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03
제303화
알라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마르할은 한참이나 알라실의 몸을 들여다봤다.
그녀의 몸을 보고 있지만, 동시에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듯한 초월적인 시선이었다.
알라실은 옷이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옷이라도 벗어줘요?”
“가슴의 상처, 그걸 보면 도움이 되겠어요.”
알라실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말을 더듬었다.
“지, 진짜 벗어요? 여기서요?”
어, 언젠가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걸 여기서?
저 남자라면 그런 의도는 요만큼도 없겠지만, 그래도 벗으라고?
이 세상 너머를 보고 있던 마르할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아뇨. 필요 없어요. 성녀의 맨살을 봤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요.”
“남부에서 다 봤잖아!”
둘은 알라실의 침실에 있었다. 알라실이 던진 베개가 마르할의 얼굴에 박혔다.
마르할은 베개를 다시 침대맡에 돌려놓으며 말했다.
“싸우느라 전혀 못 봤는걸요.”
“여기서 보여주면 볼래요?”
“아뇨. 신실한 교회 신자들이 무서워서요.”
교회 신자가 아니라 성기사단이 와도 혼자 싸워 이길 인간이 무섭긴 뭐가.
의자 등받이에 턱을 괴고 있던 마르할이 말했다.
“진짜 에고만이 된 걸 축하해요.”
“역시 그거 맞죠?”
“네. 율란이 당신을 진짜 에고만으로 인정했어요. 이제 알라실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에고만이에요. 에고만의 역사도 모두 알라실의 것이 되었고요.”
“이제 성인처럼 될 수 있는 거예요? 죽은 사람도 막 살리고?”
“힘에 잘 적응하기만 하면 아마도요.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건 신중해야 하는 일이에요.”
“…알고 있어요.”
알라실이라고 자신의 환자 전부를 치료한 건 아니었다.
성녀라 불리기 전의 그녀는 몇 번이나 치료에 실패했다. 그녀의 손에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알라실은 삶과 죽음의 무거움을 알았다.
남부러울 것 없는 권력자들이 그녀 앞에서 살려달라고 비는 걸 보기도 했고, 노환을 인정하지 못해 난동을 부리는 인간도 보았다.
타고난 운명의 역행은 인간이 손댈 영역을 넘어섰다. 어쩌면 마족 이상의 혼란을 불러올 힘이다.
평생 그녀의 안에 품고만 있어야 하는 역사였다.
일생의 결심을 마친 알라실은 마르할이 건넨 질문에 대번 기분이 나빠졌다.
“마리나는요?”
“준비가 끝났다면서 나갔어요. 왜요? 저보다 그 사람이 더 필요해요?”
“네. 되도록 많은 사람과 많은 역사가요.”
“제가 제물이 되었던 거랑 관계된 일이에요? 세상 하나밖에 없는 에고만이라니, 성인은 어떻게 되었는데요?”
“율란은, 신이 되었어요.”
“…메라가 하려던 그거요?”
“메라보다 율란이 먼저 시작했죠.”
알라실은 잠깐 머리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그거다.
“메라랑 똑같은 짓을 성인이 먼저 하고 있었다고요?”
“처음에는 놀랐어요. 일개 이단심문관이 성인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으니까요.”
“그리고 저를 제물로 성인은 결국 신이 되었고? 신은 인간이 아니니 제가 유일한 에고만이고?”
“전부 맞아요.”
“이런 미친.”
쓴소리가 절로 나왔다.
알라실은 한 번도 그녀를 신으로 만든다는 메라의 개소리를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성인의 발끝에도 못 쫓아갈 판에 뭐? 신?
그런데 성인이 메라와 같은 생각을 했고, 결국 신이 되었단다.
“원래 율란은 유일한 신이 되어 교회와 성황국을 세상에서 없애려 했어요. 왜 그러려 했는지는 알라실도 알죠?”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놈들이긴 하죠.”
“인간 율란 에고만에게는 많은 한계가 있어요. 인간은 영원할 수 없고, 율란이 교회를 개혁해봤자 시간이 지나면 교회와 성황국은 다시 부패하겠죠. 그래서 율란은 신이 되어 올바른 종교를 만들려고 했어요. 교황이 거기에 간섭했고, 상황이 심각해졌어요.”
“얼마나요?”
“사제와 수녀 전부가, 최악의 경우 신을 믿는 신자 전부가 잠재적 마족이 되었어요.”
열심히 일하던 알라실의 뇌가 정지했다.
얼마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던 알라실이 급히 물었다.
“저는, 저는요?!”
“알라실은 괜찮아요. 에고만의 역사는 마왕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으니까요.”
알라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이제 자세히 설명해줘요.”
마르할은 눈을 감았다. 그는 기억이 선명한 과거를 더듬어 13년 전의 어느 한 시점에 도달했다.
용사 일행 모두와 모닥불에 둘러앉아 마족의 근원을 논하던 그때로.
“마족은 실패작의 성공작이에요. 처음은 성황국이었어요. 영원한 생명의 연구, 들은 적 있어요?”
“지하실에서 몇 번 봤어요.”
성황국이 생겨나고 므에트 왕국이 므에트 제국이 되기까지의 기간, 그사이 동부에서 성황국과 전면전을 벌일 수 있는 집단은 없었다.
그나마 공국이 성황국과 견줄 수 있었지만, 공국과 성황국은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었다.
성황국의 지도자인 교황은 동부의 지배자에 가까웠다.
절대 권력이란 말이 아깝지 않은 자리였다.
누가 그 자리를 포기하고 싶어 할까.
역대 교황들은 죽어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 했다. 아니, 아예 죽지 않으려 했다.
사제의 기적은 병과 상처를 치료한다.
더 나아가 늙지 않거나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할까? 영원한 생명은?
절대 권력은 영원불멸을 원했고, 그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교황청이 품고 있는 피의 역사였다.
“마족도 그 실패작 중 하나예요. 역사는 힘이 된다. 그러면 무한한 역사는 무한한 힘과 생명이 되지 않을까. 대강 그런 발상이었죠.”
“마족을 이용하고 있는 건 제국 아니었어요?”
“여기서부터 일이 복잡해져요. 교황 말고 절대에 가까운 권력을 지닌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잖아요?”
“므에트 제국 황제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
“사람 생각이 다 똑같죠. 그리고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영악하기까지 했어요. 불로불사. 영원불멸. 아무리 봐도 자기 대에서 끝날 연구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황제는 성황국의 자료를 훔쳤어요. 훔친 자료는 실라나티엘 가문으로 흘러갔고요.”
므에트 황가가 만든 금기의 용광로. 세상 모든 금기를 범하는 자들에게 성황국의 실패작이 넘겨졌다.
“제국과 동급의 국가에서 몇 번이나 실패한 실험이에요. 일개 가문에서 감당할 물건이 아니었죠. 하지만 당대 실라나티엘에는 실라나티엘의 이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천재가 있었어요. 모든 실라나티엘의 역사를 자기 몸에 담은 마르 실라나티엘은, 영원불멸에는 닿지 못했지만, 그와 비슷한 것을 하나 만들었어요. 진액, 최초이자 최악의 마족. 남쪽에서 봤던 그거예요.”
마르 실라나티엘은 진액을 황제에게 넘겼다.
그냥 형식적인 절차였다. 실라나티엘은 황제에게 여러 제약을 받고 있었고, 당시의 마르도 실라나티엘에게 걸린 제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진액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마르 실라나티엘은 진액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진액은 그녀가 만든 많고 많은 실패작 중의 하나였으니까.
“진액, 주변의 역사를 끝없이 삼키며 변질시키는 물질. 황제는 거기에서 다른 사용법을 찾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장소에 진액을 풀어버리면, 대단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호전적인 황제는 바로 실행에 옮겼죠. 바체아 제국 황궁에서 진액이 풀려났어요. 다음은 알라실이 아는 대로예요.”
마족이 세상의 반을 멸망시키고, 용사가 나타나고, 용사 일행이 끝내 마족을 처리했다.
“그, 이해 안 되는 게 몇 개 있는데요.”
“뭐가요?”
“므에트 제국 황제가 바체아 제국 황궁에 그런 위험한 물건을 어떻게 풀었어요?”
“휴멜 나티가 가진 진액에서 태어난 가짜 마왕. 누구랑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설마, 황족을 미끼로? 황제가 아무리 자식에 무관심한 인간이라지만….”
알라실은 말을 잃었다.
마족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그걸 자식 손에 들려 적국에 보내다니. 아이의 아버지 이전에 인간으로서 할 짓인가.
“자식은 많고, 바체아 제국은 하나니까요. 실제로 황제의 공격은 성공했고요. 옛날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현재가 더 중요하니까요. 말했죠? 마족의 근원은 성황국의 영생 연구의 실패작이라고. 그러면 제국 다음으로 마족을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성황국… 교황청이죠.”
검은 안개의 오염을 막지 못하고 동부 전선이 밀리기 직전 성황국과 제국에서 검은 안개를 막을 수 있는 유물을 지급했다는 건 유명했다.
제국과 성황국을 향한 증오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마족을 막을 방법까지 알고 있으면서 그들은 끝까지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교황은 신이 된 율란을 이용해 교황청의 역사 자체를 바꿨어요. 마족과 흡사한 형태로요.”
아래층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벌써 시작된 모양이네요.”
신의 선택이니 뭐니 하는 말이 들렸다.
아래층으로 내려간 두 사람이 본 건 몸에서 하얀빛을 뿜고 있는 한 명의 사제였다.
사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사방으로 빛을 퍼뜨렸다.
알라실은 근처에 있던 교회 일을 돕는 소년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기도하던 사제님의 몸에서 갑자기 빛이 나기 시작했어요. 신의 축복을 받았대요!”
알라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마르할이 말했다.
“일단 지켜보죠. 제 선에서 정리할 수 있어요.”
사제는 몸에서 점점 강한 빛을 뿜어냈다.
기쁨에 차 있던 얼굴이 당혹으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이게, 이게 왜?”
하얀빛을 뿜는 걸로 모자라 사제의 몸이 점차 하얗게 물들었다.
마르할의 눈에는 사제의 역사가 커다란 마족으로 변해버린 거대 역사에 잡아먹히는 게 보였다.
사제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의 몸에서도 빛이 나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의 오염과 똑같은 증상이었다.
“위험하지 않아요?”
“알라실 에고만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알라실은 마르할을 한 대 때리는 대신 걸고 있던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평범한 살덩이라면 썩어 문드러질 시간이 지났음에도 손가락은 멀쩡했고, 온기마저 품고 있었다.
사제의 전신이 하얗게 변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사제는 희대의 예술가가 만든 석고상 같기도 했다.
교회 안에 있던 구경꾼들도 경계하며 사제에게서 물러났다.
표정이 사라진 사제는 한참이나 가만히 있다가 기사와 같은 속도로 근처에 있던 사람에게 몸을 날렸다.
알라실이 움직였다.
사제의 목을 허공에서 낚아채 사제를 벽에 박았다.
쾅! 교회 벽에 금이 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상으로 즉사할 위력이었음에도 사제는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알라실을 공격하려 했다.
알라실은 주먹에 힘을 주고 사제의 복부를 때렸다.
대포 발사하는 소리와 함께 사제의 복부에 구멍이 뚫렸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사제는 연기처럼 스르르 흩어졌다.
시체도 남기지 않는 생물을 보고 사람들은 바로 11년 전의 악몽을 떠올렸다.
“마족? 마족이 생겨난다더니 진짜였어.”
“아니, 안개도 없고 검은색도 아니었는데?”
“검은 안개도 없었….”
떠들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데 모였다.
사제가 몸에서 뿜던 빛을 받고, 사제와 똑같은 빛을 뿜기 시작한 사람들을.
서부에 있는 성인은 대부분이 마족과의 전쟁에 한 손 보탰던 사람들이다.
마족의 특징을 알고, 눈앞에서 마족을 본 적도 있는 사람들.
마족이라는 악몽의 부활에 그들은 발작적으로 반응했다.
“죽여! 당장 죽여!”
“빛에 닿지 마! 쇠뇌! 활하고 쇠뇌 가져와!”
이미 빛을 뿜기 시작한 남자는 절망적인 얼굴로 주저앉은 채 최후를 기다렸다.
남자의 몸에서 나는 빛도 점차 강해졌다.
십여 개의 쇠뇌가 겨눠지고, 바깥에서 교회를 지키던 용병들이 무기를 들고 들어왔다.
“그만. 됐어요. 이 사람은 제가 책임질게요.”
마르할이 나섰다.
“당신이 누군데!”
마르할의 이름은 서부 전역에 알려졌지만, 마르할의 얼굴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르할이 손을 들자 용병 일부가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무기를 겨눴다.
“마르할. 이 교회 토지의 적법한 주인. 더 설명 필요해요?”
마족을 보고 과민 반응하긴 했지만, 감히 대지주에게 검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었다.
마르할은 빛을 뿜는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자, 일어나요.”
“저한테 다가오시면 안 됩니다! 아내를 구해주신 대지주님께 폐를 끼칠 수는!”
“괜찮으니까, 어서요. 대지주가 마족 대책 하나 안 가지고 있겠어요?”
남자는 망설이며 마르할의 손을 잡았다.
마르할은 용병들에게 명령했다.
“자리 지키고. 교회에 소란 없게 해요. 필요하면 병력 더 부르고요.”
마르할은 빛나는 남자와 함께 교회를 벗어났다.
마르할이 사라지자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사람에게 모였다.
석고상처럼 변한 사제를 제압해 배에 구멍을 뚫어버린 성녀에게.
마르할이 자기에게 뒤처리를 맡겼다는 걸 깨달은 알라실이 이를 갈았다.
“나중에 만나면 한 대 맞을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