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72
제72화
스트레킬에게는 적이 많다.
단순히 귀족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같은 기사도 스트레킬의 적이 된다.
현역 시절 스트레킬은 수많은 공을 세웠다. 그 공훈은 같은 고위 기사들끼리 비교해도 압도적인 수준이다.
이유는 둘이다.
첫 번째는 스트레킬이 입은 전신 갑옷.
공국 전체를 통틀어 열 개가 안 된다는 전신 갑옷이다. 스트레킬은 전쟁 중 장인 한 명을 구해준 대가로 전신 갑옷을 손에 넣었다. 그것만으로 다른 기사들의 질투를 사고 있다.
스트레킬의 업적이 전부 전신 갑옷 덕분이라 음해하는 작자도 많다.
두 번째는 스트레킬이 가진 유파 특유의 재생력이다.
본래 보통 기사보다 뛰어난 회복력을 가지던 스트레킬의 유파는, 스트레킬이 성인에게 상처를 치료받았다는 역사를 가지며 그 효과가 극에 달했다.
스트레킬은 음식만 충분하면 어떤 상처든 남보다 수십 배 빠르게 치유한다.
상처 치유가 빠르다는 건 전선 복귀가 빠르다는 것이고, 그건 압도적인 전공으로 이어졌다.
스트레킬을 질투하는 기사는 많다. 스트레킬과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비슷한 세월을, 비슷한 전장에서 싸웠음에도 전공과 유명세가 스트레킬의 반도 안 된다면, 자연히 질투하게 된다.
로사노도 스트레킬에게 열등감을 품은, 열등감을 적대감으로 표출하는 기사 중 한 명이다.
스트레킬과 같은 고위 기사이며, 실력은 비슷하고, 똑같이 마족과 싸웠다.
하지만 누구는 영웅이라 불리며 공국의 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반면, 누구는 검의 날카로움을 단련한다며 사람을 베다가 영주에게 쫓겨났다.
지금은 그를 쫓아냈던 영주가 다시 그에게 돌아오라고 간청하고 있지만, 알 게 뭔가.
이미 그에게는 영주의 부탁은 코웃음 치며 걷어찰 힘이 있다.
공국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다 제국으로 넘어가 황제의 기사가 된다. 그게 로사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한 소문을 듣고 그는 말 머리를 돌렸다.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나타났다.
공국에서 전신 갑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예전, 그는 스트레킬과 한 번 싸운 적이 있다. 그때는 처참하게 깨졌다.
스트레킬은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고, 그는 철도 베지 못하는 기사였다. 싸움이 성립하지 않는 결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는 철을 벨 수 있고, 열 걸음 떨어진 장소에 있는 물건을 벨 수 있다.
기사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창한 이유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죽여 명성을 얻고 싶다. 그것 이상의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적어도 로사노에게는 합당한 명분이다.
로사노는 마차 행렬을 찾았다. 행렬 가장 앞에는 망토로 몸을 가린 스트레킬이 있었다.
로사노는 검을 뽑았다. 스트레킬은 막 그를 발견한 참이다.
로사노가 검을 휘둘렀고, 스트레킬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래, 한 번에 죽으면 재미없지.”
목이 잘려 쓰러지는 말 아래에서 스트레킬이 몸을 일으켰다.
* * *
“발악인가?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네 모든 업을 빼앗길 뿐이다. 그걸 알았을 텐데?”
남자가 물었다.
마족을 안다. 마족의 힘이 작용하는 방식을 안다.
그걸 안다면 승산이 없다는 것도 알았을 터. 그런데 눈앞의 마법사는 전의를 드러내고 있다.
숲의 은둔자, 업을 쌓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그들도 승산이 없다는 걸 알고는 도망가려 했다.
승산 없는 싸움에서 이기면 그 업이 지대하리라는 걸 아는 숲의 은둔자들마저 싸움을 피하는 게 그의 힘이다.
일개 마법사가 숲의 은둔자들보다 나은 게 있나? 가지고 있는 유물들은 비범한 면이 있다.
저런 수준의 유물은 그가 속해 있던 숲의 은둔자에서도 대스승이 가진 물건 하나가 전부였다.
내상을 치료하는 구슬이었고, 그 구슬이 가진 업은 지금 남자의 안에서 남자의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남자는 입맛을 다셨다. 구슬 하나로 그는 검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맨손으로 날붙이를 상대한다는 위업을 이루었다.
행동을 멈추는 정체 모를 유물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충격을 흡수하는 저 가죽끈까지 흡수하면, 자신은 어떤 힘을 가지게 될까.
흥분이 가시질 않는다.
“이름이 뭐죠?”
“가스터. 네 모든 걸 먹어 치울 사람의 이름이다.”
“좋아요, 가스터. 한 가지만 대답해줘요. 그 힘, 어디서 얻었죠?”
“아직도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걸 알면 나를 죽일 방법이 생기기라도 하나?”
“그럴지도 모르죠.”
가스터는 웃었다. 검은 안개를 몸에 두르고 광소하는 그의 모습은 10년 전 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마족의 모습 그 자체다.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정신을 차리니, 이 힘은 내 안에 있었다.”
“그렇군요.”
“이게 마족의 힘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지. 나는 확신했다. 세계는, 세상의 업은 새로운 마왕을 원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자를!”
“그게 당신이다?”
“모든 마족은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때 다시 나타난 마족의 힘이 내게 깃들었다. 이게 운명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가스터가 양팔을 벌렸다. 그의 손동작에서 시작된 바람이 부엽토를 사방으로 날렸다.
마르할은, 용사 일행은 마족을 세상에서 없앴다. 그러나 그건 집 청소를 통해 집에 있는 곰팡이를 전부 치운 것과 같다.
없애도 없애도 다시 튀어나오는 곰팡이처럼, 마족도 아주 작은 조각만으로 다시 세상에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채 사라지지 않은 마족을 통해서지, 멀쩡하던 인간이 마족이 되는 게 아니다.
“아깝네요.”
“무엇이?”
“당신을 산 채로 잡아가면 좋아할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러지 못한다는 게요.”
마르 실라나티엘이라면, 좋은 실험체라며 잡아다 정보를 뽑아낼 건데, 아쉽게 그녀는 여기 없다.
저걸 사로잡을 여유도 없다.
가스터는 마르할의 여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압도적인 우위를 가진 것은 그다. 세상에 선택받은 것도 그다.
세상이 그를 부르고 있건만,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나약한 인간이다.
“잡담은 끝이다. 호기심을 해결했으면 죽어라, 마법사.”
검은 안개를 몸에 감은 가스터가 마르할에게 접근했다.
속도는 여전하다. 아니, 한층 빨라졌다.
가죽끈을 다루는 마르할의 의념에 사심이 섞였다. 책임의 깃펜은 아버지의 유품이다. 바체아 제국 황가의 역사가 담긴 물건이다.
저런 잡배에게 깃들어 좋을 역사가 아니다.
마르할이 가죽끈을 감은 팔로 가스터의 주먹을 흘렸다.
흐. 가스터가 웃었다.
“내가 무기를 두고 굳이 주먹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나, 마법사?”
가스터의 몸이 회전했다. 마르할이 옆으로 쳐낸 반동을 이용해 회전하며, 발을 창처럼 찔렀다.
책임의 깃펜으로 속도와 위력을 줄이고, 몸을 옆으로 틀고, 손으로 발목을 쳐냈다. 바람으로 모든 동작을 보조했다.
그렇게 해서 위력을 줄인 발끝이 마르할의 옆구리를 스쳤다.
살이 한 움큼 뜯겨나갔다. 발차기가 아니라 투석기가 쏘아낸 작살에 스친 듯한 상처였다.
발목을 쳐낸 손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인대나 신경이 잘못됐다. 어쩌면 둘 다.
가죽끈의 충격 흡수 없이 공격을 쳐낸 것만으로 이 꼴이다.
‘주먹으로 나무를 부수니, 발은 바위라도 부수려나. 그럼 대포네.’
대포의 탄환을 손으로 쳐내고 이 상처면 양호하다.
마르할은 바람으로 상처를 막았다. 전투 중에는 출혈을 막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된다.
“봐라. 내가 조금 진심을 낸 것만으로 그 꼴이다. 이제 격의 차이가 실감 나나? 대스승과 마을 몇 개를 먹은 것만으로 이렇다. 종국에 나는, 용사를 뛰어넘는다.”
가스터의 얼굴 부분에 있는 안개가 움직였다. 눈과 코로 보이는 부분이 생기고, 입이 옆으로 길게 찢어져 마르할을 비웃었다.
그의 과거를 캐내던 신비도 결국 힘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의 출신을 안다고, 과거를 안다고, 패륜을 안다고 싸움의 승패는 달라지지 않는다.
절대적인 힘은 모든 것의 우위에 선다. 가스터는 깊은 희열에 빠졌다.
“네 업은 기이해. 접촉하는 것만으로 힘이 늘어나는 게 느껴질 지경이야. 네 업을 모두 먹으면 어떻게 될지 정말로 궁금해.”
“하여간, 요즘 놈들은 강자에 대한 공경이 없어요. 알라실!”
“네, 네?!”
나무 뒤에 숨은 채 얼굴만 내밀고 있던 알라실이 놀라 대답했다.
“반쯤 죽은 사람도 치료할 수 있어요?”
“어… 숨만 붙어 있다면요?”
“그럼 됐어요.”
마르할은 책임의 깃펜을 소매에서 꺼냈다. 깃펜을 본 가스터의 얼굴이 요동쳤다. 정확히는 얼굴을 감싼 안개가.
“그거! 그게 날 멈춘 유물이구나! 대단한 업이야. 고결하고, 고귀한, 절대 꺾이지 않는 신념!”
“그게 보여요? 수행자 출신이라 그런가. 마족이 되어서도 평범하진 않네요.”
“말해라, 마법사! 그 물건은 어떤 업이 깃들어 있지? 누가 쓰던 물건이냐!”
“바체아 제국 황제요.”
알라실이 숨을 삼켰다. 가스터의 안개가 요동쳤다. 마르할의 말은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다.
바체아 제국의 유물.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사라진 제국의 유물에 무관심할 수 없다.
세상에 드러난 바체아 제국의 유물은 하나하나가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일반 귀족이 썼다고 알려진 유물도 그랬다.
바체아 제국 황제가 썼던 유물은… 세상에 알려진 바가 없다.
“헛소리!”
“헛소리인지 아닌지, 직접 확인해보면 되지 않나요? 아니면, 겁먹었나요?”
가스터가 마르할에게 다가갔다. 그가 깃펜을 든 마르할의 손을 낚아챘다.
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르할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냈다. 가죽끈이 마르할의 팔과 가스터의 팔을 함께 묶었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마왕인 내게 허튼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마르할이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 바람이 둘의 대화를 가두었다.
옆구리를 막고 있던 바람이 사라지며 상처에서 피가 뿜어졌다. 흘러내리면 안 되는 것도 약간.
“입 근질거리는 거 참느라 혼났네. 마왕, 마왕. 시끄러워요. 지금 당신 행동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놈들이 수천만 있으니까, 잠시 만나고 와요.”
“무슨 개소리….”
마르할이 둑을 터뜨렸다. 마르할이라는 인간이 자신의 역사를 담보로 막아두고 있던 또 하나의 역사가, 업이 세상에 잠시 풀려났다.
평소 동부를 향한 저주를 퍼붓던, 그것만을 생각하던 마족의 업이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만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마왕이라는 이름을 짊어질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소일라 므에실리고. 마족들은 그 이름만을 유일한 마왕의 이름으로 인정한다.
알량한 힘을 가지고 마왕을 자칭하는 한 마족의 오만에 세상의 반절이 분노했다.
마족들의 저주가 가스터를 향했다.
농축된 마족의 업이다.
가스터가 흡수한 어떤 업과도 비교를 불허하는 농밀한, 그리고 그와 딱 맞는 업.
가스터의 몸을 감싼 안개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알라실이 무심코 숨을 삼켰다. 안개가 품고 있는 악의에 등골이 오싹했다.
안개에 가려 마르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제발, 그 사람이 죽지 않게 해주세요.”
알라실은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빌었다. 신이 없다는 걸 안 이후로 그녀는 신에게 비는 사람들을 내심 한심하게 여겼다.
그러나 막상 간절한 상황이 닥치자 그녀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초월적인 무언가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다.
마르할이 살아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그녀는 마르할이 다치고 상처 입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마르할의 상처를 돌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면 마르할은 자신에게 의지해줄 것이다. 믿어줄 것이다.
그녀를 믿고 손가락을 잘랐을 때처럼, 다시 그녀에게 기대어줄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알라실은 빌었다. 마르할이 죽지 않기를, 동시에 죽지 않을 만큼만 다치기를.
* * *
마르할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업에 가스터는 전능감을 느꼈다.
용사는 하늘을 가르고, 마법사는 땅을 가른다고 했던가.
성인은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상처와 병도 치료하고, 도둑은 한 호흡에 백 명을 죽인다고 했던가.
이 힘이라면 능히 하늘을 찢고 땅을 부술 수 있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한 호흡에 천 명의 수급을 거둘 수 있다.
용사를 뛰어넘어 세상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
가스터는 힘에 취했다. 처음부터 그는 힘만을 원하는 인간이었다. 그랬기에 같은 숲에 있던 수행자를 죽였고, 대스승을 죽였다.
불안은 없다. 그는 신과 같은 힘을 얻었고, 신에게 불안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였다. 모르는 목소리가 가스터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너에게 감히 마왕의 이름을 칭할 자격이 있느냐.
-저주한다. 저주하고 또 저주한다.
-자칭 마왕아. 너에게 이 업을 버틸 결기가 있는가?
-죽여라! 동부 모든 생명체를 죽여! 너도 동부 사람이었구나! 그럼 너도 죽거라!
하나였던 목소리는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더니, 세는 게 불가능한 숫자가 되었다.
머리가 울렸다.
그가 받아들인 업이다. 업이 의지를 가지고 저주를 내리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업은 이미 일어난 일이다. 과거는 의지를 가질 수 없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과거가 그에게 말을 걸고 있다. 형용할 수 없는 저주와 함께 가스터라는 인간을 삼키려 한다.
가스터는 내면에서 외부로 눈을 돌렸다. 그의 앞에는 이름 모를 마법사가 웃고 있다. 모든 역사는 이 남자에게서 그에게로 넘어온 것이다.
이 업의 진짜 주인은 눈앞의 남자다. 이 남자는 이만한 업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잠깐만 듣고 있어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이 저주를?
가스터는 자신이 이 남자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음을 알았다.
무수한 환청에 견디며 가스터가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마르할 무느두스.”
무느두스. 바체아 제국 황족의 성. 고귀한 핏줄만이 가질 수 있는 이름.
바체아 제국 황족이라면, 이 업을 짊어질 자격이 있다. 마족에게 멸망당한 제국의 일원이 아니라면 누가 마족의, 한 종족의 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씨발. 잘못 걸렸군. 하지만 나는 그 이름을 모른다.”
“촌구석 사람이 뭘 알겠어요?”
“처음부터 이걸 노렸나? 내가 업을 감당하지 못할 걸 알고?”
“개인적으로는, 감당해 줬으면 하는 심정도 조금은 있었어요. 저도 상당히 골치 아프거든요.”
“줘도 안 가져. 죽어도 안 가진다.”
그의 정신을 파고드는 환청은 이제 자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가스터라는 인간의 업이 침식당한다.
그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게 진짜 마족이 된다는 거군. 세상 모든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그는 자신이 마족이라 생각했지만, 진짜 마족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업이 먹히고, 전혀 다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 죽음조차 아니다.
자신이되 자신이 아닌 무언가가 된다. 가스터의 기억과 의식을 가진 무언가가 가스터를 대신해 사고하고 행동한다.
인간 가스터의 의식은 무언가에 밀려난다. 육신에 갇힌 정신이 된다.
그게 마족의 본질이다.
마족이 된다는 건 죽음보다 잔혹한 형벌이다. 차라리 죽고 만다.
가스터는 자기 목에 손을 가져갔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는 가스터다. 가스터가 아닌 무언가가 되고 싶지는 않다.
마르할은 그가 편한 죽음을 택하는 걸 보고 있지 않았다.
한쪽 손은 가죽끈으로 가스터와 연결되어 있고, 가스터의 힘에 손의 뼈가 아작 났다. 몇 조각으로 부러졌는지 액체처럼 흐물거린다.
반대쪽 손도 아까 맨손으로 발차기를 쳐내느라 움직이지 않는다. 마르할은 바람을 움직였다.
직접 공격하기에는 바람이 너무 약하다. 마르할은 바람으로 허리춤의 단검을 움직였다.
마르할은 눈높이로 떠오른 단검을 입에 물었다.
한 발 앞으로 나가며, 자기 목을 꺾으려는 가스터의 손에 단검을 꽂았다.
가스터는 마르할의 꼴을 보고 경악했다.
“미친 새끼가…!”
한 손이 부러지고 반대쪽 손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입으로 검을 물고 고개를 들이미는 마르할은 정신이 멀쩡한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가스터의 손에 힘이 풀린 걸 확인한 마르할이 물고 있던 단검을 뱉었다.
“마왕이 되려면, 그 전에 마족부터 돼야죠?”
“저주하겠다. 너를 저주하고 또 저주해주마.”
“저주라면 이미 질리게 받고 있어요. 마족조차 되지 못한 반푼이 하나의 저주가 더해진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요?”
“괴물 새끼….”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가스터가 고개를 떨궜다. 다시 고개를 든 그는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형태로만 표현되던 안개가 몸의 일부가 되었다.
눈에선 붉은빛을 뿜었고, 안개는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마르할의 몸을 옥죄려 했다.
“사라져라.”
가스터였던 마족은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다른 마족처럼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마족은 곰팡이다. 하지만 곰팡이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곰팡이와 달리 마족에게는 의식이 있다. 그리고 그 의식을 조정하는 자가 있다.
극히 일부의 강한 의지를 가진 마족, 그리고 최강의 마족인 마왕.
마르할은 마왕 소일라 므에실리고에게 마왕이 가진 모든 권한을 물려받았다.
마족의 생사여탈권 또한 그 하나다. 마족은 마르할 앞에서 힘을 쓸 수 없다.
가스터가 죽고, 갈 곳 잃은 업이 사납게 울부짖었다. 마르할은 그것들을 다시 자신의 안에 담았다.
안개가 사라지고,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알라실이 나무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마르할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려다가, 밀려오는 격통에 그만두었다.
양손이 박살 났고, 팔도 부러진 것 같다. 옆구리 상처에서는 내장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을까.
이만한 상처를 입은 건 오랜만이다.
알라실이 달려왔다. 마르할은 그녀의 품에 몸을 맡겼다.
“살려줘요.”
“맡겨둬요.”
알라실의 품에서 마르할은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