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39
제39화
아젠만의 집무실에서 나와 왼쪽 모퉁이를 돈다. 그리고 있는 세 번째 방. 기본적으로 아젠만의 손님이 쓰는 대기실이지만, 마르할이 온 날이면 집사의 임시 대기실이 된다.
아젠만은 손님 몇 명이 오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지만, 예외적으로 마르할이 방문했을 때에 한해 주변 사람들에게 몇 가지 명령을 내렸다.
집사에게는 마르할을 집무실 앞까지 안내한 다음 이 방에서 대기하라는 명령이 그것이었다.
“입에 맞으십니까? 마르할 님이 손님을 대동할 줄 몰라 제대로 된 물건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괜찮네. 집에서 먹던 거랑 큰 차이가 없어.”
“영광입니다.”
아젠만의 저택은 귀족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건 베이올라에게 가장 편한 환경이라는 뜻도 되었다.
제국과 공국의 문화는 많이 다르지만, 권력자들이 원하는 건 한 가지로 귀결된다.
자기 과시.
고급품으로 도배된 방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 그녀였다.
“그런데 그건 뭐였을까.”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겠지.”
문이 열리고 보았던 광경을 베이올라는 아직 믿을 수 없었다.
아젠만 리안틀이 고개를 박고 있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렇게까지 하며 목숨을 구걸하고 있던 걸까.
티는 내지 않아도 스트레킬도 속으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그는 과거 보급 관련 일로 아젠만 리안틀을 몇 번 만났다.
그가 만난 아젠만 리안틀은 세간의 소문을 그대로 옮겨둔 것 같은 남자였다.
냉철한 눈빛, 일 처리에 실수는 없었고, 모든 행동과 결정은 합리적이었다.
횡령으로 쫓겨난 건 의외였지만, 오히려 전쟁 직후 혼란스러운 정국에 국고를 빼돌리고도 죽지 않은 것만으로 대단하다 여겼다.
하지만 그가 다른 사람에게 고개 숙이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마르할에게.
‘아니지. 마르할이기에 고개를 숙인 건가?’
마르할은 용서를 비는 사람을 용서해 줘야만 한다. 아젠만이 그걸 알고 마르할에게 고개를 숙였다면?
터무니없는 상상이다. 스트레킬은 곧바로 자신의 결론을 망상으로 치부했다.
그도 마르할에게서 직접 듣고 나서야 알았다.
마르할은 자신의 모든 행동에 당위성을 마련해 둔다.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에서 나오는 행동은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마르할의 일상을 보고 그러한 결론을 유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게 가능하다면… 아젠만 또한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아는, 깊은 수준으로 깨우친 사람이라는 거겠지.
* * *
오랜만에 먹는 다과와 차, 그리고 편안한 쉼터.
한결 풀어진 베이올라가 정면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이름은 안다. 휴고. 그러나 그 이상 아는 게 없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
“휴고라고 합니다. 주인님의 대리인으로 여러 일을 처리하고 있죠.”
“대리라면, 지주?”
“그것 말고도 사업체 관리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마르할 님이 가진 자산 전반을 관리합니다.”
“괜찮은 대리인을 구하고 싶은데, 방법이 있을까?”
“어떤 대리인을 원하십니까?”
“어떤 대리인?”
베이올라가 되물었다. 대리인에도 종류가 있던가? 그녀는 들은 적 없다. 마르할도 이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레벨라나 스트레킬을 슬쩍 보니 그들도 고개를 저었다.
“대리인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대부분이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죠. 그들의 성향에 따라 개척촌의 발전 방향도 달라집니다.”
“지주가 아니라?”
“지주가 직접 간섭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지주가 더 많습니다. 세금만 잘 걷으면 대리인이 무얼 하든 상관하지 않는 사람부터 대리인을 파발로 써먹는 사람까지 다양하죠. 그리고 대리인들도 자기 성향과 맞는 지주를 택합니다.”
“복잡하네.”
“땅과 돈이 걸린 일입니다. 사소한 것 하나 허투루 할 순 없죠.”
“원하는 조건을 말하면, 그 사람을 구할 순 있어?”
“경계 사람들이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습니다. 경계에선 돈과 인맥만 있으면 용사도 고용할 수 있다.”
“무슨 뜻?”
“멸망한 서부 출신과 선전 문구를 보고 모여든 사람들까지. 경계의 인적 자원은 제국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겨우 5년 된 땅이 제국과 동등한 수준의 인재를 가지고 있다고요?”
레벨라였다. 제국 사람으로서 그녀는 휴고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었다.
“서부가 멸망하며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많은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모인 장소가 서부, 그리고 경계입니다. 겨우 5년이라고 하셨습니까? 겨우 5년이 아닙니다. 여기 있는 건 수백 년 서부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러다 싸우겠군. 그놈이 아주 좋아하겠어.”
레벨라가 입을 다물었고, 휴고가 헛기침을 했다.
“주인님의 손님께 실례를 저질렀군요.”
“아뇨. 제가 경솔했습니다.”
“대리인을 찾으신다고 하셨죠? 어떤 사람을 원하십니까?”
“내가 아냐. 얘지.”
“나?”
가만히 있던 마린이 자신을 가리켰다. 대화를 듣고만 있던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러면, 누가 있는데?”
베이올라는 대리인을 구할 필요도 찾을 필요도 없다.
그녀가 휴고에게 말문을 튼 건 마린을 위해서였다.
“제법 큰 땅이야. 그걸 일일이 관리할 건 아니지?”
“아니.”
땅을 얻는 것이, 지주가 되는 것이 마린의 꿈이었다. 달리 말하면, 땅을 얻은 다음 무얼 할지 그녀는 전혀 생각해 두지 않았다.
“그러면 대리인, 필요하잖아?”
“그건 그런데….”
그녀에게 직접 땅을 관리할 능력은 없다. 더군다나 마린은 스트레킬에게서 수련을 받고 있다.
마린은 이제 역사를 안다. 역사가 가지는 힘을 안다. 그리고 전쟁 영웅이라 불리는 업적을 쌓은 고위 기사에게서 유파를 전수받는 게 얼마나 귀중한 기회인지 안다.
어쩌면 그건 지주라는 위치보다 더 비싸고 희귀한 기회다.
마린은 욕심이 많다. 욕심이 없었다면 토지 경주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일반 성인은 가뿐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으로 적당히 돈을 벌거나, 적당히 봐줄 만한 미모를 살려 돈 많은 부자나 귀족과 결혼했겠지.
지주를 포기하고 싶진 않다. 스트레킬에게서 수련받을 기회를 놓칠 수도 없다.
두 가지를 모두 이루려면 대리인은 필요했다.
“어떤 대리인을 골라야 하는지를 모르겠어.”
“그런 사람도 있는 법이죠. 사실 대부분의 지주가 그럽니다. 그리고 경계에는 숙녀분 같은 분들을 위한 시장도 있죠. 한번 가보시겠습니까?”
마린이 스트레킬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눈치를 보아야 하는 사람은 둘이다.
마르할, 그리고 일단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킬.
기사도 유파에 따라서는 마법사처럼, 특정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수련의 일환으로 삼는다고 스트레킬은 말했다.
그녀의 행동이 스트레킬의 유파가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된다면, 마린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녀와라. 그 정도는 관계없다.”
“알았어요.”
끼익. 문고리가 돌아가고 문이 열리더니 마르할이 들어왔다.
“잘들 있었죠? 이쪽 일은 대강 해결됐어요. 레벨라는, 바로 교회에 갈래요? 능력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니, 상처는 확실히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겠습니다.”
“나는 잠시 따로 행동하겠다.”
스트레킬의 말에 이어 마린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저, 저도 잠깐… 대리인 시장에 다녀오겠습니다.”
“아, 마린도 그렇죠. 그럼 카리안도 함께 다녀오는 게 어때요?”
“나도?”
“보고 와서 나쁠 건 없잖아요? 그리고 한번 다녀오면, 당신이 얼마나 제대로 된 인간인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알았어.”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카리안은 마르할의 제안에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휴고, 가는 김에 임시 증서 교환도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각자의 행선지가 정해졌고, 일행은 아젠만의 집 앞에서 각기 헤어졌다.
스트레킬은 개인사.
마린과 휴고, 카리안은 연합 지부에서 서류 처리, 그리고 시장.
마르할과 레벨라, 베이올라는 사제를 찾아 교회로.
* * *
경계는 스트레킬과도 연이 있는 지역이다.
그는 최전방에서 싸웠고, 당연히 경계 부근에서도 여러 차례 작전을 수행했다.
경계 근방에 있는 도시는 스트레킬이 소속되어 있던 기사단의 주요 거점이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몇 번 방문할 일이 있었다.
그는 경계를 넘었다. 하나의 도시처럼 붙어 있어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경계를 기준으로 서쪽과 동쪽은 핵심 시설이 다르다.
대표적으로 환전소가 있다.
서부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돈을 바꾸는 장소.
스트레킬은 토지 경주에서 얻은 수표책을 돈으로 교환할 셈이었다.
그에게 필요한 건 돈이다. 부하가 모두 사라졌어도 그건 달라지지 않는다. 수표책은 지금도 그에게 유효한 자산이다.
환전소 앞에는 사람이 길게 줄을 이루고 있었다.
줄은 길었지만, 스트레킬이 차례를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망토로 갑옷을 가리고 있어도 스트레킬은 평범한 사람 사이에 있으면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덩치와 인상의 소유자다.
약간 인상을 쓰는 것만으로도 앞사람들이 자리를 줄줄이 비켜주었고, 스트레킬은 곧바로 환전소 앞까지 도착했다.
환전소는 철로 만들어진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손 하나가 간신히 오갈 간격의 철창으로 막아놓았다.
“무얼 어떻게 바꿔 드릴까요?”
스트레킬은 수표책을 안으로 내밀었다.
“이걸 전부 성황국 금화로.”
지리적 여건을 따지면 공국 금화, 금화 하나당 가치를 따지면 제국 금화가 제일 가치가 높지만, 안정성은 성황국 금화가 최고다.
종교가 엮인 성황국 금화는 여간해서는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
“음… 기사님, 최근 어디 나가 계셨습니까?”
“무슨 일이지?”
“수표를 발행한 상회, 망했습니다.”
“연합의 일각으로 소속되어 있던 커다란 상회다. 잠시 나가 있었던 동안 상회가 망했다고?”
“잠시 귀를 이쪽으로.”
스트레킬이 철창에 얼굴을 바싹 들이댔다. 무슨 수작이라면 철을 구부리고 안에 있는 남자의 목을 부러뜨릴 작정이었다.
“전쟁 영웅이신 기사님에게만 특별히 알려 드리는 겁니다. 제국 황제가 작정하고 칼을 들었답니다. 후계자 지목이 가까워졌고, 그 탓에 몇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여파로 망한 집단 중 하나가 이 수표의 발행권자인 상회라는 소문입니다.”
“…또 제국이군.”
“그렇습니다. 또 제국이죠. 빌어먹을 제국 놈들.”
발음을 보아 남자는 공국 토박이였다. 스트레킬을 아는 걸 보면, 그가 예전에 여기 왔을 때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하나였다. 믿고 있던 수표가 쓰레기가 되었다.
“저도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시지 않습니까, 돈 문제란 게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정보만으로도 도움이 되었다.”
“행운이 있으시길.”
스트레킬은 환전소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쇠로 된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하아… 세상일 그리 쉽게 풀리진 않는다는 건가.”
돈이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면 한 명 알고 있다. 아마 부탁하면 돈도 내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최후의 수단이다. 이 이상 그에게 무언갈 부탁할 염치가 없다.
‘돈 되는 일을 찾아봐야 하나.’
고위 기사라는 직위와 그가 가진 무력을 사용하면 급전을 마련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스트레킬이 마르할에게서 마차 탈취 작전에 대해 들은 건 그날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