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1
제31화
뺨을 맞은 충격에 에르시가 일어났다.
깨어난 에르시는 바로 앞에 있는 마르할의 얼굴을 보고 공포에 질렸다.
“나, 나는 잘못 없어! 전부 그놈들이 시키는 대로 한 거야!”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요, 에르시. 중요한 건 당신이 대낮에, 제 땅에서, 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거죠?”
“따… 땅? 네가 이 땅의 주인이라고?”
에르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마르할이 지주라는 걸 아는 사람은 이 마을에 정착한, 그러니까 마을과 명운을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르할을 그냥 붙임성 좋고 실력도 있는 용병 정도로만 안다.
“놀랐죠? 팔면 제법 돈 될 정보예요. 팔 수 있다면.”
마르할이 단검을 꺼냈다. 말고기와 가죽을 몇 번이나 자르느라 무뎌진 검이다. 하지만, 사람의 살을 가르기엔 차고 넘친다.
단검을 역수로 잡은 마르할이 팔을 높게 들었다. 에르시가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사, 살려줘.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뚝. 단검이 그의 허벅지 앞에서 멈췄다. 살짝 파고든 단검 끝에서 피가 새어 나왔다.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그래! 내가 잘못했어!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
에르시의 몸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그가 특별한 힘을 사용한 건 아니고, 그냥 지렸다.
누런 물이 의자 다리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렸다.
마르할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턱을 만졌다.
이상을 감지한 건 카리안이었다. 조금 전까지 마르할은 진짜 에르시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 옆모습에서는 서늘한 한기마저 흘러나왔다.
사람 한둘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일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르할은 진심으로 곤란해 보였다.
“일단 말해보세요. 누가 시킨 일이죠?”
“도박장의 검은 얼굴!”
“그게 누군데요?”
“도박장 주인이야. 항상 복면으로 얼굴을 반 이상 가리고 있어.”
에르시는 벌벌 떨면서도 묻는 말에 답했다. 조금이라도 대답을 지체하면 다시 마르할의 손이 올라갈 것 같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시켰죠?”
“에나를 죽이면 빚을 탕감해 준다고 했어.”
“빚을 탕감받기 전에 마을 사람들한테 잡혀 목이 매달릴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차라리 야반도주가 나았을 건데요.”
“검은 얼굴은 주변 마을에 전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도망친다고 될 일이 아냐!”
“그러니까, 에나를 죽이고 도망치는 게 검은 얼굴에게서 도망치는 것보다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차분한 마르할의 어조에 고개를 들었던 에르시는 마르할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떨궜다.
마르할의 눈에서는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단지 눈빛에 불과하거늘, 그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 몸이 타버릴 것만 같았다.
“대답.”
“마, 맞아. 그놈들은 진짜로 위험해! 봤잖아! 그 검하고 쇠뇌!”
“에나의 잡화점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이죠. 그리고 본인들도 별거 없던데요.”
사람 몇 명 죽여본 것 같긴 했지만, 그게 전부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에나의 우악스러움은 마을에서 유명하다. 에나를 죽일 거라면 그런 놈들을 보내선 안 된다.
‘단순히 판단을 잘못한 거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금 귀찮게 됐을지도.’
아무튼, 마을을 비웠던 시간이 길긴 했던 것 같다.
이상한 놈팡이가 마을에 들어온 걸 보면 말이다.
마르할은 에르시의 사지를 묶고 있던 사슬을 풀어주었다. 자유의 몸이 된 에르시는 본인도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자, 가봐요.”
“진짜로?”
“그럼 가짜겠어요? 용서해 달라던 사람이 왜 용서해 준다니까 못 믿을까? 다시 시작해요?”
“아, 아니! 이 은혜 절대 안 잊을게, 마르할!”
에르시가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자기가 흘린 오줌에 한 번 넘어질 뻔하긴 했지만, 손으로 바닥을 짚고 용케 넘어지진 않았다.
에르시만큼이나 당황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카리안이었다.
“정말 죽이려던 거 아니었어?”
“본인이 용서해 달라는데 어째요.”
“빈다고 진짜 용서해 줘? 급하니까 나오는 거짓말이 뻔하잖아!”
카리안의 말에는 여러 감정이 담겨 있었다.
마르할의 행동에서 나오는 의아함, 눈앞에서 잔인한 장면을 안 봐도 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약간의 실망.
그는 마르할이 배신자를 어떻게 처리할지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보다 모든 게 뛰어난 남자의 방법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용서를 빈다고 보내주다니. 그건 그가 기대하던 일이 아니었다. 다가오는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쇠뇌를 쏘라고 말하던 마르할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겠죠. 그래도 아무것도 못 보여준 건 조금 그렇네요. 창고를 쓸 일이 몇 번 더 있을 것 같으니, 그건 그때의 즐거움으로 남겨두죠.”
마르할이 창고를 나갔다.
진짜 이걸로 끝? 이리 허무하게?
잠시 멍하니 있던 카리안은 터덜터덜 창고를 나왔다. 그리고 그는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까무러칠 뻔했다.
“하나 알아둬라. 마르할은 딱히 그놈을 용서하지 않았다.”
“누, 누구?”
“그놈 지인.”
스트레킬은 이미 마르할이 사라진 건물 사이의 골목을 보고 있었다. 그도 의아하긴 했다.
마르할은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이다.
그가 들은 게 맞다면, 살해 위협을 당했다는 여인은 마을의 핵심 인물이다.
그런 인물을 위협한 사람을 놔두는 건, 지주의 위신에도 도움이 안 된다.
‘답은 본인만 알겠지.’
그것과 별개로, 지금 뛰어나간 저놈은 살아남기 힘들다.
“한 시간도 안 돼서 소문이 퍼지겠지. 그리고 당사자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도 나올 거다.”
“설마, 그걸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방금 그보다 훨씬 하찮은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던 놈이 여기 있었지.”
“…….”
“힘들게 얻은 땅을 허무하게 뺏기고 싶지 않으면, 인간이라는 동물을 더 비관적으로 보는 게 좋을 거다, 꼬마야.”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욱해서 한마디 쏘아붙였겠지만, 지금 카리안의 앞에 있는 건 전신 갑옷을 입은 거구의 기사였다.
인사불성이 된 취객도 옆으로 길을 비켜줄 위압감을 풍기는 인간.
입을 꾹 다문 카리안을 두고 스트레킬은 마르할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건물 사이의 틈으로 들어갔다.
발자국을 따라 모퉁이를 두 번 도니 마르할이 벽에 기댄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괜한 말을 했나?”
“아뇨. 어떤 말을 하든 딱히 상관없었어요.”
“그런데 나도 궁금하군. 왜 멈췄지?”
“용서해 달라고 했잖아요?”
“정말 그걸로…? 아니, 그렇기에 멈췄군.”
마르할은 클리프 앞에서도 몇 번이나 용서와 사죄를 언급했다. 그때도 농담 같지는 않았지만, 그 속사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와오. 거기까지 알아요?”
“기행을 일삼는 건 마법사만이 아니다. 용병들, 그리고 일부 기사들도 그렇지.”
그들은 기행을 역사로 특별한 힘, 신비를 부린다.
엄밀히 따지면 그들도 마법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마법사라 불리지 못하는 건, 힘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상에는 기행을 대가로 힘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르할의 용서도 그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쉽다.
“일종의 제약이군. 사죄하는 사람은 용서해야 한다는.”
“그런 거죠.”
사소하면서 치명적인 제약이다.
클리프를 보면 알 수 있듯, 그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용서를 빌며 무릎을 꿇는 일은 없다고 해도 좋다.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말로는 용서한다고 해도 진짜 용서해 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반대로 조금 전처럼, 자존심도 없이 언제든 무릎 꿇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르할은 그게 누구더라도 보내줘야 한다.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아직 해본 적 없어서 모르겠네요. 그럴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좋은 일은 안 일어나겠죠?”
스트레킬은 마법의 대가를 받는 마법사를 딱 한 번 본 적 있다. 그는 자신이 부리던 벌레에게 몸이 파먹혀 죽었고, 독을 품은 식인 벌레 수백 마리가 도시에 퍼져 요새 하나가 끝장날 뻔했다.
일개 마법사가 사용하는 신비가 그러하다.
마르할이 짊어진 무게가 자신을, 타인을 향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마르할의 말대로, 필시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제국 황제가 용서를 빌면, 그도 용서할 생각인가?”
“글쎄요… 생각해 본 적 없는데요.”
마르할은 표정 없이, 어둑한 골목의 벽에 기댄 채로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팔짱 낀 손의 검지로 팔을 툭툭 치는 것이 움직임의 전부였다.
“그 황제가 무릎을 꿇을 것 같진 않지만, 정말 무릎을 꿇는다면, 용서하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황제는 서부 멸망의 원인이며, 바체아 제국 멸망의 범인이며, 마르할에게는 가족의 원수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 인간이다.
“일단은요.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정확한 건 그때가 와야 알겠죠? 제가 황제와 만날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 말이 꼭 이루어지더군.”
“용서를 떠나서, 황제랑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기는 해요.”
황제를 만나면, 물어보고 싶다.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므에트 제국과 마땅한 교류조차 없던 바체아 제국이 그렇게 싫었냐고.
* * *
여관에는 전신욕을 할 수 있는 욕조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따듯한 물을 가득 채운 욕조에 들어가는 건 자칭 고급 여관이라는 장소에서도 누리기 힘든 호사였다.
구하기 힘든 따듯한 물도 마르할의 이름을 대자 해결되었다.
“지주라는 걸 알아도, 이 마을의 풍족함은 기이할 정도군요.”
“그 정도야?”
“최서단의 개척촌에서는 이런 옷감을 구하는 것조차 어렵… 아마 불가능에 가까울 겁니다. 하지만 여긴 씻고 나오니 옷이 준비되어 있군요.”
원래 입고 있던 옷은 도저히 입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레벨라와 베이올라는 여관 주인이 준비한 옷을 입었다.
하지만 그 옷도, 그녀들이 본래 입던 옷과 비교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입던 옷이 제도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단한 일이었다.
“이제 마르할을 찾아가….”
베이올라 앞에 있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마린이 나왔다. 그녀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물은 어쩐지 색이 탁했다.
“너… 제대로 씻은 거 맞아?”
“그런데?”
“비누는 어쩌고?”
“비누? 그거 귀족들이나 쓰는 거잖아? 비누가 있었나?”
마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비누를 몰라? 베이올라가 입을 떡 벌렸다. 호위 기사의 배신을 알았을 때 이상의 충격과 경악이 그녀를 덮쳤다.
“대체 어떻게 씻은 거야? 자세히 말해봐.”
“씻는 게 별거 있어? 그냥 물 묻히고 털면 끝. 뭉친 잿물이라도 있으면 쓰고.”
“뭉친 잿물…?”
두 번째 충격이 베이올라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가 간절한 눈으로 레벨라를 쳐다보았다.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냐고.
제발 이 현실을 부정해 달라고.
그러나 현실은 잔혹했다.
“비누는 고급품입니다. 보통은 그냥 물에 몸만 담그거나, 말린 잿물이나 콩가루 등에 여러 가지를 섞은 물건을 사용하죠. 그래도 비누를 눈앞에 두고도 모를 줄은 몰랐군요.”
“안 되겠다. 다시 들어가자. 레벨라, 아래에 가서 따뜻한 물 조금 더 부탁해.”
“알겠습니다.”
베이올라가 마린의 팔을 붙잡았다. 마린이 발버둥 쳤지만, 순수한 힘으로 마린은 베이올라를 이길 수 없었다.
“이거 놔! 놓으라고! 대체 뭔데!”
“너는 씻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해.”
“고작 씻는 걸 뭘 배우라고!”
“맨날 거지꼴로 다니든가. 그 사람 앞에서도.”
“그 이야기가 지금 왜 나와!”
말은 그렇게 해도 마린의 발버둥이 한층 줄어들었다.
베이올라는 마린을 끌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다시 목욕을 마치고 나온 마린이 넋이 반쯤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게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