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장건은 이불을 완전히 걷어내고 이부자리를 살펴보았다. 옆으로 다가온 아논이 물었다.
“뭐냐 이거?”
“이불 덮어놓고 죽어라 팬 모양인데.”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던 점원 만덕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핏자국이 그렇게 진한데요? 칼로 찌른 것도 아니고 그냥 두들겨 패서 그렇게 만들려면···”
고개를 든 장건은 유별난 것 없어 보이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그래. 구타당한 당시엔 살았어도 곧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보니 약간 어질러져 있는 집안의 모양은 그냥 정리가 안 된 것이 아니라 무례한 손길이 대강 헤집어 놓은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장건은 그게 금은이나 패물을 찾으려 헤집은 것이라 짐작했다. 뭔가 특정한 목표를 찾으려 뒤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락카라는 친구가 사교성이 좋은가?”
“···그건 무슨 헛소리냐?”
장건은 눈으로 집안의 흔적을 계속 더듬어가며 말했다.
“집안에 들어온 이는 최소 셋 이상이야.”
“셋? 뭐, 락카 친구라는 건가? 그놈은 나랑 같은 배 타고 온 놈인데 여기 친구가 있을 리 없다. 락카가 한 짓은 아닌 거 같은데.”
“꼭 친구여야 같이 움직이는 건 아니지.”
아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뭐냐?”
“지금 감산에는 어떤 식이든 기회만 되면 남의 집에 쳐들어와 집주인을 두들겨 패고 금은을 뒤적거릴 개차반들이 잔뜩 있지.”
아논은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고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옆에 있던 만덕은 그 개차반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암흑가 조직들이다.
“뒷골목 건달들은 요 며칠 사이 무림맹에게 탈탈 털리고 있잖아요? 어제만 해도 여덟 명이 잡혀 들어갔는데요. 그중의 셋은 교수형 당할 예정이고요.”
“계속 그렇게 잡히고 있지. 그리고 그건 아직 완전히 소탕된 게 아니라는 말이고.”
“아니, 그게··· 그렇긴 한데···”
둘의 대화에 아논이 얼른 끼어들었다.
“무슨 말이냐? 락카 그놈이 뭘 어쩌고 있다는 건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몰라도 만약 이 강식이라는 친구가 정말 락카에게서 장물을 되찾을 작정이었다면, 락카도 순순히 내놓지는 않았겠지. 내 생각엔 락카 그 친구가 이곳 감산성의 뒷골목 건달들과 어울리는 모양인데.”
아논은 장건의 말에 눈썹을 찌푸렸다.
“건달들과? 아니 이 새끼, 뭐 하자는 거야? 뒷골목 두목이라도 해 먹으려 여기서 내린 거야? 그 먼바다를 건너서?”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일단 강식이 이 친구를 찾아보자고.”
“어디서?”
장건은 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여기 뭔가 더 단서가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주변에서 목격자를 찾아보는 게 더 빠르겠어.”
깊은 골목의 작은 판잣집들은 항상 외부인을 경계한다. 당장 장건과 그들도 이 골목 안으로 들어서며 그런 시선을 받았으니 누군가 이 판잣집에 쳐들어와 강식을 잡아갔다면, 혹은 죽이고 시체를 가져갔다면 그걸 목격한 자가 있을 것이다. 너무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 덕분에 그런 소란에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문을 열고 나온 장건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보였다. 멀찍이 떨어진 곳 담벼락 아래 쭈그리고 앉아 시간을 죽이는 한량들, 건너편 이 층 난간에서 연초를 피며 이곳을 내려다보는 중년인, 무슨 보따리를 들고 지나가며 흘끗흘끗 그를 훔쳐보는 노파 등등. 이 골목과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장건을 감시하고 있었다.
옆으로 따라 나온 아논이 그걸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수상한 인물은 우리들인 것 같다.”
판잣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모이지 않았던 시선이다. 아마 모르는 이가 이웃의 집을 열고 들어간 것을 보고 주시하는 듯 보였다. 쭉 주변을 둘러본 장건은 곧 한쪽에 모여 있는 한량들을 향해 걸어갔다.
허름한 옷에 제대로 씻지 않은 몰골의 한량들은 장건이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모두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여? 볼일 있어?”
그들은 짧은 곰방대를 물고 있거나 찍찍 누런 침을 뱉으며 위협적인 표정을 지었는데, 그래봐야 반쯤은 거지꼴이라 조금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가온 장건이 그 자리에 서서 잠시 말없이 바라보고 있자 그들은 곧 장건이 자신들을 무시한다 여겼는지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났다. 그 꼴이 마치 짐승들 싸우기 전에 몸을 부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뭔데, 이 새끼? 뭘 꼬라봐?”
“뒤지고 싶냐? 어디서 굴러먹던···”
하지만 욕을 내뱉으며 성큼성큼 장건에게 다가가던 그들은 곧 허옇게 창백해진 얼굴로 덜컥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눈에 장건이 앞으로 내민 여섯 꼭짓점의 무림패武林牌가 비치고 있었다.
“···무, 무림맹 무사님이셨군요. 저, 저희가 무사님을 못 알아보고···”
“하, 하하··· 뭐, 뭐 궁금하신 거 있으십니까?”
그들이 굽실거리자 장건은 앞으로 꺼냈던 무림맹 훈장을 다시 품에 집어넣었다. 무식한 양아치들은 훈장과 표식을 구분하지 못했다. 물론 훈장을 받는 이는 각 지부의 판단 아래 무림맹의 도움을 빌릴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무림맹 소속 무사는 아니었다. 무림맹도라 사칭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땟국물 질질 흐르는 놈들 뺨을 어루만지고 싶지는 않았던 장건에게 그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방금 나온 집, 거기 살던 놈 알지?”
공손하게 허리를 굽실거리던 한량들은 슬금슬금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잠깐 사이에 눈치만으로 대표를 정했는지 곧 한 놈이 앞으로 나서서 장건의 말에 대답했다.
“강식이 말씀이시죠? 예, 알고 말고요. 그놈 대장간 들어가기 전까지는 저희랑 어울리던 놈인데요.”
“누구냐?”
“···예?”
장건은 앞으로 나선 놈의 눈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집안 흔적을 보아선 그놈이 자기 발로 집을 떠난 것 같지 않던데. 누가 잡아갔지?”
“그···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는뎁쇼···”
대표로 나선 놈은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굽실거렸다. 하지만 장건은 웃지 않았다.
“그럼 아는 놈 앞으로 나서. 아무도 모르면 너희 다 감옥행이다.”
“···예? 가, 감옥행이요?”
놈은 장건이 농담을 한 줄 알고 실실 웃었지만, 곧 변하지 않는 그의 표정에 안색이 굳었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사이 감산 밤거리를 주름잡던 건달들이 모조리 잡혀가고 있었다. 감옥 안은 너무 꽉 차서 등 대고 누울 자리도 없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래서 감옥에 더 들어갈 공간이 없으면 그냥 아무나 뽑아서 교수형 시켜버린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평범한 양민들이야 나쁜 놈들 잡혀간다니 좋아했고 그들이야 그저 떨거지들일 뿐이라 실감을 못 했지만, 당장 눈앞에 무림맹 무사를 두고 그런 협박을 들으니 슬그머니 무릎이 풀릴 것 같았다.
그는 얼른 자기 무리를 돌아보며 누구 아는 거 없냐는 눈짓을 했다. 다들 자기는 모르겠다며 고개만 젓는데, 구석에 있던 키 작은놈이 슬쩍 손을 들었다.
“저··· 제가 뭘 보긴 봤는데요···”
장건의 눈이 그를 향했다. 다른 한량들은 모두 그와 작은놈 사이에서 비켜섰다. 작은놈은 그 주목이 부담스러운지 조금 주눅 든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그, 그게··· 제대로 본 건 아니고··· 밤에 술 사러 나왔다가 웬 덩치들이 강식이 집에서 짐 한 덩이를 짊어지고 나오는 걸 엊그제 봤습죠··· 뭔 일인가 싶어 그 사람들 떠나고 문을 두드려봐도 잠겨 있길래, 나중에 강식이 돌아오면 말해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자들 얼굴을 보았나?”
“예? 아, 어, 얼굴은 제대로 못 봤습죠, 너무 어두웠거든요···”
작은놈은 더 움츠러들었다. 자기 이야기가 그리 도움이 못 되리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장건은 처음과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얼굴 말고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었나?”
그 차분한 목소리 덕분인지 작은놈은 눈알을 굴려 가며 기억을 더듬다가 곧 뭔가 생각났다는 듯 앗 소리를 냈다.
“그, 그 덩치 중에 한 놈이 귀걸이를 하고 있었습죠. 큼지막한 은귀걸이였습니다. 어둑한 와중에도 그거 하나는 반짝거려서···”
어느새 장건 뒤로 다가와 있던 아논이 머리를 긁적였다.
“귀고리? 그거로 사람 찾을 수 있나?”
“충분하지. 중원인 중 귀고리를, 그것도 남자가 하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니까.”
“중원인 아니면? 얼굴 제대로 못 봤다잖나.”
“그럼 서역인 중 은귀고리 찬 덩치를 찾으면 되겠군.”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한량들은 갑자기 등장한 아논의 검은 피부에 살짝 놀라고 능숙한 중원 말에 두 번 놀랐다. 그 후 처음 대표로 나섰던 놈이 장건의 눈치를 살살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헤헤, 저, 무사님? 이제 다른 볼일은 없으신 거죠?”
장건은 말없이 그들에게 가도 좋다는 듯 가볍게 턱짓했다. 그들은 넙죽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우르르 골목길 너머로 사라졌다. 아논이 그걸 보며 다시 말했다.
“은귀고리는 어디 가서 찾나?”
“항구.”
“···항구? 왜?”
뒤를 돌아본 장건은 일일 감산 길잡이 만덕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귀고리는 중원 풍습이 아니야. 적어도 한 제국 풍습은 아니지. 중원에서도 먼 북방 쪽 사람이거나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정착민보다는 배의 선원이거나 항구에서 일꾼을 하는 자일 가능성이 높다.”
“오오··· 그런가?”
놀라움을 표시한 건 아논이었는데 정작 진짜 놀란 표정을 지은 건 만덕이었다. 그는 의외라는 듯 말했다.
“손님 감산 사람이셨나요?”
“왜?”
“손님이 말씀하신 대로 항구 일꾼 무리 중에 귀고리를 차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마침 그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려 했는데.”
장건은 고개를 저었다.
“난 감산 사람 아니다.”
“그럼 어떻게···”
“머리 굴려서. 항구로 가기나 하자.”
만덕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사람들 일하는 창고까지 길이 좀 복잡한데요.”
그 말에 장건은 아논을 바라보았고, 아논은 군말 없이 금화 하나를 꺼내 주었다. 금화를 받아든 만덕은 곧바로 앞장서 나갔다.
장건은 그를 따라 골목을 떠나기 전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한량들이 굽실거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 경계 어린 눈으로 그를 지켜보던 판잣집 사람들은 이제 몸을 감추고 창문과 문틈 사이로 그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 장소와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거리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감산성의 변방이었다. 애써 골목을 파고들어 찾아오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곳. 아직도 희뿌연 안개가 골목길 위에 낮은 천장처럼 하늘을 막고 있었다.
잠시 그 장면을 바라보던 장건은 몸을 돌려 멀어지는 만덕과 아논의 뒤를 따라잡았다.
감산은 여전히 안개가 짙었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래도 유난히 안개가 심한 날이었다. 하지만 대장간 점원 만덕은 그 안개 가득한 거리와 골목골목을 지나면서도 제집 찾아가듯 아무런 망설임 없이 거침없는 발걸음을 보여주었다.
그 뒤를 따라가던 장건은 어느 순간부터 바닷냄새가 훅 올라와 코를 간질이는 것을 느꼈다. 항구가 있는 도시임에도 기루 거리나 객잔 거리만을 지나다닐 때는 이곳에 바다가 가까움을 느끼기 힘들었는데, 한순간 코를 스친 향 하나로 바다는 훌쩍 장건 가까이 다가왔다.
만덕의 걸음은 곧 부둣가에 도착해 그 일대에 늘어선 창고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 주변일 텐데···”
범선들에서 물건이 내려와 쉼 없이 보관과 출하, 정리를 반복하는 항구 창고들이 감산 부둣가 만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안개가 잔뜩 낀 날씨 와중에도 천천히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장건이 보기엔 위험해 보였으나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어 저러는 것일 터였다.
“이쪽으로.”
창고들을 확인한 만덕은 다시 앞장서 나아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그 뒤를 따르던 장건은 어느 순간 그가 덜컥 멈추는 것을 느끼고 자신도 걸음을 멈췄다.
“···저기, 저 창고요.”
만덕은 멀찍이 떨어진 곳의 창고 하나를 가리켰다. 주변의 여타 다른 창고들과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그 창고 앞에는, 두건을 쓰고 반짝이는 은귀걸이를 한 덩치 하나가 나무통을 의자 삼아 앉아서 연초 하나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인상착의는 조금 전 들었던 강식이 납치, 혹은 살해 용의자가 맞았다.
그와 창고를 가리킨 만덕은 슬쩍 뒤로 빠지며 말했다.
“여기까지 안내했으니 이제 됐죠? 뭐 싸우고 난리 치는 것도 도와달라고 하진 마세요. 제가 한때 감산 송곳니라고 불린 적 있긴 하지만, 이젠 주먹의 세계에서 떠난 지 오래입니다.”
“돈 줘도?”
아논이 금화를 꺼내며 그렇게 말하자 만덕은 잠시 흔들리는 듯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난 더는 싸우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런 약속은 소중한 것이지요. 돈으로 살 수 없을 정도로.”
아논은 그런 만덕이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장건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가서 물어볼까?”
“일단 찾던 놈들이 맞는지 확인해야지.”
장건은 그렇게 말하며 성큼성큼 그 덩치를 향해 걸어갔다.
거의 꽁지만 남은 연초를 애써 뻑뻑 빨아대던 덩치는 문득 안개 너머 부둣가에서 다가오는 장건과 아논을 발견하고 후- 연기를 뱉어내고 꽁초를 툭 튕겨버렸다. 그는 큰 몸집답게 거창한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장건과 아논 앞으로 오른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그만. 못 보던 얼굴들인데. 용건이 뭐요?”
다가온 장건은 그가 중원인도, 서역인도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덩치는 혼혈이었다. 신대륙이 열리고 세계의 무역이 활발해진 지 백 년이 넘었으니 항구도시에서는 크게 신기할 것 없는 일이었다.
장건은 딱 그의 팔이 닿지 않을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강식이 여기 있나.”
“···강식이? 그게 누군데?”
“포가 대장간 점원 겸 장물아비.”
어리둥절하던 덩치의 표정이 어느 순간 그게 누군지 알겠다는 듯 싹 굳어갔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그러나 덩치는 말과는 다르게 왼손을 슬금슬금 허리춤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장건이 흘끗 보니 팔뚝만 한 칼 하나가 매여 있었다. 장건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매달고 다시 덩치와 눈을 마주쳤다. 덩치는 그가 이미 자신의 칼을 보았다는 걸 느끼고 와락 움직여 칼을 뽑으려 했다.
다음 순간 그는 빡-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나가떨어졌다. 의식을 잃고 널브러진 그의 얼굴에는 선명한 주먹 자국이 남아 있었다. 아논은 그 모습을 조금 놀란 눈으로 보며 중얼거렸다.
“오우, 장건 주먹 좀 쓴다. 감산성의 매운 주먹?”
장건은 아논의 시답잖은 소리를 무시하고 멀리 떨어져 있던 만덕을 불렀다. 그리고 자기 은전 하나를 쥐여주며 말했다.
“무림맹 감산 지부 가서 여기 건달들 한가득하다고 전해라. 장건이 다 눕혀놓을 테니 와서 가져가기만 하라고.”
“···그렇게만 말하면 됩니까?”
“그럼 거기 지부장이든 누구든 알아서 움직일 거다. 천천히 갔다 와.”
얼른 갔다 오라는 것도 아니고 천천히 다녀오라는 말에 만덕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몸을 돌렸다.
만덕을 보내 뒤처리 담당을 부른 장건은 아논을 돌아보았다. 그는 쓰러진 덩치의 칼을 주워들고 휙휙 휘둘러보다가 장건의 시선에 히죽 웃었다.
“강식이 살아있으면 좋겠다.”
“왜.”
“그래야 나한테 거짓말한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
장건은 고개를 살살 내저으며 한쪽에 있는 작은 창고 문으로 다가갔다. 강식이가 살아있을지 아닐지는 문 너머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손바닥을 대고 문 앞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장건은 부드럽게 손잡이를 당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창고 안쪽에서부터 소름 끼치는 열풍과 역한 냄새가 훅 장건에게 쏟아졌다.
장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역한 냄새는 살 태우는 향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