍼지는 소리를 듣고 있을 수많은 사람을 향해서다.
나름 머리를 굴렸지만, 이 자리에 저 구슬을 놔둔 사람이 마르할이었다.
“과연, 열심히 정진하고 있다니 그 태도만은 칭찬할 만하군요. 아비가 아이를 죽이게 하면서 말이죠. 제가 이 자리에 없었고, 저를 지키는 호위들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오늘 세상에 하나의 비극이 태어났겠죠.”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런가요? 이 공터에 있는 사람을 무차별 학살하면서, 일일이 아비와 자식을 찾아 짝지어 줄 수 있다고요?”
“우린 그러려고….”
“그게 아니었다? 척 봐도 이백이 넘는 인원이 무기를 빼들고, 아이와 여자가 대다수인 공터를 포위했네요. 저 뒤에 최근 도시에 불을 지르고 다녔다는 사람의 얼굴도 보이고요. 한번 물어볼까요?”
마르할이 뒤편을 향해 말했다.
-저기 있는 사람 중 누군가에게 위협을 당하신 적 있는 분?
남녀노소가 고래고래 소리쳤다.
무수한 절규가 뒤섞여 유리구슬 안으로 들어갔고, 소리를 퍼뜨리는 유물은 그 소리를 다시 고즈넉하게 사방팔방 퍼뜨렸다.
크지 않기에 절규는 절절히 사무쳤다.
“서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죠? 그럼 저는 어떤가요? 한번 판단해 보세요.”
마르할의 공국어는 고아했다.
성황국에서도 귀족으로 취급받는 사제 가문의 장자가 공국어를 구사하는 듯했다.
품행도 그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동작 하나하나에서 성황국의 예법과 사제의 예법이 함께 보였다.
에란만이 아니라 교회를 몇 번 들락거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아차렸을 것이다.
“에란, 당신 눈에, 그리고 에란의 뒤에 있는 당신들의 눈에 저는 어떻게 보이죠?”
부드럽기만 하던 말에 강세가 들었다.
허리는 꼿꼿이 펴졌고, 땅에 앉았지만, 반듯한 의자에 앉아 있는 듯했다.
그 말과 행동은 분명 제국 귀족의 것이었다.
“자, 맞혀봐요. 제 출신은 어딜까요?”
어색하던 공국어가 입에 착 달라붙었고, 몸에서는 힘이 살짝 빠졌다. 양손이 반듯하게 아랫배로 모였다.
공국 귀족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예법이었다.
마르할은 자유자재로 껍질을 바꾸었다.
“모두가 저를 서부 귀족가 출신이라 하죠. 그게 정말일까요? 열등한 서부 귀족에게 이런 게 가능할까요?”
마르할은 좌우를 살폈다.
광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영원하지는 않다.
저들은 이미 죄를 범했다. 죄의 도피처로 사상을 택했다.
광기에 취해 범한 죄는 무겁다. 멀쩡한 이성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들이 도피처를 필요로 하는 이상, 광기는 언제고 부활할 수 있다.
제언자와 선각자는 의미가 없다.
열등함을 없애야 한다면서, 그 열등함을 구분하는 눈조차 없음을 시인했다.
누가 서부의 열등함을 증명하려 하거든, 그는 서부 사람과 동부 사람을, 서부 문화와 동부 문화를 완벽히 구분해내야 할 것이다.
그건 아르고도 불가능하다.
천하의 도둑도 못 하는 일을 누가 해낼 수 있을까.
에란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지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차라리, 에란이 아니라 성황국에서 평생 성경만 들여다보는 신학자였다면 훨씬 나은 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온갖 논리에 대한 반박을 머리에 넣어두고 있으며, 그러한 논리는 대개 주어만 바꿔주면 어떤 상황에서도 요긴하게 쓰였다.
에란이 아는 건 원론적인 설득법, 연설법, 그리고 고문법 몇 가지가 전부였다.
대단한 재주이긴 하나, 권력의 별 아래에서 태어난 인간을 상대로 권력을 논하긴 모자랐다.
권력.
이 자리에서 오가고 있는 것.
수백 명을 말 한마디로 움직이고, 수만 명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다.
두 사람이 앉은 바닥이 권좌요, 둘의 대화는 두 개의 권좌를 하나로 줄이는 권력 투쟁이라.
권력의 별 아래 태어나 별의 선택을 받은 남자는, 대부분의 힘과 대부분의 가능성이 봉인당한 상태에서도 권력을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반대.
권력이 마르할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걸지도 몰랐다.
베이올라는 떨어진 자리에서 에란과 마르할의 만남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 앞에 있는 반서부파 인간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베이올라가 움직이는 순간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죽는다.
그녀 발치에 있는 수십 개의 화살과 암기가 그걸 증명했다.
싸움이 소강상태가 되고, 마르할과 에란이 막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였다.
반서부파 인물들이 베이올라를 기습했다.
전신 갑옷을 입은 게 아닌 이상, 고위 기사도 무사할 수 없는 맹공이었다.
베이올라는 그물망처럼 덮쳐오는 화살과 암기를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잘라냈다.
자신을 향하는 것만이 아니라 옆에 있는 부하를 노리는 것까지 전부.
인간의 기술이 아니었다. 그걸 본 반서부파 사람들은 전의를 완전히 잃었다.
용병은 기사에 비해 현저히 무력이 떨어진다. 그래도 용병이 기사와 무기를 맞대는 건, 합공으로 빈틈을 찌르면 기사도 죽일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철을 베는 초인 상대로는 무기를 맞대지도 못한다. 빈틈도 보이지 않는다.
칼부림이 일어나면 전투가 아니라 학살이다.
베이올라는 반서부파 인간들을 눈에 담지 않았다.
마르할이 실패하는 기색이 보이면, 그때 움직이려 했다.
‘그럴 리가 없지.’
최적의 돌파 경로를 계산하면서도, 실제 검을 휘두를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내심 생각했다.
마르할 앞에 앉은 청년은 아마 성황국의 꼭두각시겠지.
그런 인간으로는 마르할의 대화를 떨쳐낼 수 없다.
그걸 증명하듯 유리구슬이 사방으로 퍼뜨리는 설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르할의 우위였다.
비등하다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베이올라가 보기에는 아니었다.
서부를 반으로 가르던 사상은, 오늘 여기서 죽는다.
아예 납검까지 마친 베이올라의 눈에 다른 것이 보였다.
미풍이 머리칼을 간질인다.
바람이 분다.
아주 미세한 미풍이 모래를 퍼 올리고, 재를 흩날렸다.
공터에 뚫린 수십 개의 길목을 지난 바람이 공터로 모였다.
서부 황야에는 사시사철 바람이 분다.
이러한 일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올라의 눈에 보이는 바람의 흐름은 달랐다.
머리 꼭대기에 있던 태양이 어슷했다.
바람이 마르할에게 모여 형태를 만들었다.
머리에 모인 바람이 왕관이 되었고, 그의 등에는 망토가 늘어졌다.
망토와 왕관은 있다가도 없었다.
눈을 깜빡일 때마다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현실인지 환각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소리가 들렸다.
마르할을 칭송하는 소리였다.
서부를 위해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고, 자신들을 대변해 창칼 앞에 나선 대변자를 향한 찬가였다.
바람이 소리를 전하는 듯했다.
소리가 바람이 되었고, 바람이 왕관과 망토를 이루었다. 마르할은 민중의 소리를 둘렀다.
베이올라의 입이 불현듯 열렸다.
“이 근방에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상당한 유물입니다. 목소리가 도시의 절반에는 족히 퍼질 겁니다. 제가 아는 도시 규모가 맞다면 수만 명은 듣고 있을 겁니다.”
밤이슬이 답했다.
경계 도시는 크기에 비해 사람이 많은 편이다.
서부로 가는 사람과 동부로 가는 사람, 서부로 가는 물자와 동부로 가는 물자, 모두가 경계 도시로 모이며 생겨난 특이성이다.
“수만….”
베이올라는 그 숫자를 곱씹었다.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바람과 망토가 환영처럼 일렁였다.
베이올라의 머리에 한 단어가 스쳤다.
망토와 왕관을 두르고 뭇사람들을 대변하는 자.
왕.
멸망한 서부에 나타난 최초의 왕.
* * *
움직이는 바람을 본 건 베이올라만이 아니었다.
높은 수준의 신비를 다루는 자들은 모두 바람과 환영을 보았다.
우라하가 눈을 부릅떴다.
“저! 저저…! 역사가! 역사가 왕을 만든단 말인가! 업이 왕을 만든다고! 왕의 업이 존재한다고!”
쌓은 역사에 따라 신비가 몸에 깃든다.
역사를 이용하는 사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많은 왕이 역사를 알고 이용했다. 그러나 우라하가 아는 한 누구도 역사로써 왕이 되지는 못했다.
귀족도, 사제도, 역사를 이용한 신비를 내세워 선택받은 사람 행세를 했다.
신비로 하여금 사람들이 자신을 선택하도록 했다.
역사가 먼저 왕을 선택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왕의 역사, 왕의 업, 왕의 신비라니?
그런 게 있었으면 역사서에 기록된 무수한 왕국이 왕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효용은 몰라도 왕의 업이다. 능히 왕의 능력을 보여줄 터.
저기 있는 청년은 세상 모든 권력자들의 노력을 비웃었다.
너희 노력은 잘못되었다.
오직 나만이 오롯한 지배자다.
바람을 감싼 뒷모습이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눈에는 그렇게 보이나 보군.”
스트레킬은 우라하를 계속 견제하며 슬쩍 뒤를 확인했다.
마르할이 직접 만든 오동나무 관과는 약간 달랐다.
사람들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왕의 징표.
마르할 본인의 역사와는 다르다.
스트레킬은 이미 저것과 비슷한 역사를 접했다.
마르할이 가진 두 개의 토지에서 마르할은 자신의 것이되 자신의 것이 아닌 신비를 사용했다.
토지의 역사.
이 땅에 모인 역사가,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마르할을 왕으로 인정했다.
우라하의 호들갑은 추하지 않았다.
역사와 업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저리 반응할 것이다.
스트레킬에게는 아니었다.
스트레킬은, 황제의 유일한 심복은 오히려 불만이었다.
‘이미 황관을 쓴 자에게 겨우 왕관이라니.’
그래도 망토 하나 둘러줬으니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