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 * *
왕 도사는 조조를 어느 얕은 계곡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낡은 오두막과 작은 동굴, 너무 오래되어 못 쓸 광산 기구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광산을 개발하다가 생각만큼 산물이 나오질 않았던지, 아니면 이미 오래전 광물을 다 뽑아먹고 버려진 모양이었다. 햇볕이 충분히 들지 않는 쇠락한 장소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리로.”
왕 도사는 곧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 안으로 장건을 안내했다. 단상운을 업은 장건은 그 뒤로 따라 들어가 역시 낡은 침대 위에 그를 던져놓았다.
“자네도, 치료를 해야지···”
“난 내가 살피겠소.”
장건은 그렇게 대답한 후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조조의 안장 가방에서 붕대와 가루약을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후 조심스럽게 웃옷을 벗은 장건은 단단히 박힌 창 날을 확인하며 짧게 심호흡하다가, 단번에 붙잡아 뽑았다.
머리가 찡-하고 울리며 등골이 쭈뼛 서는 동시에 붉은 피는 왈칵 쏟아져 바닥을 적셨다. 장건은 눈앞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빠르게 손을 놀려 혈도를 짚고 피를 멈췄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어깨와 옆구리 상처에 가루약을 뿌리고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도와주겠네···”
그때 오두막에서 나온 왕 도사가 붕대 감는 것을 도와주었다. 장건은 피를 너무 흘려 머리가 어질어질한 것을 느끼며 도움을 받아 겨우 붕대를 감았다. 그 후 피에 절어버린 웃옷은 그냥 던져버리고, 물가에서 몸을 씻었다.
다 씻고 툭툭 손을 털며 일어나 돌아보니 오두막 앞에 주저앉은 왕 도사가 놀랍다는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요?”
“행동거지가 방금 칼 맞은 부상자답지 않군. 상처가 얕았나?”
장건은 안장에서 새 옷을 꺼내 입으며 대답했다.
“어깨보다는 옆구리 쪽이 더 위험했소. 더 깊었으면 장기가 완전히 잘려 나갔을 것 같군. 그럼 이렇게 혼자 서서 떠들고 있진 못했겠지.”
“···그게 그렇게 침착하게 할 말인가?”
“내 상태가 궁금한 것 아니었소?”
왕 도사는 고개를 살살 내저으며 말했다.
“내 제자도 그렇지만, 자네도 참 이상한 친구군. 무림인들이 아무리 크고 작은 상처를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는 해도, 지금 자네처럼 크게 다친 채 그리 차분할 수는 없을 거야···”
장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왕 도사는 그런 장건을 바라보다가 곧 앉아있는 것도 힘겹다는 듯 숨을 헐떡거렸다. 그를 본 장건은 자신이 쓰고 남은 붕대와 가루약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니. 소용없네.”
하지만 숨을 헐떡이던 왕 도사는 그 약과 붕대를 밀어냈다. 그의 안색이 한층 창백해졌다. 장건은 굳이 두 번 권하지 않고 약을 안장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굴러다니던 나무토막을 집어 왕 도사 앞에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서는, 그에게 물었다.
“이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지랄인지 좀 설명해 주시겠소?”
왕 도사는 머뭇거렸다. 장건에게 이걸 말해야 할지, 말한다면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부상이 정말 심각한 것인지 장건에게 표정을 감춰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했다.
장건은 재촉 하나 없이 묵묵히 기다렸고, 결국 생각을 정리한 왕 도사가 천천히 입을 열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끼어드는 인물이 있었다.
“그건 저도, 궁금하군요.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사형이 스승님을 노리는 겁니까?”
오두막 문 앞에 비틀거리며 등장한 이는 단상운이었다. 그는 문턱에 기대고 서서 몸을 떨면서도 붉게 달아오른 눈으로 왕 도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본 왕 도사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해 주십시오, 스승님. 사형은 칠 년 전 그날 떠났던 게 아닙니까? 저는 스승님이 사형이 출행을 알고도 놓아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면 그 이후 사형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으리라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 만난 사형은···”
“네 사형은 파문되었다. 내가 그놈의 단전에 칼을 박아 절벽에서 밀어버렸다.”
두 눈을 감은 왕 도사는 그렇게 단상운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그가 뭐라 더 묻기도 전해 말을 이어나갔다.
“삼십 년도 훨씬 더 전에, 난 한漢 진북군鎭北軍 연광사 장군의 휘하 비장군卑將軍이었다. 연광사 진북장군의 참모진이자 주력 타격대 일원이었지. 주로 북방 오랑캐들을 처리하였고, 때때로는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는 중원 무인들을 추적하고 말살했다.”
사형을 파문하고 절벽에서 밀었다는 말에 벌컥 소리 지르려던 단상운은 스승이 갑작스레 늘어놓는 과거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왕 도사는 그런 반응이 궁금하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두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난 고대 가문이나 넉넉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그저 타고난 재능이 나쁘지 않아 연줄을 만들고자 하던 무관에 입관해 무공을 배우고 황군이 되었고, 그 이후에도 어찌저찌 가장 하찮기는 하나 장군將軍의 지위까지 올라가게 되었지. 하지만 쉰에 이른 나이와 점점 녹슬어가는 몸뚱이는 그 이상은 없을 것이라 말해주었어. 아마 임무를 수행하다 실수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던가, 아니면 그만 지위를 내려놓고 황도 예비군에 들어가야 할 터였지.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황도 예비군에 편입되리라 생각했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왕 도사는 두 눈을 뜨고는 어딘가 한풀 기세가 꺾인 모양새로 오두막 벽에 몸을 기댔다. 낡은 나무 벽이 그 무게에 끼익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불온한 반역자를 척살하던 임무 중 어느 계곡에서 무공서 하나를 얻게 되었다. 혼원경混元經이라는 그 서책에는 네가 배운 혼원양생공, 심재검, 좌망권이 들어 있었지. 처음에는 산골에 처박혀 자기들끼리 무공을 배우던 옛 무인들의 무공인 줄 알았다. 황군의 위대한 무공에 으스러져 후예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버러지들···”
왕 도사의 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로 접어드는 맑은 하늘은 푸르다기보다는 뿌연 회색빛으로 보였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혼원경의 무공에 홀려 그것을 익히고 있었다. 그것은, 혼원경은 그동안 내가 익혀온 무공과 내 세계를 뒤흔들었어. 오직 더 빠르고 강한 무리만을 추구하는 황군과는 달리, 혼원경은 그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무공을 익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주는 경서經書였다. 그래, 그것은 천 년 전 선인들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사람답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고뇌의 산물이었지.”
노인은 자신의 과거에 완전히 젖어 든 것처럼 보였다. 그의 앞에 마주 앉아있는 장건은 어깨와 옆구리가 아릿한 와중에도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고 있었고, 이제 똑바로 설 수 있게 된 단상운은 여전히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문 채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제야 난 황군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더 늙어 완전한 노인이 되기 전에, 그래서 장안의 성벽을 다시는 넘지 못하는 날이 오기 전에 황군이라는 멍에를 벗어던지고 혼원경을 연구하고 싶었어. 하지만 장군의 지위를 받은 자가 그렇게 어딘가로 훌쩍 떠나버리는 일은 황군의 규율 아래 일어날 수 없었지. 그래서 난 내 죽음을 위장했다.”
“···죽음을 위장했다고요?”
이야기를 듣던 단상운의 말에 하늘을 올려다보던 왕 도사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몇 해에 걸쳐 상황을 준비하고, 그동안 점점 기량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지. 내 지위가 장군 중 제일 낮은 지위였다는 것도 한몫했을 것이야. 임무 중 홀로 낙오된 나는 오랑캐들의 차륜전을 이기지 못했다. 아마 황군 기록 중에는 짤막한 한 줄로만 남았겠지. 비장군 우일, 임무 중 사망. 어쨌든 그렇게 황군 우일은 죽었다. 난 도사로 위장해 배를 타 이곳, 신대륙으로 도망쳐왔지. 그 후 신사천의 뒷골목에서 굶어 죽던 너와 네 사형을제자로 받아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단상운은 왕 도사의 마지막 말에 문득 그 옛날이 기억난다는 듯 우울한 표정이 되었다. 그때 부모를 잃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과거를 가진 장건은 그런 감상에 빠지지 않았다.
“재밌는 과거군. 이 신대륙에 당신처럼 황군을 빠져나와 도망친 이가 더 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하지만 내가 물었던 건 그런 먼 과거가 아니지 않소?”
“···그래. 조상룡, 그놈이 왜 나와 자기 사제를 노렸느냐, 그거지? 간단하네. 방금 말했듯 내가 그놈을 파문했으니까.”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단상운이 물었다.
“왜요? 왜 사형을 파문했습니까? 사형은 그저 입신양명의 꿈을 안고 도시로 가려던 것뿐이었습니다!”
“허락할 수 없었다. 혼원경 원본만을 익힌 너와는 다르게 그놈은 나의 무공, 그러니까 황군 무공이 섞인 것을 배웠으니까. 처음에야 명성을 얻었을지 몰라도 결국 나중에는 황군 무공이 유출되었음이 알려지며 추적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럼 나는 물론이고 너도, 그리고 네 부인도, 아이도, 심지어 이 마을 사람들도 모조리 목이 잘렸을 거다. 무공을 익혔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았을 게야. 그냥 다 죽였겠지.”
“그게 사형을 죽일 이유가 되었단 말입니까? 그냥 사정을 이야기하고 출행을 말렸으면 될 일이었잖습니까!”
“그놈은 나에게 검을 들이밀었어!”
지금까지 조용조용 이야기를 꺼내던 왕 도사는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도 너만큼이나 그놈을 아꼈다! 하지만 자기 무공에 취해 스승의 말도 제대로 듣지 않고 무작정 살수를 펼치는 망나니한테 내가 뭘 얼마나 더 기대할 수 있었다는 말이냐? 그보다 당장 내 걱정이 뭔지 아느냐? 무림맹에 들었다는 그놈이 과연 나에게 배운 무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래서 황제의 개들에게 그 정보가 잡히기라도 했다면!”
왕 도사의 외침에 단상운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는 왕 도사의 변명과 황군에 대한 두려움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그리고 그 답답함을 꾹 억누른다는 듯 두 눈을 감았다.
“···그래서, 왜 저를 구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그놈은 나와 이 친구가 아니었다면 널 고문했을 게다. 완전한 황군 무공을 내놓으라며 말이야··· 그리고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는 이제 그동안 내가 이룬 심득을···”
“난 돌아갈 겁니다. 당장.”
단상운이 눈을 뜨며 한 말에 열을 내던 왕 도사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돌아간다고?”
“채윤이와 상이, 영이가 사형의 손에 있습니다. 스승님과의 사연을 들으니 사형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군요. 저에게 가족마저 버리라 말하진 마십시오.”
“네가 감히! 이 스승의 말을 뭘로 듣고-”
그때 왕 도사는 갑자기 쿨럭쿨럭 기침하며 입을 막고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그 손바닥으로도 다 막지 못한 붉은 피가 줄줄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스승님!”
깜짝 놀란 단상운이 스승을 부축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다가온 장건은 빠르게 왕 도사의 몸을 훑으며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지 않군. 내장이 너무 상했어.”
개복과 수혈을 할 수 있는 현대의 의술이었다면 그를 살릴 가능성이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여든이 넘은 왕 도사가 그걸 견딜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상황에 지금 여기서 그렇게 배를 열고 꼼지락거리다간 하루 더 살 상황이 아주 찰나로 변할 터였다.
왈칵 피를 토했던 왕 도사는 그 축축한 손으로 단상운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상운아.”
“···예, 스승님.”
죽음을 앞에 둔 왕 도사는 반짝이는 눈으로 단상운을 마주 보았다.
“난 반평생을 황군으로 수많은 사람을 해치며 살았다. 그래서 너희를 가르치면서도 많은 실수를 범했지··· 오늘 나타난 상룡이의 모습도 그 실수의 결과 중 하나일 게다. 이건··· 그래, 그냥 다 내 잘못이야.”
왕 도사의 상태를 본 단상운은 입술을 깨물더니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스승님. 스승님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는 거 압니다.”
“허허··· 순해 빠진 녀석. 너에게 혼원경만을 가르친 것은 그 성정 때문이었지.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옛 선인의 것은 지금의 선인에게. 너라면 혼원경이 말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단상운의 얼굴을 바라보던 왕 도사는 곧 장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엉뚱하게 휘말린 자네에겐 정말 미안하군. 하지만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되겠나?”
“말해보시오.”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장건의 대답에 왕 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상운이를 잠시만 지켜주시게. 그럼 자네에게도 혼원경을 전수하지.”
장건은 그 반짝이는 노인의 눈과 어느새 평온해진 표정을 보며, 그가 뭘 할 생각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혼자서 가능하겠소?”
“내가 살고자 한다면 불가능하겠지. 하지만 어차피 내 시간은 얼마 안 남았네.”
노인의 담담한 대답에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왕 도사는 품에서 반들거리는 서책 하나를 꺼내 장건에게 내밀었다. 겉에 제목하나 쓰여있지 않은 서책이었다.
“혼원경 원본이네. 그저··· 보고 난 후 상운이에게 돌려만 주었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소.”
단상운은 그 대화와 오가는 서책을 보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무슨,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이리 와서 날 업거라. 네가 혼원양생공을 얼마나 익혔었지?”
“예? 그, 칠 성 정도···”
단상운은 질문에 대답하면서도 왕 도사에게 다가가 그를 업었다.
“칠 성이라. 괜찮구나. 이제 안으로 들어가자.”
“예···”
평온한 노인과 어리둥절한 청년은 그렇게 낡은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후 장건은 오두막의 문을 닫고 그 앞에 주저앉았다. 청룡을 끌러 칼집에 무릎 위 올려놓은 장건은 등 뒤에서 느껴지기 시작한 어떤 강렬한 와류를 무시하고 서책을 펼쳤다.
격체전력隔體傳力. 왕 도사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단상운의 가족들마저 위험한 상황이 되자, 자신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 단번에 단상운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 세상의 격체전력은 위험하다 못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같은 계파 무공을 익히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불가능한 것은 물론, 설사 같은 무공을 익혔더라도 십중팔구 내공을 넘긴 당사자는 죽고 내공을 건네받은 당사자 또한 열에 다섯은 아주 미약한 내력만 건네받는 비효율의 극치였다.
등 뒤의 문을 열고 나올 단상운이 얼마나 강해질지는 미지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별말 없이 호법을 섰다. 그건 왕 도사의 내상이 심각했기에 살릴 방법이 없었으리라는 것도 있었고, 동시에 장건 본인의 상처를 회복할 시간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몸이 축난 상태로는 나머지 비천취응대를 상대할 수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는 장건보다 조금 처질지 몰라도, 한 수에 생사가 갈리는 작금의 무림에 정도 이상의 무인 다수를 홀로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조조가 그의 옆으로 다가와 툭툭 머리를 건드렸다. 책에서 눈을 뗀 장건은 그런 녀석의 콧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이번엔 내가 좀 무식하게 굴었지. 굳이 그렇게 다섯의 일격을 다 받아줄 필요는 없었는데.”
조조는 푸르륵거리며 다친 장건에게 핀잔을 주는 듯했다.
“걱정 마라. 그동안 만든 거 안 까먹었으니까.”
장건의 특기는 무수한 상황을 만들고,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무공이었다. 남은 비천취응대와 조상룡은 이제 그 특기를 맞이해야 할 터였다. 조조의 머리를 밀어낸 장건은 그들을 상대할 방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다시 눈앞에 오래된 무공서에 신경을 기울였다.
옛 고대의 무공을 살피는 그의 눈이 여느 때보다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