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77
제277화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저는 그렇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거예요.”
모닥불이 타올랐다. 먹지 않은 고기는 까맣게 타서 모닥불에 던져졌다.
어느덧 봄이 되었다. 겨울에는 빠르게도 떨어지던 태양도 느려졌다.
느릿하게 떨어진 태양이 반쯤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을 때 침묵하고 있던 알라실의 입이 떨어졌다.
“율란 에고만이 성인이라 불리기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났을 때의 일이에요. 고아원 아이 한 명이 사라졌어요. 처음에는 다들 걱정하지 않았어요. 고아원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일상이었으니까요.”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고귀했다.
고귀하기에 비천한 것을 보려 하지 않았다. 혐오스러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고아. 부모가 죽은,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은 비천했고, 비참했다.
고아원 아이들은 제 몸을 가눌 수 있게 되면 일을 했다. 알라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감당할 강도의 노동이 아니었다.
죽은 아이는 고아원 뒤편에 묻혔고, 아니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관에 담아 시신을 가져갔다.
고아원에서 지낸 어린 시절 알라실은 백 명이 넘는 아이가 사라지는 걸 보았고, 그 작고 꼬물꼬물한 것들의 소실은 그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하지만 그건 무언가 달랐어요. 사람은 그냥 죽지 않아요. 사고로 죽은 사람도 따져보면 마냥 운이 나빴다고는 하기 힘들잖아요? 한 달 전에 다친 다리가 아니었다면 떨어지는 벽돌을 피할 수도 있었을 거고, 병으로 죽으면 며칠 전부터 열이 나기 마련이고, 다들 그렇잖아요?”
“그렇죠.”
“걔들은 그냥 사라졌어요. 건강하던 애들이, 잠깐 눈을 뗀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기간은 모두 달랐어요. 어떨 땐 일주일. 어떨 땐 한 달. 빠르면 이틀도 있었고요. 처음 몇 번은 고아원 원장이 길길이 날뛰었어요. 그야 그 인간은 아이들을 돈으로밖에 안 봤으니까요. 돈 벌어줄 노예가 사라지면 화도 나겠죠. 용병까지 고용하겠다고 떠들었는데, 갑자기 입을 다물었어요.”
알라실은 감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 재능도 없었다면 지하실에서의 고문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알라실은 이상을 알아차렸다.
서늘하고 어두운 악의가 목덜미로 천천히 손을 내밀어 오는 감각이었다.
보이지 않는 죽음은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정체불명의 실종이 이어지고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 저는 약초를 캐러 산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실종되었던 아이를 만났어요. 저보다 두 살 어려서 언니, 동생 하던 아이였죠.”
“이상하네요.”
“뭐가요?”
“성황국이 납치한 아이가 탈출할 수 있을 리 없어요.”
성황국은 더러운 짓을 많이 저지른다.
그들의 금기가 알려지지 않은 건 그들이 그만큼 철저하기 때문이다.
진짜 성황국이 주도해 금기에 가까운 일을 벌였다면, 그 대상이 된 아이는 우연으로도 탈출할 수 없다.
우연조차 막아서는 게 성황국의 기적이다.
알라실이 우울하게 말했다.
“알아요. 따지고 보면 전부 함정이었어요. 그 아이의 몸은 이미 한계였고, 죽기 전에 고아원을 보고 싶어 했대요. 진실은 어떻든 저는 자원해서 아이를 데리러 온 사제들을 따라갔어요.”
“왜요?”
알라실은 눈치가 빨랐다.
그녀의 처세는 알라실이 타고난, 그리고 살면서 갈고닦은 삶의 결과물이었다.
“조건을 걸었거든요. 내가 가겠다. 나는 누구보다 오래 버틸 거고, 너희가 원하는 것도 주겠다. 그러니 이제 힘도 없는 애들 납치해서 써먹는 건 관둬라.”
“그걸 믿어요?”
“그 개새끼들을 믿을 바에 혀 깨물고 말죠. 거래하면서도 안 믿었어요. 하지만, 제가 있던 지하실은 저만 썼어요.”
성황국은 약속을 지키는 척은 했다.
여러 명이 쓰던 걸로 보이던 지하는 그녀만의 것이 되었다. 그건 지옥의 시작이기도 했다.
지하실을 관리하는 모든 인력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제가 재능이 꽤 있었나 봐요? 한 3개월 지나니까 못 보던 사람들까지 몰려와서 제 배를 가르고 기적을 쏟아붓더라고요.”
“거기서 에고만이 되는 법을 배웠군요.”
“성경을 외우고, 율란 에고만의 행적을 외우고, 기적을 배우고, 아무튼 율란 에고만과 관련된 거라면 모두 몸에 새겼어요. 제 역사가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교황은 다음을 시작하겠죠.”
성녀는 알라실의 종착점이 아니다.
그녀는 성인과 같은 사람, 인외라 불리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성황국과 교황청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그녀는 거대한 권력에 휩쓸리는 하나의 인형이었다.
“지금이라면 탈출할 수 있어요.”
“알아요. 몇 번이나 그럴까 생각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안 하려고요.”
알라실은 몸을 뒤로 뺐다. 고개를 들자 주홍색 하늘이 눈에 가득 담겼다.
“제가 사라지면, 찾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까지 확실해지면, 성황국은 무슨 짓을 할까요?”
“똑같은 짓을 반복하겠죠. 더 잔인하고 더 철저하게요.”
알라실이라는 성공작이 있다.
성황국은 절대 역사 훔치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알라실의 실패를 교훈 삼아 통제를 더 강력하게 하겠지. 알라실 다음 사람은 숨 쉬는 것조차 통제될지도 몰랐다.
그걸 알기에 알라실은 도망을 포기했다.
“제가 고통받는 동안은 교황청도 얌전히 행동하겠죠. 제가 거물이 될수록 제 눈치도 볼 거고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 있어야죠. 이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할 수 있기에 한다.
성녀로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알라실의 의무였다.
* * *
레이갈 프메임은 우호 세력을 포섭하며 건국 준비를 했다.
레이갈은 대지주가 생기지 않는 남부에서 오랫동안 대지주 자리를 유지했다.
그의 인망은 나쁘지 않았다. 혼자서도 시간과 돈을 들이면 건국에 필요한 조건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준 건 한 명의 기사였다.
번개 사자 조셉 라이넬.
지옥 같은 마족과의 전쟁에 참전했던 남부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설.
조셉이 레이갈 아래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방에서 화친을 원한다는 편지가 쏟아졌다.
남부는 중간 규모의 여러 세력이 서로 싸우는 난세다.
혼자 전투의 판도를 뒤집는 실력자는 지주보다 대우받았고, 조셉은 마족에게 맞서 홀로 성벽을 지킨 일화가 있는 기사였다.
전투가 아니라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인간.
일인 군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초인.
한 번이라도 조셉 라이넬의 손을 빌릴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했다.
마르할은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식량이 서부에 퍼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윤곽이 나올 거라고 했다.
빠르게 측량을 받고 곡창지대에 씨를 뿌린 지주들이 수확을 시작했다. 넘치는 식량이 서서히 서부에 퍼졌다.
외부의 피를 수혈받아 살아가던 서부가 제 심장으로 피를 만들고 옮기기 시작했다.
레이갈은 마르할이 말한 대로 윤곽을 보았다.
적과 아군이 구분되었고, 그가 건국할 나라의 규모가 어림짐작되었다.
건국 선언만 하면 언제든지 레이갈은 꿈을, 과거의 영광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건국 선언은 하지 않는 건가?”
“의례 준비만 끝내면 되오. 연합은 물론이고 남부 교회의 시선까지 모일 건국식이오. 늦어도 확실해야지.”
안체에 이어 레이갈까지 건국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세력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남북 전쟁을 일으키려는 교회와도 마찰이 있었다.
그게 마르할이 원한 일이기도 했다.
교회와도 적대하며 진행하는 일이다.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어선 안 됐다.
레이갈에게 마르할 같은 능력이 있다면 의례는 전부 생략하고 건국 선언부터 해도 되겠지만, 평범한 사람인 레이갈은 정통에 기대는 방법 말고는 뾰족한 수단이 없었다.
연설문을 열 번째 첨삭하던 레이갈에게 돌연 재앙이 떨어졌다.
레이갈이 고용한 기사 한 명이 거칠게 문을 열었다.
“마족! 마족이 나타났습니다! 거대한 마족이 도시를 반파하고 사라졌습니다!”
마족이 나타났다는 정보는 눈과 귀가 열린 지주라면 알고 있었다.
마을이 몇 개나 사라졌고, 기타 피해도 상당했다.
눈이 달렸다면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마족이 나타났다는 말이 들리며 용병이나 기사를 보내기는 했지만,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걸로 해결됐으니까.
먹을 게 넘쳤던 16년 전의 서부와 달리 한 번 멸망한 서부는 마족이 삼킬 잡초조차 보기 힘들었고, 16년 전처럼 무시무시한 마족의 증식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 들어온 소식은 달랐다.
조셉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마족이 사라져?”
살아 있는 전설의 시선에 기사가 침을 삼키고 답했다.
“그렇습니다. 검은 안개가 도시의 반을 삼켰고, 지주조차 도시를 버리려던 차에 돌연 마족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도시는 어디지?”
“동맹인 홉말의 도시입니다.”
홉말은 레이갈을 지지하는 지주였다. 건국 후 공작의 작위를 약속하고 협력을 얻어냈다.
한 달도 못 가 망할지도 모르는 국가의 공작위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꼭 그렇지도 않았다. 레이갈 프메임은 마족에게 멸망한 망국의 왕이고, 그가 새로 건국한 국가는 최소한의 정통성을 얻는다.
어중간한 귀족 출신은 죽어도 얻지 못하는 정통성이었다.
정통성 있는 공작위는 남부에서 참으로 써먹을 곳이 많았다. 같은 방식으로 레이갈이 포섭한 지주의 숫자가 상당했다.
“공격이 시작됐다. 범인은 몰라도, 이번 한 번으로는 안 끝나겠지. 대책은 있나?”
조셉의 물음에 레이갈은 입을 다물었다.
무력을 이용한 공격, 권력이나 금력을 이용한 공격, 전부 대비는 해뒀다.
하지만 마족을 이용한 공격이라니? 그의 예측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없나. 역시 이렇게 되는군.”
조셉은 방구석에 있는 상자로 다가갔다. 상자가 열리고, 낡은 갑옷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달해라. 내가 마족을 상대한다.”
조셉의 눈에서 번개가 튀었다.
노기사 최후의 불꽃이었다.
* * *
도시에 나타난 거대 마족의 소식에 마르할과 알라실은 달리기 시작했다.
말에 각성제를 먹이고, 말 앞에 바람막이를 만들었다. 기적으로 말의 체력을 보충했다. 과도한 회복과 손상에 알라실이 탄 말이 쓰러졌고, 마르할은 알라실을 자기 뒤에 태웠다.
최근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았던 엘리제가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엘리제의 몸에 흐르는 피의 반은 마족이다. 역사를 다룬다는 측면에서는 영물이라 불리는 동물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다.
엘리제는 마르할과 함께 서부를 누볐다.
세계 최고 마법사의 역사를 이은 마법을 수십 번이나 경험했고, 성인의 기적도 몸으로 받아들였다.
재능 없는 사람에게도 신비 하나쯤 깨우쳐줄 역사였다.
서부에서 엘리제는 아단에게 달리기로 졌다.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고, 영민한 말은 처음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결여는 갈망으로 변했고, 갈망은 역사를 움직였다.
엘리제의 눈높이가 서서히 높아졌다.
마르할의 옆구리를 꼭 껴안고 있던 알라실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거 뭐예요!”
“앞으로 마법사들이 귀찮게 굴겠네요.”
엘리제의 발은 땅을 딛지 않았다. 허공을 밟으며 엘리제는 서서히 떠올랐다.
마르할은 하늘에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저 아래 반이 부서진 도시가 보였다.
“가자.”
마르할의 말과 함께 엘리제가 도시를 향해 달렸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달리는 엘리제의 눈에 기묘한 검은색이 보였다. 마르할과 다니며 몇 번이나 보았던 검은색이었다.
주인이 고삐를 당겼다. 엘리제는 그 의미를 바로 이해하고, 검은 안개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땅이 가까워져도 엘리제의 속도는 줄지 않았다.
마르할은 오히려 더 하라는 듯 고삐를 강하게 당겼다.
“어, 이거 속도가 안 주는데요?”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다고!”
알라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죽지만 않으면 어지간한 상처는 치료할 기적을 가지고 있지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콰앙!
말 한 마리가 땅과 충돌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자욱한 흙먼지가 사방에 날렸고, 바람이 흙먼지를 하늘 위로 올려 보냈다.
오만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엘리제 위에서 마르할이 가뿐히 내렸다.
엘리제가 땅과 충돌하며 부린 신비는 땅을 뒤흔들고, 근처에 숨어 있던 마법사의 마법까지 날렸다.
쉽게 벗겨질 마법이 아니었지만, 마족의 힘을 품은 엘리제의 신비는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 마법의 천적이었다.
달이 새겨진 책을 품에 든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영물. 신비를 다루고 하늘을 나는 말이라… 그거 저한테 팔 생각 없습니까?”
“전혀요.”
“대지주 마르할, 상상 이상이군요. 이마릴을 죽인 것도 이해됩니다.”
“실라나티엘을 천박하게도 쓰네요. 마르 실라나티엘이 이걸 알면 뭐라고 할까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군.”
“마리나. 괜찮아 보이진 않네요.”
남자 옆에 있는 마리나의 열 손가락에는 손톱이 하나도 없었고, 이번에 잘라낸 건지 새끼손가락의 마디 하나가 없었다.
마리나는 마르할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육신을 완전히 통제하는 세뇌의 영향이었다.
“됐습니다. 표적이 알아서 찾아와 주었는데, 저에게는 좋은 일이죠.”
남자가 책을 펼쳤다. 표지부터 종이 한 장까지 모조리 성목으로 만든 책이 열리며 안에서 끈적한 액체가 떨어졌다.
액체는 검은 안개를 뿜으며 주변의 역사를 삼키기 시작했다.
악의를 가지고 서부에 마족을 푼다. 얼마 전에도 있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저건’ 일반적인 마족과는 비교가 안 되는 물건이었다.
남자가 입매를 비틀어 웃으며 마르할에게 말했다.
“두렵나?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그러게 황족은 건들지 말았어야….”
“어전이다. 죄인은 무릎 꿇고 자비를 청하라.”
미친바람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