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6
제96화
갈 때는 질풍과 같았지만, 올 때는 한량도 이런 한량이 없다.
마르할이 아니라 말이.
마르할이 탄 흑마는 병든 말처럼 똑바로 걷질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휘청 걸었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다. 멀쩡하게 죽은 말의 사체에 장난치던 놈이 부상은 무슨.
한 번은 마르할을 떨어뜨리려다가 마르할의 눈치를 한 번 보고 멈추기도 했다.
‘웃기는 놈이야.’
말은 예민한 동물이다. 이놈 정도 되면 마르할이 품고 있는 역사의 편린을 감각적으로 깨달았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편린을 본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냥 놈은 돌아가기가 싫은 거다. 마르할은 놈이 마구간에서 어떤 생활을 하는지 봤다. 다른 말들과 구분된 생활, 산책은 꿈도 못 꿀 거다.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건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다. 태생적으로 예민한 말은 더하겠지.
“돌아가면 나랑 같이 가자.”
정말이냐는 듯 놈이 멈췄다. 마르할이 고삐를 한 번 당기자 그제야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마르할은 피식 웃었다. 이 눈치 빠른 말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작게.
이놈은 알까. 마르할이 가려는 장소에는 이 도시의 마주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람이 마주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한때 성 하나를 호령하며 지휘했던 명장이 말 한 마리 못 다룰까.
놈은 바람이 그리웠는지 펄쩍펄쩍 뛰기도 하며 낮의 황야를 달렸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상쾌하다.
하지만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도시에 흩어진 암살자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도시에 퍼진 마약도 회수하고, 그들에게 벌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도시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마르할에게는 검은 손가락을 잡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될 터였다.
마르할을 태운 흑마가 바람을 맞으며 해가 떠오르는 황야를 달렸다.
* * *
도시로 돌아온 마르할은 놈을 다시 한 칸짜리 마구간에 넣었다. 놈이 싫다고 반항했지만, 어쩔 수 없다. 도시에선 아직 할 일이 있다.
마구간 입구에 사람이 나타났다.
“끝났냐?”
“늙으면 잠도 없다더니, 벌써 일어났어요?”
“새벽 일 다 끝냈을 시간이다. 나한테 지금은 점심이야.”
“잘 썼어요. 이놈 제가 살게요. 얼마예요?”
“공짜다.”
마르할이 라일을 보았다. 노인이 태연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지주에게 줄 뇌물로 구한 놈이다. 제 주인을 찾아가는 거지.”
“그래도 특혜는 없어요.”
“이 이상은 줘도 안 받아.”
라일은 도시의 첫 투자자다. 그는 휴고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지만, 라일은 그 이상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어디까지 먹어야 탈이 나지 않는지를 경험으로 안다.
마르할은 마구간 입구를 지나며 라일을 지나쳤다. 라일이 물었다.
“도시는 정상화할 수 있는 거냐?”
“마약은 싹 근절할 거예요. 그리고 유능한 수녀를 한 명 알고 있어요. 그 사람까지 부르면, 급한 불은 꺼질 거예요. 아마도.”
마르할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게 마약이라서다.
성인이라면 마약중독도 우습게 고치겠지만, 알라실에게도 그게 가능할까?
마약에 중독된 사람도 문제다. 정말 심각한 사람은 버린다 쳐도, 그 인원을 하나하나 치료하려면 한세월이 걸린다.
라일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래도 그는 젊은 지주가 이 도시에 가진 애정을 믿는다.
라일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을 몇 중으로 잠갔다.
이제 시작이다. 대청소가 시작된다.
* * *
마르할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다른 사람도 이미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택 응접실로 들어간 마르할은 휴고부터 찾았다.
“휴고, 애들 다 소집해요.”
“전부 말입니까?”
“새벽에 놀고 있었던 건 아닐 거 아녜요.”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알아냈습니다.”
마르할이 나가 있는 동안 휴고와 다른 사람들은 붙잡은 암살자들을 지하로 옮겨 정보를 캐냈다.
휴고는 마르할처럼 세련된 고문은 못 한다. 분위기와 심리를 가지고 노는 건 마르할의 특권이다.
스트레킬과 카반도 고문하는 법은 알지만, 그 방법은 일반적인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평범하게 고문했다.
“남은 암살자들이 도망가기 전에 몽땅 잡아들이고, 판매상들도 족쳐요. 마약은 힘으로라도 회수해요. 쓰레기장이 무너진 김에 그쪽에 있던 잡다한 쓰레기들하고 태워요. 마지막으로 제 이름으로 경계에 있는 교회에 편지도 보내줘요. 알라실이라는 이름의 수녀를 잠시 빌리고 싶다고요. 금액 제한은 없어요.”
“알겠습니다.”
휴고가 방을 나섰다. 다음은 다곤이었다.
“다곤, 도망치려는 놈들하고 지하로 숨는 놈들. 알죠?”
“죽이진 말고?”
“네. 돈은 섭섭하지 않게 줄게요.”
“어허, 그건 당연한 거고.”
휴고는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돈을 깎으려 하지만, 마르할은 손이 크다. 금화 몇 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르할은 응접실에 있던 요깃거리로 배를 채웠다.
물과 과자를 입에 쑤셔 넣고 있던 마르할에게 베이올라가 물었다.
“나는 할 일 없어?”
입에 든 음식을 삼킨 마르할은 한 번 입을 열려다가 다시 다물었다.
“왜?”
“방금 하나 생겼어요. 스트레킬도 같이 가죠.”
“해독도 끝났다면, 슬슬 일어날 때가 되긴 했지.”
베이올라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베이올라는 저택 복도를 달렸다. 그리고 마린이 잠들어 있는 방의 문을 열었다.
상체를 일으킨 마린이 머리를 붙잡고 있었다.
“마린!”
베이올라가 한달음에 침대로 달려갔다. 베이올라가 침대에 양손을 올리고 상체를 기울였다.
“얼마나 지났어?”
“하루. 몸은 어때?”
“멀쩡해. 마르할 님은?”
“나는?”
베이올라는 서운했다. 걱정되어 찾아온 사람에게 묻는 첫마디가 다른 사람을 찾는 말이라면 누구든 서운할 것이다.
마린은 이 귀찮은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여기서 말을 잘못하면 당분간 수련이 귀찮아진다.
미안함도 없진 않다. 그래도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와준 사람이다.
“뭐… 알아서 잘했겠지. 너한텐 쉬운 일이잖아?”
베이올라의 표정이 조금 펴지는 걸 본 마린은 바로 말을 돌렸다.
“암살자는? 마약은?”
“검은 손가락은 두목까지 전부 잡혀서 지하에 갇혀 있고, 마약은 지금부터 뿌리 뽑을 거야.”
“벌써…?”
어제까지만 해도 마약 판매상을 하나하나 조져가며 유통상과 제조자를 찾던 중이었다.
그게 하루 만에 정리되었다고?
“그 사람이잖아?”
“그렇지. 마르할 님이라면 가능하지.”
존경심과 함께 솟아오르는 건 자신의 무능함과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못 했다는 죄책감이다.
하룻밤 사이 모든 게 끝났다면 밤새 움직였을 건데, 하필이면 그때 잠들어 있던 자신에게 혐오감이 든다.
마린은 애써 우울함을 티 내지 않았다.
그녀가 우울하다고 일어난 일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마린이 이불을 걷고 일어나려던 차에 마르할이 방으로 들어왔다.
“쉬고 있어요. 멀쩡해 보여도 체력이 떨어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 부탁할 일이 있어요. 마린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할게요. 시켜만 주세요.”
마린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다들 나는 보는 척도 않는군.”
스트레킬이 뒤에서 불평했지만, 누구도 그의 말에 답하지 않았다.
공국의 전쟁 영웅에게 은근히 쪼잔한 면이 있다는 걸 이제는 다들 안다.
* * *
스트레킬과 카반은 휴고를 도우러 나갔고, 베이올라도 마린을 따라 나갔다. 홀로 남은 마르할은 저택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휴고가 쓰지만, 마르할의 저택이다. 마르할의 방도 평범하게 있다.
마르할의 방은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구석에 침대가 있고, 그 옆에는 책장이 있다. 책상도 하나가 있는데 벽과 딱 붙어 있다. 문 옆에는 옷장이 있고, 잡다한 물건을 넣는 상자도 하나 있다.
집 한 채를 방 하나에 욱여넣은 모습이다.
마르할이 방에서 하는 일은 잠깐 쉬거나 간단한 업무를 보는 게 전부다. 업무실과 침실, 옷방 등을 구분해봤자 공간 낭비다. 그래서 하나로 합쳤다.
마르할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최고의 재료로 서부 최고라 불리는 장인이 만든 침대가 부드럽게 마르할의 몸을 받아냈다.
볼 사람도 없으니 대강 채우라 했는데, 휴고는 기어이 방에 있는 물건을 모두 최고로만 채웠다.
‘다른 건 몰라도, 침대는 돈값 하네.’
그 돈값 하는 침대도 1년에 하루 쓸까 말까다.
마르할이 눈을 감았다. 어제부터 시작해 계속 마법을 쓰고 있다. 낮에는 도시를 살폈고, 밤에는 검은 손가락을 제압하려고 마법을 썼다.
그리고 말을 타고 밤새 마법사를 쫓았다. 그때도 말의 속도를 높이려고 마법을 썼다. 실은 도시를 감시하고 검은 손가락을 제압한 마법보다 말을 타고 사용한 마법이 더 피곤하다.
땅의 역사를 빌리는 마법은 토지 안에 있으면 종일 사용해도 크게 부담되지는 않는다.
신비의 근원이 토지에서 나오기에 마르할은 약간의 집중만 하면 된다.
마르할이 마법으로 지인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휴고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도시 바깥에 기둥을 세우고 있다. 기둥 아래에는 꿈틀거리는 물체가 몇 개 있다.
암살자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는 이제 시작이다.
마린과 베이올라도 근처에 있다.
마린은 봤을 수도 있고, 베이올라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다곤은 휴고의 부하들과 함께 마약 판매상을 잡아들이고 있다.
저들 중 도시에 정착한 사람은 거의 없다. 마약 소문에 근처 마을과 도시에서 찾아온 놈이 대부분이다.
마약 유통에 관련된 자들은 손이나 발의 인대를 자르고 노예로 평생 도시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모든 게 순조롭다. 저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지금은 쉬어도 되겠지.’
* * *
서부의 도시에는 성벽이 없는 경우가 흔하다.
성벽을 세우려면 방대한 돈과 막대한 돌이 필요하다. 돌은 주변에서 줍는다 쳐도, 성벽을 쌓을 인력이면 마을 몇 개를 세우고도 남는다.
벽을 세우려면 기껏해야 나무로 된 목책이다.
마르할은 도시에 그마저도 세우지 않았다.
물류의 중심이 되는 도시다.
사람도 마차도 팔방으로 뻗어나가야 한다. 거기에 성벽과 목책은 방해만 된다.
도시를 나가면 바로 황야가 있다. 도시 동쪽에 있는 황야에 수천 명이 모였다.
오늘 당장 출발해야 하는 상행의 행수도 잠시 출발을 미뤄두고 구경을 위해 모였다.
그만한 구경거리다.
휴고의 손짓에 부하들이 암살자를 데려왔다. 손발이 묶인 그들은 걷지도 못하고 짐짝처럼 땅에 질질 끌렸다.
암살자들 앞에는 커다란 기둥이 기다렸다. 검은 기둥을 보고 눈치 빠른 상인들이 수군댔다.
흑단목. 기둥을 만든 나무의 이름이다. 진짜는 아니다. 베이올라가 찾은 가짜 흑단목 일부를 깎아 만들었다.
가짜를 들인 이상 무얼 해도 손해다. 죄인의 사형에 사용하면 과시용으로라도 쓸 수 있다.
‘진짜보다 비싼 값에 팔릴지도 모르지.’
죄인의 피를 마신 가짜 흑단목.
가짜라곤 하나 외형은 흑단목과 차이가 없고, 마법사라면 가짜라는 점에 더 관심을 가질지도 모른다.
휴고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끈을 달아라.”
기둥 꼭대기에는 작은 홈이 있다. 휴고의 부하 한 명이 굵은 줄을 던져 홈에 걸었다.
줄의 한쪽 끝에는 암살자를 묶었다. 그리고 반대쪽 끝을 당기자 암살자들이 기둥에 매달렸다.
스무 명에 달하는 암살자가 기둥에 매달려 흔들렸다.
구경꾼들이 도시를 망친 주범을 향해 욕을 내뱉고 돌을 던졌다.
대부분은 이걸로 형벌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들의 사형은 막 시작했을 뿐이다.
휴고는 매달린 암살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들 체념한 얼굴이다. 마르할의 능력을 직접 봤으면 무리는 아니다.
휴고는 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들은 그냥 죽어선 안 된다.
저것들에겐 죽음조차 사치다. 저들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행동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저리 편안한 얼굴로 죽음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 영혼까지 고통에 물들어 절규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휴고는 저들의 죽음을 용납할 수 있다.
그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그의 주인의 뜻에 따라.
“복귀한다. 다시 자리로 돌아가도록.”
암살자의 인생은 끝났지만, 망가진 도시 수복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