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어서 오십시오, 적 선배. 시간이 딱 맞았군요.”
우르르 다가온 무림맹 무사 중 젊은 남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쓰고 있던 삿갓을 벗었다.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무복과 어깨 너머로 비죽 보이는 검의 손잡이가 화려해 보였다. 자신만만한 얼굴과 당당한 어깨는 마치 젊은 무림맹 무사의 표상 같았다.
그를 본 적세인은 아주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그 얼굴을 지우며 대답했다.
“배원찬? 맹에 머물고 있었나?”
“아, 예. 숙부님이 시키실 일이 있다고 하셔서요. 막상 돌아오니 이런저런 잔심부름만 시키시더군요, 하하. 덕분에 적 선배 마중도 나올 수 있었지만요.”
청년은 곧 적세인에게서 고개를 돌려 장건과 남궁천을 향해 포권을 쥐어 보였다.
“배원찬입니다. 순찰대원이죠. 적 선배의 서신으로 대강의 상황은 알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건은 말없이 마주 포권을 했고, 남궁천은 자신이 반갑다고 말하는 그의 태도가 당혹스러운지 대답 없이 눈살만 찌푸렸다. 그때 옆에 있던 산호가 끼어들었다.
“야! 난 안 보이냐? 난 네 선배 아니야?”
“아, 산 선배. 안 보이기는요. 이렇게 잘 보이는걸요. 무사 귀환하셔서 다행입니다. 역시 순찰대 최고 신랑감! 신사천 신랑 후보 일 순위!”
옆에서 보기엔 분명 놀리는 것으로 보이는 말인데, 황당하게도 산호는 혼자 큼큼 헛기침하고는 ‘그러냐?’라며 어째선지 멋쩍어했다. 적세인만 그걸 보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거리다가 배원찬을 불렀다.
“그런 인사는 나중에 해. 호위 인원은 이게 전부인가?”
“예, 적 선배. 순찰대 셋, 경비대 여덟입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그냥 외부 방파 손님맞이 정도로 보일 겁니다.”
“좋아. 바로 이동하지.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시간 오래 끌 필요 없어.”
적세인은 툭툭 말고삐를 이끌어 조금 앞으로 나서며 장건을 바라보았다.
“바로 이동하겠소.”
장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 호위가 붙은 일행은 그렇게 짧게 인사를 나누고는 신사천 안으로 접어들었다.
깃발을 든 무사가 제일 앞장서 길을 열었고, 그 뒤로 무림맹 무사들이 남궁천을 감싼 채 나아갔다. 남궁천은 품이 넉넉한 장포를 걸쳐 잘린 팔과 몸을 가렸고, 큼직한 삿갓 하나를 써 얼굴까지 감췄다. 제일 뒤에서는 장건과 적세인이 따라가고 있었다.
대로에는 사람들과 마차가 잔뜩 오가고 있었기에 빠르게 나아갈 순 없었다. 장건은 슬쩍 쓰고 있던 삿갓을 들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무림맹 무사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보고도 그리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하긴 무림맹에 소속된 방파는 수십이 넘었고, 그들 중 손님 자격으로 맹에 방문하는 이는 하루에 한두 번은 꼭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중요한 손님들은 항상 맹의 무사들이 마중을 나가 모셔오는 것이다.
그때 장건의 눈에 특이한 것이 보였다. 그건 작은 수레였는데, 그 수레 위에 잘 차려입은 중년인이 앉아있고 젊은 청년 하나가 앞에서 끌어가는 형태였다. 북적북적한 사람들과 마차 사이에서도 그 작은 인력거는 덜그럭덜그럭 나아가고 있었다.
거기서 더 장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인력거에 탄 중년 남자가 연초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그는 품에서 잘 말린 연초를 꺼내 입에 물더니, 이어서 은색 쇠뭉치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고 부싯돌을 꼼지락대 불을 피웠다. 조금 더 세련되긴 했으나 분명 장건도 가지고 있는 화섭통이었다.
“신기하죠? 최근 장가 상회에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부싯돌로 불 피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편해서 맹에서도 거래를 틀 계획이라더군요.”
장건이 그걸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배원찬이 말을 걸었다. 그런 배원찬에게 장건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질문했다.
“저 인력거도 장가 상회 물건이오?”
“오? 수레 이름을 바로 맞추셨군요. 하긴, 직설적인 이름이긴 하죠. 맞습니다. 저것도 장가 상회 물건입니다. 마차보다 싸면서도 편해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죠. 듣기로는 장가 상회에서 저 인력거와 화섭통을 시작으로 공격적인 사업확장을 노린다더군요, 아, 저 불 피우는 도구가 화섭통입니다.”
배원찬은 넉살 좋게 말을 꺼내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장 무인이라 하셨죠? 혹시 장가 상회와 연이 있으신 건 아닙니까? 하하. 만약 그렇다면 이거 잘 보여야겠는데요. 앞으로 맹과 장기적인 거래를 할 상회인데···”
“형님이 장사를 잘하고 있군.”
“···예?”
농담 식으로 말을 꺼냈던 배원찬은 잠시 장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적세인이 그런 그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장 무인은 호남 장가의 둘째 아들이다. 장가 상회가 그 호남 장가 사업체라는 건 알지?”
“아? 아아! 그러셨군요! 이거 몰라뵈었습니다··· 다시 인사드려야겠군요, 전 백림방白林幇의 배원찬입니다.”
그는 적세인의 설명에 호들갑스레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다시 포권을 쥐여 보였다. 그에 장건은 그저 삿갓 끝을 붙잡고 고개만 살짝 숙여 마주 인사를 할 뿐이었다.
그 후 고개를 든 장건은 적세인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갑자기 떠올랐는데, 왜 아직도 장 무인이라 부르시오?”
“···예?”
“지난 며칠간 날 장 무인이라고만 부르더군. 예전 신사천에서 이름을 부르기로 하지 않았소?”
갑작스러운 장건의 질문에 적세인의 얼굴 위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배원찬과 다른 무림맹 무사들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그게, 그건 정말 꽤 예전 일이고··· 장··· 무인이 불편할 것 같아서···”
“난 꼬박꼬박 무인 소리 듣는 게 더 불편할 것 같군. 그냥 이름으로 부르시오.”
“···음. 그렇게 하겠소, 장건. 그게 편하다면야.”
적세인은 정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어딘가 뻣뻣해진 표정이 되어 대답했다. 언뜻 보면 그저 지금 상황이 불편해 지은 표정 같았다. 하지만 셋이 뭔 대화를 하나 싶어 그들을 돌아보고 있던 산호의 눈에는 그게 불편보다는 약간 수줍어서 짓는 표정으로 보였다.
처음 말을 꺼냈던 배원찬은 그 모습에 어리둥절해져서 장건과 적세인을 번갈아 보았으나, 삿갓을 깊게 내려쓴 두 사람은 그저 말안장의 움직임에 흔들거릴 뿐이었다.
결국 배원찬은 멋쩍게 웃으며 조금 앞으로 말을 이끌어갔다. 호위대는 이제 신사천의 대로 깊숙이 들어와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길 잠시. 문득 고개를 들은 장건의 눈에 저 멀리 굳게 닫혀있는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엔 높은 전각들과 탑들이 화창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무림맹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적세인이 그 무림맹 정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 무림맹 안으로 들어가 본 적 있소?”
“아니, 없소. 오다가다 대문만 구경해봤군.”
적세인은 장건에게 고개를 돌리고 싱긋 웃었다.
“생각보다 볼 건 없소. 쓸데없이 크기만 하지.”
그녀의 미소를 본 장건도 옅게 웃어주었다. 얼굴을 이리저리 종횡한 흉터도 그녀의 작은 미소를 망치진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장건의 머릿속에서 찌르르릉 경종이 울리고 세상이 느려졌다. 오감을 넘어선 기감이 뚜렷한 적의를 느끼고 경고를 보낸 것이다. 문제는 그 적의의 끝이 장건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잠시 아주 느려진 세상에서, 천천히 돌아간 장건의 눈에 붉은 실선으로 구체화한 살의殺意는 좁게 선 무사들 틈을 넘어 그 안에 남궁천을 노리고 있었다.
장건은 망설일 것 없이 양손으로 조조의 안장을 툭 치고 뛰어올랐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적세인은 그의 움직임을 처음부터 지켜볼 수 있었다. 양손으로 안장을 치고 뛰어오른 장건은 허공에서 가볍게 몸을 틀어 몸을 뒤집고는 쭉 다리를 뻗었다. 그 발끝이 천정을 찍은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시커먼 선의 꼭짓점과 첨단을 마주했다.
동시에 장건의 몸이 다시 반 바퀴 회전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남궁천을 향해 죽음의 선을 그리던 검은 화살은 그 회전에 휘말려 그대로 둥글게 휘어버렸다. 이후 그렇게 마치 장건의 발에서 쏘아진 듯한 검은 선이 쭉 날아가 어느 객잔의 간판에 틀어박혔다.
쾅-하는 소음과 함께 큼지막했던 객잔 간판이 포탄에 맞은 것처럼 박살 났다. 갑작스레 터진 소음과 충격에 그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그 몸을 웅크리거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화살을 튕겨낸 장건은 그대로 착, 바닥에 내려섰다. 그를 바라보던 적세인이 외쳤다.
“갑자 경계!”
당황하던 무림맹 무사들은 대번에 말에서 내려서는 창칼을 뽑으며 남궁천을 에워쌌고, 몇몇 무사는 등 뒤 장포 아래 숨겨두었던 둥근 방패를 꺼내 그에게 바짝 붙었다. 역시 말에서 내린 남궁천은 그들 틈에서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건은 간판을 박살 낸 화살과 그 화살을 쏘아낸 살의를 더듬으며 외쳤다.
“멈추지 말고 가시오!”
역시 등 뒤의 검을 뽑았던 적세인은 그 말에 얼른 호위대 앞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길을 비키시오! 위험하니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가시오! 무림맹의 일이오!”
그녀가 그렇게 길을 열자 방패와 검으로 남궁천을 감싼 호위대도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때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짐작한 장건이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난간과 낮은 처마 등을 밟고 순식간에 어느 객잔의 지붕에 오른 장건은 화살이 날아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시선을 주고 눈살을 찌푸렸다. 흔적을 더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저 멀리 회색 천으로 온몸을 감싼 괴인이 어느 높은 전각 지붕에서 새 화살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화살은 남궁천이 아니라 장건을 겨누고 있었다.
장건이 그것을 인지한 순간 괴인의 시위가 퉁-화살을 밀어냈다. 말 그대로 쏜 살이 공간을 가르며 장건에게 날아왔다. 살의를 느낀 것과 동시였다. 괴인은 장건이 화살을 피하지 못하리라 여겼다.
확실히 장건은 화살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손을 합장하듯 짝 소리가 나도록 모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손바닥 사이에는 괴인이 쏘아낸 화살이 잡혀 있었다.
“음.”
합장을 푼 장건은 화살이 아주 얇고 가볍다는 걸 느꼈다. 무거운 화살이 더 멀리 날아감을 생각하면 조금 전과 방금 손바닥에서 느껴진 파괴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강력한 내공의 힘일 터였다.
손을 휙 털어 지붕 위에 화살을 박아넣은 장건은 곧장 괴인을 향해 달렸다. 지붕과 지붕, 기와와 기와 사이를 범처럼 타 넘어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본 괴인도 가만있지 않았다. 화살이 붙잡혀 막힌 것을 보고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달려오는 장건을 향해 거침없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전각의 지붕에서 시작된 검은 선들이 쭉쭉 허공을 그었다.
장건은 지붕 사이사이를 뛰어넘으며 때론 높이, 때론 허공에서 몸의 방향을 바꾸며 그 검은 화살을 피했다.
그를 스쳐 지난 화살들은 신사천 전각들 지붕 위에 우박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리꽂혀 기와들을 박살 냈다. 제일 처음 화살보다는 훨씬 약했지만, 여전히 사람 몸에 꽂히면 상반신이 박살 날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위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목표에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고, 멈춰있는 괴인에 비해 장건은 아주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침내 장건과 괴인의 거리가 전각 하나 사이로 줄어든 순간, 높이 뛰어오른 장건을 본 괴인은 여태 쏘아내던 커다란 장궁을 휙 옆으로 내던지더니 회색 옷자락 안으로 양손을 집어넣었다. 그를 본 장건도 본능적으로 청룡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다음 순간 활짝 펼쳐진 괴인의 양손에서 둥근 무언가가 잔뜩 장건을 향해 날아왔다. 장건은 반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청룡을 뽑아 그것을 베어버리려다가, 그 조그만 구체들이 정확히 장건을 노리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멈칫했다.
직후 그 구체들이 퍼퍼펑- 소리를 내며 작게 터져나갔다. 폭발력이 크진 않았으나 그 안에서 가지각색의 연기가 잔뜩 뿜어져 나왔다.
장건은 폭발의 번쩍임과 소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곧장 호흡을 멈추고 몸의 무게중심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청룡이 칼날이 으르렁거리며 반쯤 뽑혀 나왔다.
그러나 장건이 전각의 지붕 위에 툭 내려선 순간에는, 연기탄을 던진 괴인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장건은 당황하지 않았다. 반쯤 뽑았던 청룡을 곧바로 집어넣고 몸을 돌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빠르게 전각 저 아래를 살폈다. 신사천 거리의 사람들이 지붕 위에서 벌어진 소란에 어리둥절하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남자와 번뜩이는 장건의 눈이 마주쳤다. 어딘가로 걸어가며 자연스레 위를 올려다보는 듯했던 그는 정확히 자신을 바라보는 장건과 눈이 마주치자 움찔 굳었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더니,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가락을 본 장건이 휙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 장건이 뚫고 내려온 각양각색의 연기구름이 스르르 내려오고 있었다. 그를 본 장건이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내렸을 땐 그 남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귀찮은 새끼들.”
장건은 입가만 당겨 싸늘하게 웃었다. 방금 저 연기구름을 헤쳐나오던 순간 들이마시지 않았음에도 피부가 따끔따끔했다. 그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몰라도, 저 아래 평범한 양민들의 건강에 심히 좋지 않으리라는 건 분명했다.
냉소를 짓던 장건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청룡과 겉 장포, 삿갓 등을 벗어 한쪽에 툭툭 내려놓고는 전각 지붕 한가운데에 섰다.
다음 순간 두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켠 장건은, 천천히 양 무릎을 굽히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그 팔이 완전히 펼쳐지는 동시에 다음 동작을 부드럽게 이어나갔다.
전각 지붕은 처마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려 완전히 비스듬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기서 사람이 움직이기 편한 것은 아니었다. 기우뚱한 바닥은 평평한 바닥에 익숙한 사람에게 아주 불편하고, 또 삐끗하면 바닥으로 미끄러진 위험이 있었다.
그런 지붕 위에서 장건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단단하고 편평한 바닥이 그를 받쳐주고 있다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손이 작은 원과 곡선을 그렸고, 그것은 팔꿈치와 어깨, 허리를 넘어 그의 전신이 그리는 무수한 원과 곡선 일부가 되었다. 기와를 디디는 그의 발끝도 원이었고, 몸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레 움직이는 턱 또한 원과 곡선을 그렸다.
그 순간 장건의 움직임에는 그 어떤 직선도 보이지 않았다.
지붕 위였기 때문에 거리의 사람들은 그걸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이 대뜸 느긋한 춤이라도 추는 듯한 장건을 보았다면 지금 저게 뭐 하는 짓인가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그의 태극권이 이어지는 동안, 주변의 공기도 그 와류에 섞여들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빨라지고 느려지고를 반복하는 장건의 동작에 그저 이쪽에서 저쪽으로 흐르던 바람 또한 자연스레 붙잡혀 그의 몸을 빙글빙글 회전했다.
와류渦流는 빠르게 주변의 흐름을 집어삼켰다. 공기보다 무거워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가던 연기구름들도 마찬가지였다.
장건의 태극권이 이어지고 이어지는 동안 그 주변의 공기는 계속해서 그의 몸으로 이끌렸다.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었던 연기구름들 또한 그의 몸 위로 와류를 그렸기에, 장건은 마치 오색구름에 휩싸여 춤을 추는 신선처럼 보였다.
흐름이 면면부절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자 곧 하늘에 떠 있던 모든 연기구름이 장건의 몸 주변으로 모였다. 어느 순간부터 장건은 보법을 멈추고 양손으로 원과 곡선, 태극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와류에 휩쓸린 연기구름, 정확히는 독 구름이 그 손길에 따라 태극 문양을 그렸다.
이어진 장건의 손길이 바닥을 향하자 독 구름은 부드럽게 기왓장 위로 내려앉았다.
장건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깊은 호흡을 내뱉었을 때, 그 기왓장 위에는 각양각색으로 나뉜 모래들이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진짜 귀찮은 새끼들.”
독 구름을 끌어당긴 장건은 그제야 자세를 풀고 허리를 펴며 한숨을 돌렸다. 그리고 목을 빙빙 돌리다가 저쪽 건너편 전각 지붕에서 멍청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적세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