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2
제32화
마르할에게서 도망친 에르시는 바로 도박장을 찾았다.
도박장은 마을 어귀에 있는, 반쯤 무너진 목제 건물이었다.
마을이 막 만들어지기 시작할 즈음 임시로 지어졌다가, 마을의 기틀이 완성되고는 버려진 폐건물.
검은 얼굴은 폐건물 내부를 개조해 도박장으로 쓰고 있었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에르시가 도박장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깔린 가죽의 숫자가 도박판의 숫자고, 그 사이에 있는 주사위나 종이 뭉치가 도박에 쓰이는 물건들이다.
대낮이 된 지금 밤의 열기는 사라지고 도박장에는 스산한 공기가 감돌았다.
검은 얼굴은 도박장 구석에 단 하나 있는 탁자에 딸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복면으로 눈 아래를 가리고, 머리에도 두건을 뒤집어쓰고 있어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패했나.”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어! 에나를 죽였어도 다음 내가 죽었을 거라고!”
“그렇겠지. 처음부터 성공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검은 얼굴이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한 자루 검이 들려 있었다.
분명 날이 서 있는 검이지만 그 움직임은 채찍 같았다. 검은 얼굴의 손목이 움직일 때마다 검도 뱀처럼 좌우로 몸을 흔들었다.
“힉…!”
뒷걸음질 치던 에르시가 도박할 때 쓰는 컵에 발이 걸려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 그게 에르시의 목숨을 살렸다.
에르시의 목이 있던 자리를 한 자루 검이 소리 없이 꿰뚫었다.
“깔끔하게 죽여주려고 했더니.”
검을 거둔 검은 얼굴이 다시 팔을 들었다.
그가 팔에 힘을 주는 절묘한 찰나에 날아온 돌조각이 검은 얼굴의 팔뚝을 때렸다.
검은 얼굴이 팔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누구냐.”
“이런 씹새끼가! 업장까지는 봐줬더니, 무슨 개짓거리를 하고 있어!”
앞니 두 개가 빠진 남자가 씩씩대며 검은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얼굴도 아는 얼굴이었다.
다곤, 서부 뒷세계의 거물. 주 업무는 불법 의뢰 알선이지만, 그게 가능하려면 최소한의 무력과 다양한 인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끼리의 이야기는 전부 끝난 거 아니었나?”
“끝났었지. 네가 미친 짓을 하기 전까지는. 이 개 씹….”
온갖 욕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다곤은 얼굴이 벌게져선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애써 삼켰다.
지금 입을 열었다간 온갖 욕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르할이 시킨 일도 할 겸 잠시 마을에 들른 참에 일이 벌어졌으니 다행이지. 그가 없을 때 일이 터졌다면, 그리고 진짜 에나가 죽기라고 했다면….
다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르할은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 무슨 저런 호구가 다 있나 싶을 정도다. 하지만, 평소 화를 안 내는 인간이 한번 열 받으면 무섭다.
아프란체 하수구의 괴물이라 불리며 백 명도 넘는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귀가 오줌 지릴 정도로 무섭다.
“이 개새꺄. 목 내밀어. 지금 내밀면 깔끔하게 대가리만 쳐줄게.”
다곤이 검을 뽑았다. 녹슨 단검이었다.
검은 얼굴이 코웃음 쳤다.
“근육도 없고 키가 큰 것도 아니다. 너 같은 놈이 왜 거물이라 불리는지 전부터 궁금했지.”
“사람을 토막 치는 건 키도 근육도 필요 없거든.”
검은 얼굴은 신중하게 다곤을 관찰했다.
이 세상은 힘이 전부다. 특히 법이 없는 이쪽 세계에선 더더욱.
아무리 말을 잘하고 수완이 좋아도, 일신의 힘이 없으면 자기 기분대로 사람을 찌르는 미친 살인귀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는 궁금했다. 특출 난 점도 없이, 오히려 모자라 보이는 면상으로 두려움을 사는 다곤이라는 인간이 어째서 거물이라 불리는 건지.
‘여전히, 아무 특징도 없다.’
기사처럼 초인의 신체 능력을 가진 것 같지도 않다. 검을 든 자세는 빈틈투성이라, 어디를 찔러도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특별한 능력인가.’
제일 까다로운 부류다. 하지만 한번 능력을 확인하면 쉽게 요리할 수 있다.
능력을 쓰는 순간 단 한 번의 방어만 성공하면 자신의 승리다.
“무슨 생각인지 훤히 보인다. 늦었어, 새꺄.”
검은 얼굴의 시야가 아래로 꺼졌다.
땅이 무너졌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땅이 무너지면 기사도 벗어날 방법이 없다.
검은 얼굴은 마법처럼 생겨난 구멍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간신히 넘어지는 건 피했다.
구멍의 깊이는 그의 눈높이 정도였고, 크기는 팔을 좌우로 뻗으면 끝이 닿을 정도였다.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높이다.
“어딜.”
다리에 힘을 준 검은 얼굴의 머리로, 액체가 떨어졌다.
검은 얼굴은 모든 생각이 증발했다. 열기와 고통이 뇌를 불살랐다.
“끄으으으윽!”
“어이, 조금 버텨봐. 제일 약한 거라고.”
“비겁한…!”
“우리 업계에서는 최고의 칭찬인 거 몰라? 거기 잠시 짜져 있어. 네 처분은 내 몫이 아니니까.”
땅이 움직여 검은 얼굴을 구속했다. 액체가 눈에 들어갔는지 눈도 보이지 않았다. 검은 얼굴은 차가운 땅에 남겨졌다.
이대로 죽나? 다시 그 액체가 부어지면? 어둠은 공포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있다.
목에 검을 들이밀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검은 얼굴도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공포였다. 그의 머리로 다시 무언가 부어졌다.
이번에는 액체가 아니라 가루, 흙이었다.
“사, 살려줘! 제발! 살려줘!”
“안 죽여. 그냥 거기 있으라고. 이것도 못 버티는 놈이 왜 그놈을 건드려선.”
아래에서 들리는 비명을 무시하고 다곤은 흙을 마저 덮었다. 공간을 남겨뒀으니 며칠 놔둬도 죽지는 않는다.
그가 몇 번이나 사람을 상대로 실험한 사실이니 확실하다.
다곤이 다리를 펴고 일어나자 뒤에는 곧 죽을 사람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떨고 있는 에르시가 있었다.
“야.”
“네, 넵!”
“넌 이제부터 말뚝이야. 알겠냐?”
“넵!”
에르시는 그렇게 말뚝이 되었다.
나는 말뚝이다. 나는 말뚝이다. 필사적으로 되뇌며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말도 잘 알아먹는 놈이 그러게… 쯧. 원래 세상일 안 겪어보면 모르는 일이긴 해.”
다곤은 도박판 역할을 하던 가죽 위에 앉아 연초를 꺼냈다. 이파리로 둘둘 만 연초에 그가 품에서 꺼낸 물통 안의 액체를 한 방울 떨어뜨리자 파악! 연초에 불이 붙었다.
“후우… 야.”
“네, 넵!”
“저 안에 있는 새끼가 누군지, 아는 거 없냐?”
“저, 전혀 모릅니다! 그냥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밖에….”
“골 때리네. 내가 잠깐 놀긴 했어도 저런 놈이 그냥 생길 리는 없거든?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이 말이야.”
“그,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그럼 저 새끼는 어디서 나왔을까?”
“지금부터 그걸 알아야죠.”
대답은 뒤에서 들렸다. 에르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해야만 한다.
모순된 감정이 그의 안에서 부딪혔다.
“음, 에르시. 저는 용서해 준다고 했는데, 왜 또 이런 장소에 온 걸까요? 아무리 저라도 두 번은 힘들지도 모르거든요?”
“저, 절대로 아냐! 그냥… 그냥, 이번 일에서 손 떼겠다고 말하려고 했어!”
“저는 믿어드리고 싶지만, 믿음에는 행동이 필요한 거 알죠?”
에르시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다시 붙잡혀 창고로 끌려가면… 그때는 마르할의 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정작 마르할은 에르시가 용서를 빌면 몇 번이고 그를 용서해야 하는 입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호구가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 사람은 없다.
그게 마르할이 말도 안 되는 제약을 가지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다곤, 부탁한 일은요?”
“애들 풀었고, 나도 짐 챙겨서 출발하려고 했지. 그런데 웬 미친놈이… 이거 내 잘못 아니다? 솔직히 내가 마을 자경단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건 너무하지.”
“그렇긴 해요.”
“헤헤, 그렇지?”
“그런데, 도박장을 열려면 다곤의 허락이 필요한 거 아니었나요?”
“그렇지…?”
도박장 같은 시설이 들어오려면, 기존에 있던 세력을 밀어내거나 허락을 받는 게 관례다. 그 암묵적 규칙을 어기면, 그때는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전쟁이다.
사라진다는 말의 의미는 다양하다. 죽어 땅에 묻히거나, 꼬랑지 말고 도망치거나.
마을에 도박장이 생겼다면, 그건 다곤의 허락을 받았다는 뜻이다.
“원래 얌전한 새끼들이었다니까? 상납금도 꼬박꼬박 내고, 말썽도 안 부리고. 뒷조사까지 해봤어. 다른 지역에서도 얌전한 놈들이었다니까? 하루아침에 빡 돌아서 미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지. 신도 모를걸? 그러니까, 내 책임은 아니다?”
“그래도 자기 앞마당도 관리 못 하는 사람은 조금 신뢰하기 어렵네요.”
사람을 수십 명은 죽여본 살인귀처럼 굴다가, 주인 앞의 노예처럼 굴다가, 이제 비굴하게 손을 싹싹 비비는 다곤을 보며 에르시는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검은 얼굴은 도박장에서 날뛰던 남자들을 주먹 하나로 제압하던 사람이다.
그런 검은 얼굴을 묻어버린 사내가 마르할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있다.
“구멍부터 보죠. 죽이진 않았죠?”
“어… 아마도?”
다곤이 검은 얼굴을 묻어둔 구멍으로 다가가자 저절로 구멍이 열렸다.
안에서는 검은 얼굴이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검은 얼굴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감겨 있었고, 또한 어떤 빛도 잡아내지 못했다.
다곤이 그 모습을 보고 낄낄 웃었다. 등골에 소름이 끼치는, 비인간적인 웃음이었다.
“어쩐지 손맛이 좋더라니. 눈에 제대로 들어갔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하고 같이 정신도 가버렸어. 야, 올라와. 다시 땅에 묻어버리기 전에.”
검은 얼굴은 펄쩍 뛰어 한 번에 구멍에서 올라왔다. 올라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발을 헛디뎌 꼴사납게 넘어졌다.
마르할은 검은 얼굴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복면을 내리자 몇 개의 흉터가 있는 얼굴이 보였다.
“이름.”
“콜린. 콜린 마드.”
“누구 사주를 받았죠? 숨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요. 다곤, 물병 가지고 있죠?”
“뭘로 줄까?”
“중간 걸로요. 뼈는 안 녹는 거 맞죠?”
“아, 안 돼! 그것만은, 그것만은 제발!”
검은 얼굴이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
닿으면 피부가 타버리는 물이라니. 마법사들이나 가지고 다닐 법한 물건이다.
지식 없이 처음 접하는 사람은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검은 얼굴은 그 액체에 눈까지 멀어버렸다.
다곤이 가진 물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특별한 물로 세안하기 싫으면 바로 대답하는 게 좋아요. 없다는 말은 안 통해요. 알 만큼 알고 왔으니까.”
“아젠만! 아젠만 리안틀 각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아젠만 리안틀?”
다곤의 얼굴이 굳었다.
횡령 혐의로 공국에서 쫓겨난 이후, 아젠만 리안틀은 외적인 일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횟수가 손에 꼽는다.
그는 자기 두뇌를 활용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 돈을 다루던 그는 이제 사람을 다룬다. 거지를 부리고, 부랑자를 부리고, 용병을 고용해 그는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다.
아젠만은 다곤도 건드리기 힘든 서부 뒷세계의 거물이다.
“어. 이거 일이 커지는데?”
“아뇨, 잘됐네요. 마침 각하를 만나야 할 일이 있던 참이었거든요. 가는 김에 한번 만나보고 오죠.”
“그냥 만나러 간다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대강 예상이 되거든요. 다곤은 제가 부탁한 일이나 제대로 처리해 줘요. 잘못되면 안 되는 일이니까요.”
“그럼 난 가도 되는 거지?”
“네, 가보세요.”
혹여 마르할의 마음이 바뀔까 다곤은 헐레벌떡 낡은 도박장을 벗어났다.
“저, 저기. 마르할. 그러니까 나는….”
“아, 에르시. 아직 있었어요? 전 진작에 간 줄 알았죠. 당신한테는 볼일 없으니 이제 가도 돼요.”
약간 놀란 어조가 묻어나는 마르할의 말에 에르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
그건 비참함이었다. 이 사건 속에서 자신의 존재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나 하는 바닥없는 자괴감.
실제로 일련의 사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그는 비중조차 없었다.
마르할은 정말 일이 끝났는지 에르시를 놔두고 도박장을 나섰고, 그건 에르시의 자괴감을 더욱 찔러댔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모든 인간에게 무시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하하하….”
에르시가 마른 웃음을 뱉었다. 비척비척 일어난 그의 눈에 땅에 쪼그려 떨고 있는 눈먼 남자가 보였다.
옆에 떨어져 있는, 그가 사용하던 무기도.
에르시는 뱀처럼 움직이는 검을 잡았다. 다루기 힘든 기형 무기인 탓에 다리에 상처가 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누구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인정할 일을 해내면 된다.
양손으로 검을 잡은 에르시가 손을 높이 들었다.
그는 기형검을 몇 번이나 내리쳤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