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does the land document of the fantasy Demon Castle belong to?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50대에 달하는 대형 마차. 그리고 400명이 넘는 사람. 300마리가 넘는 말.
동부에서 이주한 스트레킬의 가족 일부는 마르할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아 경계에 자리 잡기로 했고, 일부는 서부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다.
이번 행렬에 포함된 사람 중에는 스트레킬의 가족과 마린의 개척촌에 정착하기로 한 사람도 있다.
마린의 개척촌에는 쉰 명에 달하는 사람이 정착하기로 했다. 노인과 아이가 약 스무 명이고, 나머지는 경계로 돌아오며 중간에 합류한 젊은 남녀다.
특히 남자의 비율이 높다.
마린은 그 이유를 알고도 딱히 입에 담고 싶지 않았다.
자기 미래를 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걸 한순간의 욕망에 맡기는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녀는 딱히 그들을 믿고 있지도 않았다.
마린은 자신을 지주 대리인이라 소개했다. 하지만 그녀가 마을에 붙어 있을 일은 없다.
기회를 봐 휴고가 적당한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진짜 대리인을 구하기만 하면 그녀는 마르할을 따라다닐 거다.
마을에 머무는 건 정말 잠시다.
“할머니, 몸은 괜찮으세요?”
마린이 마차 뒤에 타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헬라, 마린의 마을에 가장 먼저 정착하겠다고 말했던 그 노인이다.
마르할에게도 밀리지 않던 입담을 가지고 있던 노인은 여전히 쌩쌩했다.
“삭신이 쑤시는 것 빼면 멀쩡혀.”
“그건 멀쩡한 게 아니에요.”
“10년을 아팠는데? 하루 아프면 병이지만, 10년 아프면 이게 정상이여.”
“…그건.”
잘못된 말이긴 한데, 딱 잘라 반박할 수가 없다.
마린의 할머니도 베스타롤라에 있을 무렵부터 잔병 여러 개를 달고 다녔다.
피난 행렬에 있던 노인 대부분이 그랬다. 고통이 일상이기에 고통에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녀가 아는 많은 노인이 그랬다.
“마을까진 얼마나 걸려?”
“마차로 가면 열흘 정도요.”
열흘이라 확신하지 못하는 건 여행이 가진 불확실성 때문이다.
마차도 많고, 노인과 아이도 많다. 언제 무슨 일로 마차가 멈출지 모른다.
“오래 걸리지도 않네. 어떤 마을을 만들지는 정했어?”
“도시와 붙어 있는 땅이에요. 도시는 막 재건 중이고요.”
“성 아랫마을을 만들면 되겠어. 목장도 하나 만들고, 작은 밭도 만들고, 늙은이들은 잔심부름이나 하면 딱이여.”
헬라는 벌써 머리에 완성된 마을의 그림을 그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눈치만 늘었다. 헬라는 그걸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약자가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다.
경계에 머무르며 헬라는 서부에서 돌아다니는 여러 소문을 들었다. 다시 나타난 마왕을 용사가 하늘과 함께 베었다든가, 토지 경주가 열렸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새로 지주가 된 사람 중에 과거 도시였던 땅을 차지한 사람이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마린은 그 도시 옆에 있는 땅의 주인인 듯했다.
헬라는 평민답지 않게 다양한 장소를 돌아다녔다. 도시 근처에 있는 마을의 형태는 금방 떠올릴 수 있다.
“이 늙은이한테 맡겨만 둬.”
“할머니만 믿을게요.”
“그런데 그 청년이랑은 잘돼 가?”
마린이 덜컥 멈췄다.
“무, 무슨 말이세요.”
“알 거 다 아는 처자가 모르는 척하긴.”
“마르할 님은 제 우상이고… 그러니까, 그런 건….”
아예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 마르할이다. 용사 일행의 길잡이.
전설의 일원. 그녀가 넘볼 사람이 아니다.
헬라는 얼음을 잘라다 둔 것 같은 마린이 녹아내린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녀가 보기에도 그 청년은 보통이 아니다. 혈통이나 능력을 뛰어넘어 비범한 무언가가 있다.
그게 마린을 망설이게 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녀는 안다. 정말 불타는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람은 눈이 멀어버린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잠깐 다른 쪽을 보고 올게요.”
“그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헬라는 마린이 달려가는 방향을 보았다.
그 청년이 있다. 청년은 옆에 있는 수녀와 친근하게 대화하고 있다.
출발 직전 합류한 여인으로, 행렬에 있는 노인 중 저 여인에게 신세 지지 않은 사람이 없다.
헬라도 여인에게 치료받고 최근 쑤시기 시작한 허리가 씻은 듯이 나았다.
“깐깐한 성격에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빠를지도 모르것어.”
젊어서는 추억을 쌓으며 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되새기며 산다는 말이 있다.
젊은 남녀를 보며 헬라는 옛 추억을 곱씹었다.
“그때가 좋았지.”
남편에게 추근대는 년들을 전부 머리채 잡고 던져버릴 때가 그녀 인생의 전성기였다.
* * *
지켜만 볼 생각이었던 마르할이 마차 사이로 들어온 건 마차 사이를 돌아다니는 한 사람을 발견해서다.
알라실이 마차 끝에 걸터앉아 있는 아이의 무릎을 봐주고 있었다.
마르할이 바람으로 그녀의 볼을 쿡 찔렀다.
“뭐 해요?”
“으악!”
알라실이 몸을 일으켰고, 그 바람에 그녀 앞에 있던 아이도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마차에 머리를 박은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좀 이따 봐요.”
마르할에게 눈치를 준 알라실이 우는 아이를 달랬다.
“그래그래. 착하지 자, 이제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아이는 성황국어를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도 분위기는 통한다.
훌쩍이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자기 무릎을 확인했다. 살이 갈려 나가고 뼈까지 보이려던 상처가 아물어 있다.
아이가 어설픈 성황국어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래, 고마워야지. 짜식.”
알라실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는 덕담이라도 들은 줄 알았는지 마차에서 내려와 고개를 꼬박 숙이고는 조금 떨어져서 이쪽을 보고 있는 친구들 사이로 달려갔다.
“수녀가 그런 말 해도 돼요?”
“어차피 알아듣는 사람도 없는데요. 그보다, 저는 왜 불렀어요? 안톤 주교의 입이 귀에 걸렸던데, 대체 얼마나 쓴 거예요. 공짜로 와줄 수도 있는데.”
“이런 건 아는 사람 사이에 더 확실히 해야 해요. 그리고 주교가 물고 늘어지면, 당신도 피곤하잖아요?”
“그건 그래요.”
안톤 주교가 알라실에게 직접 해를 입힐 순 없다. 그랬다간 주교가 아니라 추기경이나 성기사라도 경질이다.
하지만 그녀를 귀찮게 할 수는 있다.
안톤 주교는 알라실의 관리를 직접 명령받았다. 교황 직인이 찍힌 문서 앞에서는 알라실도 무작정 고집부리기 힘들다.
“소문이 진짜라면, 역시 그거죠? 마약.”
“맞아요. 치료할 수 있어요?”
알라실이 자신감에 찬 얼굴로 가슴을 폈다.
“훗. 제가 누군데요. 돈값은 할 테니 걱정 마요.”
“다행이네요.”
만에 하나지만, 알라실이 마약중독을 치료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야 마약중독을 치료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역사가 필요하다.
“저희가 담소를 나누는 게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알라실의 눈가가 고양이처럼 가늘어졌다.
“마르할 님. 준비가 끝난 것 같아요.”
마린이 마르할의 뒤에서 말을 걸었다.
“그래요? 바로 출발하죠. 헬라 할머니는 만나봤고요?”
“네. 건강하세요.”
“다행이네요. 갈 길이 짧지도 않으니 슬슬 출발하죠.”
노인들의 건강을 신경 쓰면 도시에 며칠 머물며 휴식해야 하지만, 도시에 들어가 쉴 상황이 아니다.
휴고의 부하들이 마약을 팔던 놈들을 찾아 골목을 구석구석 뒤지고 있다. 놈들도 사방으로 도망치며 도시 치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궁지에 몰려 물불 안 가리는 놈들이다. 노약자가 다수 포함된 무리를 보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뭐야, 제가 왔는데 바로 가는 거예요?] […진짜 공국어 모르는 거 맞죠?] [분위기로 알아들어요. 특히 쟤가 하는 말은. 기껏 얼굴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러기예요?] [돈 주고 고용했는데요.] [칫. 성황국어 할 줄 아는 안내인 한 명만 붙여줘요. 중독자 치료는 알아서 할게요.] [고마워요.] [고마우면 손가락이라도 잘라줘요.] [……?]마르할이 눈을 깜박였다. 알라실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농담이에요.]알라실이 손을 흔들며 휴고에게 달려갔다.
이주민 행렬이 출발할 때와 돌아올 때, 그녀도 휴고의 얼굴을 봐두었다.
“무슨 이야기 하셨어요?”
“손가락을 잘라 달라던데요.”
“충성 맹세?”
알라실이 손가락을 잘라달라고 했을 때는 당황해서 떠올리지 못했지만, 손가락을 잘라 바치는 건 뒷골목에서 충성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설마요. 농담이겠죠.”
아무리 출신이 그쪽이라고 해도 현직 수녀가 그런 요구를 진심으로 할 리가 없다.
“그렇겠죠?”
“자꾸 그러니까 농담 아닌 것 같잖아요.”
마린이 의심하니 마르할에게도 의심이 전염된다.
이거, 자꾸 부려먹으면 나중에는 진짜 손가락을 달라 하려나?
* * *
마차는 평화롭게 달려 개척촌에 도착했다.
400명이 넘는 외부인은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마을에 전부 수용하지 못할 인원도 아니다.
마을이 커지며 버려진 건물도 있고, 빈 창고와 마차도 있다. 서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창고에서 자는 건 익숙하다.
휴고가 일꾼들을 이리저리 배분했다.
“엘리제, 가자.”
엘리제가 발로 땅을 두드리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게 누가 반항하래?”
검은 손가락을 기둥에 매달고, 마르할은 정식으로 놈을 데리러 갔다. 그런데 잘만 달리던 놈이 통 말을 안 듣는 것 아닌가.
마치 마르할과 기 싸움을 하려는 듯했다.
서부에 있을 때는 용사 일행에게, 인외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도 한 마디도 안 지고 소리 지르던 사람이 마르할이다.
미물 한 마리에게 기 싸움으로 밀릴 마르할이 아니다.
마르할은 놈에게 엘리제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러자 놈이 움직였다.
투레질을 하고 말 주제에 사람을 물려고 했다.
남이 싫어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마르할이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니고, 저놈이 먼저 시작했으니, 마르할도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날 이후 놈의 이름은 엘리제가 되었다.
“엘리제가 싫으면, 리처드나 알렉은 어때?”
히힝. 놈이 높게 한 번 울었다. 긍정이다.
“어림도 없지. 너는 평생 엘리제야. 꿈 깨.”
엘리제가 낮게 울었다. 울음소리가 맹수 뺨친다.
보통 동물은 한 번 상하 관계를 확인시켜 주면 얌전해지는데, 이놈은 틈만 나면 기어오르려 한다. 성깔머리가 더러워도 이리 더러운지.
“가자, 엘리제.”
마르할이 놈의 엉덩이를 때렸다. 엘리제가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했다. 대충 움직이는 듯해도 타고난 신체 능력이 워낙 좋으니 다른 말의 속보 정도의 속도가 나왔다.
몇 달 만에 돌아온 개척촌이다. 확인해야 할 일이 많다.
마르할은 조셉의 마구간으로 향했다.
조셉은 마장 안에 있는 말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조셉.”
“도련님, 오셨습니까.”
조셉이 마른풀을 내려두고 다가왔다. 그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마르할 앞에 섰다.
“이놈 부탁해요. 그리고 소식 들었죠?”
“들었습니다.”
“말을 훔치려는 놈들이 나올 거예요.”
다른 건 훔치기도 어렵고, 훔쳐봤자 바로 걸린다. 하지만 말은 다르다.
새벽에 훔쳐 달아나 버리면 잡기 어렵다.
조셉씩이나 되는 인물이 마장을 관리하는 건 낭비가 아니다.
조셉이나 되니까 이 규모의 마장을 큰 탈 없이 관리할 수 있는 거다.
“주의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좋은 말이군요.”
“라일이 준 말이에요. 마족의 피가 섞였다는데요.”
“제가 봤던 말 중에서 손꼽히는 명마라는 건 분명합니다.”
말에서 내린 마르할이 고삐를 조셉에게 건넸다.
“엘리제예요.”
“이놈은 수컷입니다.”
“알아요. 저랑 기 싸움을 하려고 해서요. 제일 싫어하는 이름으로 붙여줬죠.”
“도련님과 기 싸움이라니, 보통 놈은 아니군요.”
조셉이 엘리제의 고삐를 당겼다. 엘리제가 버티며 반항했다.
마르할의 존재감은 대단하지만, 그게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
조셉은 아니다. 그는 서부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였고, 동부에서도 활약하며 많은 생명을 죽였다.
조셉이 한 번 눈길을 주자 엘리제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한 번 길을 들여도 다시 대들더라고요.”
“오히려 좋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엘리제는 교수대에 끌려가는 사형수처럼 울타리 안으로 질질 끌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