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6
제36화
상처를 아물게 하고 병마를 치료하는 신비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사제들의 전유물이다.
기사는 유파에 전해지는 수련으로 역사를 쌓고, 힘을 얻는다.
성황국 사제들이 기적을 배우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그들도 역사를 쌓는다.
수백 년 전, 신을 믿고 신에게 헌신한다는 기치 아래 종교가 생겼다. 그리고 종교가 성장해 성황국이라는 나라가 되었다.
사제들의 기적은 수백 년 종교의, 종교적 행사의 산물이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신비를 부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몸에 상처를 입히고, 치료한다. 병에 걸리고, 치료한다. 그 과정을 끝없이 반복한다.
반복되는 부상과 치유의 과정 끝에 성황국 사제들은 남을 치유할 힘을 얻는다.
세상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게 종교 자체에 쌓인 역사의 발현이라는 걸 알지만, 그걸 세간에 발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황국은 역사의 축적을 고행을 통해 신에게서 힘을 내려받았다고 표현한다. 사제는 신에게 선택받은 신성한 사람이고, 평민과는 비교도 안 되는 격을 얻는다.
성기사는 사제 사이에서도 한층 특별하다.
그들은 단순히 기적을 행사하는 걸 넘어 초인과 같은, 기사와 같은 전투 능력도 지니고 있다.
스트레킬과 같은 기사도 전투 중 급소를 당하면 방도가 없다.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전선에 복귀하는 성기사는 일반 기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중요한 전력으로 취급된다.
마르할 앞에 묶여 있는 남자는, 한때 그 성기사를 꿈꾸던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불가능한 방식으로 단련된 육체와 팔에 있는 흉터가 그것을 증명했다.
수십 가지 방법으로 팔에 상처 입히고 치료하며 기적을 몸에 새긴 흔적.
“너는, 너는 누구냐?”
“별로 흔하지는 않은 용병이요. 그런데 성기사씩이나 되려던 분이 서부에서 마적질이라….”
“나는 낙오자다! 감히 성황국을 그 입에 올리지 마라!”
“성기사 지망이었다면 자존심도 보통이 아닐 건데, 자기가 낙오자라 순순히 인정하네요? 보통 집단에서 버려지면 그 집단을 원망하기 마련인데.”
“그건 배교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남자의 눈에는 여전히 두려움이 들어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있는 신앙이 두려움에 맞서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건 마르할의 상대로 역효과다.
“투철한 신앙인이 마적질이나 하고 있어요? 신께서 가르치지 않던가요. 물건을 훔치지 마라. 사람을 죽이지 마라. 그런데 그걸 두 개나 어기네?”
“내 신앙을 의심하는 거냐!”
신앙이 두려움을 이겼다.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 남자는 마르할을 물어뜯을 듯 얼굴을 들이댔다. 같이 묶여 있던 두 명의 몸이 딸려올 정도였다.
“아뇨. 의심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칭찬하고 있죠. 투철한 신앙을 유지한 자칭 낙오한 성기사 지망생이 도적질을 하고 있네요. 이상하지 않나요?”
“나, 나는….”
“위에서 시킨 일이니 어쩔 수 없었겠죠. 사악한 존재의 손길이 닿은 땅이 무지한 이들의 손에 들어가선 안 된다. 마족이 남긴 무언가를 잘못 사용하면 다시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대충 그런 말을 들었겠죠. 아니면 단순하게 돈과 직위를 약속했든가.”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반 이상이 사실이었다. 그는 어린양들이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땅을 밟아선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성공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돌아오면 성기사 서임을 내려준다는 말도 들었다.
눈앞의 남자는 자신을 잠깐 훑어보는 것만으로 모든 걸 맞혔다. 신에게 거역한 피조물, 신실한 신의 아들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는 악마가 저러할까.
몸을 뜨겁게 달구던 분노는 사라지고, 서릿발처럼 차가운 공포와 두려움이 다시 차올랐다.
그는 악마를 처단했다는 성서 속의 성녀가 아니었다. 성기사도 되지 못한 낙오자는 악마에게 대항할 수 없다.
얌전히 죽음을 기다리던 남자는, 이어진 마르할의 말에 끝없는 수렁으로 빠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스트레킬, 이 사람들 풀어줘요.”
“우릴 죽이려 했던 놈들이다.”
“죽거나 다친 사람은 없잖아요? 그리고 도적하고 강도가 좀 돌아다니고 해야 용병들에게도 일거리가 생겨요.”
“나야 상관없다만, 이놈들은 나만의 전리품이 아니다.”
저쪽 구석에서는 피를 본 영향으로 베이올라가 구역질하고 있고, 마린은 그 옆에서 베이올라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다.
그 와중에 대화는 듣고 있었는지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난 괜찮아. 우읍…!”
“저도요.”
베이올라는 다시 시작된 토악질에 등을 돌려 고개를 숙였고, 마린이 다시 베이올라의 등을 때렸다.
그 동작에 감정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네요.”
“차라리 날 죽여! 날 죽여라, 이 악마야!”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죽음은 너무 편한 끝인 것 같지 않나요? 악마라면 오히려 사람들을 되도록 오래 살려두려고 하겠죠.”
“악인은 지옥에 가서 벌을 받는다.”
“살아서도 고통받고, 죽어서도 고통받으면, 고통이 두 배가 되니 더 좋죠. 이건 신조차 좋아할 것 같은데요. 악마와 신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완벽한 방법이네요!”
남자는 혼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악마에게 영혼이 빼앗긴 사람 같았다.
남자는 풀려났다.
부하들도 함께.
살아남은 부하 둘은 곧 죽을 상처를 입고 있었지만, 어차피 진짜 부하도 아니다. 성황국 출신 용병이나 부랑자를 모아 부하랍시며 부리던 게 전부인 인연이다.
“아, 맞다. 이름이 뭐예요? 그 정도는 물어도 되죠?”
“아스트람.”
“전 마르할이라고 해요. 다시 그 이름을 들을 날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도적 아스트람.”
마차가 움직였다. 핏자국이 말발굽과 마차 바퀴 자국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아스트람은 몇 시간 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부하들은 이미 모두 숨이 끊어진 뒤였다.
히히힝.
말 한 마리가 그에게 다가왔다.
말에게는 목줄이 달려 있고, 목줄의 끝은 말뚝으로 땅에 박혀 있다. 말은 목줄을 풀어 달라는 것처럼 얼굴로 아스트람의 머리를 툭툭 쳤다.
“남겨준 건가? 이걸로 떠나라고? 계속 도적질을 하라고? 내가! 성기사가 될 사람이었던 내가!”
아스트람은 웃었다. 미친 사람처럼 한참이나 웃었다. 그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사제의 명령 같은 건 전부 잊었다. 악마를 만난 영혼은 더럽혀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영혼은 오늘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졌다.
아스트람.
도적 아스트람.
성기사가 아닌 도적 아스트람.
악마의 말이 맞다. 누가 뭐라고 하든 그가 하는 일은 사람을 죽이고 가진 걸 빼앗는 일이며, 성서에서도 금하는 극악한 범죄다.
이미 그는 종교인을 자처할 자격이 없다. 그가 혐오하는 범죄자들과 같은 한 마리 짐승일 뿐이다.
“오냐, 원한다면 되어주마.”
아스트람은 악마가 되기로 했다.
* * *
마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리안은 얌전히 마차 구석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에도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다.
마차는 사정없이 흔들렸다. 흔들림만 가지고도 지금 고삐를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차 안에는 자칭 도적 아스트람과 만나기 전에는 없던 사람도 타고 있었다.
“정말 놓아줘도 됐던 건가? 내 수준에서야 잔챙이긴 했지만, 저런 놈이 무리를 지어 마적이 된다면 피해가 만만치 않을 거다.”
성기사 지망생이라던 아스트람은, 실제로는 이미 하위 기사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기적까지 사용할 수 있다면, 평범한 용병들로는 그를 어찌할 수 없다.
놔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세력을 형성할 것이다.
“말했잖아요. 용병들도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한두 번의 실패는 용병 탓으로 돌릴 수 있지만, 의뢰가 계속 실패하면 용병 길드 전체가 피해를 본단 말이죠. 그러면 탐색과 섬멸을 위해 거물이 파견될 거고, 그때가 되면 또 일이 재미있어질 거예요.”
진실을 안 용병 길드가 성황국을 물어뜯어도 좋고, 성황국과의 거래로 일을 묻어버려도 좋다.
차곡차곡 쌓인 역사가 언젠가 제 역할을 해줄 테니까.
“그가 성기사 지망생이었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나도 궁금하던 참이다.”
레벨라는 성황국어로 얘기한 마르할과 아스트람 사이의 대화를 거의 다 알아들었고, 스트레킬은 중요한 단어를 통해 대략적인 내용만 유추했다.
두 사람 모두 궁금한 건, 마르할이 아스트람의 정체를 알아낸 방법이다.
팔뚝을 봤으면 스트레킬과 레벨라도 바로 알아봤을 것이다. 성직자들의 상처야 워낙 유명하니까.
하지만 마르할은 몇 마디 대화만으로 남자의 정체를 알아냈다.
“성황국어의 특징은 발음의 부드러움이죠. 사람을 설득하는 대화를 하려면 말의 강세 조절이 중요하니까요. 제국은 강자 숭상 문화답게 강한 발음이 두드러지고, 공국어는 서부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비교하긴 힘들어도, 굳이 따지면 성황국어와 제국어의 중간. 아스트람은 전형적인 성황국어를 쓰면서도 단어마다 강세를 뒀어요. 말을 강하게 해야 하고, 그게 습관이 될 조직이 뭐가 있을까요?”
“군대, 군인이군.”
“도적들의 대장 노릇을 하고 있으니 평범한 병사는 아닐 테고, 성황국 장교가 이 먼 타향에서 도적질을 할 일은 없으니, 특별한 임무를 받은 성기사는 아닐까 했던 거죠.”
“논리적으로 모순은 없습니다만, 말 한마디로 사람의 출신 지역을 알아맞히다니, 그게 말이 되는 겁니까?”
“저번에 설명했잖아요?”
“다시 보니 또 안 믿겨서 그럽니다.”
생각해 보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과 인사 한마디 하고는 태어난 지역부터 출신 조직과 어떤 명령을 받았는지까지도 맞힌다?
이미 기술을 넘어서 마법의 경지다. 그리고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공포다.
“저라고 모든 사람의 출신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어 스트레킬. 전장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며 억양이 뒤섞여, 억양으로는 알 수 있는 게 없어요. 처음 익힌 언어가 공국어라는 것 정도? 그런데 그건 다들 하잖아요?”
부드러운 성황국어, 강한 제국어, 중간에 있는 공국어.
언어의 특징 탓에, 한 언어를 배운 사람이 다른 언어를 배우면 티가 난다.
사용하는 언어로 그 사람의 출신을 추측하는 건 개척촌에서는 기본이다.
“그나저나 성황국이 뒤에서 그런 명령을 내리고 있다니, 보통 일은 아니군요.”
“뭐든지 아는 것 같더니, 의외로 이쪽엔 어둡군.”
“어둡다고요? 제가?”
스트레킬의 말에 레벨라가 발끈했다.
순수한 무력으로는 스트레킬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니 스트레킬이 그녀를 약하다고 놀리는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은 아니다.
그녀는 베이올라의 호위가 되기 위해 다양한 지식을 습득했다.
전쟁 영웅이기는 해도 평범한 기사인 스트레킬에게서 머리가 나쁘다는 말을 듣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작은 영지 하나를 두고도 전쟁이 일어나고 수백, 수천 명이 죽는다. 세상의 반을 두고 그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래서 연합을 만든 게 아닙니까.”
연합이 있기에 덩치 있는 국가와 조직은 토지 경주에 핵심 전력을 투자하지 못한다. 그랬다간 연합에 소속된 다른 집단들의 집중 견제를 받는다.
물류와 돈의 흐름이 막히면, 설령 제국이라도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누구도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레벨라는 그렇게 알고 있다.
“전쟁의 기본은 배신이다. 남의 뒤통수를 잘 때릴수록 높게 쳐주지. 세게 맞은 놈이 없으니 다들 입 다물고 있지만, 머리가 띵하도록 얻어맞은 놈이 나오면 정국이 변한다. 연합이 지켜주던 서부도 사라지겠지.”
서부가 귀족이 아닌 지주들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연합 덕분이다. 연합이 기능을 상실하면, 당장 공국부터가 군대를 일으켜 개발 중인 개척촌들을 삼키려 들 것이다.
공국이 움직이면 공국을 견제하던 다른 나라들도 움직이고, 동부 전역이 전쟁터가 된다.
“그 전에 자기 땅을 지킬 방법을 마련해 둬야죠. 지금 만나러 가는 사람도 그쪽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요.”
“사제에게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
“사제도 찾고요. 겸사겸사 아는 사람들한테 인사도 하고 오는 거죠. 어쩌면 그 사람한테 괜찮은 사제를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꽤 거물인가 보군요.”
명의라는 작자들조차 치료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이 허다한데, 사제는 조건만 맞으면 그 자리에서 병과 상처를 치료한다.
사제와의 인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제국에서도 그러니, 사제가 귀한 서부에서는 한층 더할 것이다.
“거물이라면 거물이죠. 레벨라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걸요. 아젠만 리안틀이라고.”
“아젠만 리안틀 각하 말입니까!”
레벨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젠만 리안틀, 이 시대 지성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의 이름이며, 레벨라의 우상이기도 했다.
“정말입니까? 그 아젠만 리안틀 각하를 만날 수 있는 겁니까!”
“음. 일단은요.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예요.”
“물론입니다!”
그런 뜻이 아닌데….
레벨라가 말하는 마음의 준비와 마르할이 말하는 마음의 준비는 전혀 다른 종류였지만, 마르할은 거기까지 말해주진 않았다.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