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78
제278화
바람이 모든 걸 찢어발겼다.
반파된 도시는 건물 잔해로 엉망이었다.
건물 잔해가 사라졌다. 사람 허리 높이만큼 땅이 푹 파이며 그 범위 안에 있던 것들이 모조리 바람에 잘려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알라실과 별의 남자, 그리고 마리나도 바람의 범위 안에 있었다.
“이게… 이게 역사라고?!”
남자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성목으로 만든 책의 힘까지 빌렸건만 몸을 가누는 게 최선이었다.
성목은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성목이라는 이름도 이름이고, 성지에서 자란 성목에는 성황국의 역사가 깃든다.
성목은 만들어질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최초의 성목은 영물과 그 혈통의 피와 살, 그리고 신비를 품은 이단과 이단이 만든 유물을 먹고 자랐다.
세상 사람들은 성목을 나쁜 것들을 물리치는 나무 정도로 알지만, 성목의 역사를 아는 마법사에게 성목은 세계 최고의 만능 마법 재료였다.
성목으로 만든 유물에는 성황국의 역사와 최초의 성목이 빨아먹은 모든 역사가 깃든다.
남자는 성목이 가진 힘을 모조리 끌어 쓰고 있었다.
그를 제압하려면 황제의 명령이나 태양의 마법, 아니면 같은 수단을 쓴 별은 되어야 했다.
네 명의 인외를 빼면 성황국 주교와 처형자까지 끌어들여도 허망하게 밀리지는 않을 힘이다.
그게 고작 한마디 말로 펼친 신비에 밀렸다.
마르할이 손을 뻗자 바람이 왕관이 되었고, 마르할은 왕관을 머리에 가져갔다.
모든 걸 찢어버리는 광풍이 한층 더 강해졌고, 바람으로 생겨난 용오름에 망가진 도시 물건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갔다.
멸세의 한 장면 안에서 마르할이 입을 열었다.
“실라나티엘의 찌꺼기. 발언을 허한다.”
남자를 옥죄던 압력이 반으로 줄었다. 몸을 일으킨 남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렸다.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남자는 마르할에게 물었다.
“날 아나?”
“휴멜 나티. 밤하늘을 칭하는 구정물, 깨진 달.”
“폐하와 실라나티엘의 가주만이 아는 정보를… 너는 대체 뭐냐? 어전이라고? 네가 왕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시간 끌려고 발악할 필요 없다. 어차피 기다려줄 참이니.”
휴멜의 발아래에 떨어졌던 검은 액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바람에 찢긴 건 아니었다.
마르할은 검은 액체가 바람의 권역에서 벗어나 건물 잔해를 삼키는 모습을 확인했다.
“기다린다고? 내가 풀어놓은 게 뭔지 알고 하는 소리냐?”
“진액.”
“너… 바체아 제국의 관계자구나. 보통 관계자가 아냐. 황족의 측근. 공왕인가? 아니면 속국의 왕족? 너 같은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알면, 뭐가 달라지고?”
“달라질 건 없지.”
동요하던 휴멜은 평정을 되찾았다. 마르할의 말대로였다.
그가 마르할의 이름을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진액.
마르 실라나티엘이 완성한 최초의 마족이자 최악의 마족.
마족을 연구하는 므에트 제국 황실 마법사들도 진액을 재현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다.
지식과 역사에 미친 마법사들조차 꺼리는 이물이 진액이었다.
진액은 어떤 마족보다 탐욕스럽다.
역사를 가진 것이라면 나무토막 하나까지 집어삼킨다.
500년 역사의 바체아 제국을 멸망시킨 마족이었다. 그걸 이 자리에 풀었다.
10분만 시간을 끌어도 온 도시를 삼킨 최악의 마족이 이 자리에 강림할 것이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의 세뇌를 풀어라.”
“육체만이라면.”
휴멜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굳었던 마리나의 몸이 움직였다.
“이게 다 뭐예요?! 이거, 그때 그거 맞죠! 도시에서 사용했던!”
“알아보네요?”
마르할이 장난스레 말했다.
짓눌린 토지는 평탄화 작업이라도 끝낸 모습이었고, 주변에서는 용오름이 근처 모든 물건을 하늘로 뽑아 올렸다.
마리나는 공기를 감싼 신비를, 역사를 느꼈다.
어지간한 마법사의 마법을 직접 간섭해 없앨 수 있는 그녀도 마르할의 마법은 건드리지 못했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았다.
마르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몸에 쌓인 신비를 풀었다.
그것만으로 달이 가문의 유물을 펼쳐야 했고, 바람은 도시를 멸망시키려 한다.
마르할이 만든 마법에 간섭하려면 이 바람에 담긴 역사를 힘으로 찍어 눌러야 한다.
간섭이 불가능한 게 당연했다.
“이만한 사고를 치고 대체 뭘 어쩌려고요? 토지 경주 때와는 달라요. 이 규모라면 숨기는 것도 불가능해요.”
“그러게요. 저도 조금 욱해서 저지른 거라.”
“욱해서? 다른 누구도 아니고 당신이요?”
“저도 사람이니 화낼 수도 있죠.”
진액이었다.
소일라 므에실리고의 손에 들려 바체아 제국 황궁으로 운반된, 저주하고 또 저주해도 모자랄 물건.
세상의 반을 잡아먹은 악몽.
마르할에게서 모든 걸 앗아간 재앙.
“나를 풀어다오.”
“제가 왜요?”
“진액을 없앨 수 있는 건 이 자리에 나밖에 없다. 진액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고 날뛰기 시작하면 세상은 멸망한다. 실라나티엘을 알고, 진액까지 안다면 모르지 않을 텐데?”
“싫다면요?”
“세상을 멸망시킬 셈이냐!”
“조용.”
바람의 압력에 휴멜이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마르할이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당신이 없애는 게 아니라, 실라나티엘이 없애는 거잖아?”
마리나의 어깨가 떨렸다.
“자기 몸을 제물로 하는 마법이다. 그걸 저년이 할 수 있을 것 같나? 진액을 근원으로 한 마족을 상대로?”
마법을 담은 휴멜의 목소리는 맹수의 위협처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용오름이 사라졌다.
마르할을 제외한 사람들의 고개가 하늘로 올라갔다. 휴멜도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하늘을 눈에 담았다.
먹구름이 일대를 모조리 뒤덮었다. 태양의 빛은 구름을 뚫지 못했고, 일대는 한밤처럼 어두웠다.
쯧. 마르할은 혀를 찼다.
진액이 봉인되어 있는 마족을 지나치게 자극한 모양이었다.
마르할은 소일라에게 마왕의 역사를 계승했다.
마왕의 시작은 진액이었고, 저 앞에 도시를 잡아먹으며 커지고 있는 것 또한 진액이었다.
동종의, 마왕의 것과 같은 힘에 봉인된 마족의 역사가 반응했다.
마르할은 무너진 건물 기둥에 올라가 있는 마르와 바스타를 발견했다.
저 둘이라면 대륙 끝에서 마족이 나타난 걸 감지하고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바스타가 태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맘껏 해봐.
마르할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이 자리에 마왕이 강림해도 막아줄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먹구름이 배배 꼬이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지상에서 검은 안개를 뿌리며 주위 모든 것을 잡아먹던 진액이 쭈뼛 섰다. 고개를 든 모습으로도 보였다.
먹구름은 내려왔고, 진액은 올라갔다.
“저거! 저거 막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리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놔둬요. 상대하긴 저게 더 편할 거예요. 알라실.”
“왜, 왜요?”
기적을 뛰어넘은 기적을 구경하기 바쁘던 알라실은 마르할의 호명에 말을 더듬었다.
“율란은 아마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존재 자체가 그의 목적을 막는 장애물이거든요.”
알라실의 몸이 흠칫 굳었다.
알라실은 성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성인이 여태 침묵하고 있기에 그는 성녀라 불릴 수 있지만, 성인 율란 에고만이 직접 부정해 버리면 그녀의 역사도 끝이다.
율란의 후계가 되기 위해 인생을 바친 그녀에게 마르할의 말은 인생의 부정이었다.
“저걸 잡으면 율란의 생각이 달라질지도 몰라요. 저건 율란도 한 번 포기했던 거거든요.”
알라실 앞에서는 진액과 먹구름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땅에서 난 것이 하늘에 닿으려 한다. 하늘에서 난 것이 하늘에 닿으려 한다.
사방에는 검은 안개가 가득했으나, 마르할의 바람이 지배한 영역에는 마족의 검은 안개조차 범접하지 못했다.
비현실의 극치였다. 동화나 소설에도 안 나올 광경이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저걸… 잡으라고요?”
“저 정도면 서부에선 대단한 것도 아니었어요.”
마르할이 알라실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저걸 잡으면, 그건 못 본 척해 줄게요.”
목덜미를 향하는 마르할의 시선에 알라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몰래 주웠는데 어떻게?
“아니다. 그냥 하나 새로 해줄게요.”
바람이 마르할의 손가락을 스쳤다. 잘린 마르할의 검지가 알라실 앞에 떠올랐다.
마르할의 가슴을 감고 있던 가죽끈이 풀려 나왔고, 마르할은 가죽끈을 길게 잘라 끈을 만들었다.
목줄이 손가락을 관통하자 투박한 목걸이가 만들어졌다.
마르할이 목걸이에 대고 뭐라 중얼거렸지만, 알라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마르할의 주문이 끝나자 목걸이가 한 차례 어둡게 빛났다.
마르할은 완성된 목걸이를 손에 쥐고 알라실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봐요.”
“아니, 미쳤어요? 자기 손가락을 목걸이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세상 어디에….”
“그럼, 다시 가져가요?”
“…아뇨.”
고개를 푹 숙인 알라실이 작게 대답했다.
마르할은 알라실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세상에 둘도 없을 괴상한 목걸이지만, 알라실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동물 가죽으로 만든 목걸이라니, 부모 없는 고아들이 주고받을 법한 물건 아닌가.
그 끝에 달린 게 손가락이라는 게 말 못 할 감정을 자아내긴 했지만.
“저걸 잡으면, 성인한테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죠?”
“모르죠. 하지만 설득은 도와줄게요.”
“묻고 싶은 게 많은데, 대답 안 해줄 거죠?”
마르할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세상을 구한다. 이것도 성녀가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알라실이 먹구름과 진액을 향해 달려갔다.
마르할은 이 자리에 있는 또 한 명의 후계자에게 다가갔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 악취미적인 목걸이는 또 뭐고요.”
“마리나. 마왕을 죽이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죽였지 않습니까. 아니면, 설마…?”
“세상의 반을 차지한 역사를 한 번에 없애다니,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용사 일행이 목숨을 걸어도 그건 불가능해요.”
“…봉인했군요. 당신 몸에.”
“사정을 설명하자면 더 복잡한데 일단은 그래요. 몸 움직이죠? 저것 좀 부탁해요.”
“당신은요?”
“따로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마리나 옆에는 여전히 휴멜이 땅에 처박혀 있었다. 그 상태로도 둘의 대화를 듣겠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게 보였다.
“후… 팔을 잘라도 회복해줄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게 다행이네요.”
“마르를 만났어요. 당신을 알고 있던데요.”
마리나가 침을 삼켰다. 안대가 날아가며 눈알 대신 박힌 투명한 유리가 나타났다.
“마르의 전언이에요. 실라나티엘의 자격을 증명하면, 실라나티엘이라 인정해 주겠대요.”
“그 말 진짜죠?”
“옛 동료들 관련된 일로는 거짓말 안 해요.”
마르 실라나티엘에게 인정받은 진짜 실라나티엘. 가짜와는 다른 진짜.
마리나는 옷을 대충 찢어 날아간 안대 대신 눈을 가렸다.
하나 남은 눈으로 그녀가 하늘과 땅의 중간에서 만나는 진액과 먹구름을 노려봤다.
“기다려요. 저는 실라나티엘이니까.”
“엘리제를 타고 가요. 도움이 될 거니까.”
기다렸다는 듯 엘리제가 마리나의 목에 얼굴을 비볐고, 마리나를 태운 엘리제가 도시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마르할은 죄인 앞에 섰다.
사방에서 일어난 용오름이 다시 두 사람의 모습을 감췄다.
“대체 어떻게 마왕을 죽였나 했더니. 죽인 것조차 아니었군.”
휴멜이 비웃음 섞어 말했다.
땅을 기는 처지가 되었어도 그는 위축되지 않았다.
휴멜은 마법사였고, 마법사의 특기는 정면 승부가 아니었다.
“날 죽이고 진액을 없애면 끝이라 생각하나? 이미 마족은 뿌려뒀다. 지금쯤 진액에 자극받아 날뛰기 시작했겠지.”
“그래서?”
“남부의 전력을 조사했다. 그들로는 절대 마족을 막지 못한다. 날 풀어주면 마족을 심은 장소를 알려주마.”
“자기 처지를 모르는군.”
마르할의 머리에 있던 왕관의 색이 변했다.
투명하던 오동나무 관이 검게 물들었다.
마르할이 손을 뻗었다. 잘린 손가락에서 검은 액체가 줄줄 흘러 휴멜의 몸에 떨어졌다.
“네 주인이 그토록 찾던 영생이다. 잘 받아 마셔라.”
검은 액체가 휴멜의 몸에 스몄다. 휴멜은 몸을 파고든 마족이 역사를 삼키는 감각에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뛰어난 마법사이기에 그는 역사와 생명이 마족에게 삼켜져 이형의 무언가로 변하는 과정을 모두 느껴야 했다.
죽음보다 못한 죽음. 마족이라는 껍질에 갇혀 영원히 고통받는 삶.
휴멜이 몸을 움직였다. 몸을 짓누르는 바람의 압력을 의지만으로 떨치고 기어가 마르할 앞에 머리 박았다.
“사, 살려다오! 내가 잘못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시 말해봐라. 처음부터. 또박또박.”
“제가 잘못했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좋다. 살려주마.”
휴멜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보인 건 마르할의 웃는 얼굴이었다.
마르할은 진심으로 웃었다.
황제와 이어질 역사가 생긴 게 기뻐 웃었다.
자, 나는 너를 용서했다.
여기서 보고 들은 모든 일을 네 주인에게 낱낱이 이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