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 * *
모용산산은 발랄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까 그녀가 죽인 양개용은 고원성 뒷골목에서는 나름 제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는 비록 신대륙 삼대 도시의 암흑가에 비해 세력도 강하지 못하고 일신의 무공도 별거 없었지만, 애초에 이 고원성이라는 도시의 사람은 대부분 중원인 상인이거나 그들 밑에서 일하는 원주민이었다. 덕분에 그는 고원성으로 흘러 들어오는 동부의 물산과 사람을 중간에서 통제하며 많은 부를 쌓았다.
부족 연합의 대전사 ‘미쳐 날뛰는 말’은 그를 설득해 고원성 안에서 원주민들의 이익을 보장하고, 이어서 그가 가진 건물과 땅 등의 구매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양개용 조직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부족 연합의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고 본인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던 미쳐 날뛰는 말의 무력 시위 앞에서 한낱 뒷골목 우두머리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오늘 양개용과 미쳐 날뛰는 말의 특사가 만났다면 양개용은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자신의 재산을 상당 부분 부족 연합에 바쳐야 했을 것이다. 이후 중원인 거리로 진출한 미쳐 날뛰는 말은 그를 바탕으로 고원성의 경제를 집어삼키고, 다시 거기서 나온 자금으로 부족 연합의 대전사라는 지위를 확고히 다져냈을 터. 끝내는 부족 연합과 중원인, 정확히는 무림맹 사이의 전쟁을 막고 유화책을 펼쳤을 것이다.
그건 궁에서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부족 연합은 고원성 동쪽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살던 부족 여럿이 하나로 뭉쳐 만들어진 집단이었다. 그들이 뭉친 과정에는 부족과 부족 사이의 긴 은원관계가 얽혀 있었지만, 그 기저에 깔린 감정은 단순했다.
피의 복수.
궁은 대계大計를 위해 원주민들이 정령이라 믿고 섬기는 영물들을 사냥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족을 학살했다. 서부에서는 중원인과 무림맹의 눈을 피해야 했기에 시간을 들여 긴 계획을 세웠으나, 그들의 눈이 없는 산맥 너머의 땅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궁은 영물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앞뒤 가릴 것 없이 마인들을 투입해 부족을 학살하고 원영단原靈丹을 뽑아냈다.
신대륙의 모든 부족이 서로를 싫어하고 거리를 두지만은 않는다. 드넓은 땅에서 떠도는 수렵 생활을 하다 보면 어쩌다 한 번씩은 만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 혼례와 친분이 오간다. 그러니 궁의 무자비한 학살은 자연스레 원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퍼지며 큰 공포와 분노를 일으켰다.
동부의 부족들은 서부에서 오는 중원인들에 대하여 잘 몰랐다. 고원성에 가까운 이들이나 아주 남부의 부족은 잦은 상거래로 말은 물론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기도 했지만, 훨씬 먼 곳의 원주민에게는 그저 바다 건너 등장한 무뢰배들일 뿐이었다.
결국 동부의 부족 여럿은 사라진 부족의 복수와 학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그 수장으로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전사 ‘미쳐 날뛰는 말’을 뽑았다.
여기까지는 궁에서 유도했던 결과였다. 그렇게 뭉친 원주민들이 고원성을 시작으로 중원인을 공격하고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제국의 앞잡이인 무림맹의 세력을 깎아내는 것이 대계의 부차적인 이차 계획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선출된 미쳐 날뛰는 말이 이름과 실력에 걸맞지 않게 전쟁보다는 정확한 범인을 찾고 중원인들의 사과를 먼저 받으려 하는 온건파라는 것이었다.
“미쳐 날뛴다며? 이름은 멋들어지게 지어놓고 왜 그 모양이야?”
모용산산은 묶었던 소매를 풀고 탈탈 털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유화책을 펼치는 대전사의 모습에 당연히 부족 연합 내부에서는 상당한 불만이 꿈틀거렸다. 전쟁하라고 최고의 전사를 뽑았는데 그 전사가 자꾸 다른 전사들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최고의 전사라는 것은 분명했고, 또 당장 고원성을 반쯤 집어삼킨 행동력으로 마냥 온순하게 넘어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드러내 그 불만을 잠재웠다.
부족 연합과 무림맹 사이에 싸움을 붙이려는 궁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소매를 펄럭이며 털래털래 밤거리를 걷던 모용산산은 문득 아직도 불이 켜져 있는 한 서점 앞에서 멈추더니, 곧 그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냐.”
다리를 꼬고 뚱하니 앉아 책을 보던 노인은 안으로 들어서는 산산을 보지도 않고 대충 대답했다. 도저히 장사할 마음이 보이지 않는 태도였지만, 산산도 그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서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책장과 책장으로 가려져 서점 밖에서는 볼 수 없는 묘한 사각이 존재했다. 산산은 그중 한 책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장치를 건드렸다.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그녀가 그 책장을 당기자 그것은 그녀의 가슴께쯤 되는 조그만 문이 되었다. 그녀는 안으로 들어섰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어두웠다. 통로가 좁고 위는 서점이라 촛불을 켜둘 수 없었다. 하지만 산산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익숙하다는 듯 계단을 내려갔다. 빛이 들어오질 않으니 그녀의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그녀는 그 어둠 속에서 어째선지 장건의 얼굴이 떠올랐다.
“···술이라도 한잔할 걸 그랬나?”
모용산산. 그녀는 이미 예전에 장건을 만난 적 있었다. 지난날 황제의 딸이 하와이를 벗어나 신대륙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에게 접근하려는 목적으로 그녀가 좋아하는 전기소설의 인물로 위장했다가 그녀와 함께 있던 장건을 만난 것이다.
당시 구음사혈 쪽 인원과의 연계가 어그러지며 공주를 노렸던 계획은 실패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시 범상치 않은 실력을 보이던 장건을 기억해 두었고, 덕분에 고원성에 들어서던 그를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행색과 행동을 본 모용산산은 그가 분명히 황군의 고수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다.
오만한 황군 고수라면 원주민 전사들이 그를 겁박했을 때 그처럼 항복하기는커녕 당장 칼을 뽑아 전사들을 죽였을 것이다.
“차라리 그런 황군 고수였으면 편했을 텐데.”
그랬다면 궁의 계획은 무리 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은근한 불만이 깔려있던 부족 연합은 그 소란을 통해 싸움과 약탈을 벌이고자 했을 것이고, 당장 눈앞에 죽은 전사들을 둔 미쳐 날뛰는 말도 더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순순히 항복하던 장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산산은, 곧 그를 이용해 비슷한 일을 벌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궁의 뱀을 처리하던 그의 무공으로 볼 때 부족 연합과 충돌하면 그들에게 꽤 큰 피해를 안기리라 짐작되었다.
그녀는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이 고원성에 머물며 다양한 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산산이라는 이름과 얼굴은 그녀가 아주 오래전부터 쓰던 신분으로, 그녀의 첫 신분이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은 본 모습이기도 했다. 예전에도 그 얼굴로 고원성에서 활동했기에 다시 녹아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신분을 바탕으로 원주민 전사들을 물리고 장건에게 빚을 지운 그녀는 곧바로 그것을 활용했다. 본래 잡혀있던 양개용 암살계획에 그를 끼워 넣은 것이다.
계단을 다 내려온 그녀는 다시 작은 문 하나를 넘어 궁의 거점에 도착했다. 널찍한 창고 같은 장소에 이런저런 물자들이 쌓여 있었다. 그 안을 쭉 둘러본 그녀는 터벅터벅 창고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때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일은 잘 마무리되었나, 모용 백사白蛇.”
등 뒤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에 움찔 놀란 모용산산은 얼른 뒤로 돌아 한쪽 무릎을 꿇어앉으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장군. 양개용이 그렇게 죽었으니 중원인 상인들의 불만과 불안이 커질 겁니다. 어쩌면 미쳐 날뛰는 말이 그를 죽였다고 의심하고 비난할지도 모르지요.”
“낮에 보고했던 그 고수는?”
모용산산은 머리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현장에 있었으니 용의자가 될 겁니다. 그가 거기서 저항한다면 이곳 고원성에서의 대계를 앞당겨주는 도화선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고, 설사 저항 없이 잡혀간다고 해도 분노의 대상이 필요한 부족 연합은 그를 고문해 배후를 캐거나 처형할 겁니다. 어느 쪽이든 전날 궁의 계획을 방해한 역도를 저희 손 하나 쓰지 않고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장군이라 불린 자는 어둑한 그림자 속에 몸을 묻고 있어 흐릿한 윤곽만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도 시퍼렇게 번쩍이는 두 눈의 광망은 그가 가진 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번에 쓴 신분이 자네 본 얼굴이더군. 고원성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분인데 괜찮겠나?”
“대계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도리어 그 신분의 뒤를 밝혀가는 과정에서 원주민들과 고원성 중원인들 간에 대립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목소리의 주인은 흡족한 듯 보였다. 그는 모용산산을 향해 휙 손짓하며 말했다.
“좋다. 그럼 이제 다시 올라가 이번 일의 여파를 살펴라. 부족 연합의 대전사가 이 위기를 어떻게 넘길지 지켜봐야겠다.”
“예, 장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머리를 깊이 숙인 모용산산은 그 머리를 숙인 그대로 일어나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이제 그녀는 들어왔던 통로와는 다른 길로 올라가 전혀 다른 신분과 얼굴로 새로운 공작을 펼칠 것이다.
멀어지는 모용산산을 바라보던 그림자 속 인물은 곧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은 그 검은 천장에 가로막혔지만, 번뜩이는 광망은 그 너머 지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형님!”
장건이 맨손바닥으로 문을 밀어버리는 모습에 놀라던 덩치들은 곧 그처럼 내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얼른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을 살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형니임-! 아니 이게 무슨 일이오!”
“크, 큰형님과 둘째 형님이 모두···”
덩치들은 손이 피범벅이 되는 것도 모르고 두 사람을 보듬었으나 이미 시체가 된 이들이 반응할 리는 없었다.
“으음··· 제기랄···”
뒤이어 안으로 들어선 중원인 중개인이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사람이 죽은 것 때문에 당황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주 크게 곤란하게 되었다는 듯했다. 그런 중개인 옆으로 팔짱을 낀 원주민 전사가 굳은 얼굴로 방 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너! 너 이 새끼!”
그때 두 손에 피를 묻히고 덜덜 떨던 덩치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서 장건을 노려보았다. 그 덩치는 대뜸 허리 뒤에서 작은 칼 하나를 뽑더니 장건에게 들이밀며 소리쳤다.
“네가 그 계집과 같이 왔지? 알고 있는 거 다 불어! 뒈지고 싶지 않다면!”
그 순간 장건의 손이 희끗 움직였다. 그게 뭔가 했던 덩치는 곧 자신이 뽑아 들이밀던 칼이 손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그 작은 칼은 어느새 장건의 손에 들려 있었다.
“일단 좀 진정하는 게 좋겠군.”
“뭐, 뭐야? 이 새끼가-”
덩치는 놀란 와중에도 불끈 주먹을 쥐며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도리어 장건에게 달려들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장건의 손이 다시 한번 희끗해지며 번쩍, 빛살 하나가 그 덩치의 볼을 스쳐 지났다.
이후 텅-하는 소리와 함께 저쪽 벽에 걸려있던 박제 하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쪽 벽에는 덩치의 단칼이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다.
“···이, 이 새끼···”
덩치는 볼에서 주르륵 핏방울을 흘리며 덜덜 떨었다. 조금 전이 분노의 떨림이었다면, 이번엔 본능적으로 고수를 만났음을 깨달은 두려움의 떨림이었다. 덕분에 그걸 본 다른 덩치들 모두 화를 내지 못하고 엉거주춤 굳었다.
그렇게 흥분한 덩치들을 잠재운 장건은 곧 시체에게 터벅터벅 다가가며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았다. 덩치들은 물론이고 중개인과 원주민 전사도 입을 다물고 그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시체 가까이 다가선 장건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두 시체에 남겨진 상처를 살폈다.
“목을 베고 이어 심장까지 찔렀군. 과한 동작이지만 확실하긴 하지.”
장건은 덩치들이 들어와 시체를 끌어안기 전에 그 둘이 어떻게 엎어져 있었는지 떠올리고, 살해자의 동작을 연상해 보았다.
“이 쥐 얼굴이 먼저 당했군. 어떻게 대응하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기습당했어. 이후 저 의자에 앉아있던 이 남자 또한 깜짝 놀라 일어나기도 전에 목과 심장이 베이고 찔렸고. 그다음에야 상처를 부여잡고 바닥에 엎어졌군.”
“···시체만으로 상황을 유추하는 건 굉장하오만. 그 범인이 어떻게 여기서 빠져나갔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소?”
지켜보던 중개인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장건은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일단 그녀가 범인이 맞는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이 두 사람 모두 특별히 반응하지 못한 것이나, 상처의 방향을 보니 그녀가 죽인 게 맞긴 하군.”
중개인의 떨떠름함이 더 심해졌다.
“음, 그거 신기하군. 근데 나 아시오? 왜 말을 함부로···”
“방에 창문이 없군. 이 양반이 원래부터 여기 살았나?”
장건은 중개인의 말을 무시하고 덩치에게 물었다. 덩치는 장건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원래는 고원성 남쪽에 커다란 저택이 있지. 최근 부족 연합 때문에 안전한 장소를 찾으시다 이곳에 온 것이오. 본래 여긴 값비싼 귀중품을 보관하는 창고였소.”
“그럼 숨이 막힐 텐데.”
“엊그제 환풍구를 뚫었소. 사람은 통과 못하고 바람만 드나들 정도로, 주먹만 한 크기로.”
장건은 덩치가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보았다. 확실히 그곳에 조그만 구멍이 서너 개 뚫려 있었다. 사람은커녕 쥐나 겨우 드나들 크기였다.
고개를 끄덕인 장건은 곧 바닥을 살폈다. 부드러운 융단을 깔아둔 바닥에는 죽은 중년인과 쥐상의 피가 흠뻑 젖어 있었다. 장건은 쭈그린 자세 그대로 갸우뚱 융단 깔린 바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일어섰다.
중개인이 물었다.
“뭐 보이시오?”
“눈으로는 안 보이는군. 칼에 묻었을 피는 시체에 닦은 모양인데.”
장건의 대답에 중개인은 이제 슬슬 띠껍다는 표정이 되었다.
“···거, 이보시오. 사람이 죽은 상황이 당혹스러운 건 알겠는데, 날 알지도 못하면서 왜 말을 함부로-”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장건이 손가락을 들어 보인 것이다. 어떤 물리적인 억압이 아니라 단순한 손짓이었지만, 중개인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버럭 화를 내려다가 장건이 두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뭔···”
“이쪽이군.”
금방 눈을 뜬 장건은 방의 안쪽 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는데, 그곳에는 벽장이 하나 있었다. 그가 그렇게 거침없이 행동하는 동안 덩치들과 중개인, 원주민 전사는 모두 가만히 그를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잠시 벽장을 열고 그 안을 살피던 장건은 곧 그곳의 벽을 덜컥, 밀어냈다. 그러자 끼이익 소리를 내며 조그만 문이 열리고 그 안의 비밀통로가 드러났다. 덩치들은 물론이고 중개인과 원주민 전사의 얼굴에도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때 장건이 중개인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너. 따라와.”
“···뭐요? 나? 자꾸 뭔 개소릴-”
[네 신분을 밝혀도 되겠나, 암룡?]중개인은 갑자기 장건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렸다는 것에 놀라서 움찔 굳었다. 그리고 곧 그 말뜻 또한 알아듣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 어··· 아니, 무슨··· 당신 누구···”
“나 장건이다.”
중개인, 정확히는 중개인으로 위장하고 있던 암룡오호暗龍五號는 장건이라는 이름에 깜짝 놀랐다. 그 이름은 본부에서 주요 관찰을 지시한 인물의 것이었고, 이런 곳에서 만날 것이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이름이기도 했다.
“다, 당신이 왜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