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포도주가 주름진 얼굴을 타고 떨어진다. 일부는 주름 사이에 맺히고, 나머지가 노파의 옷을 물들인다.
노파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노파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초인의 신체 능력도, 이치를 벗어나는 마법도 그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노파에게는 힘이 있다. 모진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쌓은 안목과 평정심이다.
노파는 그것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녀 앞에 있는 남자의 능력은 놀라운 것이지만, 나이는 서른 살도 안 되어 보인다. 그녀의 반도 못 산 애송이다.
애송이가 하는 일이라면 그녀도 할 수 있다.
노파가 마르할의 옷차림을 살폈다.
천으로 만든 옷에 중요 부위를 가죽으로 덧대고 있다. 적당히 색감을 살려 칙칙하지 않게 만들었다. 용병들이 자주 입는 옷이다.
옷은 먼지로 더럽다. 도시 안에서 전신이 저렇게 더러워질 일은 없다. 조금 전까지 바깥에 있다가 막 돌아왔다.
얼굴은 깨끗하다. 하루 반 이상을 볕 아래 있는 용병이라면 피부가 깨끗할 수가 없다. 실전에 나가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면, 그러면…?
상반되는 단서에 노파의 사고가 멈췄다.
지나치게 깨끗한 마르할의 피부가 다른 단서를 전부 잡아먹는다.
용병은 절대 피부가 깨끗할 수 없다. 여자인 그녀가 더 잘 안다.
밤에만 일하거나 공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직업이 아니라면, 태양 아래 일하는 사람은 피부가 상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고, 진리다.
서부에 사는 용병은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가 없다.
용병의 옷만 입은 도련님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일련의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녀 앞에 있는 남자의 행동은 10년은 구른 용병, 특히 용병을 지휘하는 사람이나 보일 법한 행동이다.
귀족들은 남자 같은 행동을 천박하다 여겨 하지 않는다.
노파의 머리에 술을 부은 마르할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깍지 낀 손을 무릎에 올렸다. 그리고 노파를 지그시 바라봤다.
노파의 시선에 마르할이 물었다.
“왜요?”
아이의 질문처럼 순수함이 깃든 목소리다. 진짜 몰라서 되묻는 듯한 순수함.
탁하게 풀린 눈과 순수한 목소리가 지독하게 이질적이다. 즉시 검을 빼들어 그녀의 목을 찔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눈이다.
노파는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가 다물기를 반복했다.
입을 열 수가 없다. 폐에 물이 찬 것처럼 숨 쉬기가 힘들다.
“편해지고 싶어요?”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의식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마르할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눈은 감겨 있다.
노파의 머리에 한 가지 사실이 스쳤다. 그녀가 검은 손가락과 오래 거래하긴 했지만, 그들의 신뢰를 완전히 얻지는 못했다.
마약은 고가품이다. 마약을 파는 장소에 노파 하나만 달랑 두는 건 약을 훔쳐달라는 것과 같다.
그녀에게는 검은 손가락에서 보낸 호위 겸 감시자가 붙어 있다. 그리고 감시자가 평소 숨어 있는 장소가 천장이다.
노파는 탁자 아래, 반대편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암살자에게 신호를 보냈다.
두 번, 세 번, 열 번이 넘어가도 암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르할이 눈을 떴다. 노파가 한차례 몸을 들썩였다.
“저 위에 있는 거요? 아무리 불러도 소용없어요.”
천장이 부서지며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떨어졌다. 머리부터 떨어진 남자의 목이 우득 부러졌다.
“제, 제가, 이 늙은이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전 자기가 늙었다고 범죄를 합리화하는 사람을 싫어해요.”
노파가 몸을 웅크렸다. 등을 구부리고 다리를 의자 위로 모았다.
천을 펼쳐 체구를 크게 보이게 하고 있었지만, 드러난 노파의 몸은 보잘것없었다.
“이 미천한… 미천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자비를….”
“약, 누가 만들어요?”
“저는 모릅니다. 그냥 매일 이 자리에서 오는 약을 받기만… 정말로! 정말 모릅니다!”
노파는 겨울에 눈보라 치는 설산에 던져진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마르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키는 것만 하는 노인은 암살자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있는 노인이라면, 알려주지 않은 것도 알아야 한다. 그게 아니면 저 나이까지 살아남지 못한다.
노파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탁자에 상체를 붙이고는 미친 사람처럼 말을 쏟아냈다.
“황금! 케르디시에서 여기까지 오며 유독 금을 많이 봤습니다. 제 보수도 금싸라기로 받았습니다. 제국 금화도 아니고 금을 그만큼 많이 가지고 있을 놈들이 아닙니다! 분명, 분명 무언가 있었을 겁니다! 금과 관련된 무언가가!”
“그래서요?”
“금을 쫓으면 놈들에게 닿을 수 있을 겁니다! 금화가 아니라 금입니다! 순도 높은 진짜 금!”
광인처럼 말을 쏟아낸 노파가 마르할의 눈치를 봤다. 주름살에 가려진 눈동자가 움직인다. 마르할을 보며 비열하게 씨익 웃는다.
마르할이 탁자에 올려두었던 빈 술병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노파의 머리에 술병을 내리쳤다.
유리로 된 병이 깨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노파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탁자에 쓰러졌다.
“아스탈, 이 사람 들 수 있어요?”
“그, 그 정도야 쉽지.”
마르할의 분위기에 자기가 숨을 멈추고 있는지도 몰랐던 아스탈이 참았던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아스탈이 노파를 짐짝처럼 들었다.
“카리안, 다른 정보는 없어요?”
“아니, 나도 여기까지야.”
“그러면 한 번 돌아가죠. 다른 사람들이 돌아왔을지도 모르고요.”
세 사람은 판잣집을 나왔다. 골목을 빠져나오니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이 거리에 늘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개중에는 한창 클 나이인 아이도 있었다. 완전히 풀린 눈으로 벽에 기대 축 늘어져 있는 게 불쌍하다기보다는 기괴했다.
싸구려 약에 호기심에 손을 댔을 수도 있고, 나쁜 어른이 억지로 먹게 시켰을 수도 있다.
어쨌든, 저 아이에게 미래는 기대하기 힘들다.
카리안은 잠깐의 일탈로 앞으로의 인생을 고통 속에서 살게 될 아이가 안타까웠다.
“무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아니, 목적은 알지만. 이 정도로 도시를 망가뜨리면 도시가 손에 들어와도 손해 아닌가?”
“카리안, 쓰레기장이 생기는 과정을 본 적 있어요?”
“아니. 생각도 해본 적 없어.”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싶은 공터에, 그냥 쓰레기 한 더미를 던져두면 돼요.”
“겨우 그걸로?”
“쓰레기가 모여 있는 걸 보면, 사람들도 거기로 쓰레기를 하나씩 던지기 시작해요. 식당 주인, 상점 주인도 가게에서 나온 쓰레기를 그리로 버리기 시작하고요. 그러면 쓰레기장 하나가 만들어지는 거죠.”
카리안은 마르할이 하려는 말을 알았다.
“이 도시를 그렇게 만들겠다? 마약과 돈에 이끌린 사람이 모이는 거대한 마약굴로?”
“마약은 돈이 되죠. 마약을 하거나 팔 사람들이라면 그놈들 수준도 뻔하고요. 케르디시에도 그런 도시가 하나 있어요. 공국 국경선에 딱 붙은 도시인데, 불법인 일들을 즐기러 귀족들이 자주 가곤 하죠.”
약소국 케르디시는 공국의 속국에 가깝다. 공국과 케르디시의 국경을 넘나드는 건 따로 자격이나 준비물이 필요 없다. 그냥 걸어서 넘어가면 된다.
“설마… 암살자도?”
“맞아요. 거기가 검은 손가락이 본거지로 삼은 도시예요. 암살 수요가 넘치죠. 서부에도 그런 도시를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해당 도시는 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들의 알력 다툼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주가 통제해 보려고 해도 도시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들의 무력이 영주가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무력을 웃돈다.
검은 손가락의 계획이 성공했다면, 이 도시도 비슷한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서부의 쓰레기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장이 되었겠지.
도시에 근간을 두고 있는 마르할의 재산도 검은 손가락의 손에 떨어졌을 것이다.
저택에 도착한 마르할은 저택에서 일하는 일꾼을 불러 노파를 넘겼다.
“지하로요.”
일꾼은 인사를 한 번 하고는 아스탈에게서 노파를 받았다. 그리고 노파를 옮기기 전에 마르할에게 전했다.
“휴고 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어디에 있어요?”
“식당에서 식사 중이십니다.”
일꾼이 저택 뒤편으로 사라졌다.
“카리안은 어쩔래요?”
“나야 괜찮지. 그보다 아스탈은?”
“…나는 조금 쉬어도 될까?”
아스탈이 마르할의 눈치를 봤다. 노파가 무겁진 않았지만, 인력시장에서 저택까지 거리가 있었다.
평범한 성인인 아스탈은 저택까지 노파를 나르는 것만으로 녹초가 되었다. 이 이상 깊이 발 들이고 싶지 않다는 심정도 있다.
이미 카리안과 다니며 많은 것을 보았고, 마르할과 노파의 대화를 들은 것으로 그의 정신력은 한계에 달했다.
“피곤하죠? 여러 가지로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건 아닌가 싶은 질문이다. 하지만 아스탈은 질문에 일일이 놀랄 힘도 없었다.
“솔직히 그래. 나한테는 버거워.”
“가서 쉬어요. 수고했어요.”
아스탈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마르할이 카리안에게 물었다.
“아스탈은 어때요?”
“고향에 있을 때의 나를 보는 기분? 감정에 충실하고, 조금 어설프고. 그래도 사람은 착해.”
자신조차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던 카리안이 이제 객관적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카리안 본인은 모른다.
하지만 카리안 주변에 있는 사람은 다들 느끼고 있다. 물론, 마르할도.
“본인이 들으면 마지막 말을 제일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착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
“그것도 그래요.”
두 사람도 저택으로 들어갔다.
저택 식당에는 휴고가 있었다. 검은 옷이 먼지와 땀으로 엉망이다. 척 봐도 덜 익은 고기를 무표정하게 씹어 먹고 있던 휴고는 마르할을 보고 입을 멈췄다.
“먹고 말해요.”
휴고가 고기를 삼켰다. 젖은 외투를 벗고 의자에 던져놨던 새로운 외투를 입었다.
“면목 없습니다.”
“됐어요. 이런 일은 먼저 움직이는 쪽이 유리하니까요. 다른 사람들은요?”
“나가 있습니다. 곧 돌아올 겁니다.”
“성과는 있었어요?”
“판매상을 최대한 잡아들이고 있긴 합니다만, 마땅한 증거는 아직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인력시장 근처는 안 찾아봤죠?”
“설마 라일 영감이?”
인력시장 근처는 라일이 꽉 잡고 있다. 단순 판매상도 아니고 주요 유통책이 그 근처에 있다면 영감의 눈을 피하지 못한다.
그래서 휴고도 인력시장 쪽은 직접 조사하지 않았다. 그가 백날 조사해야 라일이 말 한마디 꺼내는 게 더 효율적이다.
휴고의 콧구멍이 커졌다. 목에는 핏대가 올라왔다. 마르할이 손을 들어 휴고를 진정시켰다.
“진정해요. 라일도 생각 없이 한 일은 아니니까. 그보다 도시 전체의 장부를 모아줘요.”
“가게 하나도 아니고 도시 전체의 장부를 살피는 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 전에 도시가….”
“꼼꼼히 살필 필요 없어요. 금. 금화가 아니라 금으로 값을 지불한 내역만 찾아줘요. 작은 조각이라도 좋아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암살자가 엮여 있어요. 검은 손가락이라고 알아요?”
“이름만 압니다.”
“알아서들 조심하게 해요.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마르할이 직접 만나는 사람은 휴고밖에 없지만, 휴고도 아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
그게 아니면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
그들 대부분은 힘 좀 쓰는, 글 좀 읽을 줄 아는 일반인이다. 진짜 암살자와 맞닥뜨리면 죽는다.
“저희도 식사나 하죠. 조리장! 먹기 쉬운 걸로 빠르게 차려줘요!”
안쪽에서 힘찬 대답이 들렸고, 빵 굽는 냄새가 식당까지 퍼졌다.
둘이 밥을 기다리는 사이, 식당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더 들어왔다.
“돌아왔나? 나도 식사나 해야겠군.”
“스트레킬? 베이는요?”
“창고에 있다. 흑단목 중에 가짜가 얼마나 섞였는지 고르는 중이지.”
“그런 일도 있었어요?”
“여기에 온 것도 원래 그게 이유였다. 마약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사기꾼을 쫓고 있었겠지.”
“다사다난하네요. 서부는 언제나 그랬지만요.”
장부를 수집하러 휴고가 밖으로 나갔고, 빵과 햄으로 만들어진 간단한 식사가 준비되었다.
빵에 야채와 햄을 올리며 스트레킬이 물었다.
“마린은 돌아오지 않았나?”
“암살자한테 당했어요. 지금은 독 때문에 자고 있어요.”
스트레킬의 손에 있던 포크가 부러졌다. 카리안도 들고 있던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해독은 끝났어요. 그냥 자는 거예요.”
“그럼 다행이군.”
스트레킬은 반쪽이 된 포크를 옆으로 치우고 새로운 포크로 빵과 햄을 잘랐다.
달그락달그락. 그가 포크를 움직일 때마다 접시에서 매서운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