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292
제292화
곡창지대에서 곡물이 풀리며 서부의 사정은 한결 나아졌지만, 여전히 서부는 서부였다.
마르할은 손에 질척이는 피를 털어냈다.
마르할 옆에서는 스트레킬이 쇳물을 움직여 시신을 잘게 자르고 분쇄했다.
쇳물은 무수한 톱니가 되어 사람의 뼈와 살을 갈아 흙과 섞어 반죽했다.
“놔둘 건가?”
“누구요?”
“베이올라 므에실리고. 내 제자지만, 너무 큰 변수야. 전쟁도 네가 아니었으면 연합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을 거다.”
“그렇긴 해요.”
폭주한 베이올라의 힘은 홀로 유렐과 안체의 군대를 썰어 버리고도 남았다.
최악의 경우 광전사가 되어 안체군과 연합군 6만을 홀로 썰어버리고 천하를 담은 땅의 힘으로 인간도 마족도 아닌 무언가가 되었을 것이다.
베이올라는 태어나기를 초인으로 태어났다.
바스타조차 태생은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 인간 앞에서는 어떤 인간을 데려와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긴 한데, 그 인간이 떠오를 만큼 베이올라의 재능은 파격적이었다.
힘은 권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올라의 권력은 끝을 모르고 성장하는 권력이었다.
“스트레킬. 의지를 가진 마족 본 적 있어요?”
“지휘 개체라면 몇 번 봤다. 나타날 때마다 전선이 뒤로 밀렸고, 기사단을 미끼 삼아 마법사와 포병의 포격으로 날려버렸지.”
“그건 그냥 마족 중에서 조금 힘 있는 놈이에요. 저희는 그런 놈을 의지를 가진 마족이라 부르지 않아요.”
“그러면?”
“아주 드물게 마족이 되고도 의식을 유지하는 인간이 있어요. 그런 마족을 만날 때마다 일행이 한 달씩 제자리에 머무르고는 했죠.”
“용사 일행이 개체 하나에 발이 묶였다고?”
스트레킬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저도 직접 만나기 전까진 그랬어요.”
직접 얼굴을 맞대기 전에는 네 명의 괴물이 정면 승부에서 패배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일행들은 현재의 소문과 비교하면 실력에 조금씩 손색이 있었지만, 바스타는 그때도 하늘을 갈랐다.
하늘을 가르는 검이 생물의 피부를 베지 못하는 장면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의지, 지성을 가진 마족은 그런 놈들이에요. 서부에 생겨나는 마족은 어찌어찌 정리되고 있지만, 지성을 가진 마족이 태어나면 서부는 멸망해요. 그런 마족과 싸울 인간이 몇 명은 서부에 있어야 해요.”
“그게 베이인가?”
“베이, 마린, 알라실, 요즘 정보를 보면 아스탈도 가능해 보이더라고요.”
“베르기아스가?”
“도시와 마을 근처에 거대한 숲이 몇 개나 생겼대요. 잘된 일이죠.”
마르할은 아스탈을 곡창지대에 보내 수확량을 늘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스탈의 마법은 곡창지대가 아니더라도 효과를 발휘했다.
하일리가 데리고 있는 마법사가 1년에 숲 하나를 만든다.
아스탈은 토지 경주가 끝나고 반년도 되지 않아 몇 개나 되는 숲을 만들었다.
대대로 쌓인 역사라는 게 이토록 무서웠다.
“내일인가? 으름장을 놓아도 겁먹기는커녕 우리한테 주변 정리를 하라니, 숨길 생각도 없는 모양이야.”
“그럴 비밀이긴 하잖아요?”
“부정은 못 하겠군.”
마르할 무느두스의 이름을 파헤친 사람을 찾아 마르할은 아젠만에게 접견을 요청했다.
아젠만은 다른 일을 전부 정리하고 한 달 뒤에 만나자고 했다.
아젠만은 아무리 바빠도 마르할의 방문에는 즉각 반응했다. 도시를 양분하고 있는 대지주의 의향은 아젠만의 모든 계획을 뒤틀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젠만은 마르할의 방문을 거절했다. 되레 마르할에게 역제안까지 했다.
마르할이 처음 전장에서 힘을 보이고 사방에서 꼬이는 파리가 한둘이 아니었다.
홀로 군대와 대적하는 베이올라와 그런 베이올라를 혼자 막아서는 마르할.
반서부파의 일로 정체를 드러내고 활동하기 시작한 마르할은 서부에서 제일 유명한 대지주였다.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마르할에게 접근했고, 마르할은 거짓말을 판별해 그들의 의도를 가려냈다.
악의를 가진 놈들은 모두 정리했고, 이제 아젠만이 남았다.
용사 일행의 힘으로 숨긴 마르할 무느두스의 이름에 스스로 닿은 천재를 만날 차례다.
* * *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모양이야.”
하일리가 말했다.
한 달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주인은 떠나거나 죽은 게 확실했다.
그의 말에도 베이올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먼지 묻은 갑옷 그대로 전장에서 막 돌아온 모습으로 집구석의 벽에 걸터앉아 고개를 떨궜다.
“마법사와 저주 마법사까지 찾아갔다. 마법으로도 찾을 수 없게 흔적이 가닥가닥 끊어졌다더군. 평범한 인간의 행동은 절대 아니다.”
“연합은 어떻게 됐어?”
베이올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책임을 떠넘기느라 내부에서 시끄럽다.”
“참전 대가는?”
“짭짤하다.”
베이올라는 참전 대가로 연합이 가진 땅을 요구했고, 중립을 지키던 하일리는 돌변해 연합에게 괜찮은 땅을 뜯어냈다.
“그래, 잘됐네.”
베이올라는 폐인의 몰골이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눈에는 생기가 없었다.
굶어 죽지 않을 수준의 식사만 했다고 하는데, 살이 빠진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일리는 그게 더 섬뜩했다.
이미 반쯤 사람을 벗어난 꼴 아닌가?
베이올라가 몸을 일으켰다. 위태로운 동작이었지만, 허약해졌다는 느낌은 없었다.
“유렐은?”
“경계에 있다. 작은 제국과 마르할의 도시를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더군. 다른 정보도 많지만, 네가 관심을 가질 건 이게 다다.”
“잠시 자리를 비울 거야. 내가 죽으면, 이걸 열어.”
베이올라는 품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하일리에게 던졌다.
“해석은… 그 사람이나 마리나 실라나티엘에게 맡겨.”
“기다리면 때는 온다.”
“그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어. 괜한 사고는 안 쳐. 그리고 약속은 아직 유효하잖아?”
“그래.”
서로 이용하다가 버릴 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버린다.
두 사람이 맺은 최초의 계약이었다.
베이올라가 집을 나섰다. 군에서 복귀한 보좌관이 두고 간 투구를 눌러썼다.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기 시작한 농지를 걷는 베이올라의 귀로 하일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의 정보를 까네에게 넘겨라. 안체의 안정은 다른 국가의 건립과도 이어진다. 뉘테를 모으고, 과거 아프란체였던 땅을 사들여!’
베이올라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그래, 벌써 버려졌나.
안체와 아프란체, 저들은 멸망한 조국에 목숨을 걸고 있다.
지주 회합에서 봤던 망국의 왕이라는 남자도 다시 나라를 일으켰다던가.
모두가 자신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럼 나는?’
베이올라 므에실리고에게 제국은 감옥이자 족쇄이고, 또 저주의 대상이었다.
황제는 공적인 자리가 아니면 자식의 얼굴도 보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녀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피 공포증에 걸리고 외가에는 버림받았다.
그녀를 지탱해주던 친구는 죽었고, 다른 친구와는 살기를 담은 검을 맞대는 사이다.
밤이슬은 처음부터 목적만 같은 사이였다. 그가 언제 떠나도 베이올라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모든 걸 잃었다. 그녀에게 남은 건 태어날 때부터 쓸데없이 튼튼했던 몸뚱이밖에 없었다.
‘그래도.’
베이올라의 눈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녀에게 남은 건 몸밖에 없지만, 이 몸으로도 소망 하나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베이올라는 걸었다. 배가 고프면 익지 않은 곡식을 손으로 뜯어 대강 씹어 삼켰다. 스트레킬의 유파는 흙을 퍼먹어도 그 안에 영양소가 있다면 몸을 움직이게 해주었다.
그렇게 경계로 향하던 베이올라 앞을 한 사람이 가로막았다.
“세오닉?”
“머리를 식혀라. 지금 가봤자 유렐에겐 손도 못 댈 테니.”
“그건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오고 계신다.”
베이올라의 머리가 정지했다.
세오닉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감찰 기간이 아니면 황궁에서도 나가지 않으시는 분이 왜?”
“모른다. 직속 기사단이 먼저 작은 제국에 도착했고, 황족들을 위한 연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보를 전하는 세오닉의 표정도 좋지는 않았다.
그도 여유롭진 않았다. 마르할과의 거래로 성황국을 견제했고, 별과 달을 찾아 마르할이 골라준 유물의 분석도 의뢰해야 한다.
‘잠깐.’
전문가라면 그의 앞에도 있었다.
제국 최고의 고대 제국어 전문가에게 인정받은 고대 제국어 사용자가.
세오닉은 품고 있던 유물 하나를 꺼내 던졌다. 칼 든 남자 모양의 작은 조각상이었다.
“이걸 봐라.”
“이게 왜?”
“바체아 제국 유물이다. 감정 가능하다면 정보를 주마.”
“황실에서 공왕에게 선물하는 조각상. 다산을 기원하는 물건이지만, 황제와는 관계없어. 오빠도 알잖아? 시험 같은 거 그만두고 제대로 된 물건 가져와.”
세오닉이 베이올라와 고대 제국어 공부를 같이 한 건 맞다. 하지만 시험도 아니고 저 물건의 정체도 몰랐다.
세오닉이 데려온 유물 전문가들도 조각상의 구체적인 연원까지는 몰랐다.
세오닉은 가지고 있던 유물을 하나 더 꺼냈다.
이번에는 작은 단검이었다.
“…그걸 알려주면, 무슨 정보를 줄 건데?”
“복수를 포기할 생각은 없느냐?”
“없어.”
“소일라 므에실리고의 부탁이다.”
“언니의…?”
“정확히는 그녀가 사라지기 전 나에게 한 부탁이지. 소일라는 너에게도 특별한 사람이었을 텐데?”
베이올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세히 말해봐.”
“아버지의 성정상 차기 황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형제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일어날 게 뻔하다. 그래서 부탁받았다. 형제끼리의 상잔을 막아달라고.”
“언니가 할 법한 부탁이네.”
“그러면….”
“그런데, 불씨를 먼저 당긴 건 저쪽이야.”
“그렇군. 늦지 않게 와라.”
몸에 신비를 감으며 떠날 준비를 하는 세오닉에게 베이올라가 말했다.
“소일라 언니가 살아 있으면 어쩔 거야?”
“뭐?”
“그 단검, 황제가 의식에 쓰던 물건이야. 동맹국 왕들에게 선물로 하나씩 주던 유물. 마법사들한테 주면 좋아할 거야.”
황제가 원하는 바체아 제국의 비밀에도 제법 접근한 물건이지만, 베이올라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물건이었다.
“소일라에 대해 말해봐라.”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말고는 몰라. 잘난 정보 조직으로 찾아보든가.”
세오닉의 몸을 감싸던 신비가 베이올라를 향했다.
베이올라는 눈에 힘을 줬다. 그녀를 향하던 신비가 조각났다.
세오닉이 발을 멈췄다.
전장에서 믿을 수 없는 무력을 보여줬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마법이 되기 전의 신비를 잘라?
세오닉이 멈춘 사이 베이올라가 움직였다. 베이올라가 땅을 몇 번 박차자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세오닉이 마법을 써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어이가 없군.”
베이올라가 작정하고 유렐을 죽이려 하면, 부하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나?
몇 번을 계산해봐도 불가능하다는 답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 * *
레벨라는 영물과 성스러운 혈통을 찾아다니며 그들에게 신비를 배우는 일을 반복했다.
서부에서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언젠가 동부로 돌아갈 일이 있다면 베이올라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가족은 죽었고, 레벨라 본인도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다친 상처가 실시간으로 아무는 걸 보면 싫어도 자신이 마족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레벨라에게 남은 건 베이올라밖에 없었다.
인간 레벨라가 자기 인생을 걸고 한 도박. 마족이 된 레벨라는 자신이 인간이던 시절 남긴 선택의 결과를 보고 싶었다.
작은 마을 하나를 집어삼키고 이동 중인 마족을 때려죽인 직후였다.
“서로 만나는 건 처음이죠?”
레벨라가 등을 돌렸다.
남녀 한 쌍. 그리고 아이 한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레벨라는 소름이 돋았다. 나날이 발전하는 그녀의 감각을 피해 접근하려면 천년 늑대나 그와 동급의 영물은 되어야 했다.
“누구십니까?”
여자가 바체아 제국의 예법대로 인사했다.
“소일라 무느두스라고 해요. 이 이름으로 자길 소개하는 건 처음이네요.”
“소일라 무느두스? 무느두스…?”
“궁금한 게 많겠죠. 그 전에 하나. 너는, 자신을 무엇이라 생각하니?”
레벨라는 답하지 못했다.
입을 열기 전에 그녀의 몸은 움직였다. 양 무릎을 꿇고 고개를 땅에 박았다.
레벨라도 알 수 없었다. 몸이 대체 왜? 신비를 이용한 공격인가?
소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공격이 아니란다. 네 안에 있는 업이 자연스레 반응한 거지.”
레벨라는 필사적으로 움직여보려 했지만,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은퇴한 마왕의 업에도 버티지 못해서야, 진짜 마왕 앞에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소일라 무느두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말을 입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