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고요. 아무래도 내 얼굴이 얼굴이다 보니 어린 여자라고 무시하는 놈들이 좀 있어요. 참 웃기죠? 상대 외형만 보고 거래 여부를 결정하다니. 물론 제대로 된 놈들은 아니에요. 어중이떠중이들이죠. 하지만 장사라는 걸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놈들과 거래를 해야 할 때가 있어요. 신사천이나 천후성만큼은 아니어도 이 고원성의 음지도 꽤 복잡하거든요.”
산산은 본인 앞으로 차 한 잔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 쪽한테 부탁할 일은 간단해요. 그럴듯한 어깨 역할을 해달라는 거죠. 나랑 그놈들이랑 거래하는 동안 입 다물고 분위기 잡기. 쉽죠? 간단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거래가 틀어지면 칼을 뽑아야겠지. 아닌가?”
그녀는 장건의 말에 생긋 웃었다.
“고원성 전사들과 칼부림하는 것보다는 뒷골목 건달들과 드잡이하는 게 낫죠. 그쪽은 내 도움에 칼부림을 피했고요. 사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런 부탁 하고 싶지는 않은데, 아는 사람들이 지금 다 바빠서요. 게다가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얼굴이면 그 어중이떠중이들도 상대를 파악한답시고 긴장할 거고요.”
“그게 그렇게 되나?”
“결정적으로 내가 이 객잔도 소개해 줬잖아요? 자신하는데 이 객잔은 고원성에서도 오래 머문 사람들이나 아는 숨겨진 명소라니까요. 훌륭한 식사는 물론이고 깔끔한 방과 잠자리! 말했죠? 난 중개업으로 먹고산다고. 원래 이 객잔 소개도 적잖은 비용을 받아야 했다고요.”
그녀의 너스레에 찻잔을 들던 장건은 살짝 웃었다. 신사천에서도 그렇고 감산성에서도 그렇고, 도시라고 할 만한 곳에 들어서면 자꾸 뒷골목이랑 얽히는 것 같았다. 무엇 때문인지 자꾸 음지가 그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아니면 그쪽이 그에게 끌려 나오는 것이든가.
그는 짧은 상념을 뒤로하고 말했다.
“그 거래가 언제요?”
“오! 도와주려고요?”
반색하는 그녀의 얼굴에 장건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과연 식사가 괜찮군. 병풍 역할 정도는 할만할 것 같소.”
산산은 환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기대하라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준비가 좀 필요해서요. 오늘 저녁에 올게요.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 해요?”
장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몸을 돌려 통통 튀는 듯한 걸음으로 객잔을 떠났다. 잠시 탁자에 앉아서 그녀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던 장건도 몸을 일으켰다. 밤에 바빠진다면 지금 방에 올라가서 잠이라도 한숨 자든지, 아니면 가벼운 운기라도 하는 게 좋았다.
* * *
짧은 잠을 자고 내려와 마구간에 조조를 보살핀 장건은 객잔 한구석에 앉아 술잔 하나 놓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낮에 장건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객잔은 저녁 시간이 되면서 꽤나 북적북적 해졌다. 보따리 상인으로 보이는 중원인들과 중원인 복식을 한 원주민들이 여기저기서 고기를 뜯고 술을 마셨다. 다들 익숙해 보이는 것이 대부분 단골인 듯했다. 산산의 말대로 고원성에 처음 온 이가 쉽게 찾아올 객잔은 아닌 것이다.
그 단골손님들은 객잔 구석에 있는 장건을 보고 낯선 얼굴이라 여겼는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조용히 술만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이내 자신들끼리 으하하 웃으며 술잔을 부딪치고 노래를 불렀다.
그 난잡한 소란의 외곽에 앉아있는 장건은 독한 술을 한 모금씩 머금으려 천천히 술을 즐겼다. 홀로 외롭다기보다는 그저 남들과 한 발짝 떨어져 자신만의 고요를 즐기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건은 보이는 것처럼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있지 않았다. 그의 흐린 눈은 탁자와 그 위에 올려진 술잔을 향하고 있었지만, 그의 귀는 소음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주변의 소란을 낱낱이 해체해 쓸모있는 말과 단어를 찾아 구분하고 있었다.
객잔 안 사람들은 중원 말과 원주민 말을 섞어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부 말과의 차이 때문에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한참을 죽치고 앉아 가만 듣자니 그렇게 크게 다르지도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닌지 몰라···”
“···저쪽은 어떻게 나온답니까?···”
“···맹의 답장을 기다린다고···”
“···의룡검주는 뭐 하는 거야···”
“···진짜 큰일 나기 전에 물량 크게 떼서 몸을 빼자고···”
장건은 잔을 만지작거리며 코끝을 살짝 찡그렸다. 들리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았다. 차분히 들어보자니 고원성 내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중원인과 그들 밑에서 일하는 원주민이 한 갈래, 그리고 그들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는 순수 원주민들이 한 갈래.
가라앉은 마음으로 바라본 객잔 안에서 별걱정 없이 술에 취해 노래 부르는 것은 주정뱅이들뿐이었다. 손님 대부분은 심각한 얼굴로 불길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앞날의 걱정을 털어놓고 있었다.
“···때가 안 좋군.”
장건은 이곳 고원성에서 오래 머물러봐야 좋은 꼴 못 보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그의 귀에 들리는 이야기를 종합하면 ‘미쳐 날뛰는 말’을 중심으로 한 원주민들이 고원성의 통행과 상거래를 통제하며 도시의 질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중원인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상거래나 분쟁을 무조건 자신들 원주민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중원인 밑에서 일하는 원주민들 또한 반쯤은 그쪽 사람들로 취급되어 중원인 거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덕분에 도시 한쪽에 자리 잡은 미쳐 날뛰는 말과 그의 세력이, 정확히는 동쪽에서 몰려온 원주민 세력이 자기들끼리 무슨 계획을 짜는 것인지 아는 자가 없었다. 도시의 지배자들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으니 거기서 상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기다렸어요?”
그때 복작복작한 사람들 사이로 산산이 등장했다. 그녀는 발목과 소매가 날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고, 허리에는 칼까지 하나 찬 차림새였다. 장건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요? 막상 하려니까 무서워서 그래요?”
산산은 가라앉은 장건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옆에 세워두었던 청룡도를 집어 허리띠에 끼워 넣은 장건은 피식 웃었다.
“갑시다.”
그녀는 그 웃음을 보며 반대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곧 객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건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고원성의 밤거리로 나아갔다.
고원성은 신사천이나 감산성처럼 소란스러운 도시는 아니었다. 일부 객잔이나 술집을 제외한 거리는 어둑하고 조용했으며, 지나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시의 빛이 밝지 않기 때문인지 도리어 맑은 밤하늘에서는 별의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고원高原이라 붙여진 이름처럼 하늘에 가장 가까운 도시답게, 별과 달은 금방이라도 쑥 엎어져 도시 위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구름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맑은 하늘 덕분에 선명하게 빛나는 별은 그를 바라보는 두 눈 안으로 불쑥 들어와 깊은 곳까지 훑어주었다. 본인도 몰랐던 가슴속 찌꺼기가 씻겨나가는 듯했다.
“하늘을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은 처음 봐요.”
산산의 뒤따르면서도 두 눈으로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장건은 고개를 내렸다. 한 발짝 앞장서던 산산은 어느새 장건 옆에서 걸으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장건은 옅게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의 별은 오늘만 볼 수 있소.”
“···별은 내일도 뜨잖아요?”
“그 별과 지금의 별은 다를 것이오. 저 별 중 천년 뒤에는 볼 수 없을 것들도 있겠지.”
그녀는 장건의 말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는 듯, 하지만 뭔가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도 같다는 듯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버릇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녀는 곧 어느 골목 앞에서 멈춰 섰다. 멈춘 그녀는 장건을 돌아보며 말했다.
“말은 내가 다 할 거예요. 어쩌면 내가 일 대 일로 대화하는 동안 장건은 밖에서 기다리게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있어요. 굳이 입을 열어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들키지 말자고요.”
“일이 터지면?”
“그럼 내가 소리 지를게요. 그렇게 되면 그쪽은 빠져나가는 것만 생각하세요. 괜히 나서지 말고.”
“그렇게 하지.”
장건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조금 앞으로 나서서 훅훅 심호흡하더니 허리를 곧게 펴고 앞장서 나갔다. 장건은 그 뒤를 따라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리를 내다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던 대로와는 달리, 훨씬 어둑한 골목으로 접어들자 여기저기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경계심 가득한 시선부터 희미한 적개심이 느껴지는 눈도 있었다. 장건은 왠지 일이 쉽게 풀리진 않으리라 예감했다.
좁은 골목을 앞장서 나아가던 산산은 곧 어느 문 앞에 도착했다. 그 문 옆에는 한 남자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는데, 입은 옷은 중원 복식이지만 생김새는 원주민이 분명했다.
그는 뭔가 불만스러운 듯 지긋한 눈으로 산산과 장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산산이 문을 턱짓하자 곧 몸을 바로 세우고는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은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섰다.
문 너머 이어진 좁은 복도를 지나니 다시 작은 방 하나가 나타났다. 거기엔 작은 탁자와 거기 옹기종기 모여앉아 골패를 치는 덩치 넷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가 산산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철문을 두들겼다.
곧 그 철문이 살짝 열리고는 쥐처럼 생긴 남자 하나가 머리를 쑥 내밀고는 산산과 장건을 확인했다. 그는 다시 산산에게 눈을 돌리며 말했다.
“혼자 들어와.”
산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문으로 다가가며 장건에게는 한쪽 눈을 살짝 깜빡였다. 마치 방금 이야기한 대로만 하라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문 안으로 사라진 후 장건은 팔짱을 끼고 한쪽 벽에 기대섰다. 산산을 들여보낸 덩치는 다시 탁자로 돌아와 나머지 덩치들과 골패를 이어나갔다. 장건은 귓가에 내공을 집중해 철문 너머의 소리를 들어보려다가, 철문의 두께가 상당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내력을 더 집중하자니 주변 잡소리가 너무 많이 잡혀 귀가 아팠다.
장건은 거기서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저렇게 두꺼운 철문이라면 보통의 경우엔 절대 내부에서 내지를 고함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기대던 등을 떼고 팔짱까지 풀었다.
그때 장건이 지나온 복도 쪽에서 새로운 이들이 등장했다. 철문 너머로 신경을 집중하느라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남자 둘로, 잘 차려입은 중원인 하나와 허리에 도끼를 차고 무장한 원주민이었다.
그들을 본 덩치들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뭐여? 니들 누구냐?”
“누구기는. 약속이 있어서 왔지. 양 형 안에 있지?”
“뭐? 이 시간에 잡힌 약속은 하나뿐인데?”
덩치의 대답에 중원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흘 전에 양 형과 약속을 잡았는데? 토지 중개 문제로···”
“뭐여? 그 중개는 산산이가 하는 거 아니었어? 지금 안에 들어가 있는데.”
“그건 나도 들었네만. 앞에서는 안으로 들어가 사정을 확인해 보라던데.”
덩치는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 장건을 돌아보았다. 물론 장건이 알 리는 없었다. 그의 굳은 표정을 본 덩치들의 표정도 싸늘해지기 시작했고, 새롭게 나타난 중원인의 얼굴은 창백해졌으며, 무장하고 있던 원주민은 천천히 허리춤의 도끼를 잡아갔다.
공기가 뻣뻣해지는 느낌에 자신을 중개인이라 말한 중원인이 얼른 손을 들며 말했다.
“잠깐! 무작정 주먹부터 뻗기 전에!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 않나!”
장건을 흘겨보던 덩치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철문 쪽으로 다가가 텅텅 문을 두드리고 사람이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뭐여 시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당황한 덩치는 철문을 마구 두드리며 그 손잡이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굳게 닫힌 문은 그 정도에 열리지 않았다. 다른 덩치가 장건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런 시발! 뭐야? 왜 문이 안 열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니들이 알아야지.”
“뭐야 시발?”
덩치들은 열이 뻗쳤는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장건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
“비켜.”
그러나 장건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런 덩치들을 스쳐지나 철문 앞에 이르렀다. 문을 두드리던 덩치가 깜짝 놀라서 옆으로 물러서는 동안, 장건은 대충 철문을 살펴보고는 그 앞에 바로 서서 두 손을 가슴께로 천천히 끌어올렸다.
당장에 장건에게 달려들 듯했던 덩치들은 거기서 뿜어지는 묘한 기세에 움찔 굳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태를 깨닫고 다시 화를 내려는 순간, 장건의 두 손이 철문을 후려쳤다.
소리는 크지 않았다. 마치 작은 종을 치듯 통-하는 소리가 나고, 문은 네모난 모양 그대로 약간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지지대를 잃은 문짝은 곧 기우뚱 뒤로 쓰러져 쿵-하는 소음을 냈다.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장건은 빠르게 내부를 확인했다. 널찍한 방에 화려한 가구들, 벽에 걸린 수많은 동물 박제, 장식품.
“···이런 시발.”
그리고 피범벅 된 시체 둘이 있었다. 아까 머리를 내민 쥐 얼굴과 그 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인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