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65
제265화
마르할은 기적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남들 앞에서 기적을 쓰는 건 피해야 하지만, 작은 상처를 치료하는 빛은 회장의 빛에 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마르할은 베이올라와 눈이 마주쳤다.
아르고는 그의 기술을 마르할의 본능에 새겼다. 마르할의 무의식은 마르할이 원하지 않아도 눈에 들어오는 정보를 모두 분석했다.
마르할은 베이올라의 표정에서 많은 걸 읽었다.
놀람, 분노, 후회, 그리고 배신감.
베이올라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일리와 함께 회장 안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기는 베이올라와 하일리를 보고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졌다.
아프란체식으로 한껏 꾸민 베이올라의 미모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철저하게 베이올라를 보조하는 하일리를 보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유렐이 물었다.
“괜찮나?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제 호들갑이었나 봅니다.”
“그럼 그 손 좀 보여줘.”
“여기 있습니다.”
마르할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르할의 손에 유렐이 찾던 흔적은 없었다. 대신 다른 걸 보고 유렐은 놀랐다.
무수한 굳은살과 흉터였다.
한때 기사가 되려 했던 유렐은 제국의 많은 기사를 만나봤다. 하지만 마르할처럼 엉망이 된 손은 처음이었다.
황제 직속 기사단의 손도 마르할과 비교하면 귀족가 처녀의 손이었다.
“나도 많은 사람의 손을 봐왔지만, 이런 손은 처음이군.”
“전에 보셨지 않습니까.”
“그때는 술 마시기 바빴지. 그런데 그 흉터들, 누구한테 배웠나?”
“예상하는 그 사람들한테요.”
유렐은 무언가 고민하는 눈길로 마르할의 얼굴을 보았다.
마르할이 수없이 받았던 시선이었다.
인외의 인간들의 기술을 배웠으면서 본인의 무력은 왜 그 모양이지? 딱 그런 얼굴이었다.
“바로 칼 꽂을 분위기는 아니니. 나도 좀 즐겨야겠어.”
“베이 근처로는 가지 마시죠.”
“내가 미친놈으로 보여? 눈도 안 마주칠 거야.”
유렐이 사람들 사이로 섞였다.
서부에서 활동하는 황족 중 권력과 가장 먼 사람이 유렐이었다.
토지마저 경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통곡의 산맥이다.
다른 형제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유렐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마르할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허, 이게 진짜 된다고?’
베이올라의 재능은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토지 경주가 시작되기 전의 그녀는 실력 뛰어난 초인이긴 했지만, 철을 베지는 못했다.
땅을 얻고 서부에 돌아왔더니 그녀는 철을 베는 기사가 되어 있었고, 그 후로 얼마나 지났다고 눈빛만으로 물건을 자른다.
피부에 생채기나 겨우 내는 수준이고, 본인도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마르할은 베이올라가 보여준 신비의 가치를 정확히 알았다.
마르할이 아는 가장 뛰어난 검사 두 명이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
검을 쓰는 사람 주제에 검을 손에 쥘 필요가 없어졌다.
보는 곳이 잘려 나간다. 검술에서 강조하는 정밀함도 필요 없다.
격렬한 싸움 도중 상대의 눈만 베어내려면 섬세한 기교가 필요하지만, 베이올라는 그냥 상대의 눈을 보기만 하면 된다.
조만간 베이올라를 인외라 부르는 인간들이 생겨날지도 몰랐다.
‘유렐이 얼마나 버티려나.’
통곡의 산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당한 역사를 쌓은 것처럼 보였지만, 베이올라와 비교하면 모자랐다.
그래도 병환 관련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는 버텨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마법사가 한 번 지은 공방을 쉽게 버릴 것 같지는 않지만, 구심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니까.
회합은 계속 이어졌다.
사람들은 뭉쳤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정보를 나누고 차후의 일을 논의했다.
저번 회합은 넓은 탁자에서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지만, 원래 회합 방식을 정하는 건 주최자의 마음이었다.
마르할은 셰르도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다른 적당한 음식을 집어 먹었다.
대지주라고 다 같은 대지주가 아니다. 다른 대지주의 명령을 듣는 허수아비도 있고, 지금 있는 세력에 만족해 더 세력을 넓힐 욕심 없이 지주 회합에서 나오는 정보만으로 소소한 이득을 보는 사람도 있다.
이번 회합은 특히 그랬다. 세오닉처럼 지주가 아닌 권력자도 다수 보였지만, 누구도 그것에 이의를 표하지 않았다.
자격 없는 자들을 걸고넘어지려면 세오닉과 유렐을 먼저 공격해야 한다.
제정신 붙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쾅!
세차게 문을 열며 나타난 사람은 이 자리에 없던 마지막 황족이었다.
네루 므에실리고.
세계 최고의 상인.
그녀 옆에는 딩켄이 함께였다.
호위가 허락되는 자리가 아니다. 세오닉과 유렐조차 호위 없이 이 자리에 있었지만, 네루는 당당히 딩켄과 함께였다.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시선이 문으로 집중되었다.
서부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네루는 무안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말했다.
“살살 열었습니다! 진짜로요! 거기 당신! 문이 고장 난 것 같으니 살펴보세요!”
근처에서 음식을 나르던 하인 한 명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문의 경첩을 살폈고, 네루는 남들의 시선 따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회장에 들어왔다.
네루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식을 먹고 있자 사람들이 하나둘 그녀에게 접근했다.
회장에 있던 사람의 삼분의 일 가까이가 네루에게 모였다.
마르할에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대단하네. 저게 역사상 최고의 상인이라 불리는 사람의 힘인가?”
“카리안, 잘 도착한 모양이네요. 마린도 수고했어요.”
“뛰어난 호위 덕분에.”
“아뇨. 마르할 님이 시키신 일인걸요.”
마린과 카리안은 저번 지주 회합에 참가했었다.
참가 자격 자체는 이미 가지고 있는 셈이었다.
회합 일정이 알려지고 마르할이 카리안에게 의사를 물었을 때 카리안도 회합에 오고 싶어 했고, 마르할은 마린과 스트레킬에게 카리안의 호위를 부탁했다.
단순 호위라면 스트레킬만 가도 차고 넘치지만, 그래도 마린까지 보냈다.
그래야 엄한 곳에서 베이올라와 마주치지 않을 테니까.
마르할이 마린에게 물었다.
“노예 운반은 어때요?”
“도하 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지만, 큰 탈은 없어요.”
“노예가 더 많으니까 어쩔 수 없죠.”
황금의 젖줄은 폭이 넓다. 건장한 성인 남성도 헤엄쳐 건너기 힘들 만큼. 노예를 일일이 배에 태우는 것도 일이다.
토지 경주는 끝났지만, 물길 정리는 끝나지 않았다.
강을 건너려는 사람을 쏴 죽이거나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 흔했다.
지주끼리의 기 싸움이다. 몇 년 지나면 사그라들겠지만, 한동안은 계속 시끄러울 터였다.
“티머시랑 파름은요?”
“둘 다 잘해주고 있어요.”
마린의 땅에 정착하는 사람은 멀쩡한 성인 500명에 어디 하나가 병신인 노예 2천이다.
곡창지대 전역에 인력이 부족했다. 노예가 주를 이루는 대행렬은 누구나 침을 흘릴 약탈 대상이었다.
마르할과 관계되어 있다는 소문만 아니었어도 탐욕스러운 지주들이 행렬을 습격해 저들끼리 노예를 나눠 가졌을 것이다.
자원은 부족하고, 그걸 원하는 사람은 많다.
필요한 걸 얻어내는 수단 중 최고는 폭력이다. 아마 생태계가 생겨난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진리이리라.
“카리안. 하고 싶은 일 있으면 가서 해요. 마린도요. 얼굴 정도는 익혀둬야 나중에 편하죠.”
“너는?”
“저는 반쯤 공적이 되어 버려서요. 하일리도 슬쩍 피하고 있잖아요?”
아젠만이 오면 조금은 나았겠지만, 아젠만은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불야성의 백귀의 청도 걷어차는 게 아젠만이다. 저번 회합이 예외였지, 그가 자리에 없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카리안과 마린도 지주들 사이에 섞였다.
창고를 운영하며 나름 인맥을 쌓은 카리안은 아는 얼굴 위주로 인사를 했고, 마린은 마르할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분류되어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다.
마르할은 여전히 혼자였다.
지주 회합에 오랫동안 나왔던 사람들도 마르할의 얼굴을 힐끔 보고는 지나갔다.
마르할도 그들이 불안해하는 게 뭔지 알기에 가만히 있었다.
네루가 마르할 옆으로 다가왔다. 저 앞에 딩켄이 실무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지루해요. 지루합니다!”
타고난 운과 직감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세상은 호불호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네루의 마음에 드는 건 네루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고, 그녀의 마음에 안 드는 건 그녀에게 손해를 입힌다.
네루는 그런 간단한 이치에 따라 수십 년을 살았다.
그래서 네루는 이 자리가 지루했다. 딩켄이 꼭 참여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고, 그녀도 거기까진 동감했지만, 정작 참가한 회합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돈을 벌 기회 아닙니까?”
“넘치도록 벌었습니다. 여기서 더 벌면 벌레를 쥐어짜는 꼴입니다! 그런데 왜 저들이 당신을 아니꼽게 보는 거죠?”
“제 얼굴이 알려져서 그렇습니다.”
“좋은 거 아닌가요?”
“지주 회합에 참가하는 지주들은 서로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암묵적인 거래가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얼굴을 까버렸으니, 무언의 계약이 깨지는 건 아닌가 불안해하는 거겠죠.”
“저들이 당신처럼 자기 몸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진 않네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네루의 상쾌한 외침에 몇몇 지주가 불편한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직접 말을 걸지는 못했다.
대지주이면서 무력까지 가진 사람은 몇 없다.
넓은 땅의 지주니 기본적인 무력 집단은 가지고 있지만, 대지주를 노리는 무뢰배들한테서 몸을 보호할 수준의 무력을 가진 대지주는 많지 않았다.
“장사는 잘돼 가십니까?”
“여기 오기 직전에 배가 정박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배를 사려면 빨리 오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돈을 넘치도록 벌었다는 네루의 말이 이해되었다.
상선 5척에 가득 실린 물품이라면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먼저 마을을 짓고 노동자를 확보하는 사람이 이후 있을 모든 경쟁에서도 우위를 가져갈 테니까.
황금의 호수에서는 건축용 판자 하나가 금화 하나에 팔리지 않을까.
“환자는 어떻죠?”
“죽는 사람이 조금 줄었습니다! 초인들은 이제 사제 없이도 버팁니다!”
“다행이군요.”
병세가 진화했다면, 사람도 진화할 수 있다.
진화가 아니라 적응이라 불러야 하겠지만, 그 근간에 있는 원리는 역사 축적에 따른 몸의 변화다.
본능적으로 역사를 다루는 초인들은 벌써 몸의 변화가 시작된 모양이지만, 초인은 전체 인구에 비해 정말 한 줌이다.
마음 놓을 단계는 아니다.
“다른 황족과는 대화하지 않으십니까?”
“저희는 경쟁자입니다! 굳이 정보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것치곤 지금까지의 대화가 황금보다 귀한 정보 덩어리였던 것 같은데… 네루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아 하니 본인에게 해가 되는 건 없다는 걸까.
한동안 열리지 않던 회장 문이 다시 열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두 명의 사제였다.
실물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 신상 명세는 마르할의 머리에 있었다.
알레스를 쫓아내고 대지주가 된 사제들이었다.
둘 다 지주이니 회합에 참가할 자격은 가졌다. 그것과 별개로 성황국을 보는 시선은 좋을 수 없었다.
못마땅한 시선이 쏟아졌다. 노골적인 혐오와 적의를 담은 사람도 있었다.
반서부파의 행동에 성황국이 거들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다.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로 막대한 피해를 봤고, 서부가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마르할도 저들을 곱게 봐주기 힘들었다.
두 사제는 서로 역할도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
깡마른 체격에 비싼 안경까지 낀 사람은 눈에 깐깐함이 보였고, 그 옆에 기사 수준은 아니지만 건장한 육신을 가진 사제는 몇 개나 되는 신비… 기적을 몸에 둘렀다.
안경 쓴 사제가 입을 열었다.
“환영받지는 못하는 것 같군요. 그러니 용건만 말하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남부, 단순히 당신들이 남부 도시라고 싸잡아 부르는 세력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저희 도시를 중심으로 남쪽에 있는 모든 땅이 당신들 북부를 적대할 겁니다.”
“연합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서부 사람끼리 내전을 벌이자고? 제정신인가?”
뤼겐이었다. 회합 내내 황족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던 그가 눈에 힘을 주며 나섰다.
“남쪽의 치안을 관리한 건 저희 선민들이었습니다. 당신들이 선민을 배격하겠다면, 저희도 당신들을 배격해야죠. 교회의 사제는 신에게 선택받은 선민입니다. 선민을 배격하는 우둔한 자들은 계몽할 가치조차 없다는 게 저희의 판단입니다.”
“그건 성황국의 뜻인가?”
뤼겐이 두 명의 사제를 노려봤다.
“이미 통보는 끝났습니다. 다른 게 중요합니까?”
“친히 여기까지 왔으니, 사신의 예로 맞이해 죽이지는 않겠다. 꺼져라.”
“그러죠.”
두 명의 사제는 회장 안에 발을 들이지 않고 할 말만 끝내고 가버렸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들이었다.
서부와 동부의 전쟁도 아니고 서부와 서부의 내전.
북부와 남부의 싸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하고 올바른 선택을 내릴 사람이 없었다.
유렐이 귓불을 만지며 앞으로 나섰다.
“이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눈을 반쯤 감고 있던 세오닉이 눈을 떴고, 네루의 눈동자가 다가올 놀이에 반짝였다. 베이올라가 유렐을 죽일 듯 노려봤다.
다행히 베이올라의 눈빛에 유렐의 목이 갈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렐은 품에서 양피지로 된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양피지의 두께가 보통이 아니었다. 종이가 보급되며 쓸 일이 없어진 양피지이지만, 중요한 자리에서 시선을 끄는 역할은 확실했다.
“나는 대리인이다. 빚을 진 놈이 이걸 전해달라 했거든.”
유렐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다 필요 없고, 한 줄로 요약해주마. 안체의 생존자들이 안체를 재건국했다. 신생 안체 왕국이라 불러 달라더군. 이건 그놈들 성명서. 읽을 놈은 읽든가.”
유렐은 양피지를 빈 탁자에 툭 던졌다.
양피지가 좌우로 쫙 펴졌다.
“오오!”
네루가 가장 먼저 양피지에 달라붙었고, 딩켄이 바로 네루 옆에 붙었다. 딩켄의 표정이 한순간 썩어 들어갔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르할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베이올라가 앞뒤 가리지 않고 피바다를 만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