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85
제285화
곡창지대는 서부에서 가장 강대한 전력이 모여 있지만, 가장 마족에 취약한 땅이었다.
서부 황야에 마족이 태어나면, 마족의 먹이는 기껏해야 태어난 마을 하나가 끝이다.
하지만 곡창지대는 아니었다.
평야 전체에 가득한 잡초와 곡물. 그 모든 게 마족의 먹이가 된다.
천하가 되어버린 천하를 담은 땅의 성질도 문제다.
다른 땅보다 역사가 족히 배는 빠르게 쌓이는 땅의 힘은 마족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고, 작디작은 마족도 며칠만 방치하면 어마어마한 영역에 검은 안개를 뿌려댔다.
말에서 내린 스트레킬은 전방을 뒤덮은 검은 안개를 보고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
“본격적인 해결책이 없으면 이번엔 세상이 망하는 꼴을 보겠어.”
스트레킬은 몸을 감싼 가죽을 벗었다.
그는 전신 갑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전쟁이 가깝다. 자기 영역이 전장과 거리가 멀다고 해도, 전쟁의 결과에 따라선 어떻게 될지 몰랐다.
지나가던 군대가 짐을 약탈할지도 몰랐고, 도망친 패잔병이 강도로 변하는 건 역사적으로 드문 일도 아니었다.
망토로 몸을 감싸도 전신 갑옷의 크기까지 줄어들지는 않았고, 눈썰미 좋은 놈들은 자기 몸을 지킬 수단을 확보하고자 혼자 다니는 전신 갑옷을 가진 기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비가 걸리자 스트레킬은 방법을 바꿨다.
스트레킬은 물통 안에 찰랑이는 쇳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옷 안쪽에서, 말의 짐에서, 그리고 땅속에서 쇳물이 올라와 스트레킬의 몸을 감싸는 전신 갑옷이 되었다.
본래 가지고 있던 갑옷과는 전혀 다른, 몸을 꽉 조이는 매끈한 형태의 갑옷이었다.
전신 갑옷의 약점인 관절의 이음부조차 없는 일체 형태의 갑옷. 스트레킬이 직접 만든 자신만의 무기.
스트레킬은 철로 만든 검집으로 고정된 바체아 제국의 유물을 한 번 툭 건드렸다.
바체아 제국 황궁을 지키는 자들에게 이어지던 유물이 불을 토해냈다.
유물의 출력에는 한계가 있다. 스트레킬은 불을 넓게 퍼뜨려 검은 안개를 막는 벽을 만들었다.
그는 이어서 마족을 베는 검을 꺼냈다.
스트레킬은 검을 땅에 깊이 박고, 정신을 집중했다.
‘제법 많군. 전쟁이라도 있었나.’
땅에 묻힌 쇳덩이들이 느껴졌다.
대부분 녹슬어 바스러졌지만, 멀쩡한 부분은 스트레킬이 품은 신비의 대상이 되었다.
검은 안개 안에서 잡초가 위협적으로 몸집을 키웠다. 말로 보이는 형체와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도 있었다.
안개의 규모에 비해 움직이는 마족은 적었다.
스트레킬은 검 손잡이를 들었다.
검신은 사라지고 달랑 남은 손잡이가 스트레킬의 손에 들렸다.
사라진 검신의 행방은 금방 드러났다.
땅에서 은색 빛이 솟아났다.
수백 개나 되는 크고 작은 검이 하늘로 올라가며 동물과 식물을 꿰뚫고 잘랐다.
하늘로 올라간 검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며 한 차례 더 검은 안개를 관통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쇳물이 스트레킬의 손에 들린 빈 손잡이에 달라붙어 검이 되었다.
한 차례의 심호흡. 코와 입에 뚫린 미세한 구멍을 통해 뜨거운 숨이 뱉어졌다.
스트레킬은 검은 안개 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족을 베는 검은 마족을 확실하게 소멸시켰고, 땅에서 솟아난 쇳물이 시야의 사각을 노리는 공격을 막아냈다.
불길이 스트레킬이 지나간 자리를 채우며 안개의 확산을 막았다.
마족을 베는 검으로 마족을 정리하며, 화염으로 뒷정리한다.
몇 시간의 반복 작업이 끝나고, 잡초가 무성하던 땅은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황폐한 땅이 되었다.
스트레킬은 갑옷을 벗었다.
전신을 감싸던 갑옷 일부는 옷의 안쪽으로 들어가 급소를 보호하는 방어구가 되었고, 나머지는 말의 짐과 땅으로 들어갔다.
쇳물로 목을 축이며 스트레킬이 혼잣말했다.
“점점 평범한 인간과 거리가 멀어지는군.”
신비를 얻기 전에도 압도적인 재생력 탓에 괴물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건 그럴 영역을 벗어났다.
검은 안개에 삼켜진 지역은 대포나 마법으로 생명 하나 없이 밀어버리고 진입하거나 몇 개의 기사단이 동원되어 내부 생물을 몰살하는 게 정석이다.
스트레킬은 그걸 홀로 해냈다.
철을 베는 기사가 포함된 기사단도 혼자 정리 가능하지 않을까.
강도의 말을 죽여 얻어낸 생고기를 뜯어 먹는 스트레킬의 머리 위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왔다.
비둘기의 발목에 달린 편지를 읽은 스트레킬은 씹던 고기를 삼키고 말에 올랐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곡식이 서부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곡창지대에서 쏟아지는 곡식은 빈곤한 서부의 숨통을 붙여놓았다.
유력 대지주들이 먼저 곡식을 쓸어갔고, 연합이 다음이었다.
식량을 확보한 연합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연합은 독자적으로 군대를 가졌다.
연합군.
연합을 이루는 국가와 세력에서 뽑아내 편성한 군대는 창설 이후 단 한 번의 실전도 겪지 않았다.
연합은 동부 권력자들의 합의로 만들어진 서부 통제 기관이다.
연합에 대항하는 건 동부 전체에 대항하는 것과 같고, 그랬다간 동부에서 넘어오는 모든 지원이 한순간에 끊어진다.
서부에서의 자급자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하일리조차 동부의 지원이 완전히 끊기면 살아남지 못한다.
연합에 거스르려는 사람은 없었고, 연합군의 주요 업무는 토지 경주가 열리는 땅의 치안 유지나 선을 넘는 몇몇 지주나 수배자의 처분이었다.
한 번도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군대. 하지만 그게 연합군이 약한 이유는 되지 않았다.
연합군의 바탕은 동부 전선을 유지하던 전직 군인들이었다.
공국이야 공국이라는 나라의 거대한 체급으로 공국군을 억지로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마족과의 전쟁에서 국력을 바닥까지 긁어 사용했다.
성인 남자를 모조리 전장에 투입하고 아이와 여자까지 동원했다. 그러면 국가가 유지되냐고?
유지 안 된다. 그래서 마족이 사라지고 많은 국가가 망했다.
전쟁을 경험한 사람 다수가 전후 도적이나 용병이 되었고, 연합 전쟁이 끝나고 연합이 다시 그들을 고용해 연합군을 창설했다.
연합군은 전쟁을 치르지 않은 군대지만, 어지간한 기사단의 기사들보다 전쟁 경험이 많은 군대였다.
서부 전역에 퍼져 있던 연합군이 한자리에 모였다.
숫자는 약 2만.
토지 경주가 취소되고 연합에서 추진하던 사업 다수가 멈췄다.
연합은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곡식을 보고, 연합은 서부가 식량에 한해서는 독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식량 다음으로 중요한 건축자재… 나무는 유렐이 네루와 함께 대량 유통을 시작했다.
서부가 연합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한다.
연합의 필요를 증명하려면 연합은 안체를 멸망시켜야 했다.
군을 이끌 사령관의 선택에도 신중했다.
마족과의 전쟁에서 다져진 장군과 사령관이 다수 있긴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경험은 모두 마족과의 전쟁에서 나왔다.
이건 인간 대 인간의 전쟁이었고, 지성을 가진 적과의 전투에서는 마족과의 전투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선택되었다.
제국군 전략 사령관 출신 연합 이사 말리바 리시.
다수의 실적도 있는 인간 학살의 전문가.
연합의 다른 수뇌부는 주전파로 강력하게 전쟁을 주장하며 사재까지 털어가며 병사를 무장시킨 말리바 리시의 태도를 높게 평가했다.
2만 명의 연합군. 그리고 요새에서 합류할 공국군 1만에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를 필두로 하는 서부인 1천. 용병도 다수 고용했지만, 영지전도 아니고 대규모 전쟁에서 그놈들을 병력에 포함하는 참모는 없다.
최소 3만 명의 병사를 다루는 사령관이 된 말리바 리시는 밤낮없이 바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2만의 연합군도, 대포를 다수 보유한 1만의 공국군도 아닌 베이올라 므에실리고가 이끄는 1천 명의 병사였다.
정확히는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개인이었다.
철을 베는 초인을 넘어 검에 닿지 않는 물건을 베는 초인.
자기 힘을 감출 생각도 없는 그녀는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용사의 재래라 불리며 숭배되기에 이르렀다.
말리바 리시는 친히 하일리의 영토까지 걸음을 옮겼다.
지휘부가 소집되기 전에 한 번은 그녀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들어오시랍니다.”
말리바 리시는 목장에 지어진 저택 최상층으로 안내되었다.
하일리 취향으로 보이는 장식이 가득한 방 안에 쇳소리가 났다.
베이올라의 시선이 말리바 리시를 꿰뚫었다.
베이올라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소문의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다.
스트레킬의 갑옷을 만든 걸로 유명한 장인이 만든 필생의 역작이라고 했다.
과연 그랬다. 제국에서 많은 전신 갑옷을 봤던 말리바 리시도 베이올라가 입은 갑옷에 비할 물건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것과 비슷한 물건이라면…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불사의 기사의 갑옷?
“말리바 리시. 암살자 걱정도 안 해?”
“제 호위들은 뛰어납니다.”
“저게?”
베이올라는 창문을 열고 땅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기사 하나가 툭 고개를 떨궜다.
“죽였습니까?”
“기절.”
식은땀이 났다.
눈앞에 있는 황족의 무력은 그의 상식을 벗어났다. 역시, 그녀를 먼저 찾은 건 정답이었다.
“네루는 뭐라고 안 해?”
“이번 전쟁에서는 제 마음대로 행동하라고 하셨습니다.”
“날 찾은 이유는?”
“이번 전쟁은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울테칸과 유렐. 둘을 모두 죽이지 않으면 전쟁은 끝나지 않고요.”
“유렐은 내가 죽여.”
말리바 리시는 베이올라를 설득할 말을 잔뜩 준비했다.
그녀와 유렐이 원수에 가까운 사이라도 진짜 전쟁터에선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두 사람 모두 마르할과 엮인 사이니 더욱 방심할 수 없었다.
베이올라를 만나고 말리바 리시는 자신의 우려가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저건 팔다리가 잘려도 검을 휘두를 사람의 눈이고, 살기였다.
“좋습니다. 유렐이 나타나는 전장에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건 네가 아니라도 가능해. 나 말고 유렐 막을 사람 있어?”
없다.
유렐은 마법사 군단을 부하로 쓰고 있다.
말리바 리시는 전투용 마법을 익힌 마법사 하나가 전장에서 가지는 가치를 안다.
그런 마법사가 최소 수십.
예상되는 병력 차이는 5천에서 1만.
마법사의 커다란 마법 몇 방이면 천 명은 뒈질 거고, 바로 옆에서 사람이 불타 죽으며 몸부림치는 걸 보면 수천 병사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다.
공포는 전염되고, 군대는 붕괴한다.
마족과 싸우던 서부 전선에서는 자신들이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각오라도 있었지만, 이번 전쟁은 그냥 전쟁이었다.
패배한다고 마족이 되는 것도 아니고, 인류가 멸망하지도 않는, 그냥 전쟁.
“나는 어차피 유렐 앞에 서게 되어 있어. 이것밖에 협상할 게 없어? 말리바 리시. 실망인데.”
말리바 리시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
제국의 하늘.
제국의 신.
서른 살도 안 된, 검을 잡고 1년도 안 된 여인에게서 황제와 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유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베이올라의 얼굴 반쪽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전신 갑옷이 절그럭 소음을 냈다.
“원하는 걸 말해. 간 보지 말고.”
“연합은 패배할 겁니다. 그게 그의 뜻이고, 제가 그리 만들 겁니다. 적당히 협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가 얻을 이익은?”
“…전혀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연합, 그 사람이 싫어할 조직이지. 연합을 없앨 기회를 놔둘 사람이 아냐.”
“연합이 망하면 많은 이권이 붕 뜨게 되죠. 거기서 한몫 챙기는 겁니다.”
“너를 살려둘까? 마르할이?”
말리바 리시는 마르할을 직접 공격한 전적이 있다.
마르할은 첫 번째 토지 경주가 시작될 때부터 활동했고, 무수한 사람과 적대했다.
마르할을 공격한 사람 중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말리바 리시였다. 비록 팔다리가 모두 잘린 꼴이긴 하지만.
“저도 압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구멍을 파둬야죠.”
“나한테 말하지 마.”
“옛정입니까?”
“아니. 그 사람은 나도 못 이겨. 그리고 너 따위한테 협조할 생각 없으니까 할 말 없으면 꺼져.”
“특급 기밀. 저는 바체아 제국과 관련된 비밀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족? 황궁?”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굳이 따지자면, 서부의 비밀이라고 해야겠죠.”
“좋아. 지껄여봐.”
말리바 리시는 황제 앞에 서기 전처럼 길게 심호흡했다.
“소일라 므에실리고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이올라가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강하게.
* * *
6만이 넘는 대군이 곡창지대에 모였다.
어느 한쪽이 선전포고만 하면 바로 전쟁이 시작될 분위기였다.
전쟁이 코앞이지만, 유렐은 긴장하지 않았다.
마법의 사거리도 아니고, 특제 공국 대포의 사거리도 아니다.
공격할 방법이 없으니 걱정도 필요 없었다.
무의미한 대치가 며칠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마법사들에게는 기회였다.
유렐은 기회를 놓치는 마법사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