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57
제57화
마르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한 두 아기 새의 시선이 마르할을 따라왔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각하, 부탁드려요.”
“알았다. 대신, 알겠지?”
“확실히 처리하죠.”
지주 회합이라고 해도, 큰 안건 몇 개를 빼면 대부분이 자기 계파 사람들끼리 잡담을 나누는 시간이다.
마르할은 계파를 만들지 않는다. 굳이 따지자면 서부 토박이들이 그의 아군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건 하일리가 유일하다.
하일리 이전에도 몇 명 있긴 했지만, 기껏 회합에 끌어들였더니 뤼겐이나 알레스에게 빌붙었다.
큰 권력에 기생한다. 가진 것이라곤 작은 땅덩이 하나가 전부인 지주에게는 올바른 선택이지만, 배신당한 사람의 기분도 조금은 생각해 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뤼겐의 별장은 별장 주변도 잘 꾸며져 있었다. 산의 밤은 빠르다. 마르할이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해 질 무렵이었지만, 벌써 바깥은 어둑했다.
마르할이 별장 뒤뜰에 있는 관목을 구경하고 있자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제국산 장미에요. 5년에 한 번씩, 단 하나의 꽃만을 피우죠. 핀 꽃은 신비 추적자들도 탐내는 마법 재료가 되고요.”
“당신은 누구죠?”
마리나가 호기심과 경계를 담아 물었다.
아프란체어는 굳이 배우려는 사람이 없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라질 언어다. 그녀도 실라나티엘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아프란체어는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할은 아프란체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그뿐만 아니다.
마리나는 밖에서 기다리며 마르할이 성황국 미사어를 하는 것도 들었고,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공국어와 제국어를 섞어 사용했다.
더 무서운 건 그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가 모국어처럼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녀도 몇 개 언어를 배우고 있긴 하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가진 자의 숙명이다. 그러나 모든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건 아니다.
탁월한 재능으로도 설명되는 일이지만, 재능으로 언어를 익힌 사람이 땅과 역사의 관계를 알 리가 없다.
“이미 말했을 텐데요. 용병 겸 지주입니다. 제법 돈 많은 지주죠.”
“뉘테들이 조직을 만들고 있다는 걸 알면 지주들이 안 좋아할 텐데요.”
“그건 협박인가요?”
“맞아요. 저는 알고 싶은 건 알아야만 하는 사람이라서요. 당신은 누구죠? 당신은 절대 평민이 아니에요.”
“그건 맞습니다. 멸망한 서부 귀족 출신이죠.”
“어느 나라의 어느 가문이죠?”
“말하면 아시려나?”
“모르면 조사하면 됩니다.”
마리나는 마르할에게 다가갔다.
마르할은 관목의 가지를 꺾고 있었다. 그녀를 완전히 무시하는 모습이었다.
마리나는 오기가 생겼다. 그녀는 실라나티엘이다. 그리고 마법사다. 그녀의 마법을 보면 제국 귀족들도 그녀에게 존중을 보였다.
마르할의 말대로 그가 평범한 용병이라면, 그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마리나는 마르할의 어깨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를 돌려세웠다.
“당신은 어디 출신이죠? 다시 말하지만, 이건 협박이에요.”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저도 질문을 하나 하죠.”
“당신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마리나의 눈에서 작은 번갯불이 튀었다.
그녀의 기분에 따라 신비가 움직이고 있다. 평생 신비를 좇은 마법사들도 보여주지 못하는 절정의 기예다.
마리나 실라나티엘이 보통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할 드높은 경지에 도달했다는 증거.
압도적인 힘은 권력이다. 타인의 권리를 짓밟고 자신의 바람을 쟁취하는 힘.
그녀가 권력자를 혐오하는 건, 그녀의 행동이 누구보다 권력자에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르할은 어깨를 잡고 있는 마리나의 손을 밀어냈다. 실라나티엘의 성 때문인지, 아니면 따로 수련이라도 한 건지 악력이 범상치 않다.
마르할은 어깨가 욱신거렸다. 옷을 벗어보면 멍도 들었을 것 같다.
구겨진 옷을 펴며 마르할이 말했다.
“말 몇 마디 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해보시죠.”
“실라나티엘 가문의 가주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찾으시던 물건을 찾았으니 조만간 찾아뵙겠다고.”
마리나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마리나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 입에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말은 그녀의 가슴을 맴돌았다.
그러다 몇 마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것들은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하고 다시 그녀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나는 절대 저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눈앞의 남자는 계속해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마르할의 말이 한 마디 한 마디 이어질 때마다 그녀는 손발이 굳고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가주님께 말 한마디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못 뵌 지 꽤 되었는데, 잘 계실지 모르겠네요. 자기 목숨보다 신비를 우선시하는 분이시라 먼 친척이라 해도 그만한 마법을 다루신다면 갈리아 가주님께도 예쁨받으실 텐데요.”
“그, 저, 그러니까… 가주님은 바쁘십니다. 바깥 연락을 받으실 상황이 아닙니다.”
“제 이름을 대면 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연락은 받겠다고 하셨거든요. 꼭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저한테도 중요한 일이라서요.”
마르할은 그대로 마리나를 지나쳤다.
마리나는 마르할이 사라지고도 돌처럼 굳어 움직이지 못했다.
싸늘한 저녁 공기보다 차가운 한기가 그녀의 몸을 타고 올라왔다. 마리나는 반사적으로 팔로 몸을 감쌌다.
그녀는 마르할의 말을 지킬 수 없다. 그 말의 진위조차 확인하지 못한다.
그야, 그녀는 실라나티엘이 아니니까.
마리나 실라나티엘은 실라나티엘 가문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구성원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녀가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댈 수 있는 건, 제국의 여러 귀족이 그녀의 신원을 보증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마법은 그들이 지원해준 실라나티엘의 이름으로 작성된 여러 서적 덕분이다.
그래서 그녀는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댈 수 있다. 하지만 실라나티엘 가문의 일은 무엇 하나 모른다.
실라나티엘의 가주 이름이 갈리아라는 것도 그녀는 오늘 처음 알았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 들키면?’
그녀가 가짜라는 게 들키면, 위대한 마법사의 가문을 사칭했다는 게 알려지면?
마르 실라나티엘은 마법사 사이에서 신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그녀가 실라나티엘의 이름으로 취한 이득도 상당하다.
그게 전부 가짜로 드러나면?
마리나는 몸을 끌어안은 채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르할의 정체는 이미 뒷전이다. 마리나에게 필요한 건 이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이다.
그녀는 한참이나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다시 저택으로 향하던 마르할은 돌이 되어버린 마리나를 슬쩍 보았다.
‘자기가 가짜라는 건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신비를 추구하는 마법사라면 실라나티엘의 이름에 매력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누군가 실라나티엘이 될 수 있다고 꼬드기면 열이면 열, 넘어가겠지.
문제는 그녀를 부추긴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실라나티엘 가문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하지만 실라나티엘 가문은 비밀에 싸여 있다. 알려진 건 그들이 제국에 산다는 것 하나.
하지만 제국에 토지를 가진 귀족 중 실라나티엘이라는 가문은 없다.
누가 실라나티엘을 사칭하면, 실라나티엘의 비밀을 아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그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알 방법이 없다.
마리나를 실라나티엘로 만든 것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마르할은 가장 뒤에서 마리나를 조종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겁 없이 이용할 인간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
제국 황제, 그리고 실라나티엘 가문의 최대 후원자.
황제는 자신을 드러내고 더러운 일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
들개 기사단이 하는 일들도 황제가 뒤에서 벌이는 일들에 비하면 아이 장난과 다르지 않다. 이번 일도 다른 사람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뒤에서 구경만 하고 있겠지.
마르할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행동이다.
마리나는 자기 뒤에 누가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녀가 진짜 마법사라면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사용했다. 실라나티엘의 이름으로 역사를 쌓았다.
실라나티엘의 이름만 이용하던 그녀에게 마르할이 던진 질문은 천재지변과 같을 것이다.
그녀는 실라나티엘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실라나티엘 가문의 일을 해결해야 한다.
그 모순. 실라나티엘의 이름이 가진 모순을 그녀는 감당할 수 없다.
뉘테들이 만든 조직 같은 건 그녀의 머리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나오려나?’
마르할은 질문을 던졌다.
황제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를 향한 질문을.
* * *
마르할이 회합이 열리는 방으로 들어가자 싸늘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하일리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마르할! 갔던 일은 어떻게 됐냐!] [잘 처리했어요. 그런데 이건 어떻게 된 거예요?] [토지 경주 참가권에 대해 의견이 갈렸다. 제국과 성황국, 그리고 이쪽까지 전부.]“둘이서만 떠들지 말고 앉지 그러시오?”
알레스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마르할은 다시 마린과 카리안 사이로 들어가 비어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 저기… 참가 자격을 얼마나 주느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토지 경주 참가권을 얼마나 푸느냐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어.”
“그거예요.”
마르할이 묻는 말에 어떻게든 대답하려고 끙끙대던 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 자격에 대해서는 아직 나온 게 없지 않나요?”
“구했다는 모양이야. 자세히는 모르지만, 지주라면 거의 무제한으로 풀 수 있다는 것 같아.”
“그래서요?”
“저 사제는 여기 있는 사람끼리 정해야 한다고 했고, 백작이라는 사람은 숫자를 정하자고 했어. 아젠만 각하랑 저기 저 사람은 무제한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고.”
“이제 알겠네요.”
토지 경주에 참가 자격을 두어 한 번 사람을 거르고, 다음엔 지주들 사이를 갈라놓는다.
갈라 치고 갈라 치고, 연합을 만든 놈들은 서부를 얼마나 조각내야 분이 풀리는 건지.
“전후 사정을 알았으면 그쪽 생각도 듣고 싶군. 어떻게 할 거요?”
알레스가 삐뚜름한 조소로 물었다.
“알레스 사제님. 싸우기 전에 손패부터 까고 시작하죠. 보아하니, 사제님이 물어온 정보 같은데, 토지 경주 참가 자격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내가 그걸 알려줘야 할 이유라도 있소?”
“안 그러면 제가 무제한으로 참가 자격을 풀 거니까요.”
“말이 무제한이지 실제로는 참가 자격 하나에도 돈이 든다오. 그대에게 그만한 돈이 있소?”
“더 좋네요. 토지 경주 한 번에 팔리는 깃발이 삼천 개 정도 되던가요? 그걸 공짜로 풀면 제 입지가 아주 많이 좋아지겠어요. 종교를 차려도 되겠는걸요?”
“어딜 감히 천민이 신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가!”
알레스가 탁자를 때리며 일어났다. 탁자 위에 있던 꽃병들이 물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마르할은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는 알레스의 시선을 그대로 마주했다.
“사제라 불러줄 때 닥치시죠. 아니면 사제님이 기적을 쓰는 걸 봤다고 성황국에 신고라도 넣어드려요? 투서가 수천 개쯤 들어가고 서부 전체에 소문이 퍼지면 성황국은 억지로라도 움직여야 할 텐데요.”
알레스가 이를 갈았다. 그런 짓을 하면 마르할의 세력도 치명적인 손해를 본다.
정상인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방법이다. 그러나 알레스는 안다. 그게 필요한 일이라면, 저 미친놈은 손익을 떠나 저지른다.
알레스가 손짓하자 그의 옆에 있던 지주가 입을 열었다.
“참가 자격시험은 몇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승마, 상식, 전투 등 다양한 시험에서 두 개만 합격하면 된다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자격증이 주어지는데, 지주들의 경우 돈을 주고 자격증을 살 수 있습니다. 숫자 제한은 없다는 모양입니다.”
평민에게도 뜯어먹고, 지주에게도 뜯어먹고, 양쪽으로 돈을 뜯겠다는 말이다.
“그래요? 그럼 저는 무제한으로 풀죠. 돈이야 벌면 되니까. 이 이상 중요한 이야기는 없죠? 마족은 어차피 끼리끼리 대응하자는 이야기가 나올 테니 빼고요. 그럼 저희는 가볼게요.”
마르할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마린과 카리안이 뒤따라 일어났다.
마린은 아무 미련이 없는 모양이었지만, 카리안은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에 작게 속삭였다.
“이대로 일어나도 돼?”
“앉으나 서나 욕할 사람은 욕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해요. 그리고 이걸로 욕할 거면 알레스 사제님이 욕을 푸짐하게 먹었겠죠. 평소에 먼저 일어나는 건 알레스 사제님이거든요.”
마르할이 회합에 꼬박꼬박 참가하던 시절에는 알레스가 마르할을 도발했다가 분에 못 이겨 먼저 자리를 뜨고, 그대로 회합이 끝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쾅! 뒤쪽에서 탁자 치는 소리가 들렸다. 마르할은 뒤를 돌아보려는 카리안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고개를 저었다.
마부석에서 책을 읽고 있던 휴고가 일어났다.
“성과는 있으셨습니까?”
“생각 이상으로요. 말들은 어때요?”
“밤새 달리면 새벽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마차가 밤이 내려오는 산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