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30
제330화
알라실은 치료를 끝낸 환자를 내보내고 옆에 있던 책을 바닥에 던졌다.
“나 안 해! 안 한다고!”
“시끄럽습니다. 성녀의 체통을 지키시죠.”
“집도 없는 거지 마법사는 꺼져요!”
마리나는 보던 책을 덮고 대꾸했다.
“집이라면 있습니다. 바체아 제국 제도에 대저택이 있죠. 무려 황제에게 직접 하사받은 물건입니다.”
“나도 있거든! 다 같이 하나씩 받은 걸로 생색은!”
“직접 살지도 않는 장소를 집이라 불러도 됩니까? 이 병원이 더 집에 가까워 보입니다만.”
“그러는 당신은 어떤데요?”
“저는 1년에 한 달은 집에서 지냅니다.”
마리나 앞의 공간이 갈라지며 제도의 풍경이 나타났다.
알라실은 이를 갈았다.
“므에트 제국에 있는 성인이라면 공간을 뛰어넘는 기적도 알겠죠? 그렇죠?”
“서부의 상징인 성녀가 마족 소굴에 들어가면 국제 문제가 됩니다.”
“용사도 거기 있잖아요. 전우 만나러 가는 게 뭐가 문제야.”
“동부도 완전히 망한 건 아닙니다. 공국 말고도 무시하기 힘든 세력이 꽤 있죠. 그들을 건드려 좋을 게 없습니다. 저희야 무사하겠지만,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 걸 그 두 사람이 좋아할까요?”
의무라는 이유만으로 무슨 짓이든 하는 광인과 무고한 마족을 없애겠다고 스스로 마족에 물든 서부의 역사를 모두 받아들인 광인이 하필 그녀의 지인이자 친우이자 전우였다.
“하아… 은둔이나 해버릴까. 10년 동안 개고생 했으면 됐잖아요? 이제 쉬어도 된다고 생각 안 해요?”
“선택은 언제나 자유입니다.”
“자유가 아닐 때도 있었죠.”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마리나였다.
“일주일 후 건국제 시작과 함께 밀주를 연다고 합니다.”
“그거요?”
1년 전 바체아 제국에서 드디어 밀주를 담갔다.
서부 전역에서 특산품이 바체아 제국 황궁으로 들어갔다. 신생 안체 왕국과 지주 연합, 그리고 황금 호수 자유 도시 연합체에서도 여러 물건을 보냈다.
마족으로 인해 서부의 생태계는 한 차례 초기화되었다.
각지의 특산품도 전과 같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기 지역에서 제일 좋은 물건을 바체아 제국으로 보냈고, 황제는 그걸로 밀주를 담갔다.
“다들 올 테니 당신한테도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칫. 본인이 직접 오면 안 되나.”
“도둑이 밀주를 훔쳐 먹지 않게 감시해야 한답니다.”
“참… 그 사람들다운 이유네요.”
알라실은 어이가 없었다.
도둑 걱정해서 술 창고 지키는 황제나 그걸 훔치려는 역사상 최고의 도둑이나.
애들이나 할 짓을 하고 있는 자들이 세계를 지킨 용사들이라 하면 누가 믿을까.
“다들 온다면 우리의 용사님도 와요?”
“초대는 해본답니다. 그쪽도 꽤 안정되지 않았습니까.”
“불로가 좋긴 좋아요.”
“그래서, 갈 겁니까?”
“좋아요. 이참에 제국에 자리 잡고 드러누울까 보다.”
마리나가 공간을 열었고, 두 사람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 * *
마족이 사라지고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서부의 자연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나무가 장성해 숲이 되기에 2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천하를 담은 땅을 비롯해 여러 장소에 새로운 숲과 산이 만들어지고 있긴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임야 자원이 풍부한 도시가 있었다.
숲의 도시라 불리는 그 도시는 사방에 울창한 숲을 뒀고,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숲이 늘어났으며, 현재도 여전히 늘어나는 중이었다.
숲의 도시는 도시의 주인 카반보다 더 유명한 게 둘 있었다.
하나는 도시 바깥에서 재배하는 찻잎이었고, 다른 하나는 숲에 사는 숲의 대현자였다.
도시를 감싼 모든 숲을 만들고, 10년 동안 서부에 수백 개의 숲과 산을 만든 전설의 현자.
지금도 하루에 하나씩 숲과 산을 만들어내는 그는 서부의 개척자이자 자연의 구원자라고 불리기도 했다.
10년 전 마족과의 전쟁에서도 최전선에서 싸운 현자는 만인의 존경을 받았으며, 대현자를 보기 위해 숲의 은둔자와 여러 마법사가 숲에 자리 잡았다.
그를 용사 일행과 동급에 놓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대현자가 서부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대현자 아스탈 베르기아스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별일이네. 네가 여기까지 오고. 자유 도시 연합 일로 바쁘지 않아?”
“네루 의장이 변덕스럽긴 해. 너도 한번 시달려봐야 하는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거긴 다시 안 가.”
묘목을 가꾸던 아스탈은 미간을 찌푸렸다.
카리안이 웃었다.
황금 호수 자유 도시 연합의 상인들이 봤다면 죽음의 웃음이라며 창백하게 질려 뒷걸음질 쳤을 테지만, 지금 그는 순수하게 즐거워서 웃고 있었다.
“크큭. 당해봤나 봐? 언제 왔다 갔어?”
“8년쯤 전. 네가 자유 도시 연합에 가입하기 전에.”
“어지럽지?”
“많이.”
숲을 몇 개 만들러 갔다가 꽃밭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게 나중에는 마약 밭이 되었다.
사제들이 사라지며 수요가 폭증한 의료품이라는 설명을 딩켄이라는 남자에게 듣긴 했지만, 그래도 한때 황녀였던 사람의 입에서 마약을 재배해 달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둘 다 있었네.”
숲 안에 갑자기 나타난 신비에 아스탈의 고개가 돌아갔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뭐, 그렇지. 겸사겸사 친구 얼굴도 보고.”
카리안이 어깨를 으쓱였다.
숲에 나타난 마린은 울창한 숲을 한번 둘러봤다.
“난 언제 봐도 네가 제일 이해가 안 돼. 어떻게 그 애송이가 숲의 대현자가 됐지?”
“나도 그래. 무슨 일이야? 너랑 카리안이 같이 오고.”
“건국제에서 밀주를 열 거야. 그런데 카리안 너한테는 아직 편지도 도착 안 하지 않았나?”
“여기 있으면 알아서 찾아올 줄 알았지.”
“재수 없어.”
“내 행동은 전부 폐하를 보고 배운 건데?”
“그러니까 싫다고.”
마린은 카리안과 아스탈에게 보석을 하나씩 던졌다.
둘 다 보석을 유심히 바라봤다. 보석을 보는 둘의 시각은 완전히 달랐다.
카리안은 보석의 외형에서 값을 매겼고, 아스탈은 보석에 깃든 신비를 관찰했다.
“그분의 물건이구나.”
“그분이 아니면 전 세계 사람들을 모으지도 못 해.”
“마황도 와?”
“일단 초대는 갔어. 오는 거야 본인 마음이지. 난 먼저 간다.”
손을 가볍게 흔든 마린은 숲 안쪽으로 몇 걸음 걷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므에트 제국은 이름을 잃었다.
국호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므에트 제국을 므에트 제국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다.
마족의 나라, 저주받은 나라, 혹은 마황국.
10년 전 황제가 된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는 제국을 마족들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엄청난 반발이 있었다. 안 그래도 선황이 100만이 넘는 대군을 징집하며 지방에선 몇 개나 되는 반란이 일어났었다.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는 두 가지 무기로 반란군을 제압하고 국가를 안정화했다.
젊음과 수명을 미끼로 유력 귀족과 늙은 대신들을 유혹했고, 선을 넘은 반란군은 직접 전장에 나서 정리했다.
10년이 지나 므에트 제국 제도는 1년 내내 검은 안개에 둘러싸인 마족들의 도시가 되었다.
아무리 용사라 불리는 그녀라도 10년 만에 제국 모든 영역을 마족의 땅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그랬으면 제국 사람 태반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했기에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공존이지 침략과 정복이 아니니까.
지금도 제국 국경에서는 마족과의 공생을 거부한 사람들이 국경을 넘었고, 베이올라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선택의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구도 인류의 적이었던 자들과 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마황 베이올라 므에실리고는 오랜만에 바깥에서 온 손님과 만났다.
손님이자, 그녀의 몇 없는 친구였다.
“벌써 밀주를 만들었다고?”
“밀주는 그 자체보다는 형식이 중요한 물건이니까.”
마린은 카리안과 아스탈에게 주었던 것과 같은 보석을 베이올라에게 던졌고, 베이올라는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보석을 낚아챘다.
“그건 그래.”
“마족들은 어때?”
“정신을 유지하는 방법은 거의 완성되었어. 성인이 조금만 더 도와주면 돼.”
“우리 쪽에서 지랄 나는 일도 줄어들겠네.”
“대신 다른 문제가 생기겠지.”
제도 안에 사는 마족은 모두 마족의 힘을 가지고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서부나 성황국에 있던 의식을 가진 마족만큼은 아니지만, 그들도 평범한 마족 수준의 육체 능력, 재생력과 근력 등은 가졌다.
형상도 인간에 가깝게 고정하는 방법이 생겼다.
주변국이 므에트를 경계하는 건 므에트 제국이 단순히 마족을 받아들여서만은 아니었다.
마족으로 이루어진 소수 정예 부대의 위력은 10년 전 성황국의 침공으로 확인되었다.
성기사 수백으로 국력을 온전하고 있던 제국과 무력 하나는 건국 이후 최고에 달했던 공국의 국경이 밀렸고, 중소 국가는 고작 성기사 수십 명을 버티지 못해 무너졌다.
시간이 지나 므에트 제국이 완전한 마족의 나라가 되었을 때 그들이 가지게 될 무력을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야?”
“아마 평생을 이러고 살겠지.”
“네 수명이 몇 년인 줄 알고.”
“아마 수백 년은 되지 않을까.”
이미 반쯤 신이 된 그들의 스승 수준은 아니지만, 베이올라와 마린도 인간의 범주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그들은 10년 동안 늙지도 않았고, 수명도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어졌다.
거기에 더해 베이올라는 마족이자 마왕이었다.
끝없이 증식하는 거대 역사를 품은 개인. 그녀의 수명은… 어쩌면 무한할지도 몰랐다.
“차기 마황을 뽑을 생각은 없고?”
“없어.”
마린은 미련한 친구가 안타까웠다.
10년은 어지간한 원한은 사그라들 세월이었다.
한때 속으로 어지간히도 욕했던 친구지만,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게 될 미래가 빤히 보이면 당연히 걱정하게 된다.
“너도 많이 달라졌구나.”
“뭐가?”
“부드러워졌어.”
“…내가?”
마린은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 전부 그렇게 말할걸?”
괜히 부끄러워진 마린은 말을 돌렸다.
“됐고. 올 거야?”
“성인도 초대받았어?”
“일단은.”
“그럼 나도 가야지. 그 사람은 어때?”
“여전해. 간다.”
마린이 돌아갔고, 레벨라가 일하는 베이올라를 찾아왔다.
마족들의 성녀라 불리는 그녀 옆에는 막 성장기에 들어선 소년이 붙어 있었다.
베이올라가 반가운 기색으로 옥좌에서 일어났다.
“레벨라랑 유리벨? 무슨 일이야?”
“평안하셨습니까, 고모님.”
“그분의 전언이 있어서 왔습니다.”
“작업이 끝났어?”
베이올라는 제국의 토지 안에 있는 마족의 역사에 직접 간섭할 수 있다.
제국 안에서 탄생하는 마족은 그녀의 힘으로 이성을 가진 마족으로 만들 수 있지만, 제국 바깥에 있는 마족은 여전히 의식을 잃고 날뛰는 괴물이었다.
신이 된 성인이 힘써주며 의식을 가진 채 마족이 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그것도 안전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마족의 검은 안개는 여전히 주변 모든 걸 먹어치웠다. 마족이 된 인간은 설령 의식을 가지고 있어도 괴물로 취급되며 살해당했고, 운 좋게 그녀에게 구조되거나 제국에 도착하는 마족은 극소수였다.
성인은 마족의 역사를 손봐 검은 안개의 침식을 최소화하고 모든 마족이 의지를 가지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레벨라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여전히 수십 년은 걸릴 작업이라고 하십니다. 그보다, 축제에 갈 거면 미리 가 있으라고 하시더군요.”
“아, 그래.”
베이올라가 다시 옥좌에 앉았다.
“쉬시는 게 어떻습니까?”
“딱히 피로를 느끼는 몸도 아닌데 뭐. 그래도, 인사는 한번 하고 올까.”
“정무는 제가 보고 있겠습니다.”
“저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래. 갔다 올게.”
베이올라는 레벨라와 한 번 포옹하고 유리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렐의 아들인 그는 4년 전에 제정신을 유지한 채로 긴 잠에서 깨어났다.
자신이 잠들었던 동안 있었던 일들을 들은 유리벨은 레벨라를 따라 마족들을 치료하는 사제가 되고자 했다.
* * *
바체아 제국 제도는 마족의 침공에도 부서진 부분이 없었다.
풀려난 진액은 저항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제도를 집어삼켰고, 일부 부서진 장소도 마왕이 된 소일라가 직접 복구했다.
제도는 명실상부한 서부 최대, 최고의 도시로 자리 잡았다.
제도 인근에 마을과 도시가 들어서는 중이었고, 상당한 속도로 국가가 재건되고 있었다.
황궁 바깥에는 건국제가 한창이었다.
인근에 사는 사람이 모조리 모인 축제에서는 거리마다 서부 각종 전통문화와 먹거리가 자리했다.
모두가 기억하는 바체아 제국 건국제의 모습이었다.
마르할은 지인들과 함께 황궁 연회장에 있었다.
첫 번째 마왕을 죽인 용사 일행과 두 번째 마왕을 죽인 용사 일행이 모두 모였다.
소일라는 바스타 옆에 붙어 있었고, 최근 술맛을 안 샤리는 연회장 상석에 있는 마르할을, 정확히는 마르할 품에 있는 밀주를 담은 술동이를 보며 눈을 빛냈다.
율란과 아르고도 은근히 밀주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마르는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회장 안에 앉아 있는 건 그녀뿐이었다.
알라실은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벗어나 그저 기분이 좋았고, 마리나는 밀주 자체보다는 밀주에 쌓인 역사에 더 관심을 보였다.
마린은 연회장 구석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울테칸은 밀주보다는 연회 후에 있을 마르할과의 독대에 더 정신이 팔려 있었고, 네루는 벌써 마음에 드는 음식을 접시에 한가득 담았다.
딩켄은 그런 네루를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았고, 그 옆에서 세오닉이 한숨을 쉬었다.
숲의 대현자와 서부의 물류를 지배하는 대상인은 편한 마음으로 서 있었다.
마르할의 양옆으로는 스트레킬과 아젠만이 자리했다.
서부를 재건하는 데 막대한 공헌을 하며 서부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두 사람이었다.
“열게요.”
마르할이 불로 술동이를 봉인한 밀랍을 녹였다. 밀랍이 녹아가며 밀주 특유의 형용하기 힘든 향기가 사방에 퍼졌다.
밀주의 뚜껑이 열리며 향기가 연회장 전체에 가득 찼다.
“웁…!”
마린이 입을 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돌아갔다.
단순히 향기가 체질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보통 이상의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마르할에게 집중되었다.
“이거 뭐예요! 설명해봐요!”
“안 그런 척하더니 할 거 다 하고 있었군요.”
“축하해.”
알라실과 마리나가 한마디씩 했고, 베이올라는 순수하게 마린을 축하했다.
붉은 얼굴로 웅얼거리는 마린의 변명은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 내 제자가 이겼다고! 봤지? 내가 이겼다! 대륙을 돌면서 방중술 비법을 훔친 보람이 있어! 하하하!”
가만히 있던 아르고가 웃으며 소리쳤다.
“아르고가 우쭐대니 기분이 나빠지는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르?”
“그래서?”
“별로 놀라지 않는군요.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별로.”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율란은 마르와 20년 이상 알고 지내며 지금처럼 기분이 좋은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
“평생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았으니까요. 당신도, 저 아이도.”
“세계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라면야, 누구는 하고 싶은 대로 일을 할 자격이 있지.”
한걸음에 훌쩍 다가온 바스타가 말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난처하게 얼굴을 돌리는 마르할을 보고 있었다.
알라실이 마르할의 바로 앞까지 가서 무언으로 마르할을 노려봤다.
아젠만은 황제의 정력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거라며 농담을 던졌고, 스트레킬은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늦은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소란이 지나가고 밀주가 각자의 잔에 따라졌다.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며, 건배.”
마르할의 잔에 담긴 술의 표면에는 꽃잎 한 장이 흔들렸다.
한 노기사가 손수 가꿔 보낸 꽃이었다.
작가 후기
5대 마황은 생각했다.
‘동포들이 전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 초대 마황과 인간이 맺은 마족 보호 규약은 이름만 남은 먼지 쌓인 계약서가 되었다.
우리가 왜 참아야 하나? 마족은 인간보다 우월하다.
모든 문화와 생물의 역사를 품었으며, 힘은 인간을 압도한다.
왜 마황인 내가 동족들의 고통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마황은 전쟁을 준비했다.
* * *
황제는 생각했다.
‘마황이 전면전을 걸어오면, 인류는 마족을 막을 방법이 없다.
삐끗하면 인류의 멸망, 운이 좋아도 문명이 수백 년은 퇴화할 것이다.
세계의 역사를 골고루 품은 마족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
마족에 대응할 새로운 역사, 새로운 힘이 필요하다.’
황제는 마법사들을 모아 비밀리에 한 가지 마법을 준비했다.
이 세계에는 없는 새로운 역사를 품은 인간을 불러오는 마법이었다.
* * *
마족과 인류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황궁 구석에 있는 비밀의 방에서 빛과 함께 이 세계와는 다른 역사를 품은 인간이 나타났다.
황제는 그에게 특별한 직위를 하사했다.
용사.
최초의 마족과 맞섰던 영웅의 직위를.
라는 익숙한 후일담은 어떠신지요?
마족과 인간, 용사와 마왕.
흔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흔한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그리고 그 이야기의 근원을 찾는 걸 좋아하기에, 용사와 마왕의 이야기보다는 용사와 마왕이 탄생하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세계를 만드는 이야기를 창세기라 하는데, 그럼 하나의 종족이 만들어진 이야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창종기? 창족기? 아니면 그냥 역사나 자연현상, 혹은 신화라 불러도 되겠네요.
창세 다음에는 세계의 이야기가 있고, 역사는 이어지며, 자연현상은 사라지지 않고, 신화 다음에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음을 상상하는 건 여러분의 몫으로 두고, 저는 여기서 내려가 볼까 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해주신 독자님들께 무한한 감사 인사드리며 태대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