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47
제47화
그 며칠의 기억은 마르할이라는 인간을 논하며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마르할이 형의 약혼 예정자와, 마왕과, 므에트 제국의 둘째 황녀와 만난 날들의 기억.
행복했기에 더 처절한 기억.
* * *
덜커덕. 마차가 흔들렸다. 마차 안에서 졸고 있던 마르할이 잠에서 깼다.
잠깐 사이에 잠들고 말았다.
새벽이었다. 세상이 밝아지기 시작할 시기. 마르할은 아젠만의 급한 연락을 받고 그의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뤼겐 백작의 파티에 간다고 했던가.’
운이 좋으면 표적을 사전에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리 급하게 돌아온 걸 보면 일이 잘 풀리진 않은 것 같았다.
‘느낌이 안 좋아.’
좋은 꿈을 꿨다. 그래서 불길하다. 다른 꿈이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그때의 꿈이다.
므에트 제국의 둘째 황녀가 바체아 제국 황궁에 도착하고, 약혼식이 있기까지 며칠 사이에 있었던 일들.
행복 뒤에 숨어서 다가오던 재앙, 그 재앙이 이빨을 드러내기 직전의 기억.
차남인 마르할은 장남이었던 형과 열 살 넘게 나이 차이가 났다.
오죽했으면 마르할이 태어나기 전까지 당대 황제의 성기능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남이 발군의 재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황권까지 흔들렸을 수도 있는 위기였다.
그것들은 마르할이 태어나면서 모두 해결되었다.
아무튼, 열 살이 넘는 터울 덕분인지 마르할은 형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주변에서 귀여움만 받으며 자랐다.
기록에 따르면 바체아 제국 황실 분위기가 험악했던 적도 많은 모양이지만, 마르할의 세대는 아니었다.
차기 황제가 워낙 확고한 탓에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중 바체아 제국과 므에트 제국, 두 제국의 정략결혼이 결정되었다.
물밑으로 진행된 은밀한 계획이었다. 대륙의 동부와 서부, 세계를 양분하는 두 제국의 연결이다.
바체아 제국과 므에트 제국을 적대하는 적대국 입장에선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일이고, 두 제국 입장에선 반드시 성사해야 하는 결혼이었다.
므에트 제국의 둘째 황녀가 바체아 제국으로 찾아왔다.
둘째 황녀 소일라 므에실리고는 만물에게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배타적인 황궁 사람들도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나면 소일라를 받아들였다. 그건 마르할도 다르지 않았다.
만물에게서 사랑받는 그녀였기에 마족에게조차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게 마왕이 될 자질이었던 거겠지.
형제라곤 형이 전부였던 마르할에게 소일라는 누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둘이 결혼하면 정말 가족이 되는 것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셋이서 다과를 먹었다. 둘이서 책을 읽었다. 소일라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친절했다.
마르할은 이 사람이 가족이 되면 진심으로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게 멸망했다.
집도, 가족도, 미소도, 행복도, 앞이 보이지 않는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덜컹. 작은 진동과 함께 마차가 멈췄다. 휴고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몸은 괜찮아요?”
“딱 좋게 달궈졌습니다.”
몇십 명을 주먹만으로, 맞고 때린다는 무식한 방법으로 쓰러뜨린 휴고는 평소보다 기운이 넘쳤다.
그는 천성이 부수기를 좋아하고, 그쪽의 재능도 나쁘지 않지만, 그것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사업체를 관리하고 키우는 것에 훨씬 재능이 있다.
천성과 재능이 반대라는 게 그의 불행 아닌 불행이다.
마르할은 뒷문을 이용해 아젠만의 저택에 들어갔다. 그때는 받아낼 게 있으니 거창하게 일을 벌인 거지, 정문보다는 이쪽이 마르할에게 더 익숙하다.
함정 가득한 정원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가자 집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확실히 이 사람도 보통은 아니다. 기사 계열은 아닌 것 같고, 마족에게 망한 암살자 집단의 일원쯤 된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죠.”
집사가 향한 곳은 아젠만의 집무실이 아니라 집의 지하였다.
지하 1층에 있는 탈출용 비밀 통로, 그 중앙에 있는 작은 방.
방 안에는 작은 구슬이 있었는데, 그 구슬이 방 전체를 밝힐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빛을 내는 유물. 비교적 만들기 쉬워 그나마 일상에서 만나보기 쉬운 물건이다.
마르할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아젠만을 보았다.
“비밀 통로는 예상했는데, 이 방은 뭐예요? 협상하다 수틀리면 도망가게요?”
“그래, 딱 그 용도야.”
“…와우. 이건 저도 본받아야겠어요. 그래서, 일회용으로 쓰는 방에까지 절 부른 이유는요?”
땅을 파고 벽을 세운다. 바닥에 돌까지 깔아놨다. 재료비에 비밀 유지 비용까지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래도 이 공간은 일회용이다. 누군가 이 공간에 들어왔다는 건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보았다는 것이고, 길이 뚫린 방향을 통해 출구도 짐작할 수 있다.
입구와 출구가 들통난 비밀 통로는 필요가 없다.
마르할은 궁금했다. 이 공간은 필시 아젠만이 가진 비장의 수단 중 하나였을 터.
한 번의 만남에 천문학적인 돈을 들일 가치가 있나 물으면… 아니었다.
하지만 아젠만은 이곳으로 마르할을 불렀다. 그는 옹졸하고 속이 좁고 뒤끝도 긴 사람이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저 뒤틀린 성격으로 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던 걸물이다.
“미래를 보는 마법이 있다고 믿나?”
“있을 수 있죠.”
“고민도 없이 답하면 묻는 내가 바보 같아지잖나. 설마, 아는 마법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포섭했겠죠. 마법은 애초에 비정상적인 현상. 그러면 어떤 마법이 있어도 이상할 게 없잖아요? 왜요. 저쪽에 미래를 본다는 마법사라도 있었어요?”
“그래.”
무슨 질문에도 막힘이 없는 마르할이 입을 다물었다. 미래를 보는 마법, 그건 마르할도 쉬이 넘길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람은 무언가를 평가할 때 자신이 가진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마르할은 자신이 아는 가장 뛰어난 마법사, 마르 실라나티엘을 떠올렸다.
그 누나라면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못 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일상생활은 차마 눈 뜨고 못 봐주는 사람이지만, 마법이라는 분야 안에서 그녀는 전능에 가깝다.
미래를 보는 마법이 있다고 하면, 진짜 미래를 봐버릴 것이다. 하지만 대가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신비와 마찬가지로 마법도 ‘쌓인 것’의 힘이다. 미래를 보려면, 그에 합당한 무언가를 쌓아야 한다.
“정보가 새었을 가능성은요? 그걸로 협박했을 수도 있잖아요.”
“내가 그런 기초적인 실수를 할 것 같아?”
“그건 그래요.”
아젠만은 감이 좋다. 어설픈 떠보기라면 바로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대단하긴 하네요. 미래를 보는 마법사가 있다. 그래서 계획을 취소할 거라면 아침에 사람 한 명만 저한테 보내도 되죠. 그러지 않았다는 건, 이미 들킨 계획을 실행해야 한다는 거군요.”
“너는 진짜 어디서 뭐 하다 나타난 놈이야?”
아젠만은 진심으로 질렸다. 사람이 미래를 본다고 하면 보통 무서워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그런데 마르할은 태연하게 계획 속행을 입에 담고 있었다.
“마족에게 집 잃은 용병이죠. 제일 좋은 방법은 이대로 계획을 취소하는 거지만요.”
“그건 안 돼! 놈이 말했어. 계획을 취소하지 말라고.”
“구체적으로는요? 협박을 했으면 내용이 있을 거 아니에요.”
“예상에 맡긴… 제길, 그랬군. 일어나지 않은 일에 왈가왈부해 봐야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젠만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래를 본다.
그 말이 가진 무게에 쫄아 삼류스러운 반응을 보여 버렸다.
미래는 미래다.
내일 아침 해가 뜰지 뜨지 않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으면 백이면 백 해가 뜬다고 말하겠지. 질문한 사람만 정신병자가 될 것이다.
마족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랬다. 마족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1년도 안 되는 사이 세상의 반을 삼킨다고 하면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족은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내일 해가 뜬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없다. 그들이 가진 건 여태 해가 떴으니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전부다. 모든 만약을 고려하면, 내일 태양이 뜨지 않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마차 습격은 내일 태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당장, 아젠만 본인의 의지로 모든 계획을 백지로 돌릴 수 있다. 그러면 된다.
“계획을 취소하고, 제국의 공세를 막을 방법부터 마련해야겠어.”
“그럼 각하는 빠지시게요?”
“…미쳤나? 미쳤어? 미쳤냐? 미래를 보는 마법사가 있다고. 기습은 물 건너갔어. 그런데 습격을 계속해?”
“그게 저쪽이 노리는 바라면요?”
“그대로 돌려주지, 우리가 습격하는 게 저들이 노리는 거라면? 놈이 말했어. 마법으로 확인한 미래는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마법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들이 있지. 그게 그놈의 대가라면? 정해진 미래를 바꾸지 않으려고 나를 겁준 거라면?”
공포에서 벗어나자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아젠만은 밤이슬이 했던 말을 모두 떠올려 한 단어 한 단어 분석했다.
그가 만났던 뛰어난 마법사들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두었다. 밤이슬은 뛰어난 마법사다. 자신의 마법을 논하며 허튼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린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손을 털면 돼. 그걸로 끝난다고! 대가야 언젠가 올 제국의 개입이 조금 빨라지는 정도야.”
“그럼 각하는 빠지시는 거죠?”
“가겠다고? 진짜로? 사람도 없잖아.”
이번 일에 마르할의 세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젠만이 마르할에게 기대하는 건 현장 지휘다. 그가 현장에 나가는 게 제일 좋지만, 아젠만은 겁쟁이다. 실전의 압박 앞에서 효율적인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마르할은 아니다. 폭풍우 치던 날, 최초의 토지 경주가 시작된 날 밤. 그의 사병을 쓸어버렸던 것처럼 마르할은 실전에서도 빛나는 남자다.
아젠만이 병사를 제공하면 마르할은 실전 지휘를 맡는다. 그게 둘 사이에 이루어진 암묵적 합의다.
마르할의 세력을 소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아젠만이 손을 떼면 마르할은 마차의 호위도 어찌하지 못한다.
“모든 계획이 완벽할 수는 없죠. 그리고 눈으로 보아야 하는 마법이라고 했죠? 그러면 기습을 눈으로 보았다는 거고, 그 시점에서 저희가 판 함정이 어느 정도는 통했다는 뜻이죠. 함정으로 크게 한 방 먹이고 시작하면, 할 만해요.”
“퍽이나. 나는 눈 감고 입 다물 테니 알아서 해봐.”
“그럴게요.”
왔던 길을 돌아가려는 마르할의 귀에 아젠만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젠장… 내 돈, 성급했어. 괜히 여기로 불러서는.”
잔뜩 겁먹어 마르할을 여기로 부른 대가로 그는 이 통로를 처분하게 생겼다.
마르할이 입 다물면 비밀 통로는 여전히 비밀 통로로 남겠지만, 마르할이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해도 아젠만이 마르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출구로 향하던 마르할은 아래로 내려오던 집사와 마주쳤다.
한결같던 집사에게서 조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 있어요?”
“식량 창고에 불이 났습니다.”
“규모가 큰가 보죠?”
“북쪽의 창고 세 개입니다.”
몇 시간 후면 마르할도 알게 될 사실이니 숨길 것도 없었다.
“어, 북쪽 창고면, 경계에서 제일 큰 그거요?”
“그렇습니다. 이대로면 전소가 예상됩니다.”
“…조금 심각한데요.”
이 근방에서 제일 큰 식량 창고 세 개가 전소. 인근의 식량 배급에 차질이 생길 일이다.
굶어 죽는 사람만 나오면 다행이다.
돈. 식량 창고에 식량을 맡긴 사람과 그걸 거래할 예정이었던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걸 관리하는 사람의 평판까지.
많은 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피해를 가장 크게 받을 사람이 아젠만이다.
창고의 주인이자 창고의 식량을 거래하는 상인.
마르할은 비밀 통로를 나와 저택 뒷문으로 향했다.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역시 오나.’
대량의 식량을 빠르게 구할 방법은 하나다.
웃돈을 주고 근처의 식량을 싹싹 긁어모으는 것. 그게 아젠만이 자기 평판에 올 타격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그만한 급전을 구하는 건 아젠만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사업체에서 돈을 끌어다 써야 할 거고, 그 과정에서 사업 간의 연결고리가 드러날 수도 있다.
새삼스레 말하지만, 아젠만이 손대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이 불법이다. 그게 줄줄이 얽혀 터지는 것이다. 그건 그의 파멸을 뜻한다.
아젠만에게 남은 선택은 하나다.
사업체에 손대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많은 돈을 구하는 방법.
황족의 마차를 턴다.
‘이것도 마법인가.’
아젠만이 습격을 그만두려 하자, 그가 습격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만일 이것도 그 마법사가 가진 마법의 힘이라면….
“성가시겠어.”
마르할이 몸을 돌렸다.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아젠만이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말했다.
“아, 아까 한 말은 취소하지! 습격은 계획대로 진행할 거야.”
“정말 각하는 위험 앞에선 자존심도 뭐도 없군요.”
“자존심이 목숨을 구해주진 않지.”
“계획대로라면, 내일 중으로 출발이던가요.”
본격적인 마차 습격 작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