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알라실은 마르할의 상처를 치료했다.
살아 있는 게 용한 중상이다. 한쪽 팔은 팔목과 손이 아작 났고, 반대쪽 손은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났다.
보통은 이것만으로 불구가 된다. 도시 교회에 머무는 사제가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절정은 옆구리의 상처다. 떨어져나간 상처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내장도 슬쩍 보였다. 어찌어찌 상처를 봉합해도 감염으로 죽는 상처다.
알라실도 마르할과 가스터의 공방을 보았다.
스친 상처가 이거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사람 하나가 형체도 남지 않고 핏물 조각이 되었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괴물이다. 그리고 그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스터가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마족의 검은 안개도 깨끗하게 사라졌다.
안개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마르할은 그 괴물을 죽였다.
역사에 이름이 남을 위업이다.
그리고 그 위인은 그녀의 무릎을 베고 상처를 치료받고 있다.
옆구리 상처가 빠르게 아물었다. 불치병도 아니고 단순한 외상이라면 고치는 건 쉽다.
비록 가짜지만, 그녀는 에고만의 성을 잇는 자다. 에고만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기적을 부릴 줄 안다.
옆구리 다음에는 손이다.
부서진 손을 향해 팔을 뻗던 알라실의 시선이 마르할의 손가락에 머물렀다.
“슬쩍 잘라서, 다시 자라게 해두면 모르지 않을까?”
팔을 자라게 하는 건 아직 무리지만, 손가락 정도라면 가능하다.
하나만 기념품으로….
“미친년. 미친년.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치료해도 모자랄 판에 환자의 손가락을 자르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알라실은 다시 치료에 집중했다. 마르할을 치료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그녀는 만족했다.
목숨을 걸고 그녀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
고아원에서는, 뒷골목에서는, 성황국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감각이다.
마약을 끊을 수 없다던 약쟁이들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약쟁이를 이해할 수 있다.
알라실은 치료를 계속했다. 치료하는 내내 그녀의 시선은 마르할의 손가락에 한참이나 머무르다 떨어지길 반복했다.
* * *
마르할은 땅에 있었다.
땅이라는 말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다.
끝없이 늘어선 땅과 하늘,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크고 작은 탑들.
탑들은 형태가 제각각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똑같은 탑은 하나도 없다.
크기도 모두 다르다. 눈으로 겨우 보이는 작은 탑이 있나 하면 저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거대한 탑도 있다.
마르할의 뒤에도 탑이 있다.
다른 탑과는 사뭇 다르다.
세 개의 선을 꼬아 그것을 탑으로 만든 형태다. 중심이 되는 기둥을 두고 두 개의 선이 뱀처럼 기둥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 저 높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별 경험을 다 한 마르할이지만, 이런 기묘한 공간에 온 적은 없다.
“너도 여기에 올 수 있게 되었구나. 아니면, 그만한 이상 사태가 있었어?”
마르할 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던 천을 벗자 여인의 얼굴이 나타났다.
“마르 누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얼굴이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이상한 생각 했지?”
“아니.”
용사는 처음부터 나이가 많지 않았고, 성인과 도둑은 마족을 없앤 후 젊어졌다. 하지만 마르는 마르할이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외모가 변하지 않았다.
“여긴 어디야? 대강 예상은 가지만.”
“역사의 장. 나는 그렇게 이름 붙였어.”
“역사를 본다는 게 이런 거였구만. 이게 내 역사지?”
마족이 사라진 후 다른 사람들이 가끔 나누던 대화였다.
역사가 보이니 어쩌니.
“맞아.”
“어쩐지 친근감이 들더라.”
세 개의 서로 다른 역사로 이루어진 탑. 저게 마르할의 역사다.
마르할은 저것들이 무엇인지 안다.
마르할이라는 인간의 역사.
마르할이 짊어진 바체아 제국의, 서부의 역사.
마지막으로 마족의 역사.
세 개의 역사가 마르할이 가진 역사다.
“다른 사람들 것도, 누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아.”
저 멀리 있는 하얀 탑은 성인, 피로 물든 검은 탑은 도둑, 기괴하게 찌그러진 탑은 마법사, 그리고 외형은 평범하지만 어떤 탑보다 크고 웅장한 탑이 용사.
“그런데 저것들은 뭐야?”
독보적인 다섯 개의 탑을 빼고도 커다란 탑들이 더 있다. 개인이 저만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사용하는 신비도 가볍지 않다.
하지만 탑을 보고 딱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 살았던 누군가의 탑. 그리고 개인이 아닌 집단의 역사들.”
“거대 역사라던 그거?”
“그래, 그거.”
거대 역사. 마왕을 죽이고 역사를 보게 된 이후 마르가 주장한 이론이다.
주장했다고 해봤자 알고 있는 건 용사 일행밖에 없다.
역사는 쌓이며, 사라지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 국가의 역사와 같은 거대 역사가 있으며, 그게 문명의 발전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다.
국가의 역사는 이미 존재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다. 제국의 황족이나 오래된 귀족 가문에 깃드는 혈통처럼 역사가 인간에게 특별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라는 힘이 신비나 마법의 형태로 나타난 적은 없다.
성황국의 ‘신’이 그나마 비슷한 개념이지만, 그것도 ‘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거나 기적을 내린 적은 없다.
“공국에서 마족을 만났어. 다른 마족과 접촉한 것도 아냐. 수행하던 수행자가 돌연 마족이 되었어. 이것도 거대 역사야?”
“마족이 있었다는 거대 역사가 이미 존재해. 그 역사에 닿는다면, 누구든 마족이 될 수 있어. 거대 역사의 움직임도, 사람이 마족이 되는 것도, 전부 예상했던 일이야.”
“…그럼 내가 마무리 짓는다고 끝이 아니잖아?”
마르할은 다른 사람들과 약속했다. 자신이 마족과의 싸움에 끝을 맺겠다고.
하지만 맨땅에서 마족이 솟아날 수 있다면, 그건 평생 불가능한 일이 된다.
마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마르할의 볼에 손을 올렸다.
“앞으로 나타날 마족은 힘 있는 자라면 누구나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서부를 뒤덮었던 마족의 역사와 원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이것만은 네가 해야만 해.”
“그러면 다행이고. 그런데 누나, 그것도 누나 짓이지? 폐허 지하에 마족을 가둔 거.”
“선물은 어땠어?”
“그 상회, 망했더라. 수표는 전부 종이 쪼가리가 됐고.”
“망해?”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하지만 마르랑 오래 알고 지낸 마르할은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황권 다툼에 걸렸다더라.”
“그 노망난 영감….”
마르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안 그렇게 보이지만, 저 누나는 은근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선물이 수포가 되었다는 말에 황권 다툼에 한 손 거들지도 모른다.
당연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고, 조용하고 음습하게 간섭하겠지. 황제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방식으로.
의지를 가진 자연재해가 악의를 품고 움직인다. 연루된 황족이 누군진 몰라도 불쌍하게 되었다.
마르할의 몸이 발부터 투명해졌다.
여긴 원래 마르할에게 허락된 공간이 아니다.
무언가의 작용으로 잠시 올 수 있었지만,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그런데 누나, 실라나티엘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던데.”
“만났어?”
“젊은 여자더라. 누나랑 처음 만났을 때랑 비슷한 나이.”
“예뻐?”
“그런 편이지. 젊은 시절의 누나랑… 아니, 농담.”
하늘에 생겨나는 커다란 불덩이를 보고 마르할은 다급히 말을 돌렸다. 이 공간에서도 마법을 쓸 수 있나?
하긴, 마르할 앞에 있는 사람은 불가능도 가능으로 만들 인간이다.
“…기다려. 몇 달 안 걸려.”
“아니, 내가 먼저 도와달라고 하기 전에는 간섭 안 하기로 다들 합의한 거 아니었어?”
“상황이 달라졌어.”
마르할의 몸이 사라졌다.
역사의 장에 혼자 남겨진 마르는 멍하니 마르할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세 개의 역사가 뒤얽힌 마르할의 탑.
단순한 탑의 크기로 따지면 용사를 따라갈 사람이 없지만, 탑의 이질성으로는 마르할이 제일이다.
마르할의 선택에 따라 저 탑은, 이 땅을 바꿀지도 모른다.
마르의 시선이 땅으로 내려갔다.
이곳은 역사의 장.
모든 것이 역사로 이루어진 공간.
그녀가 밟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역사다.
생명의 역사. 수억 년 동안 생명이 쌓은 역사가 모여 이루어진 대지.
마르가 무릎을 구부려 땅을 만졌다. 모래 한 알 없는 단단한 땅이다. 마르할이 몇 개의 탑을 만져 보았다면, 탑과 땅의 촉감이 똑같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수만 년 인류의 역사 끝에 초인과 마법사가 나타났지. 그리고 제국이 만든 마족과 초인을 넘어 나타난 인외.”
마르할은 마족이 된 인간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러면 인외가 된 인간도 슬슬 나타날 것이다.
거대 역사가 요동치고 있다.
그걸 관찰하는 게 그녀가 최근 골몰하는 일이다.
“빨리 끝내고 만나고 싶네.”
원래라면 만날 계획은 없었는데, 마르할이 꺼낸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여자. 젊고. 예쁜.
마르가 눈을 떴다. 집중이 깨어지자 정신이 역사의 장에서 현실로 돌아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쳤다.
* * *
정신을 차린 마르할의 오감이 처음 잡아낸 건 눈에 보이는 수녀복과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었다.
“경치 좋죠?”
“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에요?”
“남자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던데요.”
“누가 그래요?”
“부패한 사제들이요.”
“…표본이 너무 확실해서 부정하기 힘드네요.”
부패한 사제라 함은 육욕에 몸을 맡긴 사제들이다.
교회는 결혼과 중혼을 장려한다.
성서에 따르면 선민인 사제의 씨를 널리 퍼뜨리는 건 신의 뜻을 실천하는 중요한 일이다.
일반 사제들은 세간의 눈을 봐서라도 적정선을 지키지만, 어디를 가나 선을 넘는 놈들이 있다.
성인의 말에 따르면 그런 사제들은 친자식만 수백 명이 된다고 한다.
이제는 믿지만, 어린 마르할은 듣고도 믿지 못했던 말이다.
“그래서, 어때요?”
“기적이 좋긴 좋네요. 중상이었을 건데.”
마르할은 손을 움직여보았다. 양손 다 멀쩡히 움직인다. 배의 상처도 나은 것 같다.
이래서 성직자 지인이 좋다.
“그거 말고. 제 손이요.”
“어쩐지 아이 취급당하는 기분인데요.”
알라실은 아까부터 계속 마르할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알라실이 마르할의 말을 깔끔히 무시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머릿결이 좋네요. 따로 관리라도 해요?”
“타고나길 그래서요.”
“이거, 일단 챙겨뒀는데. 괜찮은 거예요?”
알라실이 마르할 앞에 들이민 건 검게 물든 깃펜이었다. 마르할은 깃펜을 들고 그 안에 든 힘을 가늠해 보았다.
“괜찮아요. 오히려 더 좋아졌어요.”
가스터가 죽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빼앗긴 것 이상의 역사가 더해졌다.
마르할은 깃펜을 잠시 자신에게 써보았다. 그리고 깃펜의 바뀐 기능을 바로 알았다.
‘역사를 빼앗는다.’
가스터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 그대로 깃펜에 깃들었다.
책임의 깃펜은 단순히 대상을 묶는 걸 넘어 대상이 가지고 있던 역사를 강탈하는 물건이 되었다.
역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효하게 쓸 수 있는 무지막지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마르할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알라실이 마르할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 힘이 억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못 속여요. 머리카락이라는 건 살아 있는 생물이에요.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이 관리 없이 이런 머릿결을 가지는 건 불가능해요. 그리고 이 피부도.”
알라실의 손이 마르할의 뺨을 쓰다듬었다.
“일반 용병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이에요. 당신은 누구죠? 누구기에 성인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죠?”
와야 할 질문이 왔다. 오히려 오지 않았으면 섭섭할 뻔했다.
마르할이 능청을 떨었다.
“답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실망할 거예요.”
“그거 큰일이네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 맞아요?”
“진짜로요. 저는 신뢰에 민감한 사람이거든요.”
마르할이 잠시 말을 골랐다. 그리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세간에는 용사 일행이 네 명으로 알려져 있죠. 하지만 다섯 번째 일행이 있었어요. 용사의 여정을 안내한 길잡이가요.”
이 신분의 가치는 이제 상당히 떨어졌다. 제 입으로 떠들고 다닐 정도는 안 되지만, 남들이 물으면 답해줄 수는 있다.
여러 진실과 거짓을 섞어, 마르할은 단 하나의 사실만 숨기면 된다.
마르할 무느두스라는 이름.
제국의 기록에도 없을 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