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02
제302화
베이올라는 의자에 앉았다.
몇 번이나 수리한 의자 다리가 삐걱댔다.
의자도 탁자도 술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
파푸란이 커다란 잔에 맥주를 가득 담아왔다.
“마실 게 이거밖에 없어서.”
“괜찮아.”
베이올라는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혼자 수백 병사를 제압하고 오는 길이었다.
스트레킬은 매번 말했다. 사람과 싸우게 되면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힘들 거라고. 베이올라는 그걸 오늘 체감했다.
성인 남자도 마시기 힘들어하는 잔을 한 번에 비운 베이올라에게 파푸란이 물었다.
“그놈들은?”
“알아서 해. 나는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어.”
“믿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
“믿거나 말거나.”
파푸란은 한숨을 쉬며 술에 취해 비틀대는 용병 몇을 불러 북쪽에 기절해 있을 병사들을 묶도록 시켰다.
곡창지대 요새를 지키는 공국군 일부가 남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게 이틀 전이었다.
사방으로 퍼졌다가 북쪽에서 바로 합류하는 전략을 사용해 대처할 시간도 없었다.
급하게 사방에 있는 용병을 긁어모았고, 다 같이 죽자는 생각으로 겐트만이 만든 독한 독까지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베이올라가 나타났다.
베이올라의 소문은 워낙 유명해 모를 수가 없었다.
혼자 군대를 밀어냈다는 소문은 과장이 아닌지 그녀는 투구도 없는 전신 갑옷을 입고 수백 병사를 상처 없이 제압했다.
‘무슨 용사도 아니고.’
파푸란은 안다.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 다수가 일정 숫자를 넘어가면 다음은 그냥 지구력 싸움이다.
체력만 버텨주면 베이올라도 3만 군대를 제압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갑작스러운 실종만 아니었다면 서부 권력은 베이올라와 하일리를 중심으로 재편되었을 것이다.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실종된 인간이 나타나 도움을 주었다.
파푸란은 그걸 단순한 우연으로 여길 정도로 순수한 인물이 아니었다.
“마을은 어때?”
“에나가 있던 잡화점을 카리안이 물려받았다. 그거 빼면 작은 마을이 다 똑같지.”
“그걸 말해줘도 돼?”
“마을을 돌면 바로 알 일이니까. 딱히 말하면 안 된다는 규정도 안 내려왔고.”
베이올라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갈게.”
“말 한 마리는 내줄 수 있다.”
“내가 더 빨라.”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다. 오래 있어봤자 서로 어색해지기만 했다.
마을을 벗어난 베이올라는 발 가는 대로 움직였다.
아버지,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를 만난 이후 그녀는 홀로 서부를 떠돌았다.
불편함은 없었다. 노숙 준비부터 그녀를 보고 검을 들이대는 사람까지 모두 일상의 한 풍경이 되었다.
그녀는 주로 마족을 죽였다.
많은 사람이 마족에게 고통받고 있었다.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마족은 악의를 가진 자연재해였다.
마을 사람 몇 죽고 끝나면 운이 좋은 거고, 검은 안개에 잡아먹힌 마을도 있었다.
서부를 돌아다닐수록 달밤의 구름 아래에서 세운 그녀의 뜻은 더욱 확고해졌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의지였다.
커다란 바위를 뽑아 던지는 마족을 보고 생각했다.
‘저런 게 세상을 나돌도록 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은 말했다. 뜻은 역사가 된다고.
그녀는 뜻을 세웠고, 이제 역사를 쌓아가고 있었다.
젊은 용사가 그랬던 것처럼.
* * *
숲이 피를 마신다.
서부에 있는 한 도시에 있는 유명한 소문이었다.
마족이 지나가고 남은 도시 폐허에 재건한 도시는 많은 권력자가 탐내는 요충지였다.
므에트 제국의 공작까지 기사단을 보내 서부와의 연결점을 만들려고 시도했던 폐허는 단순한 도시를 뛰어넘어 곡창지대를 제외하면 서부에서 가장 푸른 도시가 되었다.
도시 한쪽에서는 넓은 차밭에서 전직 용병들이 차를 키웠고, 도시 근처에는 동부에서도 보기 힘든 생명력 넘치는 숲이 몇 개나 있었다.
도시와 도시 바깥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숲을 만든 마법사를 찬양하는 한편 두려워하며 숲의 현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숲의 현자 아스탈 베르기아스는 피 냄새 가득한 숲속에서 가늘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나무와 넝쿨이 움직여 피를 닦고 시신을 땅에 묻었다.
시체가 사라져도 피 냄새는 지워지지 않았다.
“세상이 너무 빨라.”
노인들이나 내뱉을 푸념이었지만, 아스탈에게는 객관적인 진실이었다.
몰락 귀족의 사생아가 1년도 안 되어 현자라 불리는 마법사가 되었다.
제국 공작가 출신인 카반조차 아스탈과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마법사는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 그의 세상은 정말로 빨랐다.
아스탈은 시신이 묻힌 자리에 땅을 파고 새로운 씨앗과 묘목을 심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시신 위에 심은 씨앗에서 자랄 식물을 기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스탈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소문 속의 괴짜 마법사들과 완전히 똑같았다.
숲 한쪽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숲이 그가 누군지 알려 줬으므로 아스탈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씨앗을 심는 게 더 중요했다.
“천 명이 넘는 사람을 묻어버리고 그리 태연하다니, 마법사가 되면 전부 그런가?”
“천 명이요?”
아스탈이 놀라 그의 상징이 되어버린 작은 삽을 떨어뜨렸다.
“몰랐나?”
“그냥 모조리 죽였으니까요.”
아스탈은 단순히 숲만 만들지 않았다.
곡창지대에서 그는 미리 심어둔, 언제든 싹틔울 수 있는 식물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배웠다.
아스탈은 도시를 중심으로 넓은 구역에 씨를 뿌렸다.
직접 땅을 파고 묻은 씨앗도 있고, 그가 만든 숲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간 씨앗은 모두 그의 신비가 닿는 범위 안에 있었다.
익숙한 무장의 공국 병사들이 북쪽에서 나타나자 아스탈은 전쟁을 준비했고, 그들의 목적지가 도시가 확실해진 순간 아스탈은 마법을 사용했다.
하루 밤낮이 지났고, 도시 북쪽에는 못 보던 숲이 하나 생겼다.
같은 기후에서는 자랄 수 없는 여러 식물이 뒤엉킨 기괴한 숲이었다.
아스탈은 정신없이 숲을 조종해 군대와 싸웠다. 그들이 몇 명인지는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걸 계산할 특별한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천 명이 넘는다니, 자신이 행한 살육을 두고 아스탈은 놓쳤던 삽을 다시 잡았다.
“좋은 나무가 자라겠어요.”
“의외로 침착하군. 신병들은 처음 사람을 죽이면 악몽에 시달리던데. 토지 경주 덕분인가?”
“그걸 봐 버렸으니까요.”
“하긴, 그걸 봤으니 어중간한 죽음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
몸에 불을 휘감고 드넓은 곡창지대를 불사르며 기사를 학살하는 기사와 불꽃을 휘감은 폭풍, 그리고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거인들의 싸움에 휩쓸려 죽은 수많은 인간은 한 청년이 죽음에 무덤덤해지게 만들었다.
“먼저 돌아가겠다.”
“저는 계속 숲에 머물게요.”
“다음이 올지도 모른다.”
위험하다는 의미를 담아 건넨 말이었지만, 카반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숲이 씨를 뿌리는 데 사흘이 걸려요. 그 안에만 안 오면 다시 막을 수 있어요.”
“기가 질리는군.”
사흘에 하나씩 숲을 만들 수 있다. 자기 영역이라면 사흘에 한 번씩 천 단위 군대 하나를 없애버릴 수 있다.
숲의 현자는 자신과 같은 기사의 걱정이 필요 없는 인간이었다.
카반과 아스탈이 마르할의 소집 요청을 받은 건 사흘 후의 일이었다.
* * *
셰르멜은 마르할의 명령에 따라 무너진 도시를 병영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무너진 도시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땅문서의 명의 이전이나 건물을 세울 자재 조달 같은 작업을 마르할이 모두 끝내두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끔찍했다.
건물을 세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더 귀찮은 건 사람이었다.
무려 3천 명의 장정이 모였다. 잡일꾼까지 합하면 그 숫자가 5천이 넘었다.
무기를 들면 바로 도시 하나는 쓸어버릴 전력이 눈 깜짝할 사이 생겼는데,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다.
근처 지주의 경계가 극에 달했고, 마적으로 변장한 용병을 보내는 놈들도 있었다.
마적 떼 하나를 몰살한 셰르멜은 뻐근한 허리를 두드렸다.
옆에서는 조셉이 전신에 감은 번개를 떨쳐내고 있었다.
낡은 전신 갑옷을 버리고 마르할의 창고에서 새로운 전신 갑옷을 꺼내 입은 조셉은 한 마리 사자가 따로 없었다.
나이가 무색하게 정정한 모습이었지만, 셰르멜은 그게 더 불안했다.
조셉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의 노인이었다.
여러 전장에서 입은 부상도 많았다.
철을 찢어발기는 마족과 싸우며 입은 부상이다. 사제도 완치하지 못하는 부상이 몸에 누적되었다.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야 할 인간이 셰르멜보다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다 타오른 촛불의 마지막 불꽃을 보는 듯했다.
주변 정리를 마친 조셉이 셰르멜에게 다가왔다.
“먼저 돌아가지.”
“그러시오. 아니, 잠깐.”
셰르멜이 고개를 들었다.
조셉도 셰르멜을 따라 고개를 들었고, 올라오는 연기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특수 제작한 장작을 태워 나오는 가늘고 긴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수백 줄기의 봉화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작은 구름처럼 보였다.
경계에 마련된 모든 장작을 태워 올리는 봉화.
그 뜻은 하나였다.
총동원령.
* * *
과거 마족의 침공으로 많은 국가가 사라졌다. 국가가 사라져도 요새는 유지되어야 했다.
동부 권력자들은 전선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신들 차례라는 걸 알고 전선에 지원을 퍼부었다.
국가가 사라지고, 성벽이 무너져도 전선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국적도 출신도 가리지 않았다. 마족을 막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숭고한 의지와 복수심, 상반된 두 감정으로 유지되던 전선이 있었다.
마족이 사라지자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가던 지원을 끊었다.
흩어질 사람은 흩어졌고, 국적 없는 하나의 군대가 남았다.
권력자들의 교묘한 수작으로 만들어진 군대의 창칼은 마왕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용사를 향했고, 용사는 3만 군대를 모조리 제압해 하나의 전설을 남겼다.
그리고 거기엔 숨겨진 역사가 있었다.
흉터투성이 소년이 쓰러진 3만 병사 사이를 가로질렀다.
소년은 군대에 명령을 내리던 지휘관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인기척에 깨어난 지휘관은 고개를 들었다.
소년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어설픈 미소로 지휘관에게 말했다.
‘세상에 한 방 먹여주고 싶지 않아요?’
지휘관은 답했다.
‘그러고 싶어 미치겠지. 그런데 나한테는 방법이 없어. 꼬마야, 너한테는 있냐?’
‘마르할 무느두스. 제 이름이에요.’
‘그렇군.’
셰르멜은 아픈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공국조차 위협할 수 있었던 하나의 군대는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졌다.
만약을 대비해 국경에 기사단을 배치하고 있던 공국조차 어리둥절해했던 일방적인 해산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국적 없는 군대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알라실은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모종의 방법으로 메라에게 납치되어 성지로 갔고, 성인의 힘으로 교회로 돌아왔다.
심장이 뚫리기 전후로 약간의 기억 상실이 있지만, 그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어마어마한 역사를 품은 단검으로 심장이 꿰뚫렸다. 자신은 아마… 아니 확실하게 제물로 바쳐져 한 번 죽었다.
죽은 동안의 기억이 있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
그보다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그 후의 일이었다.
분명 알라실 에고만은 죽었다.
그런데 살아 있다.
죽었는데 살아 있다.
죽음은 누구도 되돌리지 못한다.
역대 교황들조차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죽었다가 살아났다. 그게 가능한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성인 율란 에고만.
인간이면서 인간을 벗어났다 불리는 인간은 기어이 죽음마저 극복했다.
놀랍지만, 동시에 그러려니 했다.
그 성인 아닌가.
죽은 사람도 되살린다는 소문이 10년 전부터 돌던 사람.
알라실에게 의문인 건 그거였다.
교황이 보물처럼 기르던 성녀를 제물로 써가면서 성인에게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천국에 닿을 자격은 뭐고,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이 역사는 뭘 뜻하는 걸까.
대강 짐작은 가지만, 그녀는 더 확실한 대답을 해줄 사람을 기다렸다.
마르할이 교회에 도착했다. 그는 가슴 부분이 피로 젖은 알라실의 옷을 보고 표정이 굳었다.
알라실이 장난스레 마르할에게 물었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들어볼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