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남궁천의 표정이 굳는 것을 넘어 살짝 일그러졌다.
“···제왕검형? 그저 제왕의 검이라?”
장건과 남궁천은 조금 전과 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남궁천의 피부를 저릿저릿하게 만드는 기파가 지하 공간에 휘몰아치고 있었고, 그곳의 모든 횃불은 활활 타올랐다. 오직 남궁천 주변의 화롯불만 피시식 거의 꺼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상황뿐만 아니라 서 있는 자리마저 반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표정을 풀고 허허 웃었다.
“제왕, 제왕이라··· 자네가 제왕의 도道를 아는가?”
열심히 몸을 굴려 한쪽 구석까지 굴러간 손강은 바닥에 엎드린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남궁천은 웃는 낯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 주변에서는 마치 귀신이 우는 것처럼 휘이이-하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소리와 함께 발밑에선 허연 서리까지 어리고 있었다.
그는 그 서리의 한가운데서 사람 같지 않은 기이한 안광을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대답해보게. 왕의 검법이라 하니, 자네는 제왕의 도를 아는가?”
장건에게서 뿜어져 나온 기파와 남궁천의 주변을 휘감은 한기가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조금 전 칼날을 맞부딪치기 전 서로의 빈틈을 탐색하던 기세 싸움과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사이에 끼어서 대기의 와류와 격돌을 지켜보고 있는 손강 입장에서는 허공에서 부딪치며 파팟-하는 소리를 내는 그것들이 그저 기세라고 무시할 수 없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엎드린 손강이 보기엔 장건이나 남궁천이나 사술을 부리는 것만 같았다.
두 무인이 공간을 지배하는 방식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남궁천의 한기는 대기의 온기를 빼앗고, 내리누르며, 움직일 힘을 강탈해 그 자리에 주저앉히는 듯했다. 그래서 그가 차지한 지하 공간의 절반에서는 그 공간 자체가 겁먹고 웅크린 듯 정적으로 변했다. 화롯불과 횃불이 꺼져버리는 것은 물론 거기에 도리어 서리가 내려앉았다.
장건의 기세는 달랐다. 그는 청룡을 늘어뜨리고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불길이나 대기의 온기를 빼앗거나 내리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굳게 서 있는 것만으로, 지하 공간의 절반은 마치 그라는 사람 자체에 압도된 듯 고요해졌다. 화롯불의 불티조차도 엄숙해졌고, 그 위로 올라가는 열기 또한 스스로 장건의 발밑으로 내려앉았다. 열기가 밑으로 내려가니 찬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거기서 달궈진 열기는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장건의 엄숙한 공간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움직임을 억누르는 남궁천의 한기와 장건에게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하 공간의 한가운데서 충돌했다. 서로 완전히 다르게 움직이는 기운이 만나자 둘은 서로를 제압하고 자신의 와류 속에 가두려 시간이 지날수록 격렬히 반응했다.
그래서 핏-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던 그곳에서는 곧 마치 보이지 않는 거인들이 서로에게 난타전을 벌이듯 펑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강이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그만두고 완전히 납작 엎드린 것도 그쯤이었다.
그때 남궁천이 장건을 향해 검을 겨누며 다시 물었다.
“어찌 대답이 없는가? 제왕의 검을 주창한다면 당연히 그의 도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곧게 뻗은 검 끝이 장건을 겨누자, 기의 운용에 집중하던 장건도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건은 가볍게 말했다.
“설명하기 힘들군. 확실한 건 그쪽이 생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오.”
“···설명하기 힘들다고? 아니, 설명할 수 없겠지. 지난 중원의 역사 동안 제왕의 지위를 지냈던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저 먼 옛날 주나라의 천자에게 인정받았던 제후왕들은 오랜 전란과 진의 통일, 그리고 유 씨 도둑의 숙청을 거치며 역사 너머로 스러져갔네. 지금 남아있는 이들이라고 해봐야 스스로를 고대 세가라 칭하는 겁쟁이들 몇몇이 전부지.”
남궁천은 겨누던 검을 내렸다. 그러자 격렬히 부딪치던 대기가 잠시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제왕의 후손으로 그 지위를 진정 실감하는 이는 이제 몇 없어. 지난 천년 간 제왕은 오직 유 씨뿐이었으니··· 그러니 자네 또한 그리 왕의 검이라 주절거릴 순 있어도 진짜 그 의미를 설명하지는 못할 수밖에. 본디 제왕이란 마땅한 천명을 받아 만백성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존재지, 뿌리도 없는 장삼이사가 함부로 쓸 이름이 아니란 말이네··· 아무래도, 내 오늘 자네에게 진짜 제왕의 검을 보여주어야 할 듯하군.”
말을 마친 남궁천의 검이 시퍼렇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얼음이 불타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를 본 장건 또한 검세劍勢의 싸움이 끝나고 이제 진짜 칼날을 맞부딪칠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장건이 청룡을 살짝 추켜올린 순간, 남궁천은 번쩍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백중세로 맞붙던 대기는 마치 물살을 가르듯 파고드는 남궁천의 움직임으로 균형이 깨졌다. 서로를 밀어내던 기운이 마구잡이로 뒤섞이면서 지하 공간에 폭풍 같은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걸음만으로 훌쩍 장건과 가까워진 남궁천은 시퍼렇게 불타는 검을 곧게 내려찍었다. 그리고 그보다 빠르게 그의 검과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가 혼란스러운 주변의 대기를 밀어내고 장건의 움직임을 얽매려 들었다.
장건은 그의 검이 차갑게 불타는 것이 너무 강대한 내력이 집중되어 일어난 현상이라는 걸 알았다. 그건 전날 그와 상대하던 많은 마인들이 넘치는 내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작정 내뿜으며 보여주던 모습과 겉보기는 같았다.
다른 점은, 본인도 앞뒤 가리지 못하고 무작정 내력을 쏟아내기만 하던 예전 마인들과는 다르게 지금 남궁천의 검은 냉정하게 지금의 현상을 의도하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저것은 진정 검기劍氣라고 해도 좋았다.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것을 넘어 검 밖으로 표출된 내력이 상대의 기세를 억누르고, 더 나아가 움직임마저 봉쇄하는 것. 그 성정이 지독히 차가워 사악해 보일지언정 그건 장건 입장에선 분명 제대로 된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궁천의 검이 장건의 정수리로 떨어지기 직전, 그의 검을 관찰하던 장건이 움직였다.
장건은 남궁천의 검에서 쏟아지는 기세를 뿌리치지 않았다. 도리어 앞으로 한 발짝 내디뎌 미끄러지듯 그 안으로 들어서서는 위이잉 떨리는 청룡을 올려 베는 것으로 맞부딪쳤다.
쩡-하는 굉음이 지하 공간 안에서 울려 퍼졌다.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던 손강은 귀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귓구멍까지 틀어막아야 했다.
막대한 내공과 내공의 충돌로 격렬하게 휘몰아치던 공기가 장건과 남궁천을 중심으로 훌쩍 밀려났다.
직후 두 사람은 그 격렬함을 대신하듯 서로에게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푸르게 이글거리는 남궁천의 검과 윙윙 떨리는 장건의 청룡이 새롭게 몰아치는 대기를 가르며 상대의 살갗을 노렸다.
놀랍게도 두 사람의 칼날이 충돌하는 것은 첫 일격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이후 맞부딪친 것은 둘의 검기였다. 검과 칼은 손가락 두어 마디 공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극이 만난 자석처럼 서로를 밀어냈다.
그러나 그 충돌의 여파는 조그만 자석의 현상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판석을 깔아둔 바닥이 깨져나가고, 화로와 그것이 고정되어 있던 기둥이 박살 나며 그 안에 담겼던 불과 재, 먼지가 흩뿌려졌다. 허공에 날린 불씨와 먼지는 두 제왕검의 기세에 휩쓸려 지하 공간을 맴돌았다.
검을 휘두르던 남궁천이 웃으며 외쳤다.
“안색이 나쁘군! 버거운가!”
그 말대로 장건의 얼굴은 창백했다. 내공의 차이 때문이었다.
장건은 예전 정령의 보답으로 영약을 먹은 이후, 적어도 하나를 상대하며 내력이 모자란 적은 없었다. 그건 정령의 영약이 그만큼 훌륭한 영약이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은 물론 그를 바탕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던 장건의 역량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장건이 펼쳐놓은 제왕검형은 너무 많은 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장건의 제왕검형은 그의 몸과 검을 중심으로 내력이 성긴 그물처럼 뻗어나가, 그의 의지에 따라 그 그물 안으로 들어온 상대방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남궁천이 보여주는 북천제왕검과 그 기저에 깔린 원리는 같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두 남자는 직접 칼날을 맞대는 것 외에도 마치 보이지 않는 세 번째, 네 번째 팔이 있는 것처럼 허공에서도 맞부딪치고 있었다.
같은 양의 내공이었다면 장건은 남궁천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세련된 기 통제력으로 간단히 그를 무릎 꿇렸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남궁천의 내공은 그런 둘 사이의 차이를 간단히 메꾸고 도리어 압도할 정도로 많았다. 지금껏 장건이 만나온 상대 중 가장 강력한 내공이었다. 이대로 가면 장건은 내공의 부족으로 패배할 터였다.
그때 장건과 남궁천은 두 칼날의 척력을 우악스레 이겨내고 캉-소리가 나도록 검을 부딪친 후 동시에 물러섰다. 남궁천의 검은 여전히 백열하고 있었으나, 장건은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를 본 남궁천의 얼굴엔 완전히 여유가 돌아왔다.
그런데 장건은 그 창백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검술 자체는 평범하시군.”
여유로운 상황에 은근한 미소를 띠던 남궁천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장건의 말이 옳았다. 남궁천이 압도적인 내력으로 기의 거미줄을 몰아치는 것과 마공의 그 무지막지한 힘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북천제왕검의 검법 자체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무난했다.
물론 그 무난함의 기준이 장건이라는 점과, 내력으로 공간을 통제하는 수법이 검법보다는 기공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크게 트집 잡을 수 없을 문제였다. 제왕검형, 검형劍形이라는 이름을 따져보면 그게 더 그럴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권좌에 이른 자는 요란을 피우지 않는 법이지! 그 진중함을 알아보지 못하고 평범이라? 그럼 어디 그 잘난 무공으로 날 꺾어 보라!”
남궁천은 그렇게 외치며 타오르는 검을 들어 장건을 겨눴다. 그것만으로 또 한 번 차가운 한기가 몰아쳐 장건을 얽매려 들었다.
장건은 그 바람을 자연스럽게 흘리며 청룡을 늘어뜨렸다. 북천제왕검의 한기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그때 그가 그렇게 칼을 늘어뜨린 것을 빈틈이라 여겼는지 남궁천이 다시 몸을 날려왔다. 장건의 눈에 바닥의 판석을 부수며 낮게 뛰어오른 남궁천의 모습이 느릿하게 잡혔다.
제왕의 검이 무엇일까?
어쩌면 너무 그 이름과 단어에 집착하는 것일지 몰랐다. 제왕검형이라고 해서 꼭 그 안에 제왕의 뜻이 담겨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장 남궁천의 북천제왕검에서도 무자비한 폭력은 느낄 수 있어도 왕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장건 또한 내공으로 공간을 지배하고 그를 통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왕의 위엄을 무공으로 표현한 것이라 여겼다. 피상적으론 왕처럼 보여도 그 안에 왕도王道가 담겨있진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장건이 왕의 자리를 이해할 수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몰랐다. 장건은 왕이 아니었고, 전생 때문에 왕의 자리가 무슨 범접할 수 없는, 혹은 사람들을 지배할 권리가 있는 자들의 것이라며 신성시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제왕검형을 재현하는 것이니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웅장함을 무공으로 펼치려 했다.
조조의 등에 앉아 드넓은 벌판을 느긋하게 떠돌 때, 그의 머릿속에서는 항상 그렇게 수많은 무공이 재현되고 정돈되어 밖으로 표현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궁천의 모습이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가 뻗은 검에서는 넘쳐흐르는 내력이 이글거렸다.
문득, 장건은 지금 펼쳐진 내공의 그물과 지난밤 정리하던 기감氣感이 일치하는 걸 느꼈다.
그와 함께 이 지하 공간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기의 폭풍이 또렷이 보이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장건의 내력과 남궁천의 내력, 뜨겁고 차가운 대기의 움직임, 허공에 흩뿌려진 불씨와 먼지들, 그리고 그것들의 마찰과 충돌. 심지어 저 앞에 가까워지는 남궁천의 검기에 난폭하게 갈라지는 대기와 바닥의 판석, 돌을 세운 기둥과 벽까지.
그 모든 것이 이 지하 공간 안에 갇혀 있으나, 그것은 결국 그의 인지가 그리 느낄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벽과 바닥이 공간을 가로막은 듯해도 그를 보고 공간이 나뉘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벽과 바닥은 그저 그 공간 안에 존재했다.
장건은 하늘이 가로막힌 그 컴컴한 지하실에서 제왕의 검을 재현하다가 공간의 무애無碍를 실감했다.
엉뚱하다면 엉뚱했다. 그는 이미 하늘엔 끝이 없고, 그 너머 우주 또한 사람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드넓고 광활하다는 걸 머리로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그의 몸이, 감각이 또렷하게 그것을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한계 없는 창궁蒼穹의 주인은 결국 그 중심에 서 있는 나, 제왕帝王이었음도 느꼈다.
“큭-!”
남궁천은 갑작스레 전신을 내리누르는 듯한 압력에 우뚝 멈췄다. 그리고 당혹감 가득한 눈으로 장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칼을 늘어뜨린 채 가만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멍청히 물었다.
“···뭘 한 건가?”
“아무것도.”
멈춰선 남궁천은 조금 전 느꼈던 압박감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지하 공간의 대기는 여전히 난폭하게 휘몰아치며 마찰하고, 충돌하고 있었다. 장건의 내력과 그의 내력이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와류를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남궁천이 유리했다.
하지만 그는 멈춰선 그 자리에서 장건을 바라본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떤 물리적인 힘이 그를 억누른 것은 아니었다.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남궁천은 이유를 알 수 있었고, 곧 부정했다.
그는 저 앞에 선 장건의 존재 자체에 압도당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