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강물 바위와 부족 전사들에게 다원의 뒤처리를 맡긴 장건과 손강은 곧바로 고원성의 서점을 찾아 움직였다.
태양은 벌써 정오 가까이 올라와 있었다. 하늘은 맑았고, 적당한 햇볕은 활동하기 좋았다. 많은 중원인과 원주민들이 고원성 거리를 오가며 각자 물건을 사거나 거래를 하고 짐을 옮겼다. 소나 말, 마차 등에 가죽을 잔뜩 실어 옮기는 상인이 제일 많았는데, 그건 대부분 들소의 뿔과 가죽이었다.
장건이 그들을 스쳐 지나가며 바라보고 있으니 앞장서던 손강이 말했다.
“저기, 장 무사?”
“왜?”
손강은 장건을 돌아보고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여자가 사실을 말한 것일까요?”
“죽어가면서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고문을 견디던 것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생각합니다. 저희의 시선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고 뒤에서 계속 일을 꾸미는 것이죠.”
장건은 그에게 계속 가라는 듯 턱짓하며 말했다.
“어차피 그 정보가 사실이 아니었어도 마인들을 찾으려면 고원성을 뛰어다녀야 한다. 그러니 설마 거짓 정보라 해도 그저 서점부터 탐문을 시작했다 여기면 그만이지.”
“지, 진짜 마공 수련자를 알아볼 수 있으십니까?”
손강은 장건의 능력이 당혹스럽다는 듯 그리 말했다. 하지만 장건은 대답 없이 멀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고, 그 눈빛을 알아들은 손강은 얼른 다시 길을 나섰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 큼직한 서점 하나를 찾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늙수그레한 노인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어서 오시오. 뭐 찾는 책 있으신가?”
노인을 바라본 장건은 흘끗 손강에게 눈짓했다. 황제 직속의 정보요원답게 그 뜻을 알아들은 손강은 앞으로 나섰다.
“아, 그. 저기 뭐냐, 좋은 걸 좀 찾는데.”
“···여기 서점인데? 장소를 좀 잘 못 찾아온 거 아니요?”
“아 왜, 그 있잖습니다. 책 중에서도 좋은 거.”
“···어엉?”
손강은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내며 노인을 붙잡았다. 그동안 장건은 서점 안으로 들어가 그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어둑한 공간 안에 벽을 빙 둘러싼 책장에는 이런저런 온갖 잡서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옛날 한 황실에서 종이가 발명된 후, 그것은 중요한 황실의 사업이 되어 수백 년 동안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가 팔리고 퍼졌다. 이후 강력한 황권으로 큰 전란이 없어 그 종이로 된 책이 소실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황실이 책이나 종이의 보존을 중요시하면서 그 풍조가 자연스레 귀족 가문들, 그리고 양민들에게도 퍼졌다. 그리고 그 기간이 굉장히 길어지며 종이와 책은 평범한 양민도 얻고자 한다면 충분히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되었다.
덕분에 이런 변방 도시의 서점에도 책들이 한가득 책장을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서점 자체가 별로 크진 않았으나, 그래도 이 정도 양이면 적어도 수백 권은 될 양이었다.
서점 안을 쭉 둘러보며 짧은 상념을 가지던 장건은 곧 몸을 돌렸다. 오래된 책 냄새가 마음에 드는 서점이었지만 그 외에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 좋은 거··· 있잖습니까.”
“이 사람이 지금 누굴 놀리는 겐가? 그 좋은 게 뭔데! 뭐냐고! 춘서도 아니라 하고! 사서도 아니라 하고! 뭐냐고!”
“그, 그게···”
그때 장건이 그들을 지나 문을 나서며 노인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많이 파시오.”
“으응? 아, 그래. 다음에 또 오시게.”
노인은 그 인사를 반사적으로 받아주고는 다시 손강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 하는 작자인지는 몰라도 자신을 놀리는 걸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럼 저도 이만!”
“저, 저···!”
하지만 손강은 얼른 장건의 뒤를 따라나서며 노인의 화를 피했다. 밖으로 나와 겨우 숨을 돌린 그가 장건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긴 아닌 것 같군요. 평범한 노인이었어요.”
장건은 그런 손강을 뚱하게 보며 말했다.
“좋은 거?”
“···그, 사실 제가 아는 책 분야는 굉장히 한정적인데, 그걸 달라고 하면 제 평상시 위조 신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서···”
“시선 끄는 재주가 참 대단하군.”
그 칭찬인지 놀림인지 모를 말에 손강은 슬쩍 움츠러들었다.
“다, 다음 서점에선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준비된 연기가 아니면 잘하질 못해서···”
그가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에 장건은 피식 웃었다. 확실히 얼굴과 체형, 목소리를 바꿀 수 있다면 굳이 연기는 못해도 될 것 같긴 했다. 같은 행동도 외형에 따라 그 의도가 달라 보일 수 있으니까.
“다음은 어디지?”
“아, 이쪽입니다.”
다음 서점은 그다지 멀지 않은 같은 거리에 있었다. 노인이 운영하던 서점보다 조금 크고 젊은 학사가 손님들에게 책 설명까지 해주는 곳이었다. 손강은 그곳에서는 먼젓번보다 훨씬 그럴듯한 모습을 선보였지만, 그곳도 특별히 수상한 점을 찾아볼 수 없는 서점이었다.
밖으로 나온 손강은 착잡한 눈으로 손에 들린 이야기책 한 권을 바라보았다. 괜히 시선을 잘 끌어보겠다고 읽지도 않는 책을 산 것이다. 그는 고개를 들며 장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속은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마인들이 이런 서점에 숨어들다니요. 아니, 애초에 다원이나 객잔과는 다르게 여러 사람이 오래 머물 수도 없지 않습니까?”
“꼭 오래 머물 필요는 없지, 명령이나 정보를 하달할 수만 있다면. 그런 눈으로 보면 서점도 훌륭한 거점이 될 수 있다. 거래되는 책 안에 정보를 숨겨 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손강은 장건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겼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그렇게 명령과 정보를 하달하면 이상한 점을 느낄 자가 별로 없을 것 같긴 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암룡대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요원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워낙 변방에 홀로 있는 요원이라 그런 첩보 활동에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괜히 낯설었던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손강은 문득 장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물론 그도 장건의 대략적인 신상을 알고는 있었으나, 도저히 그 정보만으로는 지금 장건의 통찰이나 그의 무위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궁금증을 접었다.
그가 그렇게 궁금해한다면 이미 암룡대 상부에서도 같은 의문이 제기됐을 것이고, 더 윗줄로 보고되어 장건에 대해 더 깊이 조사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렇게 멀쩡하고 암룡대에게 별 적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상부에서 특별히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한 것일 터였다. 그럼 그가 거기서 더 나설 이유는 없었다.
손강은 신사천에서 맹호교위가 죽고 암룡삼호가 입을 다물며 장건의 정보가 더 높은 황군으로 올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먼 곳에 있었다.
장건과 손강 모두 입을 다물고 각자 생각을 정리하며 움직이니 금방 새로운 서점 앞에 이를 수 있었다. 그 서점의 간판을 본 손강이 말했다.
“그··· 여긴 아닐 듯합니다만···”
“왜?”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여긴 제가 원주민들에 대한 자료를 자주 구하던 서점입니다. 주인 어르신도 오래 봐왔죠. 그분은 적어도 삼사십 년은 이곳에서 서점을 운영하신 분이고, 원주민들 쪽에 끈도 많은 분입니다. 그분이 마궁의 마인이라 생각하긴 힘들군요.”
장건은 그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중심 거리에서 멀어서인지 지나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그러면서도 적당히 눈에 띄어 무슨 장사를 해도 적당히 망하지는 않을 듯한 장소였다. 만약 조용한 서점을 열 생각으로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이라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수상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본 장건은 곧 서점으로 다가갔다. 손강은 그를 다시 잡아볼까 하다가, 결국 그냥 그 뒤를 따랐다.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선 장건에게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서 뚱한 표정으로 책을 읽는 노인이 보였다. 그 노인은 장건과 손강이 안으로 들어서자 흘끗 눈만 들어 그 얼굴을 확인하고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
“찾는 책 있으면 알아서 골라가. 여긴 추천 같은 거 안 해.”
도무지 장사할 태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어 보이는 서점 내부의 책장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책의 양이 아니라 서점 내부의 깔끔함이었다.
책들의 상태는 하나같이 최상이었고, 책장 위에는 먼지를 찾기 힘들었다. 장건이 중간에 보이는 책 하나를 꺼내 보니 종이에 오래된 손때는 남았어도 유실되거나 찢어진 부분은 없었다. 보아하니 그런 책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노인이 손님에게 아예 관심도 없어 보이자 손강 또한 애써 그의 관심을 끌려 하지 않았다. 그는 내심 오랫동안 알고 지낸 서점 주인을 믿고 있는 듯했다.
그런 손강과 서점 내부, 책을 둘러본 장건은 꺼냈던 책을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노인에게서는 무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책 관리를 열심히 하는 서점 주인인 듯싶었다.
하지만 책을 책장 안으로 집어넣는 순간, 장건은 손끝에서 흐릿한 실바람을 느끼고 살짝 멈칫했다. 장건은 책장 위에 손을 댄 채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책을 읽던 노인은 인기척이 느껴지자 눈만 움직여 앞을 올려다보았다. 인기척의 주인은 장건이었다.
“뭔가? 책은 알아서 골라가라니까.”
“안쪽을 좀 둘러보고 싶소.”
“···안쪽? 무슨 안쪽?”
노인은 장건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그리 물었다. 장건은 굳이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만만하게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그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인을 내려다보았을 뿐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먼. 여기 일 층에는 안쪽 방이 없네만. 혹시 이 층에 내 방을 보고 싶다는 건가? 거긴 그냥 내 살림살이뿐인데?”
“그럼 노인장이 처음 말한 대로, 알아서 찾아보도록 하겠소.”
장건은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불안한 눈으로 그와 노인을 바라보던 손강은 그 순간 장건의 등을 바라보는 노인의 표정이 얼음처럼 싸늘해지며 와락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손강은 급히 장건에게 외쳤다.
“장 무사! 조심···”
그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장건은 다시 노인에게 돌아서 그가 뻗은 쇠꼬챙이를 붙들고 있었다. 노인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여긴 어떻게 찾았나?”
장건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노인을 살펴보았다. 처음 일어나서 꼬챙이를 뻗던 솜씨는 그럭저럭 빠르긴 했으나, 그건 노인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나올 말이었다. 지금 어떻게든 꼬챙이를 뻗으려 안간힘을 쓰는 노인은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은 듯 보였다.
“모용산산이 죽기 전 말해주었소.”
“산산이···?”
노인은 깜짝 놀란 듯 손의 힘을 풀며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곧 피식 웃었다.
“···그 꼬맹이는 어릴 때부터 그런 괜한 반항심이 있었지. 뱀에게 어울리는 성정은 아니었어.”
“글쎄. 여태 내가 본 마인 중에는 제일 심지가 굳던데.”
장건의 대답을 기대하지 않았던 노인은 그 말이 웃기다는 듯 다시 털털 웃다가, 붙잡힌 오른손은 그대로 두고 왼손을 움직였다. 장건은 앞으로 나온 그 왼손에 조그만 대나무 통이 들려 있자, 순간 불길함을 느끼고 노인을 밀어내며 휘리릭 몸을 회전시켰다.
직후 펑-하는 작은 소음과 함께 피리릭 하는 바람 찢어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쿵쿵 하는 묵직한 소리도 울려 퍼졌다.
“뭐, 뭐야?”
서점 안쪽에 있던 손강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책장 뒤로 몸을 날렸다가 얼른 고개만 빼서 상황을 살폈다. 노인이 앉아있던 의자와 그쪽 책장이 쓰러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장건은 거기 멀쩡히 서서 툭툭 옷을 털고 있었다.
“···날아가던 암기가 방향을 바꿔 되돌아오다니. 어떻게 했나?”
장건 앞에는 책장의 책들 위에 쓰러진 노인이 있었다. 그의 몸에는 얇은 쇠꼬챙이 대여섯 개가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고, 옆에는 부서진 대나무 통 잔해가 굴러다녔다. 그것은 기관 장치를 이용한 일회용 암기였다.
조금 전 그 안에서 장건을 향해 쇠꼬챙이가 쏟아져나왔으나, 장건이 몸을 회전시키자 그 와류에 암기들이 휩쓸려 노인에게 되돌아간 것이다.
“권법의 응용이오.”
“···그거 당가에서 정말 싫어할 권법이군···”
노인은 그렇게 짤막한 말 하나 남기고 숨이 끊어졌다. 장건 옆으로 다가온 손강이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그 노인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무공을 익힌 낌새도 없었고··· 이곳 고원성에서 오랫동안 서점을 운영한 사람이었는데···”
노인이 원래부터 마궁의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나중에 포섭된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당사자가 죽었으니까. 잠시 옷을 털며 노인을 바라보던 장건은 곧 몸을 돌렸다.
무공도 익히지 않은 노인이 목숨을 걸고 공격한 의도는 뻔했다. 장건이 느낀 내부 비밀 공간의 인물들이 도망칠 시간을 번 것이다.
장건은 조금 전 기류를 느낀 벽에 붙은 책장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다시 한번 희미한 바람을 느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책장을 훑었고, 곧 책과 책 사이에 교묘히 숨겨진 구멍을 발견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손을 넣어 작은 막대 같은 기관 장치를 당겼다. 덜컹 소리가 나며 책장 한쪽에 작은 문이 열렸다.
“장 무사! 같이 가요!”
장건이 그 문 안으로 슉 사라지자 뒤에 있던 손강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문 너머에는 어둑한 계단이 나왔고, 손강은 거기서 넘어질 뻔한 것을 겨우겨우 다잡으며 밑으로 내려왔다. 계단 통로를 벗어나니 널찍한 지하실과 장건의 등이 보였다.
“장 무사, 말 좀 하고 움직입시다. 그래도 내가 나중에 포상금도 주기로 했는데···”
손강의 입이 다물어졌다. 장건의 어깨 너머, 거뭇한 횃불들이 흔들거리는 지하실 저편에 등을 보이고 선 또다른 인물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를 본 순간 손강은 이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가 몸을 돌려 시퍼렇게 빛나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 순간에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 이게 무슨···”
그 순간 그 인물에게서 대기를 압도하는 기세가 뿜어져 지하실의 모든 횃불을 꺼뜨렸다. 손강은 한겨울 얼음물에 빠진 것처럼 온몸이 바짝 굳으며 숨을 멈췄다. 어둠 속에 묻힌 그의 눈이 퍼렇게 불타며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꺼지지 않은 불빛이 하나 있었다. 그건 장건 가까이 있던 화롯불이었다. 덕분에 그의 얼굴 절반은 그림자에 묻히고, 절반은 화롯불 빛에 반짝였다.
그리고 그 두 눈은 차분히 가라앉아 어둠 속 괴인을 마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