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45
제45화
마르할은 묶인 아스탈을 풀어주고 함께 거리로 나왔다.
아스탈은 술집에서 환성이 울릴 때마다 움찔움찔 놀랐다.
“하루에 두 번씩 납치당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런데, 왜 절 도와주시는 겁니까?”
“베르기아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하죠.”
“평소 가문과 친분을 유지하던 귀족들도 이름만 남은 베르기아스를 무시했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이 멍청해서 그렇고요.”
베르기아스라는 이름의 주인이 가지는 힘을 알았다면 절대 그가 이렇게 나돌아 다니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땅은 어떻게 얻으려고 했어요?”
“저는 사생아였지만, 가문에서 돈은 받았습니다. 그걸로 유흥을 조금….”
스스로 말하기에는 부끄러운지 아스탈이 말을 흐렸다.
“그래서요?”
“술집에서 사귄 친구가 몇 명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경계로 왔습니다. 제 돈밖에 안 보는 친구들이지만, 그래서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착한 친구였나 보네요. 목에 검부터 안 들이댄 걸 보면.”
그들에게 아스탈은 호구, 물주였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없어진 물주도 상대해 준 걸 보면 아주 못 써먹을 인간은 아니었다.
유흥으로 그런 친구를 사귀었다면, 아스탈의 사람 보는 눈도 나쁘진 않았다.
“아마 그럴 겁니다. 히익…!”
아스탈이 뒤로 넘어졌다. 달빛에 드러난 건 거리에 쓰러진 이십여 구의 시체였다.
사람이 반으로 갈라지며 흩뿌린 피와 내장이 사방에 가득했다.
스트레킬이 제대로 날뛴 모양이었다.
“저기, 이건?”
“경계에서 가끔 있는 일이에요. 괜히 엮이지 말고 빨리 가죠.”
마르할은 피가 떨어지지 않은 땅을 골라 밟았고, 아스탈이 그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그렇게 여관으로 돌아왔다.
마르할이 여관 문을 열었다. 아스탈이 다시 뒤로 넘어졌다.
망토와 갑옷에 피와 내장을 뒤집어쓴 스트레킬이 여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또 이상한 걸 주워 왔군.”
“이상한 거라뇨. 아스탈, 소개할게요. 이쪽은 스트레킬. 운이 좋으면 이름은 들어봤으려나.”
“스트레킬이요? 불퇴의 기사 스트레킬?”
“그런 별명도 있었어요?”
“자주 불리는 별명은 아냐. 공국 사람들은 거의 모르는 별명이지.”
“아스탈 베르기아스라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베르기아스?”
스트레킬의 시선이 마르할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 마르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사의 힘을 아는 스트레킬은 베르기아스 가문에 대해서도 안다.
공국과 공국 남쪽에 있는, 지금은 사라진 작은 나라의 경계에 걸쳐 있던 베르기아스 가문은 인근 식량을 공급하던 대가문이었다.
연합 전쟁에서 가문 전체가 박살 났다고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것도 마르할이 후계자를 데려올 줄이야.
“손만 대면 거물을 데려오는군.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당연히 좋은 거죠. 마린이랑 베이올라는요?”
“전 여기 있어요. 베이는 올라갔고요.”
주방 쪽에서 마린이 고개를 내밀었다.
밖으로 나오려던 마린은 자기 손에 들린 술병을 급히 등 뒤로 숨겼다.
“그, 저, 이건….”
“어른이 마실 수도 있죠. 더 없어요? 저도 한잔 마시고 싶은데.”
“가져오겠습니다.”
마린이 안으로 들어가자 아스탈이 속삭였다.
“저분은?”
마르할은 아스탈의 표정을 보았다.
유흥 좋아하는 사람이 할 만한 얼굴이었다.
“마린한테는 가까이 안 가는 편이 좋아요. 굳이 말 걸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요.”
“아, 아닙니다!”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한 모양이지만, 그 착각을 유지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스탈이 하려던 건 아마 마린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일 테니까.
“카리안 일어나 있어요?”
“그런 것 같더군. 야식을 가지고 올라갔다.”
“의욕이 생긴 것 같아 다행이네요.”
마르할은 마린이 가져온 술 한 병과 잔 두 개를 챙겼다.
아스탈은 스트레킬을 보고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듯했지만, 끝까지 그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다.
별명으로 보면 베르기아스 인근에서 스트레킬이 큰 업적이라도 세운 것 같았다.
아스탈의 나이는 스무 살 언저리로 보였고, 그렇다면 마족과의 전쟁 중에 스트레킬의 활약을 직접 보거나 들었을 것이다.
‘진짜 우상이라는 거지.’
이건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아스탈,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요. 친해져서 나쁠 건 없을 거예요. 따라와요.”
마르할은 아스탈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목적지는 카리안의 방이었다.
촛불 몇 개만 밝혀져 있는 복도를 보자 아스탈의 발이 잠시 멈췄지만, 그래도 억지로 움직여 마르할을 따라왔다.
문을 두드리자 등불을 든 카리안이 방에서 나왔다.
“공부 중이었어요?”
“공부라도 해야지. 그쪽은?”
“길 잃은 청년이라고 할까요. 잠깐 도시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무슨 일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며칠 후 마르할에게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건 안다. 사람을 맡아 돌보기는 힘들 시기다.
자신도 토지 경주 며칠 전에 누가 사람을 돌봐 달라고 했다면 쌍욕을 했을 것이다.
카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 보니까… 귀족이시구나.”
“이름만요. 아스탈 베르기아스라고 합니다.”
“대강 알겠어. 서부를 가르쳐 주면 되는 거지?”
“카리안은 뛰어난 사람 맞다니까요.”
카리안의 반응에 아스탈은 자기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그리고 이어진 카리안의 말로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았다.
“확실한 뒷배가 없다면, 서부에선 귀족들도 자기 이름을 잘 안 대려고 해요. 여긴 귀족을 존중해 줄 사람도, 지켜줄 사람도, 귀족이 잘못되었을 때 대신 복수해 줄 사람도 없거든요.”
동부에서 누리던 모든 권력은 서부에서 금화 하나보다 못한 가치를 가진다.
서부에서 이름으로 사람을 위협하려면 아젠만 리안틀이나 제국 황족쯤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황족씩이나 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지금 같은 층에 지쳐 잠든 황족이 한 명 있긴 하지만, 카리안이 그걸 알아차릴 날은 멀었다. 영원히 없을 수도 있고.
“들어오세요. 이야기나 나누죠.”
“자, 여기. 대화에는 필요하잖아요?”
“고마워.”
마르할에게서 술과 술잔을 건네받은 카리안은 아스탈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마르할은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
그 짧은 사이 마린은 이미 독한 술을 한 병 가까이 비워가고 있었다.
그녀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마르할 님. 저는 사람이 아닌 걸까요?”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저기 있는 개년이요.”
마린이 손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마린이 개년이라고 표현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베이올라가요?”
베이올라가 눈치가 조금 없긴 하지만, 그건 경험이 없어서다. 황궁에서 살던 그녀는 어느 쪽이냐면 눈치가 빠른 편이다.
안 그랬으면 피 공포증이라는, 므에트 제국 귀족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여태 살아남지도 못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에게 막말을 뱉을 성미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였다.
“무슨 말을 했는데요?”
“미래가 없는 사람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냐고요.”
마린에게 직접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냥 대화 도중 툭 튀어나온 말이겠지. 베이올라가 겪은 일들을 보면 범죄자나 밑바닥 인생들을 욕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마린도 그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다. 그들을 향한 말은 간접적으로 마린을 향한 말이 된다.
마린은 이제 그런 인생과는 거리가 멀지만, 남들이 아니라 해도 본인이 그렇게 느끼면 답이 없다.
“음. 그건 조금 심했네요. 저까지 찔리는 말인데요.”
“마르할 님이요?”
마르할이 그럴 리가 없다는 불신, 한편으로 마르할도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기대, 그리고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깨닫고 나오는 자책.
표정이라는 수면으로 떠올랐다 가라앉는 감정들. 가슴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며 양심을 스치는 감정들이 창피해,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비참해 마린은 탁자에 고개를 파묻었다.
“제 과거가 조금 화려하긴 하죠. 지금도 화려하게 살고 있고요. 그래도 연합에서 콧바람 불면 날아갈 위치인걸요. 서부가 사라지면 저도 길거리에 나앉는 거죠.”
“그래도 내일은 있잖아요. 저한테는 없고.”
“마린한테 내일이 왜 없어요. 땅을 사용할 방법도 정해야 하고, 자원도 조달해야죠. 이번 일이 잘되면 건물 몇 개는 올릴 수 있을 거예요. 도시 재건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상대로 장사도 할 수 있겠죠.”
마린의 반응은 탁자에 얼굴을 박은 채 몇 차례 꿈틀거린 게 전부였다.
이건 말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납득시켜 봤자 묵은 감정이 나중에 문제를 만든다.
당사자들끼리 대화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저는 올라갈게요.”
“이봐.”
“스트레킬의 제자잖아요. 제자끼리 다툼이라면 스승이 중재해야 하지 않겠어요?”
마르할이 도망치듯 계단 위로 사라졌다.
쯧. 스트레킬이 혀를 찼다.
스트레킬도 말로 밀리는 사람은 아니다. 기본적인 화술도 없었다면 공국 귀족들과 드잡이질도 못 한다. 하지만 마르할이 못 한 일을 해낼 자신도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올라가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아, 스트레킬은 그냥 술을 들이켰다.
고위 기사에 유파 또한 먹는 것에 특화된 스트레킬은 잘 취하지도 않았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독주 세 병을 연달아 비웠다.
보통 사람은 급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양을 들이켠 다음에야 살짝 취기가 올라왔다.
술의 힘을 빌려 스트레킬이 입을 열었다.
“나한테는 이백 명이 넘는 가족이 있다.”
탁자와 하나 될 기세던 마린의 머리가 들렸다. 그녀는 무슨 개소리냐는 눈으로 스트레킬을 보았다.
“날 따라오다가 죽은, 내 잘못된 선택으로 죽은, 그리고 나를 대신해 죽은 놈들의 가족이다. 이것도 연락이 되는 사람들만 계산한 숫자지.”
“수표?”
“그래, 그들을 위한 돈이다. 서부에 오기 전에 생활비를 주긴 했지만, 그것도 슬슬 떨어졌을 거야.”
단순히 부나 명예를 원했다면 스트레킬에게는 더 많은 길이 있다.
그는 제국에서도 기사단 하나는 꿰찰 실력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제국, 성황국, 공국. 이 3대 대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로 가서 귀족 작위를 노려도 되고, 전신 갑옷을 가진 자유 기사의 몸값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그가 공국에 남아 있는 건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킬이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 대부분은 남편이나 아들이 전쟁에서 죽고 홀몸으로 연명하는 사람들이다.
스트레킬이 손을 놓으면 그들의 생존은 절망적이다.
그래서 스트레킬은 공국을 떠날 수 없다.
“떠나요?”
“너희에게 기초를 주입할 시간은 있다. 하지만 오래 자리를 비우기는 힘들겠지. 뭐가 됐든 한 번은 공국에 가야 해.”
스트레킬이 자리를 비우고 거의 두 달이 되었다.
눈치 빠른 놈들은 벌써 스트레킬이 쌓아둔 것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비워야지.’
부하 사이에서 배신자가 나왔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이 쇠했다. 공국에 머무르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적어도 수도나 그 인근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다.
아주 많은 돈이.
작은 문제는 큰 문제 앞에서 뒤로 밀린다. 스트레킬이 짊어진 수백의 목숨에, 그 무게에 마린은 입을 다물었다.
조용히 스트레킬의 앞으로 남은 술병을 내밀었다.
술이 필요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