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짐마차는 몸을 구겨 넣으면 아슬아슬하게 두 사람이 껴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었다.
마르할은 알라실에게 붙잡혀 억지로 그녀 옆에 누웠다. 알라실은 다시 헝겊을 뒤집어쓰고 숨었다.
“마차 내부를 확인하기만 하겠다는데, 내 말이 우습게 들려! 어! 교회가 우습냐고! 나 안톤 주교야. 주교가 어떤 자리인지 몰라?”
“압니다. 그래도 이건 아젠만 각하의 마차입니다.”
창고 관리인이 엄중하게 대응했다.
성황국과 교회 권력이 대단하다 해도 여긴 아젠만의 창고고, 아젠만의 마차다. 교역에 쓰는 마차는 비밀 엄수가 중요하다.
마차 여러 대가 한 번에 움직이는 건 기왕이면 많은 짐을 옮기는 게 좋다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물건을 숨긴다는 의미도 있다.
마차 한 대가 도적에게 털려도 식량이 담긴 마차라면 타격이 크지 않다. 다음 도시나 마을에서 적당히 사서 채우면 된다.
귀금속이 담긴 마차는 한 대가 털려도 치명적이다. 다른 마차에 있는 물건을 전부 팔아도 적자가 날 수도 있다.
상대가 교회 주교라고 하나 이미 출발 준비가 끝난 마차를 헤집게 둔다는 선례를 남길 수는 없다.
창고 관리인과 안톤 주교의 말다툼이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하고 있어요? 대강 예상은 되지만.”
안톤 주교는 공국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수치로 여기는 사제가, 그것도 주교가 공국어를 쓰고 있다. 그가 이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였다.
“창고 관리인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어요.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아뇨. 저 영감탱이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마차를 확인할 거예요.”
“경계에서 아젠만과 사이가 틀어지면 좋을 게 없을 텐데요.”
교회가 다른 도시에 지어졌다면 아젠만과 사이가 나빠지는 건 조금 성가신 일 정도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는 아젠만의 도시다.
도시의 반은 마르할의 것이지만, 마르할은 이름을 숨기고 있으니, 아젠만의 도시라고 아는 사람이 대다수다.
“제가 제법 중요한 사람이라서요. 이번에도 놓치면 주교라도 교황청에 한 소리 들을걸요.”
“그런 사람이 홀몸으로 깃발이나 팔고 있었습니까?”
“무사히 끝났으면 됐죠.”
“교회에서 왜 눈에 불을 켜고 당신을 찾는지 알겠어요.”
겁이 없는 건지, 담력이 큰 건지. 행동 하나하나가 비범하다.
마르할이 교회 관계자였어도 그녀를 혼자 두지는 않는다. 잘린 팔을 붙일 정도라면 바깥에 있는 주교는 꿈도 못 꾸는 실력자다.
교황청에 직접 가도 그녀 정도의 실력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성황국에서도 손꼽히는 인재가 거리에서 객사라도 하면 국가적 손실이다.
“자, 봤지! 여기 아젠만의 친필 허가서다! 어서 비켜!”
안톤 주교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오기 전에 미리 아젠만에게 사람이라도 보내놨는지 기어이 아젠만 본인에게 허락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이 마차 주인은 당신이지 않아요? 당신이 나가서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저는 아젠만 각하 같은 명예가 없어서요. 열등한 천민이 감히 선민인 자기 앞을 가로막는다고 날뛰겠죠.”
“유명한 사람 아니었어요? 교회 사람들도 그러던데?”
“안톤 주교랑은 안 친해서요. 그 사람이 실무 책임자는 아니잖아요?”
실무자는 마르할을 알겠지만, 아젠만도 자기 아래로 보는 주교는 마르할을 모를 것이다.
자기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고 구시렁대는 안톤 주교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쪽으로 오네요.”
“전 숨 참을게요. 흡!”
알라실이 헝겊을 뒤집어쓰고 마르할 뒤에 숨었다.
마차를 가리고 있던 천이 들춰지며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나타났다.
“여기 있었군. 당장 교회로… 너는 누구지?”
“순번 교체 기다리던 일꾼이요. 교회 사제 같은데, 댁 같은 분이 여긴 무슨 일이시죠.”
“…천한 것.”
더는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안톤 주교는 바로 등을 돌렸다.
안톤 주교가 멀어지자 알라실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유명하지 않아서 좋은 점도 있네요.”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마차에서 나가려던 마르할은 다시 옷깃이 잡혔다.
“쉬러 온 거 아니었어요?”
“쉬러 가야죠.”
알라실이 마르할의 옷을 당겼다.
알라실도 신체 능력은 초인이라 불릴 수준이다.
초인이 아닌 마르할은 그녀가 당기는 대로 뒤로 딸려갔다.
“누가 또 올지 모르잖아요. 그냥 여기서 쉬어요.”
“여기서요?”
사람 둘이 누울 자리는 되지만, 둘이 몸을 딱 붙여야 겨우 가능하다.
지금도 마르할의 코앞에 알라실의 얼굴이 있다.
“왜요? 신이 선택한 교회 수녀를 보고 흥분한 건 아니죠?”
알라실이 도발적으로 웃었다.
“설마요. 서로 부담되지 않을까 해서 그랬죠. 본인이 괜찮다면야.”
마르할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알라실은 눈을 깜빡였다.
‘아니, 이걸 진짜 자리 깔아?’
먼저 도발한 건 그녀지만, 그래도 진짜 수녀랑 같은 자리를 쓰려고 할 줄은 몰랐다.
알라실이 손가락으로 마르할의 볼을 찔렀다. 작정이라도 한 듯 마르할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이봐요. 진짜 자요?”
“겁먹었습니까?”
“아니요! 누가요!”
“시끄럽습니다. 누구 들어올라.”
흡. 알라실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마르할을 곁눈질하자 마르할은 다시 눈을 감은 뒤였다.
“자요? 진짜 자?”
알라실은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교회에서 도망칠 때를 대비해 잘 보여두려고 잠깐 농담한 건데, 그걸 그대로 받아?
남들에게 보였다가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술 때문인가? 취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알라실은 마르할의 볼을 찔렀다. 이번에는 정말 미동도 없었다.
진짜 잠들었나?
남자의 얼굴이 바로 앞에 있다. 고아원에서 겨울을 날 때 이후로 처음이다.
겨울 고아원에서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아이들끼리 뭉쳐서 몸을 껴안고 잠들고는 했다.
그때는 전부 남녀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는 꼬꼬마였고, 지금 그녀는 알 거 다 아는 성인이다.
목이 뻣뻣해졌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
바깥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녀는 다급히 천을 뒤집어썼다.
천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얇은 천을 통과해 들어오는 약간의 빛.
“여기 있네. 자는 것 같아. 밤새워 마신 것 같으니 자게 놔두자.”
“알았어.”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한 명은 어제 밤새 모르는 언어로 떠들던 사람이고, 한 명은 어제 낮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던 사람이다.
마린이 알라실의 출신을 알아봤듯, 알라실도 마린의 출신을 알아보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같은 처지였던 그녀들은 안다. 길바닥에서 혼자 살아남은 여자들은 특유의 독기가 있다.
사람의 살을 씹고 목덜미를 물어뜯을 각오 없이 여자 혼자 길바닥에서 생활하는 건 불가능하다.
천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기척이 멀어졌다.
알라실이 헝겊을 내려 눈만 내밀었다.
‘제국 귀족에 공국 평민? 특이한 조합이야.’
서로 얼굴도 맞대기 힘든 사람들이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다. 거기에 실라나티엘의 이름을 가진 마법사와 에고만의 이름을 가진 자신까지 더해지면 더욱 괴이해진다.
성황국이 기를 쓰고 찾으려 했던 용사 일행 관계자가 둘이나 한자리에 있다.
비록 한 사람은 가짜지만.
* * *
마르할은 마차의 흔들림에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커다란 치즈처럼 둥근 덩어리였다.
마르할이 천을 벗기자 몸을 말고 색색 자고 있는 알라실이 나타났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천을 찾아 손을 휘적였다.
마르할이 천을 손에 쥐여주자 다시 그걸로 몸을 덮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르할이 기지개를 켰다. 심하게 취한 것도 아니었고, 푹 잤더니 숙취는 씻은 듯 날아갔다.
마르할은 품에서 시계를 꺼냈다.
연합에서 토지 경주의 책임자에게 보급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시계다. 보급품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유리로 마감한 시계는 몇 명의 장인이 합동해 만드는 고급품이다.
이것도 말이 보급품이지 돈 주고 사려면 상당한 금액이 필요하다.
평소에 마르할은 시계를 쓰지 않는다.
대략적인 시간은 태양이나 별자리를 보면 되고, 5분이나 10분 같은 단위는 속으로 헤아리면 된다.
그래도 시간을 어림짐작하는 것과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차이가 크다.
시계는 바늘 두 개가 숫자 12를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인가.”
여기서 식사를 하며 한 번 쉬고, 저녁까지 천천히 달리면 될 듯했다.
마르할이 천을 걷고 짐마차 밖으로 나갔다.
행렬은 수십 대의 마차와 백 명에 달하는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걷는 사람은 없다. 말을 탈 줄 아는 사람은 말을 타고, 아니면 마차 마부석이나 짐을 넣고 남은 자리에 들어갔다.
시간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마르할을 발견한 마린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일어나셨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있죠?”
“네. 그리고 특별한 일도 없었어요.”
“식사를 하죠. 선두가 누구죠?”
“휴고가 고용한 용병이요. 유명한 사람인 모양이에요.”
“인사라도 해야겠네요.”
마차에서 뛰어 내리려는 마르할 뒤로 천을 뒤집어쓴 덩어리 하나가 쓱 일어났다.
알라실이 뒤집어쓰고 있던 천을 벗고 눈을 비볐다.
“흐암… 벌써 낮이에요? 잠깐 잔다는 게.”
눈을 뜬 알라실과 마린의 눈이 마주쳤다.
“당신이 왜 거기서 나오는 거야?”
마린은 성황국어를 모르고, 알라실은 공국어를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분위기가 있다.
알라실이 마르할의 팔뚝을 잡으며 마린을 올려다봤다.
[그야, 같이 잤으니까요. 왜요, 당신은 아직인가 봐요?]고삐를 쥔 마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꺼운 가죽끈이 그녀의 악력에 따라 접혔다. 통역 없이도 어쩐지 저 여자가 하는 말은 전부 읽혔다.
“마린이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에요.”
[알라실도 왜 괜히 사람을 도발하고 그래요.] [이게 제 습관이에요. 저쪽도 그렇게 생각할걸요.]“맞아. 이게 ‘우리’ 습관이지.”
[오, ‘우리’ 그건 저도 아는 단어예요. 이것 좀 번역해줘요. 똑같은 사람끼리 잘 지내보자고.]알라실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통통 튀는 걸음으로 앞서가는 마차를 따라잡더니, 예비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기수 없는 말에 올라탔다.
“마지막에, 뭐라고 했어요?”
“잘 지내보자네요.”
어쩐지 그럴 것 같긴 했다. 마린은 자신의 감에 확신을 가졌다. 저 여자의 말은 정말 통역 없이도 대강 알아들을 수 있다.
“마르할 님, 저 여자. 아마 저랑 같은 길바닥 출신이에요. 돈하고 권력을 보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요. 조심하세요.”
저런 여자가 어떻게 수녀가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수녀가 되어서도 옛 습관을 버릴 생각도 않는 걸 보면,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저도 알아요. 그래도 이번 일에 중요한 사람이니까 너무 싸우진 말아요.”
“마르할 님이 그렇게 말하신다면.”
대답은 잘해도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마르할도 그녀의 심정을 알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얻은 것만으로 만족했다.
용사의 길잡이라는 이름에 남들이 잊고 있는 게 있는데, 마르할이 서부에서 얻은 부와 명예는 바닥에서부터 쌓아 올린 것이다.
타고난 자질과 용사 일행에게 배운 기술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일단, 마르할도 출신을 따지면 길바닥 출신이다.
연합이 시작되고 토지 경주에 대한 이야기가 세간에 퍼지기 시작할 무렵.
돈과 힘은 있지만, 권력은 없는, 누구보다 공인된 권력을 원하는 범죄자들이 판치던 시절.
경계라는 이름도 얻지 못한 동부 도시의 뒷골목이 마르할의 출발점이다.
시궁창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마르할도 안다.
삶에 새겨진 그 흔적이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도.
마르할은 행렬의 가장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는 얼굴을 만났다.
“할리발? 할리발 맞죠?”
연합 전쟁에서 활약하고 사기당한 계약서를 가지고 토지 경주에 참가했던 헤센 지방 출신 용병 할리발.
그가 행렬을 가장 앞에서 이끌고 있었다.
“마르할? 네가 여긴 왜?”
“그야 제가 이 마차 주인이니까요.”
“마차 주인? 이거 전부?”
할리발은 뒤따라오는 마차의 행렬을 보았다. 안에 실린 게 전부 식량이나 생활용품이긴 해도, 이만한 양이면 한두 푼이 아니다.
“별로 놀란 것 같진 않네요.”
“평범한 용병이 아니란 생각은 했지. 그래도 이 마차를 전부 소유하고 있다는 건 놀랐지만.”
그때는 동향 사람이라는 말에 홀딱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헤센 지방은 그리 큰 지역이 아니다. 비슷한 연령대 인간의 이름은 다른 마을 사람이라도 한 번씩 들어볼 법하다.
하지만 할리발은 마르할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단순히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와 친분 있는 동향 사람 몇 명에게서 같이 확인한 사실이다.
뒤늦게 마르할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마르할은 그의 은인이었다.
헤센 지방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 같으니, 마냥 기분 나빠할 일도 아니었다.
“땅은 어떻게 됐어요? 거기서 변수가 생겼을 것 같진 않은데요.”
“일단 성과는 있었어. 지금은 땅에 입주할 사람을 찾고 있지.”
“잘됐네요. 이번 일도?”
“이주민을 데려온다는 말을 들었지. 찻잎을 재배하는 건 아이와 여자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주민에 대한 일이 새어나가는 건 아젠만과 마르할도 막기 힘들다.
아젠만의 창고에서 나오는 물건과 행렬의 목적지를 보면 자연스레 도출되는 결론이다.
“서부에 차밭을 만들게요?”
“사람 죽이는 일을 빼면, 나에게 남은 건 그것밖에 없더라.”
찻잎이나 따는 인생이 싫어 고향을 나왔다. 하지만 고향을 나와 그가 배운 건 속이고, 죽이고, 빼앗는 일들이었다.
“어쩌면, 그 좁은 마을에서 불만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어.”
꿈은 이루지 못했겠지만, 손에 질척하게 피를 묻히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