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55
제55화
율란 에고만을 아시오?
위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하지만 질문을 바꾸면 세상 사람 대부분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된다.
성인을 아시오?
이리 물으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설령 아이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이리 물으면, 고개를 끄덕였던 사람들도 인상을 찌푸리리라.
성인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성인 율란 에고만은 마왕을 물리치고 성황국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족이 사라지고 성인이 공적인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적은 없다.
성황국 고위층도 율란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성황국의 수도는 험준한 산지를 깎아 만들어진 교황청이다. 교황청 뒤편에는 커다란 고원이 있으며, 사람들은 그곳을 성지라 부른다.
신도 기적도 없는 세상이다. 역사를 달리 신이라 부르는 세상이다.
고위 사제들은 신이 없음을 안다. 그래도 그들이 신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신이 없다는 걸 알기에 고위 사제들은 더욱 신의 존재 증명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당사자에게 부정당한 역사만큼 부질없는 게 또 있을까. 그들이 신을 부정하면, 교회의, 성황국의 역사가 끝난다.
성황국의 역사에 따르면 성지는 신이 강림한 땅이다.
성지는 엄중하게 관리되며, 함부로 발을 들이면 설령 교황이라도 교리에 따른 엄벌을 받는다.
성지. 세상에서 제일 신성한 땅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연기의 근원은 가마였다.
신성한 땅 한가운데 커다란 가마가 있다. 커다란 가마 아래에서는 장작과 숯이 타오르고 있다. 옆으로 연결된 굴뚝에서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본래 가마는 섬세한 온도 조절을 위한 환기구가 있다.
가마 안에서 무얼 굽든 온도 조절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가마에는 온도 조절 장치가 없다.
대신 문이 있다. 사람이 드나들 크기의 문이다. 가마의 온도를 버티기 위해 흙으로 만들어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쇠도 녹는 온도로 달구어진 내부가 나온다.
불도 없는 내부는 어둡기만 하다. 빛 한 점 없는 가마 안.
성인이 그곳에 있다.
고기를 넣으면 열을 세기도 전에 타서 재가 되는 구덩이 안에 발가벗고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성인의 표정은 평온했다.
열기를 버티는 신비를 몸에 두르고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성인은 순수하게 몸으로 가마의 열기를 버티고 있었다.
성인을 만나러 왔던 수많은 사제, 교황조차 그 모습을 보고 질겁해 등을 돌리는 성인의 수련이다.
인외라 불리는 인간만이 가능한 위업이다.
성인에게 체모는 없다. 가마에 발을 들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타버렸다.
머리는 그 전부터 밀었었지만, 그건 다른 이야기다. 알몸으로 가마 속에 있는 성인은 어머니 배 속에 있는 태아와도 닮았다.
어둠 속에서 성인이 눈을 떴다. 그의 눈은 아이처럼 맑았다. 정면을 보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마르. 무슨 일인가요?”
가마 천장에 빛이 생겼다. 별처럼 찬란한 빛이 가마 내부를 밝혔다. 몇 달 만에 보는 빛이다. 하지만 성인은 눈부신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육신의 제어란 지극히 간단한 일이다.
빛이 소리를 뱉었다.
“봉인이 풀렸어. 느꼈지?”
“그럴 만한 일이 있었겠죠. 그리고 마르할 혼자서도 문제없습니다. 저희가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마르할은 걱정 안 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혼자 대처할 수 있도록 내가 가르쳤으니까.”
“저희가 가르쳤죠.”
이상한 부분에서 고집이 있는 마르였다. 그러나 거기에 꼬박꼬박 대꾸하는 자신도 만만찮다. 성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들과 관계된 일이라면 그는 성인이 아니라 인간 율란이 될 수 있다.
기실, 그들 말고는 그를 인간으로 봐주는 사람이 없는 탓이다.
“그럼 왜 연락하셨습니까. 저는 바쁩니다.”
“진짜 하려고? 신이 되겠다는 그 말도 안 되는 계획.”
“기회가 왔는데 차버리는 것도 바보 같은 짓 아니겠습니까.”
황당해하는 기색이 빛 너머로도 느껴졌다.
마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있던 다섯은 인간이라는 개인을 초월하는 역사를 쌓았다.
세간에선 그들 네 사람을 묶어 인외라 부르지만, 그들이 진짜 인외가 된 건 마왕이 사라진 후다.
인간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다섯 사람은 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용사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웃었다.
마법사는 자신의 역사를 분석하고자 했다.
도둑은 젊어진 자기 얼굴에 불평했다.
길잡이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리고 성인은 다음을 노렸다.
인간을 벗어났으니 인간 다음도 있을 것이다. 그게 신이다.
성인은 신이 되고자 했다. 성황국의 패악질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신은 허상에 불과하니, 허상은 성황국의 패악질을 막을 수 없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그가 홀로 성황국을 뒤집고자 한다면 무한한 피가 흐를 것이다.
성인은 피를 흘리지 않으면서 성황국을 바꾸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게 신이다.
신이 되겠다는 성인의 말을 듣고 일행의 반응은 다양했다.
용사는 아마 가능할 거라고 했고, 도둑과 마법사는 미쳤냐고 했다. 길잡이는 그리로 가는 길이 있는지 물었다.
마법사와 길잡이의 도움으로 성인은 신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10년이 되어가는, 어쩌면 10년도 넘은 기억이다.
“내 말 듣고 있어?”
“아뇨. 잠시 딴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네 역사를 본 게 언제야?”
“글쎄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본다. 보통은, 아니, 날고뛴다는 마법사와 초인에게도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아니다.
“그럼 봐.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니 저쪽이 먼저 이상한 짓을 시작했어.”
율란이 눈을 감았다. 그의 정신이 어딘가로 날아갔다. 위인 듯 보였으나 아래였고, 아래처럼 보였지만 위였다.
방위를 잡을 수 없는 공간을 날고 날아 율란의 정신은 어떠한 공간에 도달했다.
하얀 탑이 우뚝 선 투명한 공간이었다.
이 탑이 율란이라는 인간의 역사다. 그가 쌓은 탑은 순백색으로 모난 부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율란이 보는 탑에는 회색 티가 있었다.
탑 아래쪽 구석이 회색으로 색이 변했다.
율란이 눈을 떴다.
“역사 잇기군요. 이건 강탈이라고 해야 할까요.”
“역시 그쪽도 당했나.”
“마르 당신도?”
“인외니 영웅이니 치켜세워 줘도, 결국, 가진 놈들이 생각하는 건 똑같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빼앗고 지배하려 하지.”
“어떻게 할 건가요?”
“당분간 놔둘 거야. 우리가 쌓은 것들은 고작 그런 수작에 무너질 정도로 허술하지 않아. 대신 다른 부분에 신경 쓰이는 게 있어서 그쪽을 살필 거야.”
“뭔가요?”
“제국과 성황국이 우리 역사만으로 만족할까. 성공하기만 하면 세상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역사가 따로 있잖아?”
“…마족의 역사.”
주인이 빤히 눈 뜨고 있는 그들의 역사보다 마왕이 죽으며 사라진 마족의 역사 쪽이 빼앗기 쉬울 것이다.
“도와드려야 합니까?”
“아직은. 일단 알아만 두라고. 제국이든 성황국이든 마족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그 역사를 계승할 수는 없어. 알잖아.”
“그 역사는 마르할이 가지고 있으니까요.”
마족의 역사를 잇는 건 마법사와 성인이라는 인간의 역사를 빼앗는 것보다 어렵다. 이쪽의 역사는 그래도 공개되어 있지만, 마족의 역사는 한 사람에게 봉인되어 있다.
모든 일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그 역사가 세상에 풀려나는 일은 없다.
“우리가 움직인다면, 거대 역사들의 돌발 행동이야. 만에 하나 있을 외출을 준비해둬. 무슨 뜻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빛이 사라졌다. 가마 내부가 다시 어둠에 잠겼다.
인간 율란은 다시 성인이 되어 눈을 감았다.
* * *
마르할의 부름에 마리나가 몸을 돌렸다. 한 그림을 코 박을 거리에서 노려보고 있던 그녀는 마르할의 부름에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살짝 붉어진 얼굴로 마르할의 인사를 받았다.
“반가워요. 당신은 그때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았었죠. 마르할이라고 해요.”
“아, 마르할. 만나서 반가워요. 지주라는 건 알았지만, 이 자리에 초대받을 정도의 위치였나요?”
마리나가 놀란 투로 물었다. 그녀가 듣기로 이 자리에 올 수 있는 건 서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지주들뿐이다.
땅을 얻는 건 젊음으로 가능하지만, 땅에 마을을 세우고, 도시를 세워 돈을 버는 건 경험이 필요하다.
실제로 그녀가 만났던 유명 지주들은 전부 마흔 살이 넘었다.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이는 마르할이 여기 있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나름 유명한 편이죠.”
“그런데 왜 또 토지 경주에…?”
“땅과 역사는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네? 방금 뭐라고?”
땅과 역사라고 했다.
서부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땅을 원한다. 하지만 땅과 역사를 나란히 놓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귀족 가문의 가주와 후계자는 되어야 땅과 역사의 관계를 안다.
그녀의 질문은 허공을 갈랐다.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일행과 함께 회합이 열리는 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 잠깐만요!”
마리나가 불렀지만, 마르할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그녀는 복도에 홀로 남겨졌다.
아까까지 그녀의 관심을 끌던 예술품들은 이제 어떻게 되든 좋다.
마리나 또한 마르할이 들어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마르할이 방에 들어가자 수십 개의 시선이 꽂혔다.
적대와 무관심, 우호는 많지 않다.
마르할의 토지 경영 방식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
상인인 에나가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할 정도이니, 다른 지주들의 눈에 얼마나 아니꼽게 보일지 말할 필요도 없다.
‘역시 얼굴을 너무 내놓고 다녔나.’
마르할이 작정하고 정체를 숨겼다면 저들이 마르할의 얼굴을 아는 건 불가능하다. 이건 전적으로 마르할이 자신을 숨기지 않았기에 일어난 일이다.
토지 경주가 시작되던 시기부터 빠르게 영향력을 키우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마르할은 참가한 면면을 살폈다. 대부분은 무시해도 된다.
다 비슷한 인간들이다. 돈과 권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그리고 돈과 권력으로 움직이는 인간들.
주의해야 할 사람은 셋이다.
손익계산만 확실하면 누구의 뒤통수도 때릴 수 있는 아젠만, 멍청해 보여도 실은 그렇지 않은 뤼겐 백작, 그리고 저기 앞에 앉아 있는 사제 하나.
알레스 사제.
사제 복장을 하고 사제라 불리지만, 공식적으로는 파면당한 사제다.
사제는 신이 선택한 사람이다. 사제 사칭은 이단으로 찍히거나 즉결 처분도 가능한 중죄. 하지만 알레스는 이단으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교회에 쫓기지도 않는다.
작은 제국의 주인 뤼겐 백작이 서부에서 제국의 의지를 대표한다면, 알레스 사제는 서부 지주들 사이에서 성황국의 의지를 대리하는 비공식적인 대리인이다.
‘어떻게 보면 동부의 대리인들이군.’
각각 공국, 제국, 성황국의 대리인이다.
아젠만은 부정하겠지만, 그와 연결된 끈 다수가 공국에서 나온다는 걸 고려하면 그의 의사 결정에는 공국의 정세가 들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들이 동부의 대리인이라면, 서부의 대리인은 여기 있다.
바체아 제국 최후의 후손, 오동나무 관의 계승자가.
“지주 마르할, 회합에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까지요. 두 명은 회합이 생길 때부터 세운 규칙을 어기는 행동이오. 당장 한 명을 쫓아내시오.”
알레스가 말했다. 성황국 미사어. 말 자체로 힘을 가진 고대 제국어만큼은 아니지만, 상대를 찍어 누르기 좋은 말이다.
하지만 미사어라면 이쪽도 할 줄 안다. 성황국어에서 몇 개 발음의 강세와 특정 문법만 신경 쓰면 그게 미사어다.
마르할이 똑같이 성황국 미사어로 맞받아쳤다.
“알레스 사제님,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십니까?”
“신의 이름을 걸고. 내 말은 진심이오.”
“제가 얼굴을 내밀지 않고 1년 6개월 정도 지났던가요. 그사이 치매라도 오셨나 봅니다.”
“뭐라고?!”
“소개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까지죠. 땅덩어리 하나에 한 명. 회합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계셨으면서 그 중요한 걸 잊으셨다니, 조만간 기억력에 좋다는 보약이라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좋소. 내가 말실수했군. 그런데 또 하나 문제가 있지 않소. 우리가 아는 당신의 땅은 하나뿐인데?”
마르할이 한숨을 쉬었다. 상대를 향한 노골적인 무시였다.
“사제님, 제가 없는 사이 정말 감이 많이 떨어지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저랑 전면전이라도 해 보시렵니까? 제가 최근까지 어느 땅에 머물렀고, 제 대리인이 어느 땅을 관리했죠?”
알레스는 사제로 있던 시절에는 상당히 유능했다고 한다. 지주로서도 유능한 편이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 그 이외의 부분을 묻는다면, 그다지 좋은 대답이 안 나온다.
무식하고, 오만하고, 그런 주제에 성황국이라는 뒷배 덕분에 부하들의 충성도가 높다.
지금도 그와 한 패거리인 지주들이 마르할을 노려보고 있다.
“전면전, 그거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려.”
“그렇습니까?”
알레스는 사제 출신답게 선민의식에 찌든 인간이고, 마르할은 건드리지 않으면 얌전하지만, 그를 건드리고 멀쩡히 살아 있는 지주가 없다.
구경만 하던 뤼겐과 아젠만이 눈빛을 교환했다.
경쟁자 둘이 싸우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싸움은 나중에 해주시죠. 제 이야기를 듣고도 싸울 생각이 남아 있다면 말리진 않겠습니다.”
방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마르할이 사용한 정문과 고용인들이 드나드는 뒷문.
뒷문을 열고 등장한 마리나가 말했다. 그리고 방의 중앙에 작은 불덩이가 생겨났다.
“저는 정치적 수사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본론부터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서부에 마족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족, 모두를 침묵시키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