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05)
105화
남자의 이름은 단상운이었고, 부인은 채윤이라고 했다.
앞에서 막 떠들 적에는 몰랐는데 두 사람은 기껏해야 서른을 넘지 않는 젊은 부부로 보였다. 그들은 대뜸 은전부터 내미는 장건의 모습에 약간 경계심 어린 표정을 지으면서도 결국 그 은전을 받아들었다.
부부는 통성명 후 건물들 사이에 세워놓았던 조그만 짐마차 하나를 이끌고 나와 앞장서기 시작했다. 장건은 다시 조조의 위에 올라타서 그 옆으로 따라붙었다.
장건은 등 뒤로 멀어지는 건물들을 돌아보았다가 옆에 마부석 위에 앉아있는 단상운에게 말을 걸었다.
“그 주정이라는 우물 쇠기둥, 당신이 만든 것이오?”
짐마차의 덜컹거림에 그대로 흔들거리던 단상운은 그 질문이 기꺼운 듯 조금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맞소. 원래 내 농장에만 만들어둔 거였는데, 촌장님이 마을 중심에도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서 내 특별히 설치해준 것이오.”
“만들기 쉽지 않았을 듯한데.”
장건의 말에 그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자기 고생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 게 너무 기쁘다는 표정 같았다.
“그럼, 아주 쉽지 않았지. 단순히 쇠기둥 모양을 만드는 것과 작두를 닮은 그 손잡이를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소. 그냥 짧게 여럿 만들어 하나로 연결하면 되니까. 문제는 그 내부에 수압水壓, 그러니까 물의 압력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있었는데, 그냥 쇠나 나무로 장치를 만들자면 틈이 없는 아주 정교한 구조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비용도 너무 비싸고 당장 나 혼자나 우리 마을 대장간에서는 만들 수가 없었소. 그래서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했소이다. 처음엔 그냥 두꺼운 천으로, 다음엔 가죽으로 방법을 찾았지. 하지만 진짜 완벽했던 소재는 원주민 상인을 통해 얻었던 카오츄라는 것으로···”
장건은 그냥 만들기 쉽지 않았겠다는 짧은 질문을 했을 뿐인데 단상운은 혼자 신이 나서 붙잡은 고삐는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계속 떠들어댔다.
“···그 나무의 수액이라는 건데, 이게 뜨겁고 차갑고의 변화나 다른 소재와의 혼합을 통하면 독특한 질감을 가진 물건이 되오이다. 그건 아주 탄력적이면서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 단순한 가죽보다 훨씬 뛰어난 소재지! 안타까운 점은 원주민 상인도 아주 먼 남부에서 구했다고 해서 그 양이 너무 적다는 것이오. 이게 양만 많다면 조금 더 연구해서···”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단상운의 모습을 장건은 아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설명만 듣자면 지금 그가 말하는 소재는 고무였다. 원래 역사에서는 앞으로 수백 년은 더 지나야 제대로 된 용도를 찾는 물질. 한참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건은 그 쏟아져 나오는 무수한 단어들 틈에 불쑥 끼어들었다.
“혹시 다른 것도 있소?”
중간에 말이 끊긴 것임에도 단상운은 전혀 화가 나지 않은 듯 활짝 웃었다.
“다른 거? 물론이오! 당연히 다른 연구물도 있지! 이거 그냥 여행자가 아니셨군! 장 무사도 현상과 물질을 탐구하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오?”
장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단상운은 으허허 크게 웃었다.
“이야, 이거 참. 사실 오늘 아침만 해도 마을에 나올 생각이 없었소. 원래 내가 사람 많은 거나 번거로운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데 집사람이 오늘 꼭 잡화점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거 아니겠소? 주문했던 면포와 명주가 도착했을 거라며 날 달달 볶더란 말이오···”
그 말에 마차에 타고 있었던 부인이 마부석 쪽으로 몸을 쭉 내밀고 단상운을 향해 도끼눈을 떴다. 그는 슬그머니 그 눈길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참 다행이라 말하려 했소. 덕분에 장 무사를 만나지 않았소이까? 자, 어서 갑시다. 내 창고를 꼭 보여주고 싶소.”
단상운은 이후에도 사람들이 허공이라고 부르는 공간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러니까 단순히 자연의 기라고 하는 것 외에도 실질적인 물질이 아주 옅게 존재한다는 이야기나, 물이나 기름 같은 액체가 온도와 압력에 따라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그리고 장건은 그 이야기들에 적당히 대꾸해주며 묘한 눈으로 그를 관찰했다. 그 눈빛은 마치 그렇게 떠드는 단상운의 모습에서 어떤 숨겨진 모습을 찾아보려는 것 같았다.
짐마차를 탄 부부와 떠돌이 인마 한 쌍은 그렇게 약간 소란스럽게 떠들며 잠시 후 어느 농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훤한 벌판에 널찍한 울타리를 치고 집과 창고, 마구간을 갖춘 건실한 농장이었다.
짐마차가 울타리를 넘을 때 부인 채윤이 장건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점심 식사는 하셨나요? 달걀도 있고 훈제해둔 돼지고기도 좀 있어요. 출출하시면 지금 좀 차려드릴게요.”
“음. 그럼 부탁하겠소.”
장건의 대답에 그녀는 면포를 들고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앞장서 집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단상운이 장건을 불렀다.
“마구간은 이쪽이오.”
그는 마구간 문을 열어 그 안에서 짐마차와 말을 정리했다. 장건도 조조의 안장과 고삐를 풀어주고 그 마장에 집어넣었다. 녀석은 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뒹굴 드러누우며 바닥에 몸을 비비적거렸다.
“···신기한 녀석이구려.”
“너무 신기해서 문제지.”
단상운은 마구간 문을 닫고 집으로 앞장서 걸어가며 말했다.
“저 창고가 내 연구실이오. 이것저것 쇠붙이가 많다 보니 애들은 못 들어가게 하고 있지. 원한다면 나중에 내부를 소개해 주리다.”
“아이가 있는 모양이군.”
그는 장건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지. 녀석들이 누굴 닮았는지 아주 똑똑하다오.”
신발을 털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말한 아이들이 쪼르르 다가와 자기 아비에게 어서 오라고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단상운은 그 아이들에게 장건을 소개해 주었고, 이제 막 대여섯 살은 되었을까 싶은 두 아이는 낯선 사람인 장건이 신기한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장건이 안녕, 하고 인사를 하자 녀석들은 까르르 웃으며 다른 방으로 도망쳐 버렸다.
“아니, 이게··· 미안하외다. 애들이 좀 버릇이 없소. 낯선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는 데다가 자주 보는 어른이라고는 스승님밖에 없어서···”
“스승님?”
그는 장건을 부엌 쪽으로 안내하며 대답했다.
“어릴 적 무공을 가르쳐주셨던 분이오. 내가 워낙 재능이 없었던 탓에 얼마 배우진 않았지만. 근처에 지내시면서 가끔 아이들을 보러 오시지.”
“무공을 배웠소?”
단상운은 슬쩍 웃었다.
“티가 안 나지? 삼류나 겨우 될 수준이외다. 그냥 건강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배웠소.”
부엌 쪽으로 들어가자 채윤이 식탁 위에 식사를 준비해 둔 상태였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서는 남편과 장건을 보고는 성큼성큼 그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장건을 향해 양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걸 잠시 바라보던 장건은 그게 돈 달라는 뜻인 줄 알고 허리춤에서 은전을 꺼내 내밀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손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외투랑 그 칼 내놔요. 애들 있는 집에서 칼 차고 다니는 건 허락 못 해요.”
단상운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무림인에게 함부로 무기를 내놓으라 말하는 건 그 상대의 성질머리에 따라 칼부림이 날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그래서 얼른 그를 달래려 했는데, 놀랍게도 장건은 순순히 칼집과 삿갓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물 떠 놓았으니까 손 씻고 식사하세요.”
채윤은 싫다는 말 하나 없이 칼을 맡기는 장건의 모습에 정작 본인이 살짝 놀라서 한층 사그라진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받아든 칼과 삿갓, 외투를 들고 총총 집 현관으로 걸어갔다. 단상운은 무던한 기색으로 옆에 떠 놓은 물에 손을 씻는 장건을 보고 꿀꺽 침을 삼켰다.
“그··· 미안하오. 집사람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내 지금 가서 다시 가져오리다.”
“괜찮소. 괜히 집 안에서 칼 차고 다닐 이유가 없지. 애들이 뛰어다니면 걸려서 위험할 수도 있고.”
손을 씻던 장건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 미소를 본 단상운은 곧 본인도 으하하 크게 웃었다.
“이해해 줘서 고맙소.”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달걀을 부친 것과 얇게 저민 훈제 고기, 속이 하얀 찐 만두 정도였다. 잠시 그걸 먹고 있으니 조금 전 나갔던 채윤이 다시 들어와 한쪽에서 찻물을 끓이기 시작했고, 은근한 시선이 느껴져 부엌 입구로 눈을 돌리니 문턱에 빼꼼 고개를 내민 아이들이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다. 장건은 음식을 우물거리며 자기도 모르게 그 부엌의 모습을 한눈에 담았다.
한쪽 창문에서 햇살이 들어와 집안을 비췄다. 거창한 화려함 없이 소박하면서도 묘하게 안정되는 장면이었다.
잠시 후 차를 끓인 채윤이 식탁 위에 찻주전자를 내려놓았다. 단상운은 그 찻물을 따라 마시더니 입맛을 다시며 말을 꺼냈다.
“장 무사는 어디로 가시오? 이 일대 주변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글쎄. 특별한 목적지는 없소.”
장건의 대답에 단상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장건을 바라보다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허어. 그저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여행이라. 장 형은 멋지게 사는 사람이구려. 아, 장 형이라 불러도 되겠소?”
장건은 그의 넉살 좋은 태도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상운이나 그나 나이가 크게 차이 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상운은 부인과 아이들, 자기 농장이 있었고, 장건은 떠돌이라는 점 정도였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장건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단상운에게 물었다.
“그 연구실, 지금 구경할 수 있겠소?”
“···당연히 구경할 수 있지!”
그는 굉장히 기쁜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당장에 앞장서 장건을 창고 쪽으로 안내했다.
집을 나서 마당을 가로지르고 창고 문 앞에 도착한 단상운은 허리춤에서 열쇠를 찾아 잠겨있던 자물쇠를 열며 말했다.
“최근에 한창 연구 중인 것으로 증기를 이용하는 게 있소. 물을 끓이면 김이 올라오지 않소? 만약 그 올라오는 힘을 잘 집약해 이용할 수 있다면 물건을 만들 수 있을 것이오. 조금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까 이미 보았던 주정의 작두가 자기 혼자 위아래로 움직이게 될 것이란 말이오. 그게 무슨 일을 가능하게 할지 상상해 보겠소?”
그는 쉴새 없이 떠들며 자물쇠를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건은 천천히 그 뒤를 따라 들어가며 안을 둘러보았다. 널찍한 공간 안에 크고 작은 쇠붙이나 나무토막, 막대 등등이 굴러다니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괭이나 곡괭이 같은 물건이 잘 모셔져 있었다.
단상운이 주정이라 이름 붙인 쇠기둥도 두어 개 더 굴러다니고 있었다. 장건이 그 안을 쭉 둘러보고 있으려니 단상운은 안을 뒤적거리다가 뭔가를 가지고 그에게 다가왔다.
“이것도 내가 만든 것이오. 화로 불씨를 꺼뜨려도 이것만 있으면 금세 다시 불을 피울 수 있지. 화섭통火攝桶이라고 이름 붙였소.”
그가 가져온 것은 짤막한 모양의 쇠 원통이었다. 그가 그것의 윗부분을 열어 분리하니 안에 삐죽 올라온 심지와 그 옆에 조그만 부싯돌이 보였다. 단상운은 분리한 머리 부분을 그 부싯돌에 탁탁 때려 불씨를 피웠다. 그러자 곧 심지에서 조그만 불이 피어올랐다.
“신기하지 않소? 사실 뭐 대단한 것 없소. 그냥 이 안에 솜을 넣어 거기에 기름을 축축하게 적시고 그 위로 심지를 뽑아낸 것뿐이니까. 물론 이 머리를 잘 닫지 않으면 기름이 금방 날아가 버리긴 하는데, 어떻게 잘만 만지면 더 조그맣게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소.”
그는 그 작은 불을 장건 앞에 보여주다가, 곧 장건 보라는 듯 뚜껑을 찰캉 닫아 그 화섭통이라는 것의 불을 껐다. 그리고 그걸 장건 손에 쥐여주고는 창고 한쪽으로 걸어가 무언가 위에 덮여 있던 천을 확 끌어 그 아래에 있던 기물을 보여주었다.
“이게 지금 만들고 있는 물건이오. 끓는 물과 그 증기를 이용해 사람의 손이 없어도 혼자 움직이는 무언가를 만드는 게 지금의 목표지.”
그 기물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쇠 원통 아래 발이 달려 그 아래 불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 정도와 그 밑부분이 둥글고 큼직한 호리병 모양이라는 점이 달랐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면 여기에 물을 넣고 끓여서 그 증기로 이 머리 부분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오. 끓어오른 증기가 이 머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가 여기 구멍에서 쭉 빠지면 무거운 머리는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 거지. 사실 원리 자체는 끓는 주전자가 덜그럭거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소. 단지 크기의 문제인 것이지···”
단상운은 다시 혼자 신나서 이걸 만드는데 무슨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장건은 그 모습을 보며 그가 그 시행착오의 과정 자체를 즐거이 여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별다른 짜증이나 답답함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실패들과 거기서 얻을 수 있었던 경험들이 너무 재밌다는 것처럼 보였다.
장건은 그제야 혹시나 했던 생각이 틀렸다는 걸 느꼈다.
평범한 농부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식견과 수동 펌프, 원시적인 증기기관, 크기가 크긴 하지만 분명한 기름 라이터의 모습 등등. 분명 어딘가 시대에 맞지 않는 선지자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장건은 그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처럼 이전 삶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닐까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잔뜩 신이 난 이 남자의 얼굴에는 그저 젊은 발명가의 열망과 호기심만이, 그리고 그를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만이 가득했다. 어떤 뚜렷한 목표나 명확하게 그리는 구상이 느껴지질 않았다.
장건은 자기도 모르게 약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괜히 앞에 있는 기물을 건드려 보았다. 단상운은 그런 그의 표정도 모르고 계속 떠들고 있었다.
그때 그 쇠기둥을 만지작거리던 장건의 손이 움찔 굳었다.
“···그래서 이 머리 쪽 무게를 조금 더 늘리거나 아니면 아예 이 구조를 새롭게 바꿔야··· 왜 그러시오?”
단상운은 장건의 시선이 창고 밖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어리둥절하게 물었다. 그러나 장건은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 창고를 나섰다. 단상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그 뒤를 따랐다.
창고 밖으로 나선 장건의 눈에 마당 한가운데 선 노인 하나가 보였다. 긴 수염과 치렁치렁한 도포가 어딘가 탈속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노인이었다. 그 노인은 잔뜩 굳은 얼굴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의 뒤에서 나온 단상운이 그 노인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어쩐 일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