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이런··· 시···발···”
장건은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바들거렸다. 일그러진 표정과 꿈틀거리는 눈꺼풀은 그의 고통과 분노, 슬픔, 허탈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떨리는 그의 손에서 골패들이 투두둑 떨어졌다. 그는 또 졌다.
“···저기, 내가 웬만해서는 이런 말 안 하겠는데··· 자넨 골패 같은 거 하면 안 될 것 같네만.”
같은 탁자에 앉아있던 중년인이 그런 장건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충고를 했다. 하지만 장건은 도리어 번뜩 그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당신들··· 설마 다 같이 짜고···”
중년인은 피식 웃었다.
“우리끼리 짰냐고? 아니, 자네 실력은 그럴 필요도 없네. 자넨 도박을 너무 못해.”
그 말이 결정타가 되었다. 장건은 결국 힘이 탁 풀려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 탁자의 도박꾼들이 짜지 않았다는 것은 장건이 더 잘 알았다. 이미 털려본 경험이 있는 그로서는 당연히 내공으로 오감을 키우고 기감까지 깨워가며 도박꾼들의 손놀림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그 손놀림에만 집중하느라 본인 표정 감추기나 상대의 감정 읽기는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칼을 들고 싸울 때는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그 경지가 손에 골패만 쥐면 흐지부지해졌다.
어쨌든, 그는 이 도박판에서 탈탈 털렸다.
“내 말을 장난으로 듣지 말게. 자네 도박 정말 못 해. 그리고 무림인이랍시고 칼을 차고 다니나 본 데, 이런 도박도 못 이기는 판에 그런 살벌한 거 들고 다니지 말게. 나중에 진짜 칼 맞아.”
중년인은 탁자에 깔린 동전을 챙기며 나름 진지한 충고를 날렸다.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장건은 그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그 기운 빠진 동작 그대로 스르륵 의자에서 일어나 객잔 한쪽에 주인을 마주 보는 길쭉한 탁자로 걸어갔다. 중년인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패가 잘 안 풀린 모양입니다.”
작은 화로에서 뭔가를 굽던 객잔 주인이 장건이 다가와 앉자 그걸 내려놓고 술병을 꺼냈다. 장건은 그 술병과 잔을 자연스럽게 받고 잔을 채우며 말했다.
“난 패가 잘 풀린 적이 없었소.”
중년과 노년 사이로 보이는 객잔 주인은 장건의 퉁명스러운 대답에도 그저 슬쩍 웃으며 다시 작은 화로에 신경을 주었다. 벌써 엿새째 객잔의 매출을 올려주니 말이 곱지 않아도 이뻐 보이는 모양이었다.
잔을 홀짝인 장건은 탁자에 팔을 걸치고 턱을 쓰다듬으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객잔 안을 둘러보았다.
식사보다는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늦은 오후에 고된 농사일을 마치고 온 농부나 가게 문을 닫고 온 상점 주인들이 한잔 걸치러 많이들 들른 것이다. 객잔 한쪽에는 한 가객이 넓은 삿갓을 얼굴에 덮고는 의자에 몸을 깊이 누워 앉아 팅팅 비파를 튕기고 있었고, 장건은 그 비파 소리를 안주 삼아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2층짜리 사합원 모양의 객잔에는 오후의 햇빛이 잘 들어 환했다. 하지만 그 환한 햇빛 덕분에 응달이 지는 부분은 대조적으로 훨씬 더 어두워 보였다.
그 어두운 쪽에 앉아있던 장건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밝은 곳을 바라보았다. 흐린 눈에 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먼지들이 두둥실 떠다니며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를 헤엄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떠다니는 먼지의 삶은 무엇일까. 그저 바람과 바람 사이 격랑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이 저기 즐겁게 웃는 농부와 상인들만큼이나 충실한 삶일 수 있을까.
먼지를 보며 턱을 만지작거리던 장건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돈 잃고 혼자 망상이나 하는 꼴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배운 것이 없지 않았다. 지난번과 달리 주머니가 완전히 텅 빌 때까지 도박하진 않은 것이다. 아직 그의 품에 남은 동전들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흡족하게 웃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장건의 눈에 객잔 주렴을 걷으며 들어오는 세 사람이 보였다.
기름을 잘 먹여 반들거리는 삿갓과 검은색 방풍복, 그리고 오른쪽 어깨 뒤로 삐죽 솟은 칼 손잡이. 셋이 똑같이 차려입은 것과 음침한 기색을 보아하니 변태 같은 놈들 같았다.
객잔 주인은 가까이 있던 장건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물론 여전히 긴 탁자 뒤에서였다.
“어서 오시지요. 숙박이십니까?”
검은 방풍복 셋 중 제일 앞에 나와 있던 자는 객잔 주인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삿갓을 슬쩍 들어 올리며 객잔 안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객잔 주인이 불편한 표정을 지을 때까지 안을 둘러보던 그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었다.
“···저기, 손님?”
그는 객잔 주인의 말에 갑자기 검지 하나를 들어 보였다. 객잔 주인은 대충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독한 술 한잔을 채워 내밀었다. 그걸 단번에 들이켠 남자는 동전 하나를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고 뚜벅뚜벅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객잔 안은 조용해진 상태였다. 대충 봐도 그 셋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그 셋이 넓게 펼쳐져 안으로 들어온 덕분에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셋 중 제일 앞으로 나선 남자는 느릿한 걸음을 디뎌 여태 비파를 튕기고 있던 가객의 뒤에 섰다.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탁자 위에 다리를 올리고 있던 가객은 갑자기 조용해진 객잔이 이상한지 얼굴을 덮고 있던 삿갓을 슬쩍 들어 올렸다.
“오.”
턱을 괴고 앉아 그걸 지켜보던 장건은 자기 혼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로 감탄했다. 들어 올린 삿갓 아래 보이는 얼굴이 꽤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붉은 입술과 그 아래 또렷한 미인점이 매력을 돋우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주여랑.”
여인은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가벼운 한숨을 내쉬더니 여전히 앉은 그대로 말했다.
“누구신데 날 찾을까.”
남자는 여인의 등을 보며 마치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난 산동제가의 소궐용이다. 내 이름은 몰라도 제가齊家의 이름을 모르진 않겠지?”
“산동제가? 산동에 있어야 산동제가지. 그 제씨 집안은 지금 신사천 쪽에 있잖아?”
“···엉뚱한 소리를 하는군, 주여랑. 그딴 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자칭 제가의 소궐용은 다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 되리라는 것이지.”
주여랑이라는 여인은 머리가 아픈지 인상을 쓰고 관자놀이를 만지작거렸다.
“···무슨 일인지 짐작이 되는군. 미안하지만 그 제씨 공자는 자기 혼자 지랄이 난 거야. 난 평소처럼 돈 받고 비파나 튕겼을 뿐이라고. 내가 지 혼자 난 상사병까지 책임을 져야 해?”
“헛소리하지 마라! 네가 목적을 가지고 공자님을 홀렸다는 걸 다 알고 있다! 이미 증인도 있어!”
주여랑은 무슨 헛소리냐는 듯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그딴 일에 증인까지 있다고?”
“섬지영 소저께서 네가 어떤 식으로 공자님께 접근했는지 모두 말해주셨다! 끝내 네년이 공자님에게서 가문의 비문을 빼돌렸다는 것도!”
소궐용의 으르렁거림에 주여랑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치겠네. 갑자기 비문은 무슨 비문? 그 공자한테 좀 제대로 물어봐. 그딴 일이 정말 있었는지 말이야.”
“네 이년! 공자님은! 공자님은···!”
“···그 공자는 뭐? 설마 공자한테 무슨 일 있나?”
소궐용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어깨 뒤 칼 손잡이를 잡으며 엉뚱한 말을 외쳤다.
“일어서라! 그리고 돌아서! 등을 보이는 자를 베지는 않겠다!”
그가 칼을 잡자 다른 두 사람도 똑같이 몸을 낮추며 칼 손잡이를 붙잡았다.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숨을 죽였다.
주여랑은 여전히 탁자에 발을 올리고 앉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등받이에 머리를 대고 가만 객잔 천장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진짜 싸우자고? 그 애송이의 상사병 때문에?”
“애송이라니! 공자님은 올해 성인식도 치른 가문의 후계자시다!”
“열여섯이면 애송이지.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야, 제씨 가문에서 지금 이 일을 진짜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지?”
소궐용이 소리쳤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
“그렇잖아? 제씨 가문이 이 문제를 진짜 심각하게 생각했다면 너 같은 애송이 셋이 아니라 제씨 성을 가진 진짜 가문 사람이 찾아왔겠지. 혼자서.”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소궐용은 크게 움찔거렸다. 그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감히! 너 같은 부랑자는 나와 내 형제들 손이면 충분하다! 어서 일어나기나 해!”
주여랑은 다시 물었다.
“진짜 싸워? 난 일단 시작하면 봐주지 않을 거야.”
소궐용은 이제 그녀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쓰고 있던 삿갓을 벗어 바닥에 내팽개치며 낮게 말했다.
“오냐, 네년이 자초한 일이다. 등짝에 칼 맞고 싶다면 그렇게 해 주지.”
그렇게 말한 소궐용은 잡고 있던 칼 손잡이에 힘을 줘 뽑았다. 그에 맞춰 다른 두 사람도 칼을 뽑았다. 그리고 그렇게 세 사람의 칼이 스르릉 소리를 내며 뽑혀 나오는 순간, 칼날이 칼집을 완전히 빠져나오기 전 그 순간, 여태 앉아있던 주여랑이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그녀가 몸을 돌림과 동시에 뭔가 번쩍 날아가 소궐용의 가슴에 틀어박혔다.
“억!”
소궐용은 외마디 비명 한번 지르고 가슴에 꽂히는 힘 그대로 날아가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다른 두 사람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쓰러진 소궐용과 주여랑을 번갈아 보았다. 소궐용의 가슴팍에는 비도 두 자루가 박혀 있었다. 주여랑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먼저 칼 뽑았으니 정당방위야.”
제씨 가문의 두 식객은 그녀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커다란 기합을 내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주여랑은 뒤로 제비를 돌며 피했고, 그들의 칼질은 그녀가 앉아있던 의자와 탁자를 쪼개버렸다. 단번에 나무 탁자를 쪼개버린 것으로 보아 주여랑의 말처럼 애송이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으아아! 싸움 났다! 지부장 불러와!”
“도망쳐!”
그들이 싸움을 시작하자 숨죽이고 있던 객잔 손님들은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르르 도망치는 사람들과 다르게 장건은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뚱한 얼굴로 술잔을 홀짝거렸다. 난장판 중에 의자 하나가 날아오다가 장건의 손에 우뚝 잡혀 멈췄다. 그는 그걸 곱게 내려놓았다.
객잔 주인은 그런 장건의 모습을 보고 눈을 반짝이더니 부서지는 탁자와 의자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점소이를 끌고 왔다. 그리고 장건 건너편 탁자 위로 눈만 빼꼼 내밀고 연신 탄식을 흘렸다.
“저걸 다 다시 사려면···”
“···삼촌, 이번 달도 남는 게 없겠어요.”
처음에 비도를 던졌던 주여랑은 등허리에서 팔뚝보다 조금 더 긴 직도를 뽑아 들어 싸우고 있었다. 유연한 동작으로 탁자와 탁자, 의자와 의자 사이를 건너뛰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두 무사는 단번에 탁자를 쪼갤 정도로 뛰어난 칼솜씨였지만 폴짝폴짝 뛰어오르는 주여랑을 따라잡을 정도로 발이 빠르진 않았다. 심지어 둘이 경로가 엉켜 서로 부딪치고 난리가 났다. 주여랑은 둘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오.”
장건은 정말 오랜만에 경공 비슷한 것이라도 쓰는 인물을 보자 즐거워졌다. 아무래도 본래 몸이 가볍고 유연한 데에 어떤 공부가 더해진 것 같았다. 어쩌면 그는 신대륙의 경공 선구자를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때 1층에 있던 모든 탁자가 박살 나며 주여랑이 다시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무사 두 사람은 그녀가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을 본 순간 흡-하고 호흡을 멈췄다.
직후, 두 줄기 빛이 주여랑을 스쳐 지났다. 주여랑은 오른손에 직도를 역수로 쥐고 바닥에 발을 디딘 자세 그대로였고, 두 무사는 그녀의 뒤에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빛줄기 후 잠깐의 정적. 이어 주여랑은 바로 서며 등허리의 칼집에 직도를 집어넣었다. 칼이 칼집과 만나며 달칵, 하는 소리가 나자 무사 둘이 털썩털썩 쓰러졌다. 한 사람은 목이 반쯤 잘려서, 다른 한 사람은 이마 한가운데에 비도가 틀어박혀서였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본 장건은 마음속으로나마 손뼉을 쳐주며 술잔을 홀짝였다. 저 가객은 비파 소리로 안주를 대신해 주더니 이젠 칼싸움으로도 술맛을 돋우어주고 있었다. 그는 혼자 기분이 좋아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여랑은 잠시 선 자리에서 호흡을 가다듬다가, 객잔 안에 남아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아직도 당당히 의자에 앉아있던 장건이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자 마치 미친놈 보듯 바라보았다. 그녀는 장건 뒤에 숨어있는 객잔 주인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저 무뢰배들 때문에 객잔이 엉망이 되었네요.”
객잔 주인은 반쯤 해탈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객잔을 한다는 건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협께서는 신경 쓰실 것 없습니다.”
“아뇨, 그럴 순 없죠. 내가 아니었다면 이럴 일도 없었을 거잖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등으로 돌려매었던 비파를 풀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비파의 아랫부분을 만지작거리자 달칵 소리를 내며 작고 네모난 구멍이 열렸다. 거기서 주머니 하나를 꺼낸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주머니를 통째로 내밀었다.
“여기요. 수리비로 쓰세요.”
“아이고, 뭐 이런 걸 다.”
객잔 주인은 거절하는 기색도 없었다. 넙죽 주머니를 받아들더니 허허거리며 웃었다. 주머니가 묵직한 모양이었다. 돈을 건넨 여인은 잠시 자신이 죽인 세 무사와 엉망이 된 객잔 안을 둘러보다가 객잔 주인에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밖으로 떠났다.
장건은 빠르게 떠나는 그녀가 이해되었다. 아무리 정당방위였다지만 무림맹 지부장은 일단 그녀를 붙잡아 두려 할 터였다. 귀찮은 일을 당하기 싫다면 얼른 떠나는 것이 맞았다.
잠시 후 장건은 자기도 냉큼 떠나는 것이 좋았다는 걸 깨달았다. 뒤늦게 찾아온 무림맹 지부장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 꼬치꼬치 캐물은 것이다. 옆에서 술과 안주를 차려주는 객잔 주인이 아니었다면 그 낯짝에 주먹 한번 꽂아줄 뻔했다.
* * *
이튿날 장건은 선선한 숲의 공기를 맡으며 느긋하게 조조를 몰아가고 있었다. 도박의 유혹에서 주머니가 완전히 털리는 것은 막았으나, 어찌 되었든 홀쭉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제 있던 그 마을은 별다른 문젯거리가 없는 평화로운 곳이었다. 주여랑의 소동이 근 일 년 동안 최고의 사건일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무인이 돈을 벌 일은 없었다.
돈을 벌러 문제를 찾아가야 한다니. 장건은 괜히 쓴웃음 한번을 짓고 천천히 조조를 몰았다.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햇살이 기분을 달래주고 있었다. 장건은 기억을 더듬어 어제 주여랑의 비파로 들었던 곡을 휘파람으로 불렀다.
산길에서 느긋하게 말을 몰며 휘파람을 불던 장건은 산길 한쪽에 삐죽 절벽 하나가 선 것을 보고 조조를 그리 몰았다.
절벽에 서자 멀리 굽이치는 산등성이와 그보다 더 멀리에 보이는 거대한 설산, 그 아래 구불구불 흐르는 강물과 파도치는 숲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들은 장건에게 괜한 차분함을 선사했다.
맑은 공기를 깊게 들이마신 장건은 조조를 끌어 절벽을 떠나려다가 다시 고삐를 당겨 멈췄다. 조조가 왜 지랄이냐는 듯 푸르륵거렸다.
“···또 보네?”
저 밑, 절벽 아래에 주여랑이 누군가와 대치하고 서 있는 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