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남궁천은 호위대와 함께 무사히 맹 안으로 들어갔소. 어··· 습격자는 잡은 것이오?”
눈이 마주치고서야 정신을 차린 적세인은 지붕 사이를 건너와선 질문을 던졌다. 정작 몸을 돌린 장건은 벗어두었던 겉 장포와 칼을 줍고 나서야 대답했다.
“놓쳤소. 저걸 대뜸 공중에 풀어버리더군. 그냥 두면 여럿 다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소.”
“아, 그걸 탓하자는 게 아니라··· 뭐였소, 그건?”
삿갓을 머리에 걸치던 장건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거?”
“그··· 연기구름을 끌어당기던···”
장건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다.
“태극권이오.”
“태극권? 권법이란 말이오?”
“무인의 손발로 펼쳤으니 권법이지.”
적세인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듯 혼자 작게 태극권이란 이름을 읊조렸다. 장건은 그런 그녀를 두고 품에서 마른 천을 꺼내 기왓장 위로 모아둔 색깔 모래를 조심스레 담았다. 기왓장 자체를 빼 들어서 직접적으로 모래와 접촉하는 것은 피했다. 장건이 하는 행동을 본 적세인이 말을 이었다.
“···또 한 번 신사천 주민들을 대신해 고맙다는 말을 전해야겠소. 그 독 구름이 그대로 거리에 퍼졌으면 사태가 심각해졌을 것이오. 물론 이미 대낮에 호위대를 공격해온 것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재밌는 상황이지 않소? 굳이 신사천 거리 한가운데서, 그것도 무림맹 코앞에서 습격이라.”
적세인의 표정이 굳었다. 확실히 남궁천을 죽이고자 한다면 신사천같이 복잡한 도심보다 여태 그들이 달려오고 있던 황야에서 처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이다. 인력과 자원이 많은 신사천과는 다르게 허허벌판에서 큰 상처라도 입으면 그대로 죽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습격자가 그러지 못했던 것으로 몇 가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는 남궁천이 어떤 신호나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리라는 것. 그의 흔적을 따라온 마인이라면 앞이 아니라 뒤에서 나타났을 것이고, 반드시 일행이 신사천 내부에 들어가기 전 따라잡았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무림맹 내부에서 정보가 확실히 새고 있다는 것. 이미 고원성의 정보가 차단되던 것으로 짐작만 하던 사실이 확실해진 것이다. 지난 여정 동안 적세인이 무림맹으로 보낸 첫 번째이자 마지막 연락은 지난 마을에서 보낸 전서구뿐이었다. 그런데 그 연락을 보내고 신사천 안으로 접어들자마자 공격받은 것이다.
제일 첫 공격을 장건이 막아내지 않았다면 적세인과 호위대는 영문도 모르고 남궁천을 잃었을 것이다. 동시에 거리 한가운데서 무림맹의 호위를 받던 인물이 암살당하는 것으로 신사천 사람들이 맹을 향해 가지고 있던 신뢰도 일부 흩어버릴 수 있었다.
적세인은 상상하던 것보다 적들의 태도가 직접적이고 공격적이라 느꼈다. 그녀가 한 추리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고, 현재의 제반 사정을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누구라도 대략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렇게라도 남궁천을 죽여야 한다 생각한 것일까?
“격렬히 반응한다는 건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이야기지. 무림맹 내부의 음영이 생각보다 뿌리 깊지는 않다는 말일 수 있소.”
생각에 빠져있던 적세인은 천 주머니를 묶으며 일어서는 장건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들의 덩치를 감추기 위해 더 크게 짖는다는 말이군.”
“무림맹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만들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상황을 과대해석하면 맹 내부에 마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믿을 수 있으니까.”
적세인이 이마를 부여잡고 두 눈을 꾹 감았다.
“확실한 건 화살 몇 발로 무림맹을 뒤집어엎었다는 것이오··· 맹주와 원로원은 각각 이 사건을 최대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 할 터고··· 상행 조합과 군소 방파들은 어느 쪽이든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붙으려 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무척 가까이서 들린 장건의 말에 적세인의 고개가 들렸다. 한 걸음 다가온 장건의 얼굴이 보였다.
“남궁천은 죽지 않았소. 장군쯤 되는 지위였으니 아는 것도 많을 테지. 그를 지키며 잘 설득한다면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오.”
장건은 그렇게 말하며 천을 꽁꽁 잘 싸매 만든 주머니를 슥 내밀었다. 적세인은 반사적으로 그걸 받아들고는 멍하니 장건을 올려다보았다.
“이걸 왜···?”
“내가 독은 잘 몰라서. 무림맹쯤 되면 그런 거 연구하는 이들이 있지 않소?”
“어··· 의약당에서 비슷한 일을 하긴 하는데···”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장건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적세인은 지붕 아래로 내려가는 장건과 손에 들린 주머니를 번갈아 보다가, 얼른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한 번 더 주머니를 감싸고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고 장건의 등을 보며 말했다.
“잠깐, 같이 갑시다!”
그들이 선 전각은 주변 전각 중에서도 유난히 높은 건물이었다. 장건은 지붕 끝 처마를 붙잡고 매달려서 전각 제일 높은 층 난간으로 들어갔다. 위에서 우당탕하는 소음이 들려 난간을 붙잡고 위를 올려다보던 전각의 손님들이 깜짝 놀라 나자빠졌다.
잘 차려입은 손님이나 점원들, 방 안에 잘 차려진 온갖 음식들과 술병을 보아하니 고급 요릿집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갑자기 등장한 장건을 보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쭉 내부를 둘러본 장건은 그런 손님들을 향해 삿갓을 붙잡고 가볍게 까딱였다. 그리고 엉거주춤 맞인사하는 그들을 두고 뚜벅뚜벅 방을 나섰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장건을 붙잡으려 할 때쯤 그가 들어왔던 난간으로 적세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얼른 무림武林이 새겨진 육각 패를 꺼내 들어 보이며 말했다.
“무림맹 업무 중이오! 위급상황은 지나갔으니 다들 하던 식사 마저 하시오!”
그렇게 사람들 입을 막은 적세인은 얼른 밖으로 나섰다. 장건은 이미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장 무, 장건! 같이 가자고!”
계단을 내려가던 장건은 우뚝 멈춰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럼 빨리 오시오.”
적세인은 주변의 이목이 쏠리자, 방금 자신의 목소리가 조금 컸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뛰는 듯 마는 듯한 걸음으로 얼른 계단을 내려갔다. 장건은 그녀가 옆까지 오자 다시 밑으로 터벅터벅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갔을 때, 적세인은 장건을 흘끗 보고는 입을 열었다.
“큼··· 그러고 보니, 상대는 보았소?”
“화살을 쏜 자?”
질문을 꺼낸 적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건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얼굴은 보았지. 하지만 그게 진짜 얼굴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겠소. 너무 멀어서.”
이미 얼굴과 체형을 바꾸는 마인들에 대해 알고 있던 적세인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시 생각이 복잡해진 그녀는 약간 심각해진 얼굴로 장건과 전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곧 다시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는데, 길 한쪽에서 바닥을 긁고 있는 조조와 자신의 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더 당혹스러운 건 조조가 다른 쪽 말의 고삐를 물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장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녀석에게 다가가 콧잔등을 문질러주었다.
“허리 안 아팠냐? 아까 좀 세게 친 거 같은데.”
조조는 장건의 약간 걱정스러운 질문에 가소롭다는 듯 푸르륵거렸다. 진짜 사람이 웃는 것 같았다. 장건은 웃으면서 녀석에게 너 잘났다는 식으로 갈기를 마구 헝클었다. 그리고 그 입에 물려있는 고삐를 풀어서 적세인에게 내밀었다.
“···특이한 녀석인 줄은 알았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비범한 녀석이었군.”
적세인이 고삐를 받으며 그렇게 말하자 조조는 이제 알았냐는 듯 고개를 까딱거리며 거만을 떨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말고삐를 쥐고 거리의 사람들을 헤치고 무림맹으로 나아갔다. 그 일대의 길이 모두 무림맹으로 이어진 덕분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큼직한 대문이 다시 보였다.
하지만 그저 굳게 닫혀있기만 하던 아까와는 다르게, 문 자체는 활짝 열려 있건만 그 앞으로 건장한 무인들이 나와 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눈을 가리는 챙 깊은 삿갓과 푸른색 외투를 길게 늘어뜨리고 긴 창으로 바닥을 짚은, 대단히 통일된 복장과 무기의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대문의 좌우로 한 명씩,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우뚝 선 한 사람까지 해서 셋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쑥덕거리거나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림맹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걱정되는 듯했다.
장건과 적세인이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가운데 인물이 척 한쪽 손바닥을 내밀었다.
“멈추시오. 현재 맹은 허락된 신원이 아니면 들여보내지 않고 있소.”
“적세인이오. 순찰대원 칠십일 호.”
적세인이 그런 손바닥 앞에 자신의 증명패를 보여주자, 그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삿갓 아래 있던 과묵한 눈이 적세인과 장건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쪽은?”
“장건. 명패는 없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들어갈 수 없소.”
두 남자가 무거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순간에 조용해진 상황에 적세인이 얼른 나섰다.
“장건은 맹주의 감사 훈장도 받은 인물이오. 조금 전 습격으로 예민한 상황인 건 알지만 애초에 이 일의 중요 인물이 이쪽이고, 또 내가 그의 신분을 보증하겠소.”
“현재 맹의 정문은 봉쇄되었소, 적 대원.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은 단순히 훈장과 일개 요원의 보증으로 외부인을 들여보낼 수 없소. 정말로 들어가야겠다면 적 대원이 먼저 안으로 들어가 허가서를 발급받으시오.”
적세인의 눈살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놈의 규정···”
“순찰대라 예외를 둘 순 없소, 적 대원.”
잠시 엄숙한 표정의 경비대원을 노려보던 적세인은 결국 그를 설득하는 건 깔끔히 포기하고 장건을 돌아보았다.
“어차피 금방 해제할 봉쇄를 왜 하는 건지 모르겠군. 일이 터지니 깜짝 놀란 윗분들이 일을 괜히 일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소. 현장엔 한 번 나와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호들갑은 더 심하다니까.”
그녀는 바로 앞에서 경비대원이 듣고 있는대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리 말했다. 재밌는 점은 그 경비대원도 거기 동의하는지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야겠소. 내가 금방 가서 허락을 받아오지.”
장건은 그렇게 하라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허리띠를 잡으며 삐딱하니 섰다. 적세인은 그를 보며 옅게 웃어주고는 경비대원을 지나 대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장건 뒤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같이 들어가지.”
경비대원들과 적세인이 그를 돌아보고,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 여긴 장건이 제일 천천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검은색 무복을 입고 있었고, 오른 어깨 위로 삐죽 검 손잡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뒤로는 비슷한 옷차림의 무사 둘이 이런저런 짐과 서류를 들고 따라붙어 있었다. 뒷짐을 지고 서 있던 그가 왼팔을 옆으로 슥 들어 올리니 어디선가 날아온 수리 한 마리가 그 팔뚝에 내려앉았다. 전체적으로 검은색 몸통에 눈가에서 시작해서 날개로 이어지는 붉은 무늬가 인상적인 수리였다.
그는 왼팔에 수리를 앉혀놓고는 장건을 향해 고개를 살짝 까딱하며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여전히 뻣뻣하게 살고 있나?”
그의 이름은 제운성. 고대 세가 제씨 가문의 수사관이었다.
* * *
“무슨 짓거리요? 거리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피우다니? 미쳤소?”
어느 객실. 구석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 그렇게 상대방을 다그쳤다. 하지만 그 다그침을 받은 쪽은 창문 앞 의자에 반쯤 눕다시피 앉아 햇살을 만끽하며 술잔을 홀짝거리고 있었다.
“···내 말이 말 같지도 않은 것이오? 듣고 있소?”
“그럼. 내가 귀머거리도 아니고 그렇게 땍땍거리는데 당연히 듣고 있지.”
그 능글거리는 태도에 그림자 속 인물이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다. 오래된 나무 바닥이 삐걱 소리를 냈다.
“정녕 상황을 이해 못 하는 것이오? 맹주는 이 일을 가볍게 넘기지 않을 것이오. 신사천과 맹 내부에 보이지 않는 암수가 치밀었다 사람들을 선동해 맹주령을 발동시킬 수도 있소! 그럼 원로원은 당장은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말이오!”
“그게 그리 쉽게 되겠나. 원로들이 바보도 아니고.”
“바보? 그 늙은이들은 결국 자기들 잇속만 보장되면 얼마든지 맹주 발아래로 기어갈 놈들이오. 상황이 그쪽으로 기울었다 생각되면 균형이 깨질 것이란 말이지···”
그림자 속 인물의 격정적인 말투에도 의자에 앉은 이는 시큰둥하게 바닥에 놓인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고 홀짝거렸다. 그걸 본 상대방은 숨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내다가 휙 몸을 돌렸다.
“···이런 식이면 곤란하오. 우리는 동업자가 아니었소? 이렇게 사업이 돌아가는 방식이 투명하지 못하다면··· 나도 내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소.”
그 말에 술잔을 홀짝이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림자 속 인물은 그렇게 상대를 쏘아붙이고 방을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목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묘한 이질감에 덜컥 멈추어 서야만 했다. 떨리는 손으로 목을 더듬으니 얇은 실 같은 것이 팽팽히 목을 휘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살길을 찾겠다··· 그래, 누구나 자신의 목숨을 위해 발버둥 칠 수 있지. 또 그래야만 하고. 그래서 난 남궁천 그 친구를 이해해. 궁에 대한 충성이고 지랄이고 일단 살아야 하지 않겠나? 고원성에서의 일을 망치고 사로잡혔으니 그가 선택할 길은 둘 중 하나뿐이었겠지. 입 다물고 죽든가, 망설이지 않고 얼른 전향해 삶을 이어가든가.”
그림자 속에서 목줄이 잡힌 인물은 실이 점점 더 팽팽해져 간다는 걸, 그래서 살 안으로 파고들려는 것을 느끼며 파르르 떨었다.
“그를 이해하기에 화도 나질 않아. 그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처럼 나도 그저 내 할 일을 하는 것뿐이지. 누구나 그래. 누구나 사자처럼 용맹하게, 세상에 깊은 고랑을 남기며 살고 싶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되진 않더라고.”
그는 늘어져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그림자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벽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의 어깨 위에 턱 하니 손을 올렸다. 목줄이 잡힌 이는 그 손길에 움찔 떨며 얼른 말했다.
“내, 내가 말실수를 했소··· 당신을 배신하겠다거나, 맹에 정보를 넘기겠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난 그저···”
“자넨 자네 할 일을 하게. 원로원을 휘어잡고 맹주의 행동에 계속 제동을 걸어. 남궁천을 구슬리기보다 사악한 마인으로 몰아 처형하기를 주도하고, 맹의 힘을 최대한 원로원으로 끌어들이려 안간힘을 쓰라고. 그게 자네 할 일이잖나? 그러라고 우리가 황금을 잔뜩 안겨주고 정적의 비밀을 캐주고 있고.”
그의 말에 목줄 잡힌 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소, 맞소··· 그게 내가 할 일이오···”
어깨 위에 올라갔던 손이 그 어깨를 툭툭 가볍게 건드려주고 스르륵 내려갔다.
“좋아. 이제 가보게. 지금 자리를 더 비우면 안 될 테니까.”
덜덜 떨던 인물은 어깨 위 손이 사라짐과 동시에 목을 억죄던 실 또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걸 느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방을 떠났다.
이제 방안에 홀로 남은 이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처음의 의자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의자에 눕다시피 몸을 기대고, 이번엔 발까지 들어 창틀에 걸쳤다. 그리고 바닥의 술병을 들어 쪼르르 잔을 채웠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손에 든 술잔을 빙빙 돌리다가 문득 그 안에 술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고는 멈칫했다. 잠시 계속 술잔을 돌리던 그는 곧 피식 웃으며 그 잔 안의 술을 들이켰다. 이후엔 다시 그 잔을 채우며 재밌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에는 무림맹의 전각과 탑들이 훤히 들어왔다.
“···장건이라 했나. 재밌는 친구군.”
그의 머릿속에 지붕과 지붕을 넘어 거침없이 달려오던 장건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