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54
제254화
역사의 장에서 마르할은 자신의 탑을 보았다.
마르할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개의 역사가 뒤엉킨 탑이었다.
곧게 선 하나의 기둥에 두 개의 선을 꼬아둔 형상의 탑.
그 탑이 마르할 앞에 있었다.
역사의 장은 아니었다.
새하얀 공간에 탑 하나가 달랑 있었다.
마르할은 도움이 될 거라며 마르에게 배워온 간단한 마법을 사용했다.
실라나티엘 가문의 가주가 토지의 힘을 끌어낼 때 사용했던, 토지와 교감하는 마법이라고 했다.
과연 실라나티엘이었다. 찾으면 온갖 마법이 다 튀어나왔다.
마르할은 탑에 다가섰다.
탑의 기둥은 마족을 상징하듯 새까맸고, 기둥을 감고 있는 선은 금색과 황토색을 하고 있었다.
금색의 선은 굵었고, 황토색 선은 비교적 얇았다.
각각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역사와 마르할이 짊어진 바체아 제국의, 서부의 역사였다.
마르할은 탑에 손을 올렸다. 새하얗던 공간에 토지가 생겼다.
풀이 무성한 땅이었다. 저 멀리 강이 흘렀다.
마르할은 흐르는 강의 형태를 보고 알았다.
여기는 그의 땅이었고, 탑의 위치는 마르할이 꽂은 깃발의 위치와 같았다.
마법은 제대로 작동했다.
마르할은 자신의 토지에 있었다. 현재의 모습은 아니었다.
카반이 지은 진지도 없고, 식생도 달랐다. 자세히 보니 강의 형태도 미묘하게 달랐다.
강의 곡선이 완만했다. 아주 작은 변화지만,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일어나는 변화였다.
마르할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땅이 말을 걸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천하를 담은 땅이 처음부터 천하를 담은 땅이라 불린 건 아니다.
누군가 그렇게 부른 사람이 있었을 거고, 그 이름이 굳어져 천하를 담은 땅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는 시작이다.
단순한 곡창지대가 천하를 담은 땅이라 불리기 시작했을 무렵이다.
동쪽, 지평선 너머에서 군대가 나타났다. 공국 한참 이전에 있었던 강대국의 깃발이었다.
그들은 마르할을 지나쳐 땅에 뿌리 내렸다.
땅에 씨를 뿌리고, 집을 지었다. 씨가 열매를 맺을 무렵이었다.
남쪽에서 새로운 군대가 나타났다. 아프란체 이전에 아프란체 땅에 있던 국가였다.
양쪽 군대는 서로 싸웠고, 공멸했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출신을 가리지 않고 땅에 작은 마을을 만들었다.
마을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가에서 쫓겨난 것으로 보이는 범죄자 무리가 마을을 휩쓸었다.
한때 군인이었지만, 몇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몸 관리를 소홀히 한 사람들은 살기등등한 범죄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마을이 불타고 범죄자들은 피땀 서린 곡물만 가지고 유유히 떠났다.
비슷한 장면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씨를 뿌리기만 해도 풍년이 드는 땅을 탐냈다.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꿈과 함께 땅에 묻혔다.
마르할은 수백 년 시간을 빠르게 거슬렀다.
마르할은 이 땅에 흐른 피를 모두 눈에 담았다.
씨 뿌리는 농부의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기억했고, 농부의 보람찬 얼굴을 기억했다.
범죄자에게, 군인에게, 기사에게 죽음을 맞이하며 죽어가는 농부의 눈에 서린 원통함도 기억했다.
땅에서는 전쟁도 일어났다.
때로는 수천의, 때로는 수만의 병력이 부딪혔다. 그들이 자아내는 생명의 울림 또한 마르할의 뇌리에 새겨졌다.
수백 년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서쪽에서부터 검은 안개가 들이닥쳤다.
안개가 천하를 담은 땅을 덮쳤고, 땅 위에 있는 모든 생물이 검게 물들었다.
검은 안개 속을 마족이 달렸다.
마족은 모두 모습이 달랐다. 똑같은 마족은 하나도 없었다.
인간의 언어로는 모두 표현하는 게 불가능한 괴물들이 검은 안개를 감고 천하를 담은 땅을 짓밟았다.
하늘이 갈라졌고, 땅이 갈라졌다. 신성한 빛에 검은 안개가 물러났고, 검은 안개에 몸을 숨긴 마족들의 머리가 달아났다.
마르할의 기억에도 있는 장면이었다.
천하를 담은 땅은 대부분이 평야로 이루어진 땅이고, 그 안에는 마족이 바글거렸다.
마르할은 모두를 따라 천하를 담은 땅을 가로질렀다.
넓은 땅을 모두 정리하는 건 무리였다. 공국을 단번에 무너뜨릴 힘을 가진 강대한 마족을 찾아 그들만을 죽였다.
검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하늘이 열리고 검은 안개가 갈라졌다. 무수한 불덩이가 마족이 된 식물을 불살랐다.
어떤 독과 저주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했고, 등을 돌린 마족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세상 누구도 모르는 용사 일행의 전투.
인간의 형상을 한 재해들 속에 마르할이 있었다.
12년 전? 13년 전인가?
그 시기의 시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괴물들을 따라잡으며 살아남는 게 최선이었다.
인외라 불리는 인간들은 폭풍처럼 서부를 휩쓸었다.
‘그것도 서부 초입까지였지.’
중간부터는 인외라 괴물들조차 뛰어넘는 괴물들이 일행을 기다렸다.
특히 이성을 가진 마족들은 일행을 고생시켰다.
개개인으로도 일행 중 한 명과 맞붙을 역사를 가졌고, 그들이 부리는 마족은 최소 만 단위가 넘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마르할은 천하를 담은 땅을 질주하는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성인 남성도 나가떨어질 속도로 달리는 네 사람 뒤에서 커다란 짐을 짊어진 마르할이 아득바득 그들을 뒤따랐다.
저 때 이미 마르할의 신체는 어지간한 기사보다 강인했다. 육체 능력만 보면 현재보다 우월했다.
바체아 제국 황족이라는 출생에 용사 일행을 따라가며 쌓이는 역사까지.
약하래야 약할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과거의 마르할이 천하를 담은 땅을 지났고, 마족이 사라졌다.
토지 경주가 시작되었다.
서쪽에서 무수한 사람이 나타났고, 엘리제를 탄 마르할이 이 땅에 도착했다.
깃발을 꽂고, 진지를 세우고,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땅의 주인이 되었다.
환각은 거기서 끝났다.
모든 환영이 사라지고 무한한 공간에는 탑과 마르할과 토지만이 남았다.
마르할은 현실에서와 같은 자세로 무릎을 땅에 대고 흙을 한 줌 손에 쥐었다.
땅의 역사가 마르할에게 전해졌다.
천하를 담은 땅이라 불리었고, 끝내 천하가 되어버린 땅이다.
마르할이 딛고 있는 땅은 단순한 땅이 아니라 드넓은 천하의 압축판이었다.
탑이 들어선 이 땅은 단순한 한 뙈기의 땅이 아니라 중요한 천하의 일부였다.
“땅의 크기와 가치를 보면, 나라 하나의 값은 하려나.”
10년도 못 가 사라지고 생겨나는 소국이 아니라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을 버텨내는 중견 규모의 국가다.
예를 들면, 약화된 지금의 공국이라거나.
지금부터 마르할이 하려는 건 공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를 제물로 하는 마법이다.
일어선 마르할은 탑에 손을 댔다. 감촉은 차가운 금속과 비슷했다.
마르할의 봉인은 쇠사슬에 묶인 상자에 비유할 수 있다.
상자가 마르할의 역사고, 쇠사슬은 바체아 제국과 서부의 역사이며, 상자 안에 봉인된 건 마족의 역사다.
마르할은 기둥을 감고 있는 두 개의 선을 천천히 풀어냈다.
봉인이 풀린다. 바깥에선 아마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저번처럼 먹구름이 끼고 태풍이 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르할은 스트레킬을 믿었다.
스트레킬의 신비는 지키기 위한 힘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르할을 안전하게 지켜줄 터였다.
기둥에서 해방된 두 개의 선이 마르할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느슨해진 봉인을 가만히 둘 수도 없다.
마족이 자연 발생하기 시작했다지만, 여기 있는 역사는 그런 마족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서부를 집어삼켰던 모든 마족의 총체가 이 기둥이다. 멸망한 서부가 여기 담겨 있다.
제대로 된 역사도 흡수하지 못한 마족들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느슨해진 봉인은 똑바로 기워야 한다.
땅이 움직였다.
탑이 땅을 빨아들였다. 뽑아 올려진 땅은 굵은 선이 되어 마르할의 역사가 사라지며 생긴 빈자리를 채웠다.
탑은 토지를 끝없이 빨아 당겼다. 토지가 모두 뽑혀 들어가고, 토지 끝자락에 있던 강물도 역사가 되어 기둥을 묶는 봉인이 되었다.
마르할은 탑에서 손을 뗐다.
변한 탑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금색과 황토색 일부가 사라지고, 뭉쳐 압축된 토지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2할이 약간 안 되나.’
공국 규모의 토지에 봉인을 떠넘겼다. 그런데 마르할의 봉인은 2할도 풀리지 않았다.
이것도 감지덕지였다.
세상의 반을 멸한 대가는 세상의 반이 되어야 한다.
공국 하나로 2할이 약간 안 되면, 그런대로 괜찮은 비율이다.
마음 같아선 다른 땅도 사들여 봉인을 완전히 풀고 싶지만, 그건 힘들었다.
‘꽤 아슬아슬했어.’
마르할 안에 있는 마족의 역사는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튀어나와 세상을 피로 물들이려는 살아 있는 맹수다.
몇 번이나 봉인을 풀어대면 마족의 역사가 스스로 봉인을 풀고 뛰쳐나올지도 몰랐다.
그러면 세상은 마족과 마왕보다 더욱 두려운 적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마왕을 포함한 모든 마족의 역사가 합쳐진 한 마리의 괴물을.
그러니, 꼼수로 힘을 회복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아깝긴 해도 미련은 남지 않았다.
마르할의 역사는 단순히 한 사람의 역사가 아니다.
마르할은, 용사 일행의 어린 길잡이는 용사 일행 전원의 역사를 이었다.
용사에게 검을 배웠고, 도둑의 지식과 기술을, 성인에게는 성황국에서 쓰는 기적과 의학 지식을, 마법사에게는 마법을.
마르할의 봉인이 풀린다는 건 용사 일행의 모든 힘을 활용할 수 있게 됨을 뜻했다.
힘이 약하다고 일을 그르치는 일은 이제 없다.
세 개의 역사에 더해 토지의 역사까지 더해져 한층 복잡해진 탑을 마지막으로 쓰다듬고, 마르할은 마법을 마무리했다.
세상이 빛으로 물들었다.
* * *
눈을 뜬 마르할의 앞에 있는 건 시체였다.
백 구는 넘는 시체가 사방에서 피 냄새를 풍겼다.
마르할의 호위는 시체들 사이에서 말의 심장을 씹어 먹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어요?”
“나흘, 몸은 어때? 전신 근육이 쑤실 것 같은데.”
마르할의 자세는 마법을 사용할 때와 똑같았다.
마르할은 몸을 일으켰다.
근육과 관절 모두 멀쩡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도 몸에 힘이 넘쳤다.
“이것들은요?”
“하이에나. 네 얼굴을 보고 근처 지주가 보낸 놈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심문도 귀찮아 다 죽였다. 심문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잘했어요.”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거냐?”
스트레킬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땅이 검었다.
일대의 토지 전부가 불길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농사는 못 짓겠네요. 마린한테 부탁해 봐야겠어요. 아스탈까지 있으면 곡식은 충분할 테니까요.”
“베이 얼굴을 안 봐도 되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이 땅은 뭐지?”
“제 힘이 봉인되어 있다고 말했던가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마르할이 무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고 그 정도도 유추하지 못할 스트레킬이 아니었다.
“봉인 일부를 풀었어요. 땅에 떠넘긴 것에 가깝지만요.”
“떠넘겼다라…. 그래서 땅이 이 꼴이 된 거군. 대체 무슨 봉인이기에?”
어제부터 마르할을 중심으로 땅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자라고 있던 식물이 모두 말라 죽었다.
세계 최고의 곡창지대라 불리던 땅이 하루 만에 생물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땅이 되었다.
“유렐의 마차를 털 때 나타난 그놈. 그게 봉인의 극히 일부예요.”
마족의 역사가 분노하긴 했지만, 그때 마족의 역사가 전부 풀려난 건 아니었다.
마르할의 봉인을 뚫고 현실에 나타난 건 편린에 불과했다. 그랬으니 칼질 한 방에 깔끔하게 정리되었지.
“땅이 죽는 게 당연하군.”
피가 뚝뚝 흐르는 심장을 씹어 삼킨 스트레킬이 몸을 일으켰다.
“봉인을 풀었으면, 자기 몸도 제대로 모르겠지?”
“제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보여줄게요.”
스트레킬이 유물을 뽑았고, 마르할이 손을 뻗자 시신 옆에 있던 검이 마르할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