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용사는 제국어를 기반으로 다양한 언어를 얕게 배운 사람이었다. 도둑은 제국어 하나만을 알았고, 성인은 성황국어와 공국어를 할 줄 알았다.
마법사가 여러 언어에 능통하긴 했지만, 그녀 혼자서 전투의 상황을 봐가며 모두의 언어를 통역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용사 일행의 전투는 하루도 치열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마족의 소굴인 서부에선 매일이 삶과 죽음의 경계였다.
여행 막바지에는 모두 세 개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용할 줄 알게 되었지만, 서부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는 전투 중에도 의사소통 문제로 아군끼리 다투기도 했다.
삐걱대는 인외의 괴물들 사이로 몸을 날려 악으로 그들을 진정시키던 한 명의 꼬마가 있었다.
당사자들만이 기억하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의 일이다.
* * *
마르할을 보고 양측 기사가 모두 얼이 빠졌다.
현직 공국 기사라면 전쟁 경험이 없는 쪽을 찾는 게 더 빨랐고, 황족 호위는 전쟁보다 더한 경쟁을 치러 올라가는 자리다.
그런 사람들이 마르할의 등장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이 놀란 건 남자가 공국어와 제국어를 모두 유창하게 하기 때문도, 기사라는 것이 빤히 보이는 두 집단 사이에 끼어든 담력도 때문도 아니었다.
저 악기.
사방에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살인귀가 가득한 폐허를 악기를 연주하며 돌아다니다니.
인지를 뛰어넘는 행동을 마주하고, 미지를 마주한 사람들의 뇌가 사고를 거부했다.
“통역을 할 줄 안다고?”
베이올라였다. 겁먹어 떨던 그녀는 턱을 오만하게 들고 마르할을 관찰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술과 여색을 밝히는 황제는 괜찮다. 속을 알 수 없는 황제도 괜찮다. 무능한 황제도, 상황에 따라 대신과 기사들은 허락할 것이다.
하지만 피를 무서워하는 황제는 안 된다.
므에트 제국은 정복 전쟁으로 제국의 자리에 오른 나라다.
선황은 당대 세계 최고라 불리는 전사였고, 그 기질은 현 황제에게도 이어졌다.
황제는 무능해도 된다. 하지만 피를 무서워하는 황제?
황제의 귀에 그 소식이 들어가면 베이올라는 바로 황위 계승권을 박탈당할 것이다.
아버지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라면 황족의 자리조차 박탈하고 그녀를 내쫓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피 공포증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했다.
반평생이 넘는 연기가 위기에서 그녀를 구했다.
“제국어와 공국어라면 실시간 통역도 할 수 있습니다. 서부 최고의 통역사라는 건 저를 두고 하는 말이죠.”
“너는 귀족인가? 아니면 상인?”
“아닙니다. 서부에 널리고 널린 흔한 사람 중 하나죠.”
“우리는 귀족이다. 길거리에서 배운 천박한 언어로 귀족의 언어를 옮길 수 있을 것 같나?”
마르할이 머리를 긁적였다.
평민의 언어와 귀족의 언어가 다른 건 맞고, 기사는 귀족 사회의 말단으로 취급받으니, 귀족이냐 아니냐를 따지면 공국 기사들도 귀족은 맞다.
통역사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도… 기분은 나쁘지만 인정은 한다.
‘이게 진짜 통역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그랬겠지.’
저들에게는 통역이 필요 없다.
서로가 하는 말을 전부 알아들으면서 자존심 때문에 칼부림을 벌이려던 것 아닌가.
자존심을 굽히긴 싫고, 사방에 경쟁자를 남기고 칼부림으로 서로 전력을 깎아 먹는 것도 달갑진 않을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여긴 토지 경주가 한창인 땅이고, 숨겨진 패를 하나씩은 가진 사람들이 사방에 숨어 있다.
멀쩡한 기사라면 초인적인 신체 능력으로 어지간한 함정은 돌파하겠지만, 비슷한 수준의 기사와 전투를 치른 후에도 그럴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눌 기회를 줘도 그걸 시원하게 걷어차 버리니, 제안한 쪽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여기선 일단 휴전하고, 유물의 정체를 알아낸 다음에 통역사는 조용히 처리하면 되잖아? 그게 외교라는 거잖아?’
왜 제국 황녀가 이런 간단한 계산을 못 하는 건데?
여기서 자연스럽게 끼어들지 못하면 배는 귀찮아진다.
마르할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건 꼭 겁먹은 사람처럼 보여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았다.
그사이 베이올라는 레벨라와 고개를 맞대고 있었다.
“그걸 거절하시면 어떡합니까.”
“왜? 천민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매번 말한 건 레벨라잖아.”
“통역을 핑계로 무의미한 자존심 싸움을 잠시 접어둘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피를 볼 필요도 없어지겠죠. 황녀님, 표정! 표정!”
베이올라는 멍청하게 벌어지던 입을 다물고 얼굴 근육에 힘을 줬다.
‘있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잘하는 행동이었다.
“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받아들일까?”
“방금 한 말을 주워섬기는 건 하위 귀족이 해도 명예가 실추되는 행동입니다. 황녀님이 직접 말을 꺼내면 공국 기사들이 황녀님을 우습게 보겠죠.”
“그러면…?”
“공국 기사 나름입니다. 저들이 통역 제의를 받으면, 못 이기는 척 받아주시죠.”
“알았어.”
두 주종이 대책을 세우는 사이, 멈춰 있던 공국 기사들도 움직였다.
십여 명의 기사 뒤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펑퍼짐한 망토 아래로는 철로 된 갑옷이 얼핏 보였다.
전신 갑옷. 초인인 기사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전략 무기.
같은 실력의 기사라도, 한 사람이 전신 갑옷을 입는 순간 둘의 실전 능력은 ‘격’이 달라진다.
“정말 통역이 가능한가.”
“예, 완벽하게. 아젠만 각하를 아십니까?”
“아젠만 리안틀. 한때 공국 최고의 두뇌라 불렸던 자. 횡령 혐의로 죽음만 겨우 면했다고 들었다.”
“모든 걸 잃고 서부로 오셨죠. 그분이 서부에 오셨을 때 잠시 모신 적이 있습니다. 언어를 참 빨리 배우시더군요.”
“아젠만에게는 절대 모를 수 없는 신체적 특징이 있지.”
“콧잔등의 사마귀요?”
“아젠만은 그 사마귀를 끔찍하게 싫어했지. 사람들은 아젠만의 이름은 알아도 그의 얼굴에 난 사마귀는 모른다. 네게 통역을 맡기지. 반대하는 사람은 거수해라. 없나? 내 말을 저쪽에 전달해라. 여기서 싸웠다간 양쪽 모두에게 손해다. 그러니 싸움은 찾던 물건을 찾은 후에 하자.”
마르할은 남자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어차피 서로의 말을 다 알아듣는 상황이니, 통역으로 장난칠 수도 없다.
공국 기사의 제안을 받은 베이올라는 기쁨에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근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이반, 돌아와라.”
공국 기사들과 언쟁을 벌이던 호위 기사가 벌게진 얼굴로 씩씩대며 돌아갔다.
“공국 고위 기사 스트레킬 알레니에다.”
“베이올라. 성은 알 것 없다.”
숨 쉬듯 사람을 깔보는 언사에 공국 기사들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스트레킬이 손짓으로 그들을 진정시켰다.
“알아서 안 될 걸 알면 우리만 곤란해질 뿐이다. 다들 참아라. 대답!”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니, 통역 여기 있다고. 적어도 통역을 부탁하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저놈들, 혹시 머리 나쁜가?
공국어와 제국어를 쓰면서 멀쩡히 대화를 나누는 두 집단 사이에서 마르할은 짐짝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 * *
다행히 스트레킬은 마르할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통역, 전달해라. 너희들이 찾고 있는 유물이 여기 지하에 있는 물건이 맞냐고.”
“알겠습니다.”
마르할은 스트레킬의 말을 전달했고, 베이올라는 정보를 판 행정관을 죽이진 않아도 뼈 몇 대를 부러뜨리긴 했어야 했다며 이를 갈며 긍정했다.
“그래, 동쪽 성문에서부터 성벽을 따라 북쪽으로 걸으면 조각상이 하나 있다더군. 네가 앉아 있는 그 조각상 말이다.”
“같은 물건을 찾아온 게 맞군. 흠….”
만났을 때부터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저쪽도 이쪽과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설명까지 똑같은 걸 보면 정보 제공자도 같은 사람일 것이다.
스트레킬도 베이올라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 행정관을 죽여뒀어야 했다고.
하지만 자신이 만났던 사람이, 그것도 마족에게 멸망한 나라에서 망명한 사람이 죽으면 정적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게 뻔해 죽이지도 못했다.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바체아 제국의 은밀한 유산이라면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여기서 싸워 전력을 잃는 건 서로에게 하책이다. 동의하나?”
“그래.”
스트레킬이 일어났다. 그가 깔고 앉아 있던 건 부서진 조각상이었다. 그는 조각 아래의 받침대를 향해 검을 검집째로 휘둘렀다.
쿵.
땅이 흔들렸다. 돌로 된 받침대가 부서지고 그 아래 땅까지 무너졌다. 그리고 조각상 아래 숨겨져 있던 비밀 통로가 드러났다.
금이 가긴 했지만, 돌이었다.
그는 지금 검을 휘둘러 돌을 박살 내고, 그 아래 있는 땅까지 부쉈다.
“통역, 전달해라. 안 오면 먼저 들어가겠다.”
스트레킬이 구멍 아래로 뛰어내렸고, 공국 기사들이 뒤를 이었다.
베이올라가 손짓으로 레벨라를 불렀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작게 물었다.
“고위 기사는 다 저래?”
“아닙니다. 고위 기사 스트레킬… 제 기억에 없다면, 아마 전쟁 영웅일 겁니다.”
“전쟁 영웅이라면 더욱 기억해야 하지 않아?”
므에트 제국은 힘을 숭배한다.
피아를 막론하고 강한 전사를 찬양하는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마왕을 죽인 용사는 제국 출신이 아님에도 명예 공작 작위가 수여되었고, 그 동료들도 원하면 작위를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그런 베이올라가 보기에 공국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전쟁 영웅이라면 부와 명예를 떠안겨 줘도 모자랄 판에 사람들이 기억조차 못 하다니?
“우선, 다른 사람부터 보내고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
베이올라는 날카로운 눈으로 기사들에게 명령했고, 제국의 기사들도 구덩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너는 안 내려가나, 천민?”
“저는 초인이 아니라서 저렇게 휙휙 뛰어내리면 다리가 부러집니다.”
그리 말한 마르할이 상의를 휙 위로 올렸다.
피 공포증을 숨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온 그녀지만, 자기 앞에서 남자가 옷을 벗는 건 처음이었다.
세상 누가 자기 앞에서 남자가 갑자기 옷을 벗어 던질 것을 대비한 연기를 준비한단 말인가.
베이올라가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렸다.
“꺄아악! 변태다! 레벨라, 저기 변태가 있어!”
반사적으로 검을 뽑은 레벨라는 마르할의 가슴에 감겨 있는 가죽끈을 발견하고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변태가 아닙니다. 자세히 보시죠.”
힐끔 눈을 떴던 베이올라는 바로 앞에 보이는 살색 덩어리에 다시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질 것처럼 몸을 뒤로 눕혔다.
“아니잖아! 날 속였어! 레벨라! 이 배신자!”
“복근 말고요. 그 위.”
두 주종이 난리를 떠는 사이 마르할은 몸통을 묶고 있던 가죽을 풀었다.
마르할은 딱히 방어구 같은 건 입고 있지 않다. 아무리 가벼운 방어구라도 한 달이 넘는 여정이 되면 짐짝이 된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대신 마르할은 내구성 좋은 물건을 선호하는데, 이 가죽도 그랬다.
“아니잖아! 다 벗고 있잖아! 레벨라아아아!”
베이올라는 울먹이며 레벨라의 옷깃을 붙들었다.
“소리 지르실 건지 엿보실 건지 하나만 해주시죠.”
“흠…!”
베이올라가 입을 다물고 손으로 눈을 가렸다. 그러나 열린 손가락 사이로 푸른색 눈동자가 그대로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르할은 자기 할 일을 했다.
가슴을 묶고 있던 끈을 다 풀자 제법 긴 길이의 가죽끈이 되었다.
마르할은 끈 앞에 말뚝으로 쓸 나무 조각을 대충 묶더니, 구멍 근처 땅에 박고는 끈을 구멍 아래로 늘어뜨렸다.
“저도 내려가겠습니다.”
끈을 잡고 마르할이 구멍 아래로 사라지자 베이올라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푸우.
온탕에 한참이나 들어가 있었던 것처럼 더웠다. 베이올라는 손으로 얼굴을 부채질했다.
베이올라가 계집처럼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였으니, 저 통역사는 이제 죽여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레벨라는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둘만 남았으니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영웅에게 영광을. 당연한 말이죠. 하지만 그 말이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공국은 영웅을 너무 많이 만들어 버린 거죠.”
“그게 왜?”
더위는 가시지 않았지만, 베이올라는 필사적으로 레벨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안 그러면 자꾸 아까의 장면이 생각날 것만 같아서.
“그들을 전쟁 영웅이라 인정하면, 공국에서는 마땅한 포상을 내려야 합니다. 공을 세워도 포상이 없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기사도 일을 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기사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포상을 주기 싫어서 전쟁 영웅을 인정하지 않아? 바보 아냐?”
“장기적으로 보면 그렇죠. 하지만 당장 집 곳간이 비어 있으면, 포상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습니다. 지금 공국이 그렇습니다.”
“마족과의 전쟁?”
“맞습니다. 공국은 마족과 전면전을 벌인 나라. 원래라면 마족이 차지하고 있던 땅과 보물을 배분하면 될 일이었지만….”
“마족이 증발했구나.”
“그렇습니다. 용사가 마왕을 쓰러뜨렸고, 세계의 반이 주인 없는 땅이 되었죠. 그다음은 황녀님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빈 땅의 소유권을 두고 동부의 모든 국가와 단체가 정쟁을 벌였고, 5년 전 연합이 건립되었다.
“공국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전리품은 무엇 하나 얻지 못했죠. 그들이 가진 건 막대한 빚과 텅 빈 창고가 전부입니다. 영웅 같은 걸 만들고 있을 시간도 여유도 없죠.”
영웅은 버려지고, 권력의 주도 아래 적극적으로 잊혔다. 그리고 서부 개척 시대가 열렸다.
“고위 기사가 버려진 땅에서 용병들이나 할 일을 하고 있는 것도 필연일지도 모르겠군요.”
* * *
위에서 떨어지는 햇빛 덕에 구멍 아래는 그다지 어둡지 않았다.
공국과 제국의 기사들은 벌써 저만치 나아가 있다. 마르할은 잠시 구멍 아래에서 베이올라와 레벨라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공국이 고위 기사조차 냉대하도록 구석으로 몰아낸 게 제국과 성황국인데 필연은 무슨.”
모든 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력을 쥐려는 정치의 결과다.
그들의 방해만 아니었다면 공국은 상당한 토지를 차지하고 두 번째 제국의 칭호까지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 참가한 백전노장의 영웅들도 섭섭지 않은 보상을 받았을 것이고.
스트레킬이 죽여야 할 대상을 순위로 매기면 2순위가 공국이고, 1순위가 제국과 성황국이다.
“내가 알 바는 아닌가.”
마르할은 햇빛에 의지해 지하 구조물의 건축 양식을 살폈다. 그러던 그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 지하 대피로잖아?”
바체아 제국은 주요 도시에 비상 통로를 만들었다. 바체아 제국 문화에 영향을 받은 도시들도 그런 통로를 만들고는 했다.
마르할도 예전에는 그 통로들을 이용해 꽤 재미를 봤다.
이 지하는 바체아 제국의 건축 양식과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진 탈출용 비밀 통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