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
제9화
마르할은 지상으로 올라왔다.
뒤쪽으로 무너진 성벽의 잔해가 보였고, 시체도 몇 구 보였다.
‘피를 보면 기절하는 사람이 무슨 깡으로 서부에 온 거지?’
서부에 살면서 피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녀가 싸움을 피해도, 자기들끼리 주먹질해서 피 질질 흘리는 주정뱅이들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베이올라는 그렇다 쳐도 호위인 레벨라는 서부가 어떤 곳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걸 알고도 자기가 모시는 황족을 서부로 데려온 건 이상했다.
베이올라는 말했다. 진짜 괴물들을 못 봐서 하는 말이라고.
마르할은 쓰게 웃었다.
‘누가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하늘을 가르는 용사.
땅을 뒤집는 마법사.
잘린 팔다리도 자라게 하는 성인.
찰나에 백의 목숨을 취하는 도둑.
그리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 하나.
초인을 넘어 인외라 불리는 괴물들 사이에서 무능한 소년이 느낀 무력감이 어땠는지는 세상에서 오직 마르할만이 안다.
반쯤 자비로 그들 사이에 있을 수 있었던 소년만이 그때의 처절한 무력감을 기억한다.
뒤쪽에서 철이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레벨라가 스트레킬의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스트레킬의 머리가 계단에 부딪혔다.
“아니, 들면 되잖아요. 초인이면서. 저러다 뇌진탕 오겠다.”
“체격 차이가 너무 나서 힘듭니다. 그리고 고위 기사는 이 정도로 다치지 않습니다. 벽돌로 머리를 내려찍어도 멀쩡하겠죠. 저는 황녀님을 챙겨야 해서.”
스트레킬을 바닥에 대충 던진 레벨라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베이올라의 손을 잡고 올라왔다.
지상으로 올라온 둘에게 마르할이 물었다.
“서부에는 왜 왔죠. 피를 보면 기절하는 황녀라니, 서부에서 절대 버틸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나요.”
“말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황궁에 있었다간 죽었을 테니까.”
“황녀님?!”
베이올라는 근처를 살피더니 앉을 만한 물건이 없다는 걸 알고는 그냥 맨땅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무릎을 세우고는 몸을 둥글게 말았다.
“오래된 귀족 가문의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
“하늘이 그들의 귀함을 내렸다. 세상에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귀족은 존귀하다. 그들이 가진 능력은 그들의 귀함을 하늘이 내렸다는 증거이니. 귀족을 적대한다는 건 하늘을 적대하는 것과 같다.
서부와 동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듣는 말이다.
모든 귀족이 특별하진 않다. 그러나 일부 귀족은, 정말로 날 때부터 특별하다.
그들이 쌓은 역사가 그들을 특별하게 만든다.
하늘이 그들을 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쌓은 역사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존귀해졌다.
하지만 세상의 비밀을 아는 이는 극히 소수이니, 대부분의 사람은 귀족이라는 태생을 특별하게 여기게 되었다.
베이올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황족이 절대로 뱉어선 안 될 말을 했다. 황족의 핏줄과 권위를 부정했다.
“아니. 그들의 힘은 하늘이 내린 게 아니야. 그냥… 남들보다 조금 더 알고, 그걸 영악하게 쓸 줄 알 뿐이지.”
“많이 알고 잘 사용한다. 세상에서 그런 걸 능력 있다 말합니다. 그걸 영악이라 표현하는 사람은, 대개 능력 있는 사람에게 밀려난 피해자들이죠.”
베이올라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그럴지도. 역사를 가진 것에는 힘이 깃들어. 사람과 물건을 막론하고, 오래되고 여러 사연을 가진 물건일수록 강한 힘을 발휘해.”
“황녀님. 그건 극비입니다.”
지배자들이 독점하고 있는 세상의 비밀이다.
너무나 은밀해, 무언의 약속을 어겼을 때의 처벌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비밀을 유출하면 황족이라도 멀쩡할 수 없다.
황위 계승권이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지금이라면 더더욱.
“여기 밀고할 사람은 없어. 내가 한 말이 황궁까지 닿을 리도 없고.”
“제가 황궁에 밀고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일개 용병의 말을 누가 믿어줄까?”
“아주 바보는 아니었군요.”
“바보 아니거든! 아니, 차라리 바보였으면 좋았을지도….”
흥분했다가 우울했다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마르할은 평생 베이올라의 기분을 맞춰줘야 할 레벨라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냈다.
동정받는 당사자는 그 의미도 모르고 눈가를 찌푸렸다.
“아바마마, 빅토르마 므에실리고 2세는 바체아 제국 500년의 역사를 찾고 있어. 바체아 제국의 역사를 밝혀낸 사람에게 황위를 물려준다고 선언할 정도로.”
“고고학자나 역사학자가 황제가 되겠네요. 므에트 제국 황제의 판단력이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농담 아냐. 제도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 그리고 발굴로 이름난 용병들은 이미 황족들에게 포섭되었어. 몇 달 후면 서부까지 소문이 닿을걸. 역사라는 건 그 정도로 대단한 거야. 평범한 사람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거라면… 기사. 기사의 단련법도 역사의 일종이야. 기사 가문이 대대로 강한 기사만 배출하는 것도 그런 이유고.”
“역사가 대단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과 이게 무슨 상관입니까?”
묵직한 중저음이 끼어들었다.
“쌓인 것들은 특별함을 만든다. 귀족들은 그걸 알고 이용하지.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을까? 모든 일에는 처음이 있다. 최초를 만들어낸 특별한 사람들이.”
스트레킬이었다. 누워 있던 그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젠장, 어지럽군. 피를 너무 흘렸어.”
“그 상태로 깨어나는 게 더 놀라운데요.”
“전쟁터는 부상자를 봐주지 않는다. 죽지 않으려면 죽기 전까지 움직여야 하지.”
스트레킬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시체가 움직인다고 놀라 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꼴이었지만, 당사자는 그 상태 자체가 익숙해 보였다.
“쌓인 것들이, 역사가 힘이 된다는 걸 아는 건 극소수의 귀족이 끝이다. 그러면 기사들은 뭐고, 혼자 수련해 초인이 되는 용병과 기인들은? 재능이다. 세상에는 같은 것을 쌓아도 남들보다 많이, 잘 쌓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한 번은 남들의 하루고, 그들의 하루는 남들의 평생이지. 평범하게 태어나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사람들이, 날 때부터 고귀하게 나게 되면 진정한 괴물이 탄생한다. 성황국의 성인처럼.”
“성인을 보신 적이 있나 보죠.”
스트레킬은 장갑과 팔뚝을 보호하는 갑옷을 벗었다.
그의 왼쪽 팔뚝에는 긴 흉터가 있었다.
“내 팔은 마족과 싸우며 한 번 잘렸다. 그때 잘린 팔을 붙여주신 분이, 아직 용사 일행에 합류하기 전의 그분이었지. 그분은 사제랍시고 꺼드럭대는 돌팔이들과는 달랐다. 인외. 인간을 벗어난 기적. 난 그분이 자신을 신의 현신이라 해도 믿을 거다.”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신 줄 알았는데, 투철한 신앙인이셨군요.”
“신앙? 성황국도 결국 남들과 다른 역사를 쌓았을 뿐인 귀족이다. 내가 믿는 건 그분이지, 성황국 자체는 혐오한다.”
까드득. 스트레킬이 이를 갈았다. 고위 기사는 이 가는 소리도 살벌했다.
성황국. 신을 모신다면서 사제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도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않던 정치인 집단.
제국의 지원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성황국은, 겉으로나마 신을 섬기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그들은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마족과의 전쟁에서 성황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끝까지 밍기적대며 시간을 끌었고, 전장에 있던 사제들은 모두 신실한 신앙을 가진 개인이었다.
전장 어디에도 성황국의 깃발은 없었고, 그 악명 높은 성기사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신? 좆 까라 그래. 그놈들이 섬기는 건 신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다.”
“진정하시죠. 그 몸으로 흥분하면 쓰러집니다.”
“내 몸은 내가 안다. 제국 황녀, 네가 하려는 말이 이거겠지. 네 형제들은 ‘잘 쌓는’ 사람이라고.”
“맞아. 그중 세 명은 특히. 첫째 이마릴은 다섯 살에 황궁 근위 기사를 검으로 쓰러뜨렸고, 다섯째 유렐은 신비 추적자들에게 인정받은 천재 마법사, 그리고 열째 세오닉은 검과 마법, 그리고 학문까지 섭렵한 괴물.”
‘여기서부터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하고 레벨라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황녀님은 황족 중에서 고대 제국어를 가장 잘 쓰시는 분이죠. 원래라면 위험한 재능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폐하가 그런 선언을 해버리셨습니다.”
“바체아 제국과 고대 제국어는 떼어낼 수 없는 사이죠.”
“맞습니다. 그래서 황녀님은 황궁에 계실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장은 안전해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몰랐죠. 제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힘을 키우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손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군요.”
레벨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십여 명의 호위가 모두 죽었고, 그녀는 실패했다.
황궁으로 돌아가는 건 불구덩이로 걸어 들어가는 짓이다.
적이 누군지는 모른다. 하지만 황녀의 직속 호위까지 손대는 인간이 한 번 서부로 떠났다가 돌아온 베이올라를 가만히 둘까?
아니다. 다음에는 훨씬 은밀하고 치명적인 비수가 그녀와 베이올라의 목 아래로 들이밀어질 터였다.
“고대 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하면 될 텐데요. 황족 중에서 잘하는 거지, 세상에서 제일 잘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황녀님의 고대 제국어 스승이 므에트 제국에서 고대 제국어를 가장 잘하는 사람입니다. 일가를 이룬 대가이기도 하죠. 므에트 제국에서 고대 제국어를 연구하는 사람 중 그분과 안면 없는 분이 없습니다.”
“취미로 배우던 고대 제국어가 갑자기 황위 계승에 꼭 필요한 교양이 되었고, 그 고대 제국어를 독점하는 파벌과 가장 가까운 게 그녀라는 거군요.”
“정확합니다.”
누가 제국 황녀 아니랄까 봐 저쪽도 삶이 평탄하지는 않았다.
마르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명은 기사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할 줄 아는 건 고대 제국어밖에 없는 화초. 한 명은 아는 건 많아 보이지만 경험은 없어 보이는 호위 기사.
마지막으로 남은 건, 움직이기도 힘들어 보이는 환자다.
몸을 써야 하는 일을 할 사람은 마르할밖에 없었다.
“슬슬 저녁 먹고 야영 준비를 하죠.”
“나도 돕겠다.”
“환자는 앉아 있으세요.”
“나보고 지금 저 둘과 같이 있으라고?”
스트레킬이 제정신이냐는 눈빛으로 물었다.
공국의 기사와 제국의 황족을 한자리에 모아두면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베이올라와 레벨라는 평범한 황족과 호위가 아니었다.
“죽이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애송이에게 당하지도 않는다.”
“그럼 그냥 여기 계시죠.”
스트레킬은 막무가내로 일어났다.
몇 번 비틀거리나 싶더니 자세를 바로잡고 똑바로 섰다.
마르할에게는 그가 무리하고 있는 게 빤히 보였지만, 본인이 저리 강건하게 나가는 걸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입구 쪽으로 가죠. 죽은 말이 몇 마리 있었으니까요.”
베이올라와 레벨라를 놔두고 스트레킬과 마르할은 무너진 성벽의 흔적을 따라 걸었다.
커다란 돌덩이를 끼고 돌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스트레킬이 돌에 등을 기대고 숨을 헐떡였다.
“거보세요. 쓰러진다니까.”
“허억. 허억. 눈 뜨고 죽는 것보단 낫다.”
“그 둘이 가능할까요.”
“궁지에 몰린 사람은 무슨 짓이든 한다.”
“자기 이야기라는 건 알죠?”
스트레킬은 입을 다물었다.
마르할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쓰러져 있는 말에게 다가갔다. 지쳐 쓰러진 말은 죽기 직전이었다.
토지 경주에 참가한 주인이 말을 닦달해 도시에 도착한 다음 내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말들이야말로 토지 경주의 가장 큰 피해자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들의 욕심으로 내달리지만, 말은 인간의 욕망에 끌려갈 뿐이다.
“다음 생에는 인간으로 태어나라… 아니지. 그냥 태어나지 말고 천국에서 살렴.”
푹. 단검이 말의 숨통을 끊었다. 마르할은 말의 시신에서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부분을 도려내 그걸 들고 돌아갔다.
“먹어요.”
“이걸?”
“전쟁 참가자라면 똥 빼고는 다 먹을 줄 알잖아요?”
“먹는데 똥 이야기 꺼내고 있어. 더럽게시리.”
질색하며 스트레킬은 마르할이 내민 생고기를 들고 씹어 먹었다.
지금은 맛이나 질감보다, 우선 먹고 소화해 피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피를 받을 그릇 없나?”
“야만인이 따로 없네.”
마르할은 말이 달고 있던 짐을 뒤져 나무로 된 그릇을 찾아냈다. 금 간 그릇에 피를 가득 담아주자 스트레킬은 피를 음료 삼아 다섯은 먹을 고기를 혼자 먹어 치웠다.
“이제 살 것 같아.”
스트레킬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보다 훨씬 힘이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위장으로 기사가 되셨나… 손이 늘어났으니 됐지. 야영 준비를 하러 가죠. 측량사가 올 때까지 버티려면 물자가 필요하니까요.”
“그 전에,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너는 성인님과 무슨 관계지.”
“제자라고 하고 싶지만, 배움이 얕아 제자라고는 못 하는 사이요. 표정이 왜 그래요? 질문에 답해줬더니.”
“…순순히 대답할 줄은 몰랐다. 그게 밝혀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나?”
“성황국에서 이단심문관과 성기사들이 찾아오겠죠. 어차피 그치들은 여기까지 못 와요. 와도 날 못 잡고. 빨리빨리 움직여요. 이 시기에는 밤이 빠르니까.”
아직도 멍한 스트레킬을 두고 마르할은 방금 죽인 말에게서 추가로 고기를 발라내고, 근처에 널브러져 있는 짐더미에서 쓸 수 있는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성인의 제자가 전쟁터의 까마귀처럼 버려진 물건이나 줍고 있다. 스트레킬은 그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뭐 해요. 시간 없다니까요.”
스트레킬은 엉거주춤 다가가 남들이 버린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
고위 기사와 성인의 제자는 날이 어두워지기 직전까지 허리를 구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