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7
제27화
레벨라는 달렸다.
왼팔에 감각이 없다. 옷은 피에 푹 절었고, 팔뚝을 파고든 고삐가 상처를 압박해 주고 있다.
어깨가 훅 딸려갔다. 레벨라는 말머리를 돌리며 허벅지에 힘을 줘 낙마를 피했다.
깨어난 마린이 몸부림쳤고, 그에 달리던 말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죽어라 달려도 모자랍니다. 제발. 얌전히 계시죠.”
“그러게 생겼어?! 그러게 생겼냐고! 죽었어도 내가 죽어야 해.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마린이 소리쳤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둔감한 편인 서부의 말이 그녀를 떨어뜨리려고 몸부림을 쳤고, 그럴수록 왼팔의 고삐가 조였다.
레벨라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에 억지로 힘을 주었다.
그녀는 스트레킬처럼 말의 힘을 정면에서 버티는 괴력이 없다.
레벨라의 몸이 기울었고, 그녀는 땅에 떨어졌다.
젠장. 레벨라는 팔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당신이 죽어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면, 저도 당신을 미끼로 던졌을 겁니다. 그게 안 되니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개 같다.
평생 검만 휘둘렀으면서 정작 중요할 때는 검도 뽑지 못하는 자신이 개 같고, 갑자기 그런 선언을 해 자신을 서부까지 쫓기게 만든 노망난 황제가 개 같고, 몇 년이나 전혀 성장이 없는 베이올라도 개같다.
세상이 개 같다.
제일 열 받는 건, 모든 일은 전적으로 그녀의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도 개다.
“왜 세상엔 개밖에 없는 걸까. 차라리 돈 많은 상인한테 가서 개처럼 길러 달라고 할까요? 그게 이렇게 발버둥 치며 사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데. 그게 좋을지도요.”
마린이 조용해졌다. 피를 보면 미치는 거지, 그녀가 평소에도 미친 건 아니다.
마린은 많은 사람을 보아왔다. 그녀가 서부에서 동부로 넘어올 때는 할머니를 포함한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였고, 동부에서는 길바닥 생활을 했다.
평소에도 이상한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일상이다. 하지만 멀쩡한, 이성적인 사람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그건 진짜 위험하다는 신호다.
그녀는 자칭 배웠다는 사람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그들의 태도와 레벨라의 태도가 비슷했다.
레벨라가 피식 웃었다.
한참 전부터 깨어나 얌전히 있던 베이올라의 몸이 한 차례 떨렸고, 마린의 눈동자에도 지진이 났다.
“조용히 하면 좋잖아요.”
레벨라는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고 다시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오른손으로 고삐를 잡고, 이제 감각도 없는 왼팔로 나머지 한 마리를 이끌었다.
옷은 먼지투성이에, 씻지 못해 머리카락과 얼굴도 엉망이다. 아까 구르다 모레라도 먹었는지 입도 텁텁했다.
물을 마시고 싶었지만, 양손을 쓸 수 없다는 걸 깨닫고 포기했다. 말 한 마리를 감각 없는 손으로 이끄는 건 품이 드는 일이다.
목마른 걸 참고 말지, 물을 마시다 다시 땅에 떨어지는 건 사양이었다.
저 멀리 말을 탄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그들은 깃발 앞에서 잠깐 멈추더니 이내 다시 전진했다. 몇 명이 무리를 이탈해 사방으로 말을 몰았다.
‘측량사.’
하지만 이상하다. 측량은 섬세한 작업이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측량에 몇 개월이 걸려, 측량사가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깃발 주변에 작은 마을이 만들어져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저들은 깃발 앞에서 측량이라 할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깃발이 있는 지점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말을 움직였다.
‘알 바 아니지.’
레벨라의 최우선 과제는 도망이다. 우선 개척촌에 몸을 숨긴다. 그리고 들려오는 소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녀가 도망친 도시는 이번 토지 경주의 핵심 지역이다.
이미 만들어진 개척촌과 가깝고, 한 번 도시가 세워졌던 지역이라 재건도 비교적 쉽다.
도시의 주인이 정해지면 분명 인근 개척촌이 시끄러워질 것이다.
마르할과 스트레킬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다음 행동을 생각해도 늦지 않다.
레벨라는 말을 끌고 달렸다. 왼팔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그녀도 응급 치료는 혼자서 할 수 있지만, 이건 그 범주를 넘어섰다. 사제나 신경도 치료할 수 있는 명의가 필요한데, 서부에서 그런 귀한 인력은 찾기 힘들다.
초인의 몸이 있으니 한쪽 팔로도 밥벌이는 되겠지.
동쪽으로 가는 레벨라와 서쪽으로 가는 측량사는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레벨라는 측량사들을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저들에게 그녀는 조금 특이한, 토지 경주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터였다.
“잠깐 멈추세요.”
그래서 측량사에게 제지당했을 때, 그녀는 숨이 턱 막혔다.
“무슨 일이시죠?”
“도시 방향에서 오시는 길이죠? 저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레벨라는 말을 신중하게 골랐다.
여자였다. 여자가 교육받을 기회는 흔치 않다.
하물며 측량은 학자들도 힘들어하는 일. 여자 측량사는 연합의 모든 측량사를 통틀어 정말 한 줌일 것이다.
그리고 비정상적인 측량 속도.
‘마법사야.’
마법사라면 전부 설명된다. 연합에 고용될 정도의 마법사니 보통 인물은 아니다.
‘어떤 마법을 쓰는지 몰라.’
마법사는 성가시다.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기행을 일삼는 기인이다. 마법의 결과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모릅니다. 상처가 심해서, 이만.”
“기다리세요. 말에 묶여 있는 그녀들은 뭐죠?”
“일행입니다.”
“움직이지도 못하게 말에 묶어두고요? 한 사람은 다친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가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면, 입도 묶어놨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일행이야. 조금 싸웠지만.”
마린이 레벨라를 한번 째려보고는 말했다.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맞지만, 권력과 얽히는 건 그것보다 수십 배는 성가셨다.
“그쪽 여성분은요?”
“일행 맞아.”
베이올라도 연합과 관계되는 게 반갑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답이 퉁명스러워졌다.
“안심하고 말씀해 주셔도 돼요. 연합에서 당신들을 보호해 드릴 수 있어요.”
“아, 맞다니까 그러네. 서로 갈 길 가자고. 야, 이거 풀어. 내 발로 걸을 거야. 이러면 믿을 거지?”
여기서 거절하면 의심을 산다. 레벨라는 마린의 영악함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었다.
마린과 베이올라는 말에서 풀려났다. 마린이 덜렁거리는 팔을 붙잡고 인상을 썼다.
“더럽게 아프네. 부러졌나.”
“보시다시피, 사이는 나빠도 진짜 일행입니다. 이제 가도 되겠습니까?”
“아뇨.”
“…측량사에게 사람을 붙잡아둘 권한도 있습니까?”
“권한은 없어도, 힘은 있죠.”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머리 위에 불꽃으로 된 구체가 나타났다. 구체는 앞으로 날아가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씨와 열풍을 뿌렸다.
마법의 위력에 놀란 레벨라가 다시 그녀를 보자, 마리나의 옆에는 똑같은 구체가 다섯 개 더 생겨 있었다.
“미친.”
전장에서 쓰면 한 번에 사람 수십은 구워버릴 마법이다.
마법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저 마법이 병사들 사이에 떨어지면 군대 전체의 사기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자기를 마법사라 주장하는 사기꾼들과는 격이 다르다. 고위 귀족, 왕족들도 돈을 주고 모셔 가려 할 진짜 마법사다.
“당신들이 도시 방향에서 도망치던 걸 보았어요. 저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요. 그러니 저와 함께 가줘야겠어요.”
“거절한다면?”
“다소 거친 방법을 쓰게 되겠죠.”
레벨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현실적으로 마르할과 스트레킬이 살아 있을 확률은 낮다. 둘이 성공적으로 클리프의 발을 묶고 있다고 해도, 자신들이 돌아가는 순간 두 사람의 싸움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돌아가면,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황녀인 베이올라는 죽이지 못하겠지만, 호위인 자신까지 살려둘 필요는 없다.
그리고… 마린은 반드시 죽는다.
‘끝장을 봐야 하나?’
추적 기사는 추적 대상을 포박하거나 죽이는 임무도 맡는다. 한 번의 기습은 자신 있다. 틈을 찔러 마법사만 죽이면, 운이 좋다면 도망칠 수 있다.
“레벨라. 됐어.”
“하지만.”
“이만큼 운이 없다면, 하늘이 우릴 버린 거겠지.”
“저는 딱히 당신들을 어떻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글쎄, 그건 봐야 알지. 지금 당신은 사람 여럿 죽이는 거야. 살인자.”
“그런 말로 절 흔들 순 없습니다.”
“알아. 기대도 안 했어.”
고대 제국어는 그 자체로 신비를 가진 언어다. 그래서 마법사는 고대 제국어를 배우려 하고, 위대한 마법사들이 남긴 저술은 고대 제국어로 되어 있거나, 고대 제국어가 섞여 있다.
고대 제국어를 배운 베이올라는 마법사의 생리도 비교적 잘 안다.
마법사의 역사는 기행의 역사다. 일반인이 하지 않는 행동이 쌓이고 쌓여 그들에게 신비를 부리는 힘을 준다.
그리고 사람이 행하는 최고의 기행은 대개 사회적 금기와도 이어져 있다.
살인, 식인, 그리고 그보다 더한 것들.
“말에 타세요. 이건 명령입니다.”
“명령을 받는 건 새로운 기분이네.”
모든 걸 포기한 세 사람을 보며 마리나는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도시 중앙에서 일어난 일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마법사다. 적어도 서부에서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라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눈으로도 확인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마법사로서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현상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사람 몇 명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따위… 그녀가 짊어진 것에 비하면 사소하다.
“내가 앞에 탈까?”
“아니.”
마린이 말에 올라탔고, 베이올라가 그 뒤에서 마린의 허리를 잡았다.
동쪽으로 가던 일행은 다시 서쪽으로 향했다.
마법사가 앞장서고, 다른 사람들이 마린과 레벨라가 고삐를 잡은 말을 둥글게 포위했다.
마린이 속삭였다.
“어쩌려고? 그 지랄을 하고 죽을 거야?”
저 마법사가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위세나 무력이 황제 직속 기사단의 기사단장보다 뛰어나리란 생각은 안 들었다.
베이올라와 클리프의 정체를 알자마자 그녀를 팔아넘길 수도 있다.
“협상을 해야지. 그가 했던 것처럼.”
“하, 네가? 그분처럼 할 수 있다고? 인외라 불리는 사람들과 대등하던 그분을?”
“…그럼, 얌전히 죽어? 도망치려고 하면 분명 마법을 쓸 거야. 그러고도 남아.”
“나도 알아.”
측량사가 귀한 신분은 맞지만, 서부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다.
진귀한 마법사라면 더욱 잡스러운 일에 많이 엮일 것이다. 사람도 죽였겠지.
그래도 해야 한다.
한 남자가 그녀에게 길을 보여줬다. 그 남자가 가진 말도 안 되는 식견까지 흉내 낼 자신은 없다.
하지만 베이올라는 남자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었다.
황녀라는 직위.
그 직위가 가지는 미래 가치.
황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미래의 황위를 팔아 현재를 산다. 따지고 보면 다른 황족들도 하는 일이다.
황족을 돕는 세력은 모두 그들이 지원하는 황족이 황제가 되길 원할 터였고, 황족들도 그걸 알고 그들을 이용하고 있다.
베이올라는 여태 한 번도 황위를 팔아본 적이 없다.
다른 황족들이 십 년 이상 해왔던 일을 이제야 시작한다.
형제들이 저 앞을 달려 나갈 때, 베이올라는 막 출발선에 섰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면, 목숨까지 걸어가며 그녀에게 견본을 보여준 남자를 볼 낯이 없다.
그때, 동쪽에 말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는 망토를 휘날리며 거칠게 말을 몰고 있었다.
앞서가던 마리나가 가장 먼저 그 모습을 발견했다.
“기사…?”
망토 사이로 보이는 건 분명 전신 갑옷이다. 전신 갑옷을 입고 있으면서 투구는 어디다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허리에는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다.
기사는 이쪽을 발견하고는 말의 속도를 늦췄다. 그러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미간을 좁히고 한참이나 이쪽을 바라보았다.
마리나는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칠 수 없는 거리였지만, 마리나도 스트레킬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뒤늦게 스트레킬을 발견한 세 사람의 표정에도 만감이 교차했다.
살아는 있다. 그런데 왜 혼자지? 마르할은? 들개 기사단은?
그런 의문들이 혼재된 얼굴이었다.
동쪽으로 가는 스트레킬과 서쪽으로 가는 마리나는 서서히 가까워졌다.
이윽고 서로 목소리가 들릴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이건 무슨 일이지?”
“붙잡혔습니다. 여기 있는 마법사님께서 도시 폐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으시답니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저희가 도망치는 것까지 봤다는군요.”
스트레킬은 잠시 검을 뽑아야 하나 고민했다.
도시 폐허에서 일어난 일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된다.
‘뭐… 이것도 그놈이 알아서 하려나.’
그는 검이다. 검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건 마르할이 정할 것이다.
“잘됐군. 자칫 개척촌까지 되돌아갈 뻔했어. 돌아가자, 제자들아.”
스트레킬은 궁금해 죽으려 하는 세 여인을 두고 고삐를 잡았다. 그리고 서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