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78
제78화
레벨라는 기사와 함께 달렸다. 그녀는 추적 기사 지망생으로 배운 것들을 최대한 활용했다.
바닥에 시체가 있다. 최소 열 명 이상. 용병이지만, 단련 정도를 보면 모두 기사급 인재로 보인다.
그들이 죽어 있다. 격한 싸움이 벌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깔끔하게 잘린 무기에 시선이 이르러 그녀는 모든 싸움의 당위성을 확보했다.
그녀 앞에 있는 사람은 철을 베는 기사다.
제국에도 많지 않은 인재.
레벨라의 의문은 오히려 늘어났다.
‘그런 사람이 대체 왜?’
베이올라는 기반이 없다. 황제의 선언으로 황위 계승 가능성이 높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상위권에 있는 자들과는 아득한 차이가 있다.
그녀의 외조부인 칼라엔스 공작도 베이올라를 버렸다.
그럼 아버지의 인맥인가? 그건 더욱 아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좋게 말해 노장이고, 객관적으로 퇴물이다.
교관의 자질은 뛰어나지만, 기사로서의 역량은 고위 기사에 살짝 못 미친다. 치열한 황권 다툼에서 고위 기사 혼자 해낼 수 있는 건 없다.
베이올라 본인도 아니고 그녀의 호위를 돕겠다고 철을 베는 기사가 왔다.
그녀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두 사람은 지하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밤이었다. 그러니 소란을 벌이며 그녀를 구하러 왔겠지.
“서쪽 상점가. 잘도 이런 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었군요.”
제도 토박이답게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한눈에 알아차렸다.
“반응이 빠르군. 속도를 높이겠다.”
기사의 속도가 빨라졌다. 레벨라도 속도를 높였다. 뒤에서 어렴풋이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기사의 속도는 그녀가 간신히 따라잡을 정도가 되었다. 레벨라는 주변을 살피는 것도 잊고 호흡을 조절하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고위 기사의 신체 능력은 스트레킬을 보며 지긋지긋하게 경험했다.
철을 베는 기사라고 스트레킬보다 신체 능력이 우월하다는 법은 없지만, 그녀보다는 나을 게 확실했다.
기사는 레벨라의 속도에 맞춰주고 있었다.
왜? 의문을 머리 구석에 담고 그녀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기사인 그녀의 체력이 바닥을 보일 정도가 되자 기사가 멈췄다.
“여기다.”
“추적은요?”
“이 근처로는 오지 못한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전쟁이 되니까.”
기사는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가로 보이는 평범한 건물이다.
기사는 익숙하게 방으로 들어가 책장 안쪽에 있는 장치를 조작했다. 책장이 움직이며 숨겨진 공간이 나타났다.
그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고, 레벨라는 숨을 삼켰다.
풍성한 옷 너머로도 보이는 탄탄한 몸에 이지적인 눈, 베이올라보다 몇 살 많은 황족이자, 유력한 차기 황권 계승 후보.
황제의 열 번째 자식.
“세오닉 전하…?”
“와서 앉지.”
레벨라는 어정쩡하게 걸어가 세오닉의 맞은편에 앉았다.
집사가 차를 내왔다.
세오닉은 책을 보며 차를 마셨다. 레벨라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레벨라는 책을 슬쩍 보았다. 고대 제국어로 된 책이다.
검과 마법, 그리고 학문까지 섭렵한 천재.
세오닉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그가 나이가 조금만 더 많았다면, 그에게 몇 년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다른 형제들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을 거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다.
“전하, 이건 대체?”
세오닉이 책을 덮었다. 끝을 알 수 없는 눈이 그녀를 향했다.
“자네 상태를 아나?”
“짐작은 됩니다.”
“가족은 안타깝게 되었어. 한 번 털어버리면 공방을 바꿀 테니, 제일 중요한 사람을 구해야 했거든.”
“그럼, 제 가족은….”
“알지 않나?”
마치 그것도 모르냐고 묻는 듯한 시선이다. 모른다고 말하면 그녀에게 실망할 것 같은.
레벨라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그녀는 도박사의 기질을 타고났다.
베이올라의 호위가 된 것부터가 인생을 건 도박이다. 판돈 조금 잃은 것 가지고, 그녀는 동요하지 않는다.
“사람이 마족이 되다니,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원래 마족은 사람을 잡아먹으며 세력을 키웠지.”
“그건….”
반박할 수 없는 말이다.
마족은 원래 다른 생명을 잡아먹는 종족이다. 사람이 마족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황족 중 누군가가 마족을 키우고 있는 겁니까?”
“유렐이 그쪽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공방도 유렐이 지원하는 마법사의 것이지.”
“그래서 여기는 괜찮은 거군요.”
유렐과 세오닉은 모두 유력한 황위 후계자다.
판세는 이마릴, 유렐, 세오닉의 우세지만, 다른 사람들도 노는 게 아니다. 본인의 세력과 외가의 지원, 그리고 악운이 합쳐지면 언제 상황이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다.
그래서 서로를 건드리지 못한다.
레벨라가 서부로 떠나기 전에도 그랬다.
제도의 상황은 그녀가 떠나기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왜 저입니까?”
“베이올라의 호위 기사니까.”
“전하께서도 황녀님의 지식을 노리는 겁니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세오닉의 대답은 전부 두루뭉술해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할 거라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다.
레벨라도 중요한 답을 들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세오닉은 황위에 가까운 황족이며, 베이올라는 그의 경쟁자다.
“베이올라는 잘 지내나? 서부는 내 누이랑 안 맞을 것 같은데.”
“잘 지내고 계십니다.”
용사 일행의 길잡이가 있고, 공국의 전쟁 영웅이 있다.
베이올라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 지금 중요한 건 그녀의 몸이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천천히 마족이 되겠지.”
“세오닉 전하는 마법에도 정통한 것으로 압니다.”
“평범한 저주라면 내 쪽에서 대응할 수 있겠지. 하지만 마족과 관련된 일은 조금 궤가 달라.”
“방법이 없다는 거군요.”
“서쪽. 아직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땅. 그곳이라면 마족 혼자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베이올라에게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고.”
연합이 만들어지고 5년이 지났다. 하지만 서부에서 개척된 부분은 극히 일부다.
멸망한 세상의 반을 5년 만에 재건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최소 수십 년, 어쩌면 100년도 넘는 시간이 걸릴 일이다.
그리로 숨으면, 마족이 되어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최소한 베이올라에게 마지막 인사 정도는 건넬 수 있다.
“더 궁금한 건 없나? 대답할 수 있는 선에서는 대답해주지.”
“폐하는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여긴 제도야.”
“…실언했습니다.”
제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것도 유렐이 직접 손대고 있는 일을 황제가 아예 모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황제는 유렐이 마족을 이용하는 걸 용인하고 있다.
레벨라는 유렐이 보낸 마차를 마르할이 털기 전에, 역천의 거인이 서부의 하늘에 강림하기 전에 서부를 떠났다.
거기서 베이올라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엘리스와 마르할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그녀는 모른다.
레벨라는 그저 황제가 마족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했다.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정신력에 따라 다르겠지. 자네 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 듣고 싶나?”
“제 가족도 저와 같은 명령을 받았습니까?”
“거의 비슷하겠지. 그게 유렐의 목표니까. 대답이 되었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을 한 마리 받을 수 있을까요?”
세오닉이 손을 들자 집사가 바깥으로 나갔다.
준비를 하려는 것이리라.
“조금 시간이 남는군. 여기서부터는 내 넋두리다. 유렐은 서부에 상당히 많은 것들을 투자하고 있어. 바체아 제국을 조사하는 걸 넘어 서부에 영향력을 가지길 원하지. 이마릴도 서부에 관심을 가지곤 있지만, 지금까지는 기사 세력을 집결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레벨라는 세오닉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천금과 같은 정보를 주고 있었다. 레벨라가 마지막으로 베이올라에게 전해줄 정보들을.
“서부에서 마왕과 같은 형체가 강림하고, 하늘이 갈라졌다더군. 마족과 용사가 싸웠다는 소문이 파다해.”
누가 한 일인지 알겠다.
용사 말고 같은 일이 가능할 것 같은 사람이 한 명 있다.
“셋째 누나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던 일이 창고가 불타며 일그러졌어. 그쪽은 당분간 움직이지 못하겠지.”
셋째 네루는 외가가 제국의 상권을 강하게 잡고 있다. 그녀와 힘을 합친 황족도 몇 명 있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다.
‘황족과 그 외가의 세력 몇 개가 힘을 합쳐 견제하는 게 이 사람이지.’
첫째 이마릴, 다섯째 유렐, 열째 세오닉. 독보적인 세 명.
집사가 돌아왔다.
“황자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어. 이제 끝이군. 인상 깊은 만남이었어.”
“저에게도 그렇습니다.”
“이쪽으로.”
비밀 통로를 지나 레벨라는 제도의 성벽 부근에서 바깥으로 나왔다.
집사가 말을 한 마리 끌고 왔다. 그녀도 몇 번 보지 못한 명마였다.
“쪽문이 열려 있을 겁니다.”
레벨라는 말에 올라타고 달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른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이랴!”
레벨라가 거칠게 말을 몰았다.
* * *
이주민 행렬이 길어지며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다.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행렬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젊은 남자가 주를 이뤘고, 젊은 여자, 아이와 노인 순서였다.
영지의 노동력을 책임지는 젊은 남자가 유출된다. 영주들이 이주민들을 곱게 보지 않는 이유다.
마르할은 이 부분에 완벽하게 대비했다. 미리 돈을 듬뿍 먹인 덕에 영주들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진 않았다.
딱 한 명, 약속을 어기고 사병을 동원한 영주가 있긴 했지만, 스트레킬이 입은 전신 갑옷을 보자마자 말 머리를 돌려 줄행랑쳤다.
“형아, 또 연주. 연주.”
“들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얘들이 못 들었대!”
전부 아까도 봤던 얼굴들이다. 열 명이 넘으니 한 번에 기억하진 못할 거라 생각했겠지.
아이다운 꼼수다.
마르할은 모르는 척 품에서 하모니카를 꺼냈다.
한창 놀거나 밭에서 잡초 뽑는 일을 돕고 있을 나이다.
종일 마차에 있거나 걷기만 하려니 지루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르할이 하모니카를 불었다. 서부에 들렀을 때 몇 달 동안 연주하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심심하면 불고는 했기에 들어본 적 있는 곡조는 대강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악기가 내는 소리에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마린도 가까운 장소에서 마르할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왜 그러는감?”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오시려고요? 아무것도 없는 맨땅이에요.”
“내가 열다섯 살에 집에 불이 났어. 집을 다시 짓느라 소작 짓던 땅도 몰수당하고 맨땅에서 다시 시작했지. 내가 서른세 살 때는 돌림병으로 마을이 사라졌어. 그래서 옆에 있던 영지에서 남편 새끼가 소작 지을 땅을 구할 때까지 창고에서 바느질하면서 살았어. 이 늙은이가 살면서 몇 번이나 다시 시작해봤을 것 같어?”
“그래도….”
마린이 망설였다. 그녀를 곤란하게 하는 건 노파의 고집이다.
마린이 지주라는 걸 안 노파는 그녀가 지주가 된 땅에 살고 싶어 했다. 건물도 없는 맨땅이라는 말을 해도 통하지 않았다.
죽어도 그녀의 땅에서 죽고 싶다는데, 친조모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린은 허락하기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마을에는 늙은 것이 하나씩은 필요한 법이여. 농사짓는 법. 다툼을 중재하는 법. 전부 여기에 들어 있어.”
노파가 자기 머리를 두드렸다.
마린도 아는 바다. 기사나 마법사 같은 초인이 아니라면 가벼운 감기나 배탈로도 죽을 수 있는 세상이다.
노인의 지혜는 어지간한 책보다 가치 있다. 괜히 마을에서 노인들이 대접받는 게 아니다.
“작긴 해도, 마을을 만드는 일에도 한 손 거들어봤어. 한번 믿어봐.”
“좋지 않아요?”
“마르할 님?”
하모니카를 연주하던 마르할이 그녀 뒤에 와 있었다.
“추하게 늙는 건 쉬워도, 지혜롭게 늙는 건 쉽지 않죠. 안 그래요, 할머니?”
“젊은이가 뭘 좀 아는구먼.”
“하지만 마르할 님.”
“집이야 지으면 되죠. 재료랑 사람만 있으면 집 몇 채 올리는 건 어렵지도 않고요. 할머니는 집 짓는 법도 알고 계시죠?”
“내가 대패질한 나무만으로 마을 하나는 올렸어.”
“어이쿠, 힘이 장사셨네. 그래서 결혼이나 제대로 하셨어요?”
“다른 년들 다 엎어치고 마을에서 제일 잘생긴 남자를 채갔지.”
노파가 낄낄 웃었다. 마르할도 키득였다.
“이런 분이 마을을 관리해주면 든든할 거예요. 돈은 신경 쓸 필요 없으니, 모시는 게 어때요?”
“그려그려.”
“그렇게 말하신다면…. 그런데 왜 이쪽으로 오시려고요? 다른 좋은 곳도 많아요.”
마르할이 지주로 있는 개척촌이라든가.
그곳은 마린이 봐도 정말 좋은 마을이다. 외부인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분위기가 은연중에 깔려 있지만, 타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편이 더 마음이 놓인다는 걸 부정하기 어렵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라도 눈치를 보게 된다. 하지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외부인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이 청년이 주인인 마을이라면, 분명 잘 만들어져 있을 거여. 안 그려?”
“맞아요.”
“그런데 그럼 재미가 없어.”
“네? 재미가 없어요?”
마린이 되물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정하는 중요한 일 아닌가. 그걸 정하는 요소가 재미라니.
“안주인이 있는 마을에 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늙은이 취급이나 당하면서 죽을 때까지 희멀건 죽만 먹으면서 바느질이나 할 거여. 그런데 내가 만든 마을이라면, 고기도 좀 뜯고 젊은것들 아부도 좀 듣고 살 수 있지 않것어?”
“아주 야망 있는 분이셨네.”
“늙은 놈은 야망도 없다는 건 다 헛소리여. 늙어서 대접받고 싶다는 게 잘못됐남?”
“그런데 왜 제 땅에 오시려고요?”
“처자가 매일 우리 늙은이들 수발이나 들고 있는 걸 봤으니까. 내가 가면 홀대는 안 하겠다 싶었지. 그래서, 싫어?”
아이와 노인을 돕는 건 빠른 이동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아이가 불편했던 마린은 아이보다는 노인을 돕는 걸 택했다.
조모의 간병을 했던 경험 덕분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죽은 조모가 생각나기도 했고.
“아뇨. 어서 오세요.”
마린이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