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24
제324화
레벨라는 지하실에 한동안 홀로 멍하니 남겨졌다.
일류 도박사의 조건은 자신이 놓인 환경을 인식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판돈, 자신의 정신 상태, 낼 수 있는 패와 상대가 가진 패.
그 모든 걸 읽지 못하면 도박사로서 실격이다.
레벨라는 냉정하게 현실을 인지했다.
그녀가 자리를 비운 잠깐 사이 베이올라는 그녀가 잡을 수 없는 아득한 영역으로 나아갔다.
레벨라는 지하실에서 나왔다.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레벨라에게는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발품을 팔까? 비효율적이고 정보의 신뢰도도 떨어진다.
레벨라는 쓸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알았다.
그 사람이 주로 어디서 활동하는지도.
레벨라는 다곤의 부하가 있을 법한 도박장을 찾아 나섰다.
* * *
국적 없는 군대는 사라졌다.
집을 원하는 사람은 집을 얻었고, 땅을 원하는 사람은 땅을 얻었다.
모든 과정은 하일리의 손에서 이뤄졌고, 하일리는 적과 아군을 동시에 얻었다.
국적 없는 군대의 사령관인 셰르멜은 교회에서 요양 중이었다.
“이거 좋군요. 성녀님에게 직접 치료받을 수 있다니.”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예요? 아니, 왜 치료받으러 안 왔어요?”
알라실은 다른 일행과 함께 그저께 서부로 돌아왔다.
남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으므로 조용히 교회로 복귀했다.
서부에 있는 다른 교회는 모두 망했다고 들었다. 교회는 무너지고 사제들은 마족이 되거나 성난 민중에게 끌려 나와 불에 타 죽었다던가.
사제들이 불쌍한 한편, 그래도 싸다 싶기도 했다.
선민사상에 찌든 사제들은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는 게 일상이었다.
사제라는 직책이 있기에 살았지, 평민이 그랬다면 어디 으슥한 골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도 남을 행적이었다.
성녀의 귀환은 금방 서부 전역에 퍼지겠지.
그 짧은 휴식이라도 즐기려던 알라실을 기다리던 사람이 셰르멜이었다.
알라실은 셰르멜의 부상을 손짓 한 번으로 치료했다.
셰르멜의 몸은 엉망이었다. 최근 입은 상처도 중상에 가까운 게 몇 개나 있었고, 그리 오래되지 않은 흉터도 많았다.
그녀가 떠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치료받았으면 사라졌을 흉터들이었다.
“저는 단순한 지휘관이 아닙니다. 존재해선 안 되는 군대를 이끄는 몸으로 연합과 연합군, 그리고 남부 지주들의 견제까지 한 몸에 받았죠. 죽어도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위치라는 겁니다.”
“남자들의 허세는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돼요.”
“여자들의 눈치 싸움을 이해하는 남자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다 자기 갈 길 갔죠. 용사 일행의 후예라는 이름으로 같이 묶였지, 애초에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니었어요.”
성황국 안에서도 몇 번이나 나왔던 말이다.
마르할이 없었다면 이 인원이 모일 일은 없었을 거라고.
마왕은 죽였고, 서로 뭉쳐 다닐 이유도 사라졌다.
서부 근처에서 일행은 제각각 흩어졌다.
“그래도 같이 마왕의 목을 딴 영웅들 아닙니까.”
“뭐, 다른 사람이 울고불고 부탁하면 도와줄지도요. 당신은 이제 어쩔 거죠?”
알라실과 셰르멜은 그래도 제법 대화를 나눈 사이였다.
어디에 지원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제때 도착할 것 아닌가.
각 군의 지휘관과는 싫어도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셰르멜은 마르할이 직접 거둔 사람이기도 한지라 성녀가 국적 없는 군대를 편애한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돌아다녔다.
“원하던 형태와는 거리가 있지만, 복수도 시원하게 끝냈으니 농사나 지을까 합니다.”
“그러지 말고, 여기서 일할 생각 없어요?”
“성녀님 아래에서 말입니까?”
“교회의 흔적은 싹 밀어버리고, 병원을 만들까 생각 중이거든요. 보편 기적, 알죠?”
“제 아래 있던 부하 몇 놈도 굶어 죽을 걱정은 없어졌다고 좋아하더군요.”
“기적은 그냥 쓴다고 끝이 아니에요. 기적의 사용법도 가르치고, 겸사겸사 서부에 공언도 하고. 어때요?”
“씨 뿌리고 밭 가는 일보다는 덜 지루할 것 같군요.”
교회는 한산했다.
안톤 주교는 전쟁 통에 도망갔는지 죽었는지 모습을 감췄고, 마족이 되지 않고 살아남은 사제들은 지금도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휴고와 에나가 각별히 신경 써주지 않았다면 교회 건물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종 몇 명이 관리하는 교회 문이 열리며 마리나가 들어왔다.
“할 일이 있다고 안 했어요?”
“다 끝냈습니다.”
연합을 탈퇴하겠다는 통보를 날리고, 허수아비가 된 연합 건물에 있던 짐을 새로운 집에 옮겼다.
“그럼, 진짜가 된 거예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도 실라나티엘이라면서요. 같은 마법사라면 꼬실 방법도 많지 않아요?”
“마왕을 죽이기 전이라면 그랬겠죠. 여기서 제가 먼저 접촉하면 반대로 의심만 살 겁니다. 그리고 제가 따로 무얼 하지 않아도 아마 올해 안으로는 마무리될 겁니다.”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여긴 왜 왔어요?”
“심심해서 왔습니다.”
“뭐요?”
“제대로 들었습니다. 한가해서 환자나 치료할까 했는데, 꽝이군요.”
알라실은 병과 상처의 치료를 무슨 실험처럼 언급하는 마리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함께 목숨을 걸고 사선을 빠져나와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었다.
* * *
레벨라는 다곤의 부하를 통해 다곤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가 없는 동안 베이올라에게 일어난 일들을 들었다.
“배신에 배신. 마왕 목을 딴 업적이 없었으면 여전히 서부에서 욕먹고 있었겠지.”
“…그렇군요.”
다곤의 총평을 듣고 레벨라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녀가 마족이 되어 서부를 떠도는 동안 베이올라는 평생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시련을 겪었다.
평범한 사람은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들이다.
베이올라의 행적을 보면 그녀도 한 번은 무너졌던 게 분명했다.
모든 걸 포기했던 베이올라가 다시 일어서며 내린 선택이다.
베이올라는 경험이 없지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다.
서부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마왕의 앞까지 간 베이올라는, 어쩌면 레벨라보다 아는 게 많을지도 몰랐다.
베이올라는 마르할의 이름을 듣고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내린 선택이라면, 레벨라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의, 그리고 친구의 선택을 존중했다.
베이올라가 바라는 미래에는 레벨라도 있었다. 마족이 된 레벨라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다.
자랑스럽고, 고맙고, 또 미안했다.
레벨라는 베이올라의 선택을 감히 부정하지 못했다.
다곤의 거점에서 나온 레벨라는 베이올라의 기척을 찾아 걸었다.
신비를 통해 사람을 찾는다. 평생을 수련한 마법사조차 발을 들이지 못할 영역이지만, 그녀에겐 아니었다.
천년 늑대는 말했다.
최초의 철을 베는 기사 이후 세상은 바뀌었고, 용사와 마왕 이후 세상은 다시 한번 바뀌었다고.
변한 세상에서 사람들은 이전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던 높은 영역에 보다 쉽게 도달했고, 특별한 마족이 된 레벨라는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은 영역에 도달했다.
신비를, 역사를 느끼고 사람을 찾는 건 그녀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베이올라의 역사를 향해 걷던 레벨라의 걸음이 빨라졌다.
베이올라 근처에 익숙한 신비들이 있었다.
그녀가 서부에서 만났던 영물과 성스러운 혈통들이었다.
도시 바깥에서 신비가 사방으로 퍼졌고, 폭음이 그녀가 있는 자리까지 들렸다.
하늘의 구름이 몇 갈래로 쪼개졌다.
레벨라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은 끝난 후였다.
한쪽에는 베이올라가 검게 물든 검을 들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영물과 성스러운 혈통을 대표하는 자들이 먼지투성이가 된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레벨라를 발견한 베이올라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황궁에 있을 때의 그녀가 떠오르는 밝은 미소였다.
“레벨라, 왔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마왕의 힘을 알고 싶다고 해서, 덤비라 했어.”
“저들 전부를 말입니까?”
국가가 없는 서부에서 왕처럼 군림하는 자들이다.
아무리 용사의 후예, 두 번째 용사라 불리는 베이올라라도 저들 모두를 한 번에 상대할 수는….
“우리의 힘은, 마왕에 닿았느냐?”
“교황에게는 닿았어.”
“그럼 되었다. 돌아가자.”
천년 늑대와 그의 혈족이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다른 영물과 성스러운 혈통도 다르지 않았다.
마족이 사라진 후에도 그들이 서부에 있었던 건 모두 16년 전 짓밟힌 자존심 하나 때문이었다.
자존심을 세웠으니, 더는 이 번잡한 땅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베이올라는 그들에게 하나를 말해주지 않았다.
저들이 힘을 합하면 스스로를 교황이라 칭하던 자와는 호각이거나 그 이상을 이뤘겠지.
그러나 인간을 포기하고 마왕을 자칭하기 시작한 교황을 상대로는, 두 번째 마왕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것까지 말해주면 영물들도 쉽게 납득하지 않았겠지. 그래서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서로가 편해지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베이올라는 레벨라에게 몸을 돌렸다.
“알아봤어?”
“네… 알아봤습니다.”
“내 서부 생활은 그 사람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어. 어쩌면 이 선택까지 그 사람이 노린 걸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내 선택이야. 어리석다 욕해도, 이용당한 결과라 해도, 나는 내 길을 갈 거야. 세상이 뭐라고 해도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 이게 내가 용사에게 배운 유일한 의지야.”
“용사에게 배웠다 하셨습니까…?”
“용사랑 일면식도 없이 용사의 재림이라 불릴 수 있을 것 같아?”
베이올라는 멍하게 입을 벌린 레벨라의 손을 잡아끌었다.
“밥은 안 먹었지? 괜찮은 가게가 많아. 밥 먹으러 가자.”
레벨라는 1년 전 황궁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올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그녀가 베이올라의 손을 잡고 그녀를 이끌었다.
고작 1년 사이 둘은 정반대의 관계가 되었다.
레벨라는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베이올라는 그녀의 주군이자 친구였다. 레벨라는 친구이자 주군의 성장이 기뻤다.
레벨라는 맞잡은 손을 꽉 쥐었다.
따스한 손이었다.
* * *
시간이 흘렀다.
성녀가 만든 병원은 동부와 서부를 통틀어 세계 최고의 병원이라 불리며 대륙 전역에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찾아왔다.
마린은 마르할의 대리인이 되어 일을 처리했고, 마리나는 서부 전역을 돌아다니며 알라실의 병원에 간혹 출입했다.
베이올라는 안체에 있는 유렐 휘하의 신비 추적자들을 거둬들였다.
신비에 환장한 마법사들은 용사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원수의 부하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베이올라를 찬양했다.
베이올라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는 신경 쓰지 않고 레벨라와 함께 마족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용사 일행에 열광했다.
마왕을 쓰러뜨리고 홀연히 사라진 첫 번째 용사 일행과 다르게 두 번째 용사 일행은 서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던 중 대지주 마르할의, 무려 마왕을 쓰러뜨린 영웅을 대리인으로 부리는 서부 최고의 세력과 최강의 무력을 지닌 대지주의 입이 열렸다.
“슬슬 올해 건국제를 준비하죠.”
바체아 제국 건국제가 가까워졌다.
* * *
제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용사가 마왕을 죽이며 마족이 사라졌다.
제국군이 주인 없는 땅이 된 성황국 영토에 발을 들였다.
점령한 땅의 면적이 제국 영토 반에 달한다는 소문이었다.
사람들은 제국이 바체아 제국을 뛰어넘는 제국이 될 거라고 떠들었다.
실제로도 동부의 패권은 제국의 손에 달린 것처럼 보였다.
대륙 전체의 역사를 뒤져도 보기 힘든 대승을 거뒀음에도 옥좌에 앉은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교황을 직접 쳐 죽여도 모자랄 판에 고작 수만 목숨을 거둔 시점에서 마족이 사라졌다.
역사가, 역사가 부족했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부족한 역사를 채울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제국의 역사를 다루는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에게 유의미한 성장을 안겨다 줄 사건은 찾기 힘들었다.
정복 전쟁을 일으키고 수만 명을 학살해도 커다란 성장은 없을 게 분명했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날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퀭한 눈의 그가 어전 옆에 서 있는 불사의 기사 실라 엘에게 물었다.
“마르 실라나티엘은 어떻게 완성되었지?”
한때 실라나티엘이었으며, 지금도 실라나티엘을 버리지 못해 ‘엘’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기사가 답했다.
“초경 이후 한 달에 한 번씩 그녀는 친족의 피와 살로 조리한 만찬을 먹었습니다. 그녀의 모친으로 만든 마지막 만찬을 먹었을 때, 마르 실라나티엘은 완성되었습니다.”
마르 실라나티엘은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마법을 부리기 시작했다.
실라나티엘 가문이 낳은 천재인 그녀도 처음부터 그 정도 재능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니었다.
마르 실라나티엘이 재능을 폭발시키며 마법과 유물을 만들기 시작한 건 그녀가 금기 중의 금기를 완성한 이후였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가 손을 뻗자 거대한 문이 열리며 그의 침실에 있던 편지 두 통이 날아왔다.
두 통의 편지에는 똑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황권 경쟁을 포기하고, 차기 황제로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를 추천한다는 내용이었다.
“차기 황좌의 주인을 정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를 불러들여라.”
“알겠습니다.”
불사의 기사 실라 엘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