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 * *
하와이夏渦夷 태수 연화상은 맹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실제로 그 표정만큼이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옆에서 그를 지켜보던 교위 위상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 태수님? 괜찮으십니까?”
“엉? 뭐? 왜? 괜찮냐고? 왜?”
연 태수는 위상의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위상은 그걸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까부터 눈을 깜빡이시질 않아서요.”
위상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연 태수는 잠시 멍하다가, 허허하고 웃었다.
“이 사람아, 생각이 깊으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뭘 또··· 허허. 자네는 참 걱정이 많아.”
연 태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하와이의 부두였고, 그 부두에는 지금 거대한 황실 범선이 들어서고 있었다. 교위 위상은 다시 맹해지는 태수를 보며 다시 말을 걸려 했지만 그런 위상을 동료 켈라니가 붙잡았다. 그는 위상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상은 결국 한숨을 푹 내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부두는 황실 범선이 들어설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황군의 배로 가득 차 있었다. 중원 장안에서 새로 임명된 진동장군鎭東將軍이 본인 몸보다 먼저 보낸 명령으로 신대륙 주둔지를 벗어나 이곳에 집결한 것이다.
무림맹주나 신대륙의 권력자들은 연 태수가 황군의 규율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병력을 소집한 줄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도 진동장군의 명령에 복종했을 뿐이다. 집결령은 장안에서 온 명령이었다.
그리고 현재 하와이의 부두에는 새로 오는 진동장군을 맞아 집결한 황군 모두가 열병식을 준비한 상태였다.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잘 정돈된 황군이 엄숙한 분위기로 부두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과연 천년을 이어온 제국의 군대라고 할만한 깔끔하고 웅장한 열병이었다.
하지만 그 열병의 중심에서 진동장군을 기다리는 연하상 태수는 지금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난날 휴양을 왔다가 신대륙으로 도망친 공주는 분명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중원으로 되돌려 보낸 지 한참이었다. 가장 빠르고 편안한 배로 태워 보냈고, 그로 인한 특별한 문책이 없었기에 그 일은 잘 넘어간 듯 보였다.
하지만 그 이후 장안에서는 갑작스럽게 진동장군을 새로 임명하는 것은 물론 신대륙의 병력을 모두 한곳으로 집결시키기까지 했다. 이건 연하상이 볼 때 둘 중 하나였다.
첫째는 한직을 원하는 황족 중 누군가가 장군직을 받아 그저 자기 군단을 확인하려는 것. 화려한 장안에서 떠받들어지며 살았던 인물이라면 신대륙의 도시들 안에서 황군이 주둔함으로서 생기는 이득보다는 당장 자기 눈으로 자기 군단을 보아야만 직성이 풀릴 수도 있었다. 생각 모자란 이기적인 짓이긴 하지만, 차라리 이쪽이 나았다.
두 번째는 진동鎭東, 동쪽을 진압한다는 말처럼 드디어 황제가 신대륙을 완전한 제국의 영향력 아래 거두려는 것이다. 신대륙 삼대 도시를 넘어 해안선 도시들을 완전히 점령하고, 만일 저항한다면 모조리 불태우는 것이다. 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황량한 대지가 개간되고 경작되기 기다리던 황제의 기다림이 마침내 결실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가설 모두 문제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그런 모자란 놈이 진동장군이라는 지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제국의 기강이 무너졌냐는 것인데, 적어도 연하상이 하와이 태수 지위를 받아 장안을 떠나기 전에 느꼈던 분위기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두 번째는 그럼 장안에서 오는 진동장군이 왜 추가 병력을 이끌고 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신대륙에서 한 제국에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것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저항을 받을 것이다. 신대륙에 뿌리를 내린 무림맹이나 고대 세가들이나 겉으로는 황제에게 충성해도 결국은 자기들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황군은 신대륙을 정복하기 위해 피의 강과 시체의 산을 쌓아야 할 텐데, 그렇게 하자면 현재 신대륙과 하와이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만으로는 약간 무리가 있었다. 지금 이곳에 모인 황군은 이천 명 정도였고 그중 삼분지 이는 그저 보사步士, 병졸일 뿐이었다.
물론 그들도 모두 황군의 입군 시험을 통과하고 이후에는 황군 무공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었다. 개중에는 실력을 키워 장수가 되길, 중원으로 되돌아가길 희망하는 이 또한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실력이 중원 본토의 다른 군단에 비해 모자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애초에 신대륙의 황군들은 가끔 있는 마인 토벌 외에는 싸울 일이 별로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연하상은 그 이상 상황을 예측하는 걸 멈췄다. 결국 당장 그에게 내려졌던 명령은 황군을 모두 하와이로 집결하라는 것이었고, 이후는 그 진동장군이라는 인물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다.
연 태수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 바람과 햇살에 그냥 녹아버렸으면 좋겠다. 이 섬의 일부가 되었으면···”
“태수님···”
교위 위상은 안타깝다는 눈으로 태수를 바라보았다. 장안에서 상황이 뭐가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는 몰라도 공주가 도망쳤던 것이 발단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러니 진동장군이 연 태수의 처분을 어찌할지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부두에 정박한 황실 범선 위에서 화려한 갑옷을 입은 누군가가 훌쩍 뛰어내렸다. 무거운 갑옷을 입고도 가볍게 부둣가로 내려선 인물은 몸을 일으키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는 열병한 황군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본 연 태수와 두 교위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뒤로 디딤판이 내려오고 범선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을 기다리지 않고 거침없는 걸음으로 척척 연 태수를 향해 다가왔다. 연 태수는 멍한 얼굴로 그녀를 불렀다.
“···공주님?”
“간만에 뵙는군요, 연 태수.”
연 태수는 유설 공주의 얼굴과 그녀의 차림새를 이해하지 못하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그를 본 유설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폐하께 새로 임명받은 진동장군이오. 임명장을 보여드리리까?”
연 태수는 얼른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뭐냐··· 태수 연하상이 진동장군을 뵙습니다. 하와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장군.”
“장군을 뵙습니다.”
그 뒤에 있던 교위들도 모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진열하고 서 있던 다른 병사들은 바닥을 두 번 차고는 포권하며 외쳤다.
[장군을 뵙습니다-!]이천 명이 한목소리로 내는 외침은 평범한 이였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강렬한 파도였다. 하지만 유설은 처음 지었던 엄숙한 얼굴 그대로 찬찬히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정적이 길어지려는 순간, 왼손을 들어 그들의 인사에 화답했다.
황군은 그 인사에 모두 와아-하며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환호를 일으킨 유설은 허리 숙인 연 태수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며 속삭였다.
“걱정이 많아 보이는군, 태수. 그러지 마시오. 내가 신대륙 황군을 소집한 건 그 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서였소.”
“···재정립이요?”
“그렇소, 재정립. 오래된 원한으로 아바마마에게 역심을 품고 사악한 힘을 기르는 망령들을 소탕하기 위한 재정립.”
부두를 가득 채운 병사들의 환호 속에서 연 태수는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고, 그를 혼란에 빠뜨린 유설은 아무렇지도 않게 병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 뒤늦게 배에서 내린 호위무사 진하는 그런 유설에게 다가서다가 눈이 마주쳤다.
유설은 눈이 마주친 진하에게 한쪽 눈을 장난스레 깜빡였고, 진하는 그 모습이 걱정된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와이의 하늘은 오늘도 맑고 화창했다.
* * *
“아, 글쎄, 이름 모른다니까.”
“아니 그럼 어떻게 생긴 지나 좀 말해 보시라고요.”
“어떻게 생겼냐고? 남자답게 자알 생겼지. 여인네들한테 인기 많겠더구먼.”
마을 촌장에게 증언을 듣던 무림맹 순찰대 산호는 관자놀이를 부여잡았다. 조금 전부터 제대로 된 탐문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특징··· 뭔가 잘생겼네, 못생겼네 하는 거 말고 이목구비 중 뚜렷한 특징이 없었냐는 거잖습니까.”
“너보단 잘생겼어.”
산호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아니, 무슨!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얼굴인데!”
“예끼 이 사람아! 노인네 놀리면 못 써. 자네 얼굴을 어디 써먹는단 말인가? 객잔 걸레처럼 생겼는데.”
“이보쇼, 노인장! 나도 이 순찰대 생활만 아니었으면 결혼하자는 여자가 신사천 거리에 줄을 선다고요!”
마을 촌장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고, 산호는 억울해 죽겠다며 자기 가슴팍을 두들기다가 다시 버럭 소리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손길이 있었다.
“악! 선배! 왜 때립니까!”
“탐문을 하랬지 네 얼굴 자랑을 하래? 뭐 하는 거야 지금?”
산호는 최대한 억울하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적세인을 바라보았다.
“아니, 선배. 저 정도면 일등 신랑감 아닙니까? 직장 확실하고, 무공 든든하고, 얼굴도 이만하면 빠지지 않죠?”
“지난번 선 자리에서는 상대가 네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중간에 도망쳤잖아. 다른 건 몰라도 얼굴은 빼자.”
산호는 그녀의 대답에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 그걸 어떻게···”
“걔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었다. 몰랐나?”
“그럼··· 이미 순찰대에 소문이···”
적세인은 충격에 빠진 산호를 젖혀두고 마을 촌장을 마주했다. 탐문을 위해 술집 탁자에 앉혀놓은 촌장은 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적세인이 말했다.
“그래,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고, 그저 젊은 남자에 적당히 잘 생겼다··· 그 외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겠소?”
촌장은 진짜 그것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던 적세인은 곧 한층 가라앉은 눈으로 말했다.
“비천취응대는 무림맹 타격대 중 하나요. 무림맹에 소속된 수많은 가문과 문파 중에서 정예만을 뽑아 결성된 강력한 무사들이지. 그런 그들이 이 마을에서 모두 사망하였소. 맹에서 이 일을 어떻게 볼지 아시겠소?”
“어떻게 보긴. 그래봐야 무림맹이니 뭐니 하면서 난봉을 부린 무뢰배들일 뿐이지. 그놈들에게 죽은 마을 사람이 셋이오, 셋! 근데 그걸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협박을 하는 게야?”
적세인은 작게 한숨을 쉬고 대답했다.
“···그들의 가족에겐 우리가 따로 찾아가 사과하고 보상금을 전달했소. 그들이 이 마을에 끼친 피해에 대해서도 지금 보상금을 산출했고, 이후 지부를 건설하며 마을에 지원금 형식으로···”
“에잉, 더 듣고 싶지 않소! 지부는 무슨 지부! 마을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소? 그냥 조용히 사라지시오!”
촌장은 이후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 완전히 몸을 돌려버렸다. 그를 본 적세인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산호를 잡아끌어 술집을 나섰다. 그들이 나가자 촌장은 그제야 푸욱 숨을 내쉬며 의자 위에 늘어졌다.
술집 밖으로 나온 산호는 마을 주민들이 거리에서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킁, 하고 콧김을 뿜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
“뭐가.”
산호는 적세인의 뚱한 되물음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범인 찾기요. 비천취응대를 물리칠 정도니 어마어마한 마인 아니겠어요?”
“마인 아니다.”
“···마인이 아니라고요? 비천취응대가 노리던 무림인인데?”
적세인은 고개를 저었다.
“비천취응대가 노리던 것은 그 무명 협객이 아니라, 이 마을에 머물던 단상운이라는 자와 그의 가족이다. 마을 사람들은 최대한 그를 감추려 했지만, 말을 완전히 통일하지는 못한 모양이야.”
“아니··· 그냥 평범한 농부를 노렸다고요? 그건 아니겠죠. 비천취응대면 맹주 직속 타격대 중 하나인데요.”
산호의 말에 적세인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그 굳은 얼굴을 본 산호도 같이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아, 나 이런 거 싫은데. 권력투쟁? 그 단씨 농부가 누구 원로 사생아라도 되나 보죠?”
“확실하지 않다. 원로원의 약점이 아니라 맹주 본인이 원하는 무언가를 가졌던 것일 수도 있어. 그나마 분명한 것은 맹주는 자기 휘하 무력을 쓰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고, 이 일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래서 타격대 하나가 몰살당한 사건에 우리 둘만 왔군요···”
적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사건이 어떻게 돌아간 것인지 알고 싶기에 우리 둘을 고른 것이기도 할 테지.”
산호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아··· 이런 거 싫어서 순찰대 왔는데··· 그냥 도적놈들이나 쫓아다니고 비리 지부나 털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맹의 변경을 떠도는 이상 언제가 됐든 만나야 했을 일이다. 무림맹에 있으면서 영원히 피할 순 없어. 그게 싫으면 그 무명 협객처럼 그냥 황야를 떠돌든가.”
“그놈은 뭐예요? 비천취응대가 이름도 없는 자에게 다 썰려 나가다니. 거기 대주가, 그, 누구더라··· 조상룡?”
적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 오 년 동안 맹주의 손발이 되어 활동하던 인물이지.”
“그 양반이랑 비천취응대 전원을 다 털었으면··· 그거 맹주 본인도 힘들지 않아요?”
“정면에서 붙는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싸움이라는 것은 정정당당하게만 하는 게 아니야. 환경과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하게 나눌 수 없지. 무슨 수를 썼든 완전한 정면승부를 보진 않았을 거야. 혼자서 다수를 상대할 때 그건 기본이다.”
산호는 적세인과 세워두었던 말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 대처하려고 그 열댓 명을 하나로 묶은 거잖습니까. 걔들이 괜히 단체 생활하고 훈련하겠어요? 어쨌든 굉장한 고수라는 건 분명하네요. 어디 가문의 고수일까요?”
“너도 아는 사람이야.”
말을 오르던 산호가 깜짝 놀랐다.
“···그 무명 협객이 누군지 아시는 겁니까?”
“그 남자다. 장건.”
산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건이요? 훈장 받은 그 사람?”
“그래. 평소 그의 행적과 같아. 상대가 누구든 억울한 쪽에 서서 싸웠다는 거나, 싸움 이후 큰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실력. 최근 그런 협객은 그 남자뿐이지.”
산호가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적세인은 툭툭 고삐를 당겨 말머리를 옮겼다. 그를 본 산호가 얼른 그 옆으로 따라붙으며 물었다.
“아니, 그럼 훈장까지 내렸던 사람을 수배해야 한다는 겁니까? 그거 참···”
“왜 수배해? 그는 마을 사람들과 단 씨 농부를 위해 싸웠을 뿐이야. 훈장을 하나 더 주면 줬지, 수배할 상황은 아니야.”
산호는 그렇게 말하는 적세인을 묘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문득 그 말머리 방향이 동쪽임을 깨닫고 말했다.
“어디 가세요? 맹으로 안 돌아갑니까?”
“용의자가 생겼으니 추적해 정확한 정황을 파악해야지. 어쩌면 맹주나 원로원의 약점을 찾을 수도 있어. 마을 사람들의 증언 중 완전히 일치하는 정보 중 하나는 그가 서쪽으로 떠났다는 거지. 그러니 우린 동쪽으로 가자고.”
“···그를 찾아서 어쩌려고요?”
적세인은 산호를 돌아보며 작게 웃고는 벗어두었던 삿갓을 쓰고 말을 달렸다. 그를 본 산호는 다시 손을 들어 얼굴을 마구 문지르다가, 결국 한숨 한 번 내쉬고 그 뒤를 따라 달렸다.
서쪽으로 기우뚱한 태양이 달려가는 두 사람의 등을 비춰주었다.
* * *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졸던 장건은 조조가 푸르륵 투레질하는 바람에 잠이 깼다. 대충 눈가를 비비고 삿갓을 들어보니 이미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건은 조조의 목덜미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좀 더 일찍 깨웠어야지.”
조조는 장건의 투정이 웃기지도 않는지 아예 반응 자체를 하지 않았다. 평소 녀석이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생각하면 녀석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색이었다. 장건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알았다, 인마. 오늘 객잔 들어가면 네 여물 좀 신경 쓰라고 할게.”
녀석은 그제야 다시 한번 프르륵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거렸다. 그걸 보며 조금 더 실실 웃던 장건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반쯤 정신 놓고 건너온 고개 너머에 도시 하나가 있었다. 중원인 최동단 도시, 중원인보다 신대륙 사람이 더 많다는 곳, 저 먼 동부 원주민들의 가죽, 담배, 목재 등등을 서부 해안으로 공급하는 첫 번째 거래소.
드높은 산맥과 황무지를 넘어 세워진 동부 진출의 교두보, 고원성高原城이었다.
장건은 고개 아래에서 오가는 중원인, 원주민 상인들을 바라보다가 품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 말았다. 그리고 단상운에게 선물 받은 화섭통을 탁탁 때려 불을 피워 연초에 불을 붙였다.
화섭통을 품에 집어넣은 장건은 연기를 길게 뿜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동단 도시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이 많았다. 특히 신대륙 원주민으로 보이는 이가 많았다. 심지어 도시 한쪽에 군대처럼 진영을 차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를 보던 장건이 연기를 길게 뿜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주민 군대? 이건 또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