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3
제93화
다곤이 발소리를 죽였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복도에 발을 디뎠다. 그러는 그의 뒤에서 절그럭거리는 철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씨! 소리 나잖아!”
“문제인가?”
투구를 벗은 카반이 우묵한 눈으로 다곤을 내려다보았다.
다곤이 어깨를 움츠렸다. 얼굴이 험악하게 생긴 건 아니지만, 약간 그늘진 눈은 사람을 겁먹게 하는 부분이 있다.
직접 땅굴을 파며 암살자를 잡으러 다니던 다곤과 쓰레기장이 무너지며 나타난 통로를 따라가던 카반은 지하에서 마주쳤다.
다짜고짜 검을 겨누던 카반을 먼저 설득한 건 다곤이었다.
그에게 쓰레기장으로 가라고 한 건 마르할이고, 카반은 쓰레기장이 있는 방향에서 지하로 내려온 것으로 보였다.
마르할 말고 이 도시에서 전신 갑옷을 입은 기사를 부릴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마르할의 이름부터 꺼냈다.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였다.
어차피 도망칠 놈들은 전부 도망친 후다. 다곤과 카반은 함께 행동하며 몇 놈을 더 땅에 파묻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카반의 시선에 다곤이 대답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놈이 화낼지도 모르잖아.”
“그분이?”
“당신, 그놈이 화내는 거 본 적 없지?”
“있다.”
“없으… 응?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온다고?”
“문제 있나?”
카반은 마르할이 오동나무 관을 쓰는 모습을 보았다. 한 명의 황제가 그의 앞에서 그 권능을 휘둘렀다.
앞으로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공포다.
“형씨, 토지 경주에서 그놈이랑 만났지?”
“그래.”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었나? 경주에서 화낼 일이 없을 건데. 진짜 화난 게 아니었겠지. 그놈이 진짜 화내는 걸 봤으면 그렇게 침착하면 안 돼.”
다곤은 멋대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카반이 생각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마르할은 황제가 나서야 하는 일에만 오동나무 관을 쓴다고 했다. 서부에서 마르할이 오동나무 관을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옛 바체아 제국의 영토도 아니고 이 서부에서 바체아 제국 황제의 권위가 필요할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사람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다. 그가 본 마르할도 오동나무 관의 주인이라는 얼굴과 지주 마르할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카반이 토지 경주에서 봤던 건 오동나무 관의 주인인 마르할의 분노였다.
그가 모르는 다른 형태의 분노가 있다는 거겠지.
카반과 다곤이 복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문 안에서 마르할의 목소리가 울렸다.
“카반, 다곤? 들어와요.”
카반이 다곤의 안색을 살폈다.
전형적인 간신배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카반은 침묵했다. 저게 저 남자가 사는 방식이라는 거겠지. 그리고 다곤은 단순한 간신이 아니다.
카반은 그가 숙련된 암살자를 조롱하며 함정에 빠뜨리는, 무서움을 모르는 암살자를 공포로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열지.”
카반이 문을 열었다. 내부는 식당이었고, 스트레킬과 마르할, 그리고 카반은 처음 보는 남자가 있었다.
“다곤, 시킨 일은 어떻게 됐어요?”
“일단 일곱 놈을 땅에 묻어두긴 했어. 지금 건지러 갈까?”
“아뇨. 사람을 보내죠. 땅굴은 그대로죠?”
“그래, 그대로야. 적당히 파내서 꺼내면 돼.”
“땅에 묻었다고 암살자가 무력화되나?”
스트레킬이었다. 식사를 끝낸 그가 옆에 있던 천으로 입을 닦고 물었다.
땅을 파고 안에 숨는 건 암살자들에게 기본과 같은 기술이다. 숙련된 암살자들이 땅에 조금 들어가 있다고 무력화될 것 같지는 않았다.
“다곤이 잡았다면 그래도 돼요. 스트레킬도 보고 올래요? 다곤의 수법은 별나거든요.”
“그렇게 말하면 보고 오지.”
“고위 기사한테 전부 까발려지면 나는 뭐 먹고 살라고.”
다곤의 푸념은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다곤도 밥이나 먹을래요? 카반도요.”
“나야 좋지.”
“실례하겠습니다.”
카반과 다곤도 식탁에 앉았다.
식사가 바로 준비되었다. 빵에 버터를 바르던 다곤에게 마르할이 말했다.
“다섯 놓친 거 알아요? 분발해야겠어요.”
다곤이 빵을 떨어뜨렸다. 빵은 버터가 묻은 면으로 식탁에 떨어졌다.
“어, 그거 농담이지?”
“글쎄요?”
다곤은 토굴의 구조와 자신이 들었던 발소리의 숫자를 떠올렸다.
일단 셋은 확실히 놓쳤다. 몸이 하나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곤 혼자 흩어져 도망치는 암살자를 모두 잡을 수는 없다.
“도망친 걸 알고 있으면, 네가 잡으면 되잖아?”
“그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요.”
땅 아래를 움직이는 물체는 잡아낼 수 있다. 그 이질적인 움직임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상으로 나오면 그때부터는 마르할의 힘으로는 잡기 어려워진다.
마르할의 현재 능력으로는 특정 구역의 움직이는 물체를 감지하는 게 전부다. 그것도 어렴풋한 감각이라 표적이 사람이 많은 길거리로 나가면 놓치고 만다.
“곧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일단은 쉬죠.”
“잡은 놈들은? 나 안 필요해?”
“그렇네요. 아직 충분하죠?”
“몇 놈 조질 정도는 남았지. 그런데 저번 의뢰부터 시작해서 사용한 물건을 보충할 시간이….”
“돈하고 재료면 되죠?”
“역시, 말이 통한다니까!”
다곤이 떨어진 빵을 집어 한입에 삼켰다.
휴고가 먼저 식당을 나섰고, 스트레킬도 암살자의 얼굴을 확인하러 갔다.
카반은 스트레킬과 함께 갔다. 만일 토굴이 무너졌으면 그의 검과 기술로 다시 지어야 했다.
마르할에게 금화 몇 개를 받은 다곤은 다가올 싸움을 대비해 독과 산을 보충하러 갔다.
식당에는 마르할만이 남았다. 조리장을 포함한 몇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부르지 않으면 주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마르할은 식당에서 적당히 시간을 죽였다. 몸은 식당에 있지만, 마르할의 정신은 도시를, 그의 토지 전체를 누볐다.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것들이 만들어내는 바람이 머리로 전해진다. 오감과는 확연히 다른 감각.
마법사들이 여섯 번째 감각이라 부르는 감각이다.
‘내 경우 몇 번째라고 해야 하려나.’
여러 신비를 다루다 보면 느낄 수 있는 것도 많아진다. 마르할은 오동나무 관이 품은 신비를 느낄 수 있다.
그건 오감과 다르고, 가죽끈을 다루는 것과도 다르다.
다른 감각을 모두 죽이고 바람이 가져다주는 정보에만 귀 기울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평소에는 다른 감각을 크게 의식할 필요가 없다. 바람은 대충 끌어다 쓰는 거고, 오동나무 관의 힘은 아예 쓸 일 자체가 오지 않는다.
이런 기분은 마르에게 본격적인 마법을 배울 때 이후로 오랜만이다.
6년 만인가. 7년 만인가.
한참이나 가만히 있던 마르할이 눈을 떴다.
“역시 안 되나.”
막 깨우친 능력으로 암살자를 찾는 건 무리다.
“당신이 안 되는 일도 있어?”
식당 문이 열리며 베이올라가 들어왔다. 금색 머리카락에 먼지가 잔뜩 달라붙어 있다.
바닥에서 한 바퀴는 뒹군 사람 같다.
“제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오다가 스트레킬을 만났어.”
“흑단목은 무슨 소리예요?”
베이올라가 마르할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주방에서 사람을 불러 차가운 물을 시켰다.
얼음까지 담긴 물을 연달아 세 컵을 비운 다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경계에 유통되는 흑단목 중에 가짜가 있었어. 당신도 흑단목을 다룬다고 하길래, 창고에서 가짜가 얼마나 있나 도시 전체를 뒤지고 있는 중.”
“찾긴 했어요?”
“삼분의 일이 가짜더라. 조사한 것만.”
“욕이라도 하고 싶네요.”
마르할의 진심이었다.
도시가 커지고 돈이 돌면 사기꾼이 늘어나는 건 필연이다.
휴고가 직접 일을 처리하면 사기 같은 건 거의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관리해야 하는 땅이 커지고 휴고와 마르할이 직접 처리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기면 사기를 당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알아도 직접 사기를 당하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어쩔 거야? 다른 것도 아니고 흑단목이라고?”
“정교한 가짜라면 그래도 살 사람이 있어요. 적당한 값을 받고 팔아야죠. 범인은 알았어요?”
“아젠만이 직접 나선다고 하던데, 결과는 몰라.”
“최소한 꼬리는 잡겠네요. 그건 그때 생각하죠.”
아젠만은 돈과 권력이 걸린 일에 진심이다. 흑단목은 권력을 나타내는 사치품, 돈과 권력이 전부 걸려 있다.
그 좋은 머리를 최대한 짜내 범인을 찾을 것이다. 아젠만이 단서도 잡지 못하면 마르할이 나서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마르할은 그 정도로 아젠만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마린은? 돌아올 시간이 지났지 않아?”
“누워 있어요.”
“무슨 일로? 괜찮은 거지?”
베이올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입술을 쓸었다.
“지금은 괜찮아요.”
“무슨 일이야? 마린과 싸우려면 고위 기사는 되어야 하잖아.”
베이올라가 아는 마린은 불리하다 싶으면 바로 유물을 꺼낼 사람이다. 유물을 꺼낸 마린은 힘에서는 스트레킬도 앞선다.
거기에 마린은 약자들의 심리도 꿰뚫고 있다.
도시 내부에 마린에게 중상을 입힐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암살자가 있었거든요.”
“암살자?”
“마약을 뿌린 주범이에요. 제압한 암살자를 스트레킬이 가지러 갔는데, 오면 볼래요?”
베이올라가 답을 망설였다. 그녀는 물을 한 컵 더 비우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고문하는 거지?”
“맞아요. 피도 잔뜩 튈 예정이에요. 저도 이번엔 안 참을 거거든요.”
피가 튄다. 말만 들어도 기분이 가라앉는다.
베이올라는 피만 보면 기절하는 단계는 지났다. 싸움판에서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간신히 기절하지는 않는다.
장족의 발전이지만, 그걸로 부족하다는 건 그녀도 안다.
황권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피 공포증을 극복하는 걸 넘어 스스로 사람을 죽일 수 있어야 한다.
타고난 신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살인자가 되어야 한다.
“볼래.”
“후회는 안 할 거예요.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고문을 보여줄게요.”
“거기까진 조금….”
“싫으면 여기 있어도 되고요. 이걸 한 번이라도 보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깝게 됐네요.”
베이올라는 마르할의 얼굴을 봤다.
마르할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생글생글 웃고 있다.
베이올라가 마르할과 만나고 두 달이 넘었다. 베이올라는 마르할의 미소 아래 얽힌 감정이 어렴풋이 읽힌다.
마르할은 지금 화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반쯤은요.”
“갈게! 가면 되잖아! 마린한테 갔다 올게. 시간 되면 불러줘.”
베이올라가 식당을 나갔다.
다시 혼자 남은 마르할은 식탁에 발을 올리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고 의자를 흔들었다.
마르할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마르할의 정신이 저택을 벗어났다.
* * *
부상당한 마린이 있을 곳이라면 저택 안에 한 곳밖에 없다.
베이올라가 의료 설비가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다섯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마린이 조용히 누워 있다. 항상 살짝 찌푸리고 있는 미간도 펴져 멀쩡한 얼굴이다.
매일 이렇게 다니면 좋을 텐데….
베이올라는 마린의 콧구멍 앞에 손가락을 대보았다. 숨은 쉬고 있다.
“마린, 자?”
대답이 없다. 손가락으로 볼을 찔러봐도 반응이 없다.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마린이 암살자와 싸우는 동안 그녀는 창고에서 나무토막이나 보고 있었다.
이게 맞는 걸까?
마린이 암살자와 싸울 때 안전한 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레벨라가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해줬겠지만, 여기선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선택에 서투르다.
다른 황족들이 무수한 선택들 사이를 거닐 때 베이올라에게 허락된 건 얇고 얇은 길 하나였다.
한정된 선택을 강요받은 그녀는 많은 길이 주어졌을 때 최선을 고르는 방법을 모른다.
자기 선택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적당히 후회하고, 적당히 떨쳐내는 법을 모른다.
그건 죄책감이, 후회가, 자책이 되어 가슴에 쌓인다. 진득하게 머리와 가슴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지.”
짝! 베이올라가 자기 뺨을 때렸다.
고민이 겹겹이 쌓인다. 하지만 그녀는 움직여야 한다.
베이올라는 자신감을 과장하며 말했다.
“자고 있어. 네가 일어나기 전에 다 끝낼 테니까.”
그게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 * *
해가 지고 있다. 방에서 사치품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있던 베이올라는 휴고의 부름에 방을 나섰다.
“어디로 가?”
“주인님은 도시와 마을에 꼭 밀폐된 장소를 몇 개씩 만들어 두십니다.”
“딱 들어도 좋은 의미는 아니네.”
“전용 고문실을 만드는 지주들에 비하면 양반이죠.”
베이올라가 눈을 깜빡였다.
“고문실?”
“대리인의 반 정도는 전직 범죄자나 사기꾼입니다. 이 방면의 전문가죠.”
“지금 가려는 장소도 그런 거 아니지?”
“주인님에게는 따로 도구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 건 하수나 쓰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도착했습니다.”
저택 뒤편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실이 나왔다. 지하실 천장에는 빛을 내는 구슬이 박혀 있다.
돌로 만들어진 지하실 구석에는 감옥이 있고, 노파 한 명이 웅크려 고개만 들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앞에는 탁 트인 공간이 있다. 지하실 중앙에 속옷만 입은 다섯 명의 남자가 의자에 묶여 있다. 입에는 재갈도 물렸다.
남자들의 몸에는 기이한 상처가 있었다. 피부가 짓무르고 녹은 상처. 베이올라는 처음 보는 종류의 상처다.
“내가 아는 고문하고는 다른데?”
“보시면 압니다.”
마르할은 벽에 붙어 있는 작은 탁자에서 여러 개의 가죽 통을 건드리고 있었다.
베이올라를 확인한 마르할이 작게 손을 흔들었다. 베이올라는 그 얼굴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마르할이 가죽 통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지금부터 당신들을 돌아가면서 고문할 거예요.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고문을 한 번 피할 수 있어요. 어때요, 간단하죠?”
마르할이 재갈을 문 남자의 허벅지에 통에 든 액체를 몇 방울 떨어뜨렸다.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몸부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