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7
제7화
마르 실라나티엘은 기인이다.
꼭두새벽에 자다 깨서는 꿈을 꿨다며 산사태를 일으키거나, 치열한 전투 도중 갑자기 책을 꺼내 읽는 건 보통이다.
잠행 중 폭발 마법을 일으켜 시선을 끄는가 하면, 마왕과 하루 밤낮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다른 일행도, 성황국의 성인도 그녀가 기행을 벌이면 없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성인이 머리를 민 이유의 반은 그녀 탓이라는 게 마르할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그녀의 기행은 그녀가 인외의 마법을 부리는 원천이다.
인외의 마법은, 인외의 기행에서 쌓아 올린 역사였다.
마르 실라나티엘의 기묘한 마법을 빼면 마족과의 전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에게 기행을 그만하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마르할은 도시 폐허에 준비된 유적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깨달았다.
이 유적은 그녀가 그에게 남긴 물건이다.
서부에 바체아 제국의 유물이 있다고 하면 마르할은 절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고대 제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서부까지 올 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없다. 서부에서 오직 마르할만이 이 문을 열 수 있다.
그러나 인외의 마법사도 미래는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마르할은 유적을 찾아왔다. 그리고 므에트 제국 황녀도. 세상에 얼마 남지도 않은, 고대 제국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사람도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마르할 대신 봉인을 풀어버렸다.
고위 기사이자 전쟁 영웅인 스트레킬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았다.
챙. 검집과 검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마족이다. 검을 뽑아라.”
공국 기사들이 검을 뽑았고, 베이올라의 호위 기사들도 뒤따라 검을 들었다.
크르릉. 짐승의 울음이 들렸다.
듣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서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울음이었다.
스트레킬은 들고 있던 횃불을 방 안으로 던졌다. 횃불의 불에 봉인된 존재의 모습이 드러났다.
사슬에 묶인 괴물이었다. 말의 몸통에 머리가 두 개, 각각 사마귀의 머리와 뱀의 머리가 달렸다.
네 개의 다리 말고도 사마귀의 앞발이 몸통에 누더기 인형처럼 기워져 있다.
몸통과 다리, 두 개의 머리와 앞발이 쇠사슬에 묶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놈은 몸에서 검은 안개를 끝없이 뿌려대고 있었다.
스트레킬의 표정이 절로 굳었다.
“연기를 마시지 마라. 너무 마시면 마족이 된다.”
마족은 등장 1년도 안 되어 세상의 반을 집어삼켰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인외의 실력을 가졌다고 전해지는 용사 일행도 1년 만에 세상의 반을 삼키진 못한다. 하지만 마족은 해냈다.
세상의 반을 동족으로 만드는 것으로 그 위업을 해냈다.
공국 기사들은 호흡을 줄이고 최대한 긴장을 풀었다. 전쟁 영웅은 휘하의 부하들도 보통이 아니었다.
개개인이 전쟁을 경험한 자들이다.
반대로 제국 기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마족의 영토와 국경을 맞대고 전쟁을 치른 공국과 달리 제국은 전쟁과는 연관이 없는 지역에 있다.
제국 기사들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실전 경험은 떨어졌다.
문이 완전히 열리고, 마족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하나씩 끊어졌다.
놈은 사람처럼 사슬에 묶여 있던 머리와 팔과 다리를 움직여 보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왜 멀쩡한 사슬이 끊이지는 거야….”
기사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유야 뻔했다. 처음부터 문이 열리면 사슬이 끊어지도록 설계한 봉인이니까. 문에도 쓰여 있었지 않나. 재앙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마족이라….’
마왕이 죽으며 모든 마족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여기서 마족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건 세계 최고 마법사가 마르할에게 남기는 경고였다.
아직 세상에 마족이 남아 있다는.
지난 1년 미개척지를 돌아다니며 마족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을 여기저기서 보았다. 하지만 마왕이 죽은 이후, 마족을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다.
고위 기사 스트레킬이 먼저 마족을 향해 달려들었다.
봉인이 풀린 마족이 사마귀 같은 앞다리를 휘둘렀다.
챙! 마족은 앞발로 검을 막았다. 처음 한 개의 발로 검을 막던 마족은 자신을 밀어내는 스트레킬의 기세에 급히 양팔을 사용했다.
마족은 발에 힘을 줘 밀고 나가려고 했지만, 눈앞의 인간은 커다란 말뚝이라도 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손을 묶었다! 정리해라!”
양쪽으로 갈라져 몰아치는 공국 기사들의 기세는 파도와 같았다.
마족의 앞발에 힘이 들어갔다.
떨쳐내려 한다. 스트레킬이 손목에 힘을 줬다. 툭툭. 검이 몇 번 꺾이나 싶더니 교차한 두 앞발 사이에 들어가 앞발의 움직임을 막았다.
그리고 한 발 앞으로 들어가며 팔뚝으로 사마귀의 앞발 관절 사이에 팔을 집어넣었다. 관절이 다치거나 팔이 부러질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는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를 보호하는 건 연약한 인간의 피륙이 아니라 장인이 만든 특수한 금속이다.
스트레킬이 발을 묶는 사이 마족에게 다가간 기사들이 무방비하게 노출된 몸통을 난도질했다.
다리를 자르고 몸통에 칼을 꽂아 길게 그으니 안에서 내장이 줄줄 쏟아졌다. 그들은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처럼 적을 향해 무기를 내리꽂았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다리가 사라진 마족이 옆으로 쓰러졌다. 스트레킬은 앞발과 엮인 팔과 검을 회수하고는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
스트레킬이 검을 휘두르기 전에 뱀의 머리가 독을 뿜었다.
검은 독연을 본 스트레킬은 즉시 뒤로 물러났다.
“끝이 아니다. 긴장해라. 제국 놈들은 싸울 줄도 모르는 계집인가. 뭐, 좋다. 우리가 마족을 사냥하는 걸 보고만 있어라.”
스트레킬은 부하들의 태세를 바로잡고, 덤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국 기사들을 한껏 비아냥댔다.
자욱하던 독연이 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사라졌다.
방 안에는 상처를 완전히 회복한 마족이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자와 다리가 땅에 있다. 붙인 게 아니라 재생. 독연은 회복할 시간을 버는 수단이다. 단번에 몰아쳐서 목까지 자르는 걸 일차 목표로 한다. 그게 아니면 회복을 못 할 때까지 갉아 먹는다.”
스트레킬은 전투에 완전히 몰입했다. 검을 맞댔을 때 그를 밀어내던 힘은 말 그 자체였다.
말의 힘에 재생력을 가진 마수. 쉽지 않은 상대다.
빈틈을 보였다간 이쪽이 당한다.
이번에는 마족이 먼저 움직였다. 전쟁에 쓰이는 말이 무서운 이유는 그 덩치에서 나오는 힘과 속도다.
마족의 네 다리가 땅을 박찼고, 스트레킬도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휘둘렀다.
채애앵! 아까보다 더 큰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렸다.
공국 기사들이 아까처럼 양쪽으로 갈라졌고, 이번에는 제국 기사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마르할은 기사와 마족의 전투를 관망했다.
스트레킬과 그의 부하들은 전쟁 경험자답게 싸웠고, 제국 기사들은 어설프지만, 공국 기사들보다 한 수 앞서는 기술과 신체 능력으로 그 격차를 메웠다.
전신을 난도질하고 뱀의 머리까지 자르자 마족은 몸에서 독연을 뿜어냈고,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뒤로 물러나야 했다.
연기가 사라진 자리에는 다시 멀쩡해진 마족이 있었다.
‘쩝….’
마르할은 마족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텅 빈 방에 딸랑 세워져 있는 책장을 봤다.
혼자 이곳에 왔다면 저런 마족은 가뿐히 무시하고 지금쯤 저 뒤에 있는 책장을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역사에는 힘이 깃든다.
사람의 강함은 그 사람이 쌓은 역사의, 행적의 강함이다.
마르할의 역사는 마족과의 싸움에서 세상 누구보다 앞서 있던 사람의 역사다. 마왕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의 역사다.
마르가 봉인해 둔 마족은 마르할에게 마족이 남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딱 그 정도의 용도다.
‘아니면,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하나.’
마르할은 세계 최고를 넘어 역사상 최고, 인외라 불리는 사람들의 싸움을 옆에서 지켜봤다.
특히 용사. 인외라 불리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이던 인간의 싸움을 눈에 담았던 마르할에게는 기사들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그들의 칼끝이 향하는 방향, 시선의 흐름, 그리고 그 목적까지도 손에 잡힐 듯 읽혔다.
왜 마족을 상대하는 공국 기사들의 검 끝이 자국의 영웅에게로 향하는 걸까.
왜 황족을 호위해야 할 호위의 눈길이 호위 대상의 빈틈을 찾는 걸까.
재미있는 일이다.
* * *
쿵. 마족이 쓰러졌다. 죽은 마족의 몸은 가루가 되어 푸스스, 모래처럼 바닥에 쌓였다.
스트레킬은 손으로 모래를 휘저었다. 성가신 마족이었지만, 고위 기사인 그의 적은 아니었다.
“부산물은 없군. 가루라도 챙겨라. 마법사들에게 팔면 돈이 될 거다. 이 가루는 우리가 챙긴다. 불만 있나? 통역, 통역해라.”
“가루는 챙긴답니다.”
“그런 더러운 물건을 가지려 하다니, 공국 고위 기사는 품위도 없나?”
전투가 진행되던 내내 레벨라의 등 뒤에 숨어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모든 걸 지켜본 마르할이 보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추했다.
“그걸 그대로 전달하라고요?”
“그래.”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아들으면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할 때마다 이쪽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 같아 얼굴이 따가울 지경이다.
의외로 스트레킬은 베이올라의 도발 아닌 도발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마족을 죽이고 뒤늦게 발견한 책장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책장에는 낡은 책 몇 권과 몇 장의 서류가 전부였다.
재앙을 상대하고 보상을 가져가라던 것치곤 초라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스트레킬은 실망하지 않았다.
역사는 힘을 가진다. 역사를 가진 물건은 화려함보다는 추레함으로 자신을 숨긴다. 관리 상태가 안 좋다는 건 그에게 좋은 일이다.
그는 고대 제국어를 읽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게 고대 제국어라는 걸 알아보기는 한다. 하지만 책에 쓰인 언어는 전혀 모르는 언어였다.
“아프란체어군요. 법전이랑 판결문입니다.”
아프란체. 이 도시가 소속되어 있던 국가의 이름이다.
“너는 아프란체 출신인가?”
“아뇨. 그냥 띄엄띄엄 읽을 줄만 압니다.”
“…너는 누구지?”
스트레킬은 새삼스레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제국어와 공국어를 유창하게 하면서 멸망한 서부 왕국의 언어까지 읽을 줄 아는 용병이라니?
언어를 배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도 안다. 한때 제국어 교사까지 고용했던 그도 제국어 발음은 어눌한 부분이 있다.
가끔 재능 있는 사람은 배우지 않고도 여러 언어를 하고는 하지만, 그래도 10년도 더 전에 멸망한 국가의 언어를 알다니?
지나치게 수상하다.
통역 요청을 받아들일 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통역은 그 대치 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였고, 통역사는 일이 끝나면 죽일 생각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저 용병은 말싸움하는 두 집단의 기사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일반적인 용병이 보일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용병이죠. 제국어와 공국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아는.”
“그게 이상하다는 거다.”
“제가 수상한 건 수상한 거고. 저건 안 챙기셔도 됩니까? 수표책 같은데요.”
“수표?”
스트레킬이 책장에 있던 책 한 권을 바람처럼 낚아챘다.
그가 부하들과 서부까지 쫓겨난 이유가 무엇인가. 돈과 힘이 없어서였다.
수표책을 펼친 스트레킬의 얼굴에 희열이 꽃피었다.
수표다. 지금도 쓸 수 있는 물건. 누가 비상금으로 모아둔 물건인지 수표 주인의 이름도 없었다. 상회에 가져가기만 하면 당장 돈으로 바꿀 수 있다.
“이건 내가 챙기지. 나머지는 필요 없다.”
저 중 진짜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물건, 예를 들어 마법서 같은 게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그걸 감정해 제값 주고 살 사람을 찾아 파는 것도 한세월이다.
스트레킬에게는 그럴 여력도 시간도 없었다.
이제 토지 경주에서 땅까지 얻으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선택이 늘어나니 눈에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게 되었다.
그의 앞에 있는 황녀로 추정되는 고위 귀족.
공국 고위층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제국과 성황국에게 이를 간다.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전쟁을 치렀다. 그러니 승자에게는 마땅한 전리품이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마족의 침공을 받은 국가들은 제국과 성황국의 간섭에 피해만 보고 이득은 취하지 못했다.
그들이라면, 제국 고위 귀족을 비싼 값에 사줄 것이다.
* * *
마르할은 검의 손잡이를 쓰다듬는 스트레킬을 보았다. 불안할 때 물건을 만지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습관이다.
자국에서 버림받은 전쟁 영웅이다.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적국의 고위 귀족을 보며 품을 고민이란 많지 않다.
‘바깥으로 나가면 적당히 내뺄 생각이었는데.’
스트레킬의 태도를 보면 나가자마자 검부터 뽑을 것 같았다.
마르할은 공국과 제국의 기사를 보았다. 그들도 모두가 두 개 언어에 능통한 건 아니다.
통역이 가능한 사람은 공국 측에 둘. 제국 측에 넷.
그들을 통해 일행 전부가 대화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책장에 있는 물건을 모두 챙기고 일행은 왔던 통로를 되돌아갔다.
“반대편 끝을 확인하지 못했군. 우리는 저쪽으로 간다. 그쪽은 어쩔 거지? 통역해라.”
“반대편 끝을 확인한답니다.”
“…우리도 간다.”
“가겠답니다.”
십여 개의 횃불이 통로에 늘어섰다. 반대편 끝은 금방 나타났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기사 하나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천장을 밀었다.
햇빛이 들어왔다.
비밀 통로를 따라가면 바깥이 나온다. 당연한 이치였다.
횃불에 의지하던 눈은 따가운 태양을 버티지 못했다. 잠깐 시야가 가려진 틈에 마르할이 제국어와 공국어로 각각 말했다.
“전하의 대리인이다! 성가신 공국 놈들 먼저 치워라!”
“지금이다! 스트레킬을 죽여!”
마족과 싸울 때도 재빠른 몸놀림으로 눈길을 끌던 공국 기사의 품에서 빛이 번쩍였고, 제국 기사들이 검을 뽑아 공국 기사들의 뒤를 찔렀다.
횃불이 땅에 떨어지고 짓밟혔다. 흐릿한 불빛 위로 그림자가 어지러이 어우러졌고, 뚝뚝 떨어진 피가 벽과 땅에 달라붙었다.
피를 본 베이올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고, 스트레킬은 한 손을 목에 갖다 댄 채 검을 뽑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