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51
제251화
오동나무 관을 쓴 마르할은 존재만으로 주변 사물을 찍어 누른다.
그 위력은 땅을 짓눌러 구멍을 만들고, 므에트 제국 기사단장급 강자도 몸을 가누지 못한다.
왕의 이름으로 재현된 존재감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하지만 지하를 무너뜨리고 성기사를 찍어 누를 정도는 되었다.
무너진 천장은 마르할과 마르에게 먼지 하나 묻히지 못했다.
‘위력이 과해.’
처음 써보는 힘이라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예상외였다.
마르할이 신비의 위력을 줄이는 것보다 마르의 마법이 먼저였다.
익숙한 지팡이 소리와 함께 사방을 찍어 누르던 신비의 범위가 좁은 지하로 한정되었다.
동시에 겹겹이 사방을 둘러싸는 마법들.
마르가 애용하는 마법으로 사람의 눈을 속이고 피하는 종류였다.
“더 필요한 거 없어?”
“됐어. 고마워, 누나.”
“저녁.”
“맛있는 걸로 해줄게.”
마르는 만족한 얼굴로 뒤로 물러서 마르할의 신비를 관찰했다.
토지의 역사는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토지에 쌓인 역사와 토지 주인의 역사.
두 가지가 맞아떨어질 때 토지의 역사는 주인에게 힘을 빌려준다.
마르도 토지의 역사가 활용되는 걸 보는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마르할은 죄인에게 다가갔다.
다른 요소는 중요하지 않다.
이 자리에서 마르할은 왕이고, 성기사는 죄수였다.
왕 앞에 선 죄수.
왕이 죄의 판결을 내리는 건 동서고금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행사다.
극악한 범죄자의 처분이나 일반적인 법으론 판결이 불가능한 일의 최종 판단은 으레 왕의 것이 되었다.
왕은 자신의 현명함을 과시하고, 죄수는 왕의 자비로운 처사에 고개를 조아린다.
마르할의 뜻에 따라 지금 이 자리는 그런 행사의 장소가 되었다.
마르할이 앉는 시늉을 하자 바람이 의자를 만들었다. 바람의 형태를 따라 흙이 솟아오르며 의자의 형태가 되었다.
마르할은 턱을 괴고 죄인을 내려다보았다.
구덩이에 진 그늘이 절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림자는 죄인을 덮고, 마르할의 몸 반을 덮었다.
그늘진 얼굴로 마르할이 입을 열었다.
“이름.”
“…….”
“암살 쪽 전문가인가. 입이 근질거리지 않나?”
“무슨 신비냐….”
머리를 간질이는 충동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자비롭다. 그러니 설명해주마. 도시에 왕처럼 군림하며 서부 사람을 색출하는 일을 했다지? 그거와 같다. 달라진 건 각자의 위치지. 내가 묻는 사람이고, 네가 답하는 사람이다.”
마르할은 오만했으나 친절했다.
선생이 가르침을 구하는 학생을 가르치듯 성기사의 질문에 답했다.
“어전, 그리고 그 태도. 왕 흉내라도 내는 거냐?”
“흉내가 아니라 왕이다. 내 얼굴을 모르지 않을 텐데?”
“대지주 마르할. 왕과 같은 권세를 지닌 지주. 하지만 웃기는군. 네가 왕을 자칭하면, 세상이 가만히 있을 것 같나? 동부와 서부의 권력자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연합은 왕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지주의 일은 왕의 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연합은 왕을 인정하지 않는다.
왕과 국가가 가지는 무게 때문이다.
지주는 기껏해야 땅의 주인이다. 연합이 온갖 트집으로 땅의 권리를 박탈하면 지주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
왕은 아니다. 왕은 연합에서 독립한 한 국가의 주인이다.
“사람은 허락하지 않아도, 세상은 허락했지. 다시 묻겠다. 이름.”
“슈펠파르간.”
성기사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바람은 흩어지는 목소리를 그대로 왕에게 가져갔다.
“죄인의 이름은 슈펠파르간. 죄목은 역모와 내란. 무구한 평민을 수없이 죽였고, 범죄의 밑 준비를 책임졌다. 산 채로 사지를 잘게 잘라야 함이 옳다만. 나는 자비롭다.”
슈펠파르간은 이를 악물었다.
마르할의 왕 놀음이 조금이라도 어설펐다면, 그는 바람에 전신이 찌그러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르할을 한껏 비웃었을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며 자비로운 대지주인 척해도 너도 결국 지주라고,
사람을 착취해 돈을 버는 버러지들과 다르지 않다고.
힘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무뢰배와 같다고.
마르할과 대화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 그를 인정하고픈 의지가 생겨났고, 슈펠파르간은 그 연원 모를 의지가 두려웠다.
저자의 말대로, 세상이 저자를 왕이라 부르도록 허락한 듯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 분위기가 슈펠파르간을 움직였다.
암살자에 가까운 그는 왕을 가까이서 본 경험은 없다. 하지만 성하는 몇 번 만났다.
부드러움을 미학으로 하는 성황국의 언어 그 자체를 형상화한 듯한 사람이었다.
얼굴은 인자했다. 행동은 부드러우며 자신감이 넘쳐 막힘이 없었다.
슈펠파르간이 성기사가 되던 날 성하께선 직접 그에게 명예로운 성기사의 망토를 씌워주며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슈펠파르간. 음지를 살아가는 신의 검. 너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을 것이나. 내가 너를 가슴에 담을 것이다. 너는 나의 아들이니라.
성하의 말씀은 부드럽게 슈펠파르간의 심장에 스몄고, 그때의 결심은 지금도 그의 심장에서 펄떡였다.
성하는 그런 분이셨다.
따듯하게 사람을 보듬어 가슴에 담는 분이셨다.
슈펠파르간은 눈앞의 남자를 위대하고 위대한 성하와 겹쳐보고 있었다.
불경스럽고 죄스러운 일이었지만, 그의 이성은 자꾸 저기 있는 지주를 성하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정신을 차리니 슈펠파르간은 남자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몸을 짓누르던 압박은 사라졌다.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 건 모두 슈펠파르간의 뜻이었다.
“슈펠파르간. 불경한 죄수야. 네 죄를 인정하느냐?”
“인정합니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나이다. 아들이 아비에게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짓을 저질렀나이다. 부디 못난 아들을 벌해주소서.”
“네가 나를 아비라 했다. 왕은 만민의 어버이니, 내가 너의 아버지가 되어주겠다. 못난 아들아. 네 죄는 부모 자식의 허울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비의 도리로 너를 벌할 것이다. 아들아, 고개를 들어라.”
슈펠파르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내가 주는 고통을 죄의 무게로 받아들여라.”
“영혼 깊이 새기겠습니다.”
잠잠하던 바람이 칼날이 되었다.
바람이 슈펠파르간을 난자했다.
바람은 가죽과 근육은 갈라도, 뼈는 가르지 못했다.
고통은 영혼에 새겨질 만큼 깊었고, 슈펠파르간은 생전 처음 겪은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숨이 끊어진 자리에는 기괴하게 비틀린 뼈와 근처에 진득한 핏물이 남았다.
떨어진 바람이 뼈와 살점을 짓누르고 부숴 땅에 묻었다.
마르할이 바람 의자에서 일어났다.
바람과 함께 맴돌던 모래가 푸스스 땅에 떨어졌고, 왕관과 망토도 사라졌다.
마르할은 죄인이 있던 흙더미를 한동안 응시했다.
왕으로서 죄인을 벌한 증거.
왕. 지배자와는 또 다른 이름.
마르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10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던 목표가 훌쩍 다가왔다.
이 또한 세상이 변한 탓이리라.
달가운 일이지만, 동시에 너무 빠른 변화에 불안하기도 했다.
마르할은 목숨을 걸고 서부를 종횡한 동료들의 기술을 믿는다.
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과 해야 한다는 강철 같은 의무감도 있다.
그럼에도 불안한 것은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어깨에 올려진 사람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요,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던 작은 아이 하나가 마르할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르할은 눈을 감고 내면을 관조했다.
봉인은 굳건했다.
세상의 반을 지배했던 마족의 역사가 마르할 안에서 꿈틀대며 저주와 복수를 외쳤다.
미치도록 증오하는,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가족의 마지막 증거. 마르할이라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기적이자 저주다.
마르할은 눈을 뜨고 하늘을 보았다.
“형은 좋은 곳으로 갔겠지?”
“가긴 어딜 가. 여기 있잖아.”
마르의 손가락이 마르할의 가슴을 쿡 찔렀다.
극히 소수의 마족은 지성을 가지고 있었다. 생전에 사람인 경우도 있었고, 거대한 숲이 마족이 되며 의지를 가지기도 했다.
마족이 세상에 탄생하던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마르할의 친형도 마족이 되었다.
아마 마왕 다음으로 강대할 마족, 의지를 가진 마족이.
형이 특별했던 건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가족 중 지성을 가진 마족이 된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
마왕이 기다리는 문 앞에서 마르할은 형과 대화도 나누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많은 걸 담은 대화였다.
마르할이 여기 있는 건 형의 영향도 컸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마왕성으로 향하는 내내 마르할에게 남은 건 복수심뿐이었으니까.
“찾아줄까?”
마르가 물었다.
세상의 반을 차지하던 마족의 역사는 한 덩어리가 되어 마르할 안에 깃들었다.
거대한 증오 안에서 개인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마르라면 증오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사람의 의지를 찾아낼지도 몰랐다.
마르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서로 할 말은 그때 다 했어. 찾아봤자 만나주지도 않을걸.”
바체아 제국의 마지막 후계자가 미련 하나 떨치지 못하냐며 혼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마르할과 마르는 구멍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법이 사라지자 사방에서 사람이 모였다.
그들 눈에는 멀쩡하던 건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구멍이 나타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갈 때는 공간을 뛰어넘었지만, 돌아가는 길은 발로 걸었다.
마르할과 마르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았다.
마르가 펼친 마법이었다.
역사의 장에 들어가는 걸 금지당한 마르는 멍하니 거리를 구경했다.
그것도 금방 질린 마르가 입을 열었다.
“천하를 담은 땅, 살펴봤어?”
“아니.”
“그 땅은 천하가 됐어.”
마르가 밑도 끝도 없이 뱉은 말을 마르할은 바로 알아들었다.
저 앞뒤 다 잘라먹은 설명을 들으며 마르에게 마법을 배운 사람이 마르할이었다.
“이제야?”
“천하를 천하라 불러줄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수련 효율이 좋아지겠고, 다른 건?”
마르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거대 역사가 어떻게 움직일지도 예측이 안 가. 계속 봐야 해.”
천하를 담은 땅에 천하 사람이 모였다.
한둘도 아니고 수만, 수십만이.
마르 말대로, 원래 불가능한 일이었다.
서부와 천하를 담은 땅은 통곡의 산맥으로 막혀 왕래가 힘들고, 장애물이 없어도 동부 끝에서 천하를 담은 땅까지 오려면 말을 타고 한 달 이상이 걸린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이동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난다.
수백, 수천 인원이 동부 끝자락 국가에서 천하를 담은 땅까지 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마족과 토지 경주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다.
공국 방어선이 무너지면 자기 차례라는 걸 알았던 동부 국가들이 지원군을 보냈고, 연합이 토지 경주를 동부 전역에 홍보하며 많은 젊은이가 서부로 유입되었다.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는 없는데. 누나, 좋은 생각 있어?”
“분신을 만들어.”
“…그게 되는 건 세상에 넷뿐일걸.”
아르고는 비슷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망할 형이란 인간은 반나절 연습하면 배워버릴 거다.
율란도 신비로는 여느 마법사 못지않다.
신비 추적자나 숲의 은둔자 정도는 웃으면서 혼자 정리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마르할은 못 한다.
마르를 빼면 그런 마법을 만들 인간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인간과는 역사 자체가 다른 영물이라면 가능할까.
“네 재능은 봉인당한 거지 사라진 게 아냐. 천하의 땅이라면, 네 짐 일부는 대신 짊어져 주고도 남아.”
“…그게 된다고?”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역사가 봉인되며 마르할은 대부분의 힘과 가능성을 잃었다.
하늘을 베는 검으로는 통나무 하나 베지 못하고, 땅을 가르는 마법으로 모닥불이나 피우고 있다.
마르는 말하고 있다.
봉인한 힘과 재능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방법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