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22)
122화
장건은 손강이 살펴보던 시체로 다가가 그 등판에 꽂혀있던 칼을 뽑았다. 그 칼날을 휙 털어내자 다원의 바닥 위로 후두둑 피가 떨어졌다.
그를 바라보던 손강은 눈을 떼고 다원 안을 둘러보았다. 죽은 마인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나뒹구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과 장건의 싸움으로 엉망이 된 탁자와 의자, 깨진 접시와 잔의 잔해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때 장건이 나온 주방에서 중년 남자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잠시 장건과 손강 등을 살펴보며 그들이 자신을 해칠 것 같진 않자, 천천히 주방에서 나와 다원 안을 바라보았다.
“시, 시체가···”
손강은 그를 발견하고는 곧장 다가가 따져 물었다.
“저들이 누구인지 아시오? 알고 손님으로 받았소?”
“모, 모릅니다··· 전 그냥 평소와 똑같이 다원을 운영하라는 협박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중년인은 다원에 굴러다니는 시체를 보고 파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다원의 주인이 맞았다. 이곳 고원성에서 십 년째 다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최근 어딘가 이상한 손님이 늘었다. 매번 얼굴은 달라지는데 목소리는 똑같은 인물들이 매일 아침 이 다원에서 만나 자기들끼리 아는 척을 해대고는 잡담을 나누는 것이다.
다원의 주인은 처음에는 몰랐으나 몇 주 동안 같은 목소리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다원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기이하고 섬뜩한 모습에 최대한 모른 척을 하려 했으나, 결국 더 참지 못하고 원주민 전사들이나 다른 상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제 앞에 나타난 임 학사라는 자가 말하기를, 당신은 물론이고 당신 가족과 이 다원의 점원들도 모조리 죽고 싶지 않다면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라 했지요···”
다원 주인의 눈이 뻣뻣이 굳어 있는 산산과 시체 중 하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정작 그 점원들이 그들 중 하나일 줄은 몰랐는데··· 저 여인은 이런 일을 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은 했지만···”
“하긴, 내가 이런 낡은 다원에서 일하기엔 너무 예뻤지? 좀 평범한 얼굴로 해야 했는데.”
손강은 그녀의 뻔뻔한 대꾸에 순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장건의 봉맥술에 당해-손강은 봉맥술이라 여겼다-뻣뻣이 굳어 그들을 돌아보지도 못하고 있었으면서, 말하는 투는 옆집 친구에게 말하듯 참 평이했다.
“···너, 지금 본인 상황을 모르겠나? 아니면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어?”
“그림자 아래서 떠도는 삶이 믿을 구석이 어딨어. 그냥 말이라도 편하게 하는 거지.”
손강이 헛웃음을 흘리는 동안 다원 문 앞에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그 안에서 일어난 소란에 무슨 일인가 싶어 들여다보는 사람들일 터였다. 그들을 본 손강은 문으로 다가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다 저리 가시오! 함부로 들어오지 마시오!”
“뭔 일인데요?”
“워메, 저거 시체여!”
손강은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찌할까 하다가, 그들 중 소년 하나를 발견하고 녀석을 불렀다.
“너, 꼬마야.”
“예?”
그는 품에서 은전 한 닢을 꺼내 녀석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가서 전사들을 데려와라. 지난밤에 들렀던 손님들에게 그쪽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그렇게만 말하면 알아서 따라올 거다. 그럼 이 은전은 네 것이 되는 거야.”
은전을 보자 눈이 초롱초롱해진 소년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후다닥 거리 저편으로 달려갔다. 녀석이 부족 연합 쪽으로 가는 것을 확인한 손강은 안을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다원의 문을 꽝 닫아버렸다.
그렇게 문을 닫고 한숨을 내쉬며 다원 안을 돌아보니, 칼을 집어넣은 장건이 나뒹굴던 의자 하나를 집어 산산이라는 마인 앞에 내려놓는 것이 보였다.
의자를 세워놓은 장건은 눈알만 굴리는 산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룻밤 만에 다시 만났네? 어젯밤은 잘 보냈어?”
그를 마주 본 산산은 먼저 입을 열었다. 긴장감 없는 어조 그대로였다. 마치 지난날 통통 튀는 듯했던 모습은 위장이고, 지금 이 말투가 진짜 본인 말투라는 것 같았다.
질문을 듣고도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던 장건이 입을 열었다.
“바꾼 얼굴을 보니 알겠군. 그땐 무슨 질풍도인가 그랬지.”
산산의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알아봤어? 백변환환공을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그때 그 암룡대 친구는 죽었겠군.”
이번엔 옆으로 다가온 손강의 눈이 커졌다. 장건의 말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산산은 고개를 끄덕이듯 턱을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맞아. 그때 데려가던 우리 쪽 뱀도 같이 죽였어. 데려가서 새 임무를 줄 수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데리고 다니기 귀찮았거든. 어쨌든 그걸로 우리 쪽 정보가 조금 새는 건 막을 수 있었지. 애초에 그놈은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엄격하군.”
“어쩔 수 없지. 우리 쪽 사람들은 익힌 무공 때문인지 다들 다혈질이 많아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규율이 서질 않아서 말이야.”
산산은 어깨라도 으쓱거리고 싶었는지 또 움찔거렸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장건은 품에서 담배 주머니와 연초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그걸 천천히 말면서 말했다.
“그럼 네 스스로도 그렇게 엄격할 수 있겠나?”
산산은 웃었다.
“왜? 날 고문하려고? 어디 어둑한 지하실도 아니고 이런 환한 다원에서? 너무 분위기 없는 장소인데. 첩자 심문은 피딱지가 서린 살벌한 톱날 정도는 늘어놓으며 해야 한다구. 동시에 전향하면 뭘 주겠다느니 회유하거나, 아니면 진짜 심한 꼴 보여주겠다고 협박해야지. 우리 쪽에서는 암룡대를 잡으면 그렇게 하는데··· 당신 확실히 황군은 아니구나?”
“무슨···!”
그녀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장건은 묵묵히 연초를 말았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손강은 암룡대 이야기가 나오자 발끈하며 한 발짝 다가섰다. 그녀는 눈알만 굴려 그를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아, 이쪽은 암룡대가 맞는가 봐? 진짜 고원성에 암룡대가 있긴 했구나. 아무리 찾아봐도 옅은 흔적만 나오길래 고원성에서 고정적으로 머무는 요원은 없는 줄 알았는데. 하긴 뭘 제대로 하는 게 없으니 못 찾을 법도 했지. 뭐, 이런 변방을 떠도는 요원이면 뻔한가?”
손강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는 착 가라앉은 얼굴로 장건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머지 마인들은 다 죽었으니 이 여자를 심문해야 합니다. 고원성에 마인이 얼마나 더 숨어있는지, 그리고 그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알아내야 해요. 그러니··· 괜찮으시면 장소를 옮기시죠. 곧 원주민 전사들이 올 텐데, 그럼 이 여자를 그쪽에 내주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연초를 다 말아낸 장건은 그것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산산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 포기한 듯 아무렇게나 말하는 입과는 달리, 그녀의 눈 깊은 곳에서는 정신을 놓아버린 자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굳건한 부분이 있었다.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던 장건이 말했다.
“멀리 갈 필요 없지.”
그는 순간 번뜩 손을 움직여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산산의 몸 이곳저곳을 찔렀다. 손강은 물론이고 점혈 당하는 산산 본인도 그 빠르기에 놀랐다. 그리고 손강은 그 빠른 손놀림에 어젯밤 보았던 장건의 기술을 떠올릴 수 있었다.
“···끅! 흐윽!”
그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곧 우두커니 서 있던 산산의 몸에서 우드득 뼈 으그러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마치 경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덜덜 떨렸고, 입가에서는 허연 거품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그녀의 체형과 얼굴이 우드득거리며 변했다. 장건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 모습이었다.
한쪽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다원 주인은 그 모습을 보며 다시 겁을 먹고는 움츠러들었다. 그의 입에서 딸꾹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정작 산산에게 점혈을 선사한 장건은 몸을 돌려 아까 세워둔 의자로 돌아와 그 위에 털썩 앉아서는, 품에서 화섭통을 꺼내 탁탁 불을 붙였다. 이후 입에 문 연초에 화섭통 불을 붙인 장건은 길게 연기를 뿜으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 모습에 조급함이나 위협적인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저 여유롭고 차분해 보일 뿐이었다.
손강은 그런 장건과 덜덜 떨며 눈이 위로 반쯤 돌아간 산산을 보고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난장판이 된 다원 한복판에서 우두커니 서서 경련을 일으키는 여자의 모습은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있었다.
아까 그녀가 도발할 때는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진짜 그녀가 고통받는 것을 보니 함부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신대륙 동쪽에 대해선 얼마나 알고 있나?”
손강은 불쑥 튀어나온 장건의 말이 자신을 향한 질문이라는 걸 약간 늦게 알아듣고 순간 허둥거렸다.
“어, 그러니까··· 도, 동쪽 말이죠? 그, 엄청 비옥하다는 말도 있고, 반대로 황량할 뿐이라는 말도 있고··· 또 서쪽 해안보다 훨씬 많은 원주민이 산다는 말도 있고···”
“마궁의 본거지가 그쪽에 있다는 말은?”
손강은 잠시 망설였다. 그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암룡대에서도 기밀에 속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곧 생각을 굳힌 그는 입을 열었다.
“정확한 정보는 아닙니다. 그냥 정황상 추측일 뿐이죠. 어젯밤 이야기해드렸던 것처럼 옛날에 고원성을 넘어 동부로 떠난 사람들은 꽤 많았고, 그들 중 마가魔家의 후예도 분명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최근 심화된 그들과의 격돌에서 나온 정보와 원주민들의 정보를 종합해 보면 조금 더 확실하게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게 되긴 했습니다.”
장건은 연초를 입에 물고 계속하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동안에도 산산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를 흘낏 바라본 손강은 얼른 말을 이었다.
“···원주민들의 전설이나 이야기에 따르면 이곳 고원성에서 동북쪽으로 아주 멀리, 그러니까 신사천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리 이동하면 이 땅 모든 강줄기의 어머니 호수, 그 크기가 바다나 다름없는 거대한 호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곳이 어찌나 큰지 전설들이 맞다면 중원의 동정호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호수죠.”
장건은 그 호수가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최근의 전설에는 서쪽에서 온 이방인들이 그 동쪽 호수를 찾아 떠났다는 말이 있고, 또 옛날에는 간간이 교류하던 그쪽 지방 사람들이 근 몇십 년 동안 아주 조용하다는 것으로 보아 암룡대 내부적으론 마궁의 위치가 그 근방이 아닌가 특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말만 들어보아도 그 거리가 너무 멀어 도저히 군대를 파견할 만한 거리가 아니라 현재 황군 지휘관 측과 말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대호까지 도망간 건가? 징글징글한 놈들.”
“예?”
말을 마친 손강은 장건의 중얼거림을 듣고 되물었으나, 장건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연초를 입에 문 채 의자에서 일어나 산산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허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를 확인한 장건의 손이 다시 한번 그녀의 몸을 찔렀다. 여태 부들부들 떨던 그녀의 몸이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장건은 그 앞에 연초를 한 모금 빨며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래, 아직도 아까처럼 말할 수 있겠나?”
실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져서 씩씩 바람 세는 소리만 내던 그녀의 눈이 스르륵 움직여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허연 거품이 지저분하게 흐르고 있었고, 두툼한 옷 안에서는 그 짧은 새 식은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퀴퀴한 냄새가 났다. 숨결은 곧 죽을 사람처럼 가늘기만 했다. 그녀는 그 상태에서 천천히 말했다.
“내가··· 말해 줄 건··· 내 이름이 산산이라는 것··· 뿐이야···”
그 대답을 들은 장건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말했다.
“방금 그 고통을 네가 죽을 때까지 가해 줄 수 있다. 아마 완전히 죽는 데 반나절 정도 걸리겠군. 근골이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얻는 데는 그 삼분지 일이면 충분하고. 그렇게 더 해볼까?”
장건의 말에 그녀는 부들부들 떨었다. 옆에 있던 손강은 그게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자기 생각이 너무 경솔했다고 느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당신이 여태··· 다른 뱀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것도 같네··· 하긴, 당신 입장에서야 우린 죄 없는 사람들 죽이고 멀쩡한 한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괴물이겠지··· 변명해봐야 듣지도 않을 테니, 하지도 않겠어···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 내가 말해 줄 건 없어. 결국 무림맹과 원주민들은 충돌하게 될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손강은 그 모습을 보며 당황했다. 장건이 마인들의 숨통을 모조리 끊어버렸기 때문에 남아있는 끈은 그녀뿐이었다. 여기 있던 마인들의 숫자로 보아 그들이 전부일 수도 있었으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마인들은 더 깊은 어둠 속에 숨어 더 악독한 방식으로 본인들의 목적을 이루려 할 것이다. 당장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는 산산의 태도만 보아도 이들이 전부가 아님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장건은 입에 연초를 물고 쭈그려 앉은 그대로 눈 감은 산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손강이 뭐라 말을 꺼내보아야 할까 생각하던 때, 그가 말했다.
“남궁산산인가? 아니면 당산산?”
산산의 눈이 자기도 모르게 뜨였다. 그녀의 눈이 다시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뭐?”
“옛날 가문들은 딸아이 이름으로 산산이라는 말을 많이 썼지. 정작 신대륙이 열린 요즘에는 유행이 한참 지난 이름이지만. 하지만 마가라 불리는 이들은 보통 옛 가문이니, 오래된 유행을 아직도 좋아할 법하군.”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는 듯 장건을 노려보았다. 조금 전까지 다 죽어가는 얼굴로 털털 웃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힘든 눈빛이었다.
“···내 성이 뭐가 중요한데?”
“중요하지 않으니 말해줘도 되겠군. 제갈산산인가? 팽산산은 조금 이상하군. 그럼 모용산산?”
모용산산은 최대한 표정을 감추고자 했지만, 장건의 예민한 눈을 피할 순 없었다. 장건은 길게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모용산산이군.”
“···그게 뭐가 중요한데? 이 상황에 성씨고 나발이고···”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단편적인 정보지만 마궁은 결국 한 제국에 억압받던 옛 가문과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집단이었다. 거기서 성씨는 그들을 강력하게 결속시키는 힘일 것이고, 또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족쇄일 터였다. 당연히 거기 속한 이가 그를 부정하는 건 어떤 상황이건 이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분근착골의 고통 때문인지, 말해주지도 않은 본명을 들켜서인지, 어떤 이유에서든 마음에 틈이 열렸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깨달은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었고, 곧 몸을 움찔 들썩였다. 직후 지금까지 흰 거품만 흐르던 입가에서 왈칵 붉은 피가 솟았다.
“어엇!”
그를 본 손강이 깜짝 놀라서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의 고문이 과했던 것인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장건은 아무 흔들림 없는 차분한 표정 그대로였다.
“···놀라질, 않네.”
“이미 맥을 짚어 보고도 모를 순 없지. 특이하긴 하군.”
모용산산은 누운 그대로 왈칵 피를 토하면서도 끅끅 웃었다.
“특이···? 회혼삼극혈回魂三極穴이 그저 특이하다니··· 이걸 만든 사공蛇公이 들었으면 열 좀 받겠네···”
“이름이 요란해 봐야 결국 자결용 내공 운용법이지. 너무 투박해.”
“뭐, 뭡니까?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손강이 둘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장건은 연초를 때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심문 대상을 잘못 골랐다. 이 여자는 처음 점혈을 당하기 전부터 자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분근착골을 견디길래 살고 싶은 것인가 했는데··· 차라리 처음에 나서서 떠들던 놈을 고를 것 그랬군.”
“예? 그, 그럼 나머지 마궁의 끈은···?”
“대충 마공을 익힌 자를 알아볼 수 있으니 그걸 바탕으로 직접 뛰어야지. 이 작은 도시에 중간 거점 하나만 해도 잔뜩 모여있는 걸 보니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진 않군.”
“···서점을 찾아봐.”
장건과 손강의 눈이 모용산산을 향했다. 그녀는 탁해진 눈으로 허공을 보며 말했다.
“거기, 남궁장군南宮將軍이 있어··· 같이 술 한 잔 못 해서 아쉽네, 장건···”
그녀는 그렇게 짤막하게 말한 후 곧 숨을 멈췄다.
손강은 그런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장건은 그저 덤덤하니 연초를 태웠다. 그는 잠시 후 강물 바위가 전사들을 이끌고 다원으로 찾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서 죽은 모용산산의 진짜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원성에 서점은 몇 없습니다. 금방 찾겠군요.”
장건은 손강의 말을 들으며 다 태운 연초를 툭 튕기고 일어섰다.
“안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