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장건은 짓궂게 웃으며 파르르 떨고 있는 양굉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누가 죽인데? 왜 이렇게 떨어?”
“···하, 하하. 마, 맞소. 누가 죽는 것도 아닌데. 하하하···”
장건과 양굉이 서로를 아는 듯 보이자, 일어나서 인사하던 검룡문 가용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양 무사, 장 대협을 아시오?”
“그, 알긴 아는데,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고, 그냥···”
양굉이 장건의 슬쩍 장건의 눈치를 보는 동안 장건은 가용산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그냥 장 무사라 부르시오. 대협이란 말은 부담스럽군.”
“아니, 어찌 검룡문의 은인께 그런···”
“난 내가 검룡문의 은인이라 생각하지 않소. 왜 그런지는 그쪽도 잘 알 텐데.”
가용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고원성 사건 당시 장건과 소림승 진견은 이미 문주와 많은 문도가 죽고 다쳤음과 자신들이 고원성에 사는 거주민이 아님을 고려해 검룡문의 죄를 더 물을 수는 없다 여겼다. 그래서 진서하의 소금가마 값만 보상으로 받고 넘어갔던 것이다.
하지만 잠시 침묵하던 가용산은 곧 두 손을 들어 포권을 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은인께서 원하시지 않으니 대협이라 부르진 않겠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문제와는 별개로 이 가 모某, 당시 은인께 목숨을 빚진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무슨 일이라도 제 일처럼 발 벗고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의 인사가 진심으로 보이자, 장건도 더 뚱한 태도로 대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마주 포권을 쥐여 보였다.
“···기억해두겠소.”
그렇게 인사를 받아준 장건은 곧 손을 풀고 몸을 돌렸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가용산이 너무 부담스러워 일 층에 더 있기 힘들었다. 더불어 계단 옆 접객당 담당자 여인을 계속 가만 세워두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괜히 긴장해 떨고 있던 양굉만 멀어지는 그를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장건이 담당자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그의 귓가로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라. 짐 정리하고 내려올 거니까.]양굉은 그 목소리에 일어나던 도중 그대로 엉거주춤하게 굳었다. 스윽 계단 쪽을 올려다보자 장건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장건은 더 말하지 않고 검지를 뻗어 그를 가리켰다. 양굉은 마치 그 손가락이 거리를 뛰어넘어 눈알을 푹 찌르기라도 했다는 듯 두 눈을 꾹 감으며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잠깐 사이에 몇 년은 늙은 것처럼 보였다.
그를 본 장건은 피식 웃었다. 다른 건 몰라도 괴롭히는 맛이 있는 놈이었다. 접객당에서 또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덕분에 무림맹에 머무르는 동안 지루하진 않을 것 같았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며 담당자의 뒤를 따라가니 어느새 그의 방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담당자는 문을 열어주고 장건에게 작은 열쇠를 건네주었다.
“식사는 일 층에 내려와 주방에 이야기하면 언제든 차려드립니다. 동행하는 맹원 없이 홀로 접객당 밖으로 나갈 때는 분명한 목적지를 말씀해 주시고 그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이를 어기거나 허가된 목적지 이외의 장소로 이동하면 정도에 따라 맹 내에서 추방되거나 억류될 수 있습니다.”
방은 그리 크진 않았으나 침대와 탁자, 옷을 넣어둘 농까지 있을 건 다 있었고, 무엇보다 아주 깨끗했다. 당장 맹을 나가 신사천 안에서 이 정도 방을 구하려면 돈 좀 깨질 터였다.
장건은 침대에 안장 가방을 올려놓고 창문을 열어보았다. 사 층 높이의 시야에 무림맹 전각과 탑들이 가득 찼다. 신사천 거리만큼 화려하고 시끌벅적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이곳만의 멋이 있는 풍경이었다.
“더 필요하신 게 있다면 저는 항상 일 층에 있으니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담당자는 그렇게 말하며 허리를 숙이고 방을 나가려 했다. 하지만 장건의 말이 그녀를 잡았다.
“난 장건이오. 여기 며칠 묵게 될 듯한데, 이름은 알아야 서로 부르지 않겠소?”
장건이 삿갓을 벗으며 그렇게 말하자, 담당자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위가영이라 합니다. 위 당원이라 불러주시면 족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위 당원. 잘 부탁하겠소.”
위가영은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이고는 방을 떠났다. 이후 장건은 가방과 겉옷을 정리하고는 다시 방을 나왔다. 난간으로 다가가 일 층을 바라보니 양굉은 탁자 위에 두 손을 깍지 끼고 홀로 앉아 두 눈을 감고 잔뜩 심각한 척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가용산은 다른 탁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신이 나서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떠들다가 장건이 일 층에 내려오니 그때서야 슬쩍 눈치를 보며 조용해졌다. 그에게 신경을 끈 장건은 곧장 양굉의 맞은 자리에 앉았다.
양굉은 덜커덩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를 본 장건이 옅게 웃으며 물었다.
“여기서 뭐 하냐?”
“···뭐 하기는. 일하고 있었지. 벌어 먹고살려면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
“네 일은 남 털어먹는 거 아니었나?”
심각한 척 표정을 굳히고 있던 양굉이 얼른 탁자 위로 몸을 숙이며 목소리를 낮게 억누르며 말했다.
“아니, 목소리 좀 줄여 주시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장 형도 알려져서 좋은 것 없지 않소··· 아니 그보다, 도대체 장 형이 여긴 어쩐 일이오? 훈장 받는 것도 번거로워하던 거 아니었소?”
장건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일 층은 그리 시끄럽진 않아도 꽤 여럿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굳이 저렇게 목소리를 억누를 정도로 고요하진 않았다.
그때 주방 쪽에서 접객당 위가영이 쟁반 하나를 들고 다가왔다. 차와 군것질거리였다. 장건은 고맙다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고, 그녀는 작게 웃으며 들고 왔던 쟁반을 챙겨 돌아갔다. 그 후 장건이 찻잔을 들고 홀짝이고 있으니 양굉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그와 주방 쪽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니, 뭔··· 말도 안 했는데 다과를 차려주네? 여기 와본 적 있소? 저 당원이랑 아는 사이? 그보다 나 저 여자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보는데?”
“오늘 처음 보는 사이다. 넌 여기서 뭐 하고 있었는지나 말해봐.”
“그··· 일하고 있었다니까···”
“그 일을 말해보라고.”
양굉은 이걸 진짜 대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우물거렸다. 하지만 결국 푹 한숨 한 번을 내쉬고는 더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별건 아니고··· 최근 무림맹 내부 알력이 심해지는 듯해서 그 기초조사 중이었소.”
“네가? 무림맹을?”
“당연히 내가 계획한 게 아니지. 윗선에서 나온 작전이오. 나 말고도 일하는 친구가 몇몇 더 있고, 내 담당이 이쪽 접객당일 뿐이외다. 여기 손님들은 맹원이 아니면서 무림맹 내부 정보에 아주 민감한 사람들이라 파다 보면 예상치 못한 대어가 걸리기도 하거든.”
“그리 중요한 위치는 아니군.”
양굉은 움찔 발끈하려다가, 곧 다시 한숨을 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대어가 걸리기도 한다니까. 말하자면 숨겨놓은 전력 외 비밀병기라고 할까··· 젠장, 이건 내가 말하고도 말이 안 되는 소리군··· 아니, 그보다 장 형은 여기 왜 왔냐니까? 내 정보만 쪽 빨아먹으려는 것이오? 그건 좀 너무하지 않소?”
장건은 그런 양굉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차피 그는 암룡대와 황군, 무림맹이 얽힌 정치적인 내부 암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뭘 알아도 외부인인 그가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었다. 어쨌든 적세인이 그를 찾아오기 전까지 이놈이나 괴롭히며 시간을 보내면 될 듯했다.
늦어도 내일이면 찾아온다 했으니 그럴 시간은 충분했다.
* * *
장건이 무림맹에 머문 지 나흘째. 적세인은 물론 무림맹의 누구도 장건을 찾지 않았다.
그가 왜 여기 왔는지 알아내려던 양굉은 이틀째부터 심상치 않아진 장건의 얼굴에 얌전히 찻잔만 채워주었다. 그가 손을 움직이면 괜히 움찔거리기도 했다.
접객당 손님들은 원래 대부분 짧게 하룻밤을 머물렀는데, 나흘 전 무림맹에 봉쇄령이 내려지고 각 부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바빠지자 볼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다들 접객당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그런 봉쇄령 때문이 아니어도 기타 복잡한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던 손님이 있었다.
접객당의 담소는 그런 이들이 주도하는 편이었고, 검룡문 가용산이 바로 그런 손님 중 하나였다. 접객당 손님들 사이에서 장건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 이유가 그 때문이었다.
첫날 그가 인사하는 것을 본 다른 손님들이 장건에 대해 궁금해했고, 검룡문의 치부에 대해 털어놓을 수 없었던 가용산은 그저 그가 전대 문주를 살해한 마인을 처단해 주었음만을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는 자연스레 장건의 무공이 일문의 문주보다 뛰어남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물론 방파의 운영이 무공만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일문의 문주라 하여 그 문파 최고수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중원 제일의 고수가 중원 제일의 세력을 손에 쥔 것처럼, 결국 무공을 익힌 자는 무공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검룡문은 염호성이라는 도시 하나를 지배하는 거대 문파였다. 소금과 그 일대 금은 광산, 동부 교역 등을 통해 큰 부를 쌓아 무림맹에서도 콧방귀 좀 뀔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 문파의 문주가 어디 길거리에 떠도는 무림인과 비교할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거기에 장건의 얼굴은 아무리 많이 쳐도 서른 초반을 넘기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일문의 문주보다 뛰어난 무공, 거기에 가용산의 말만 들어보면 특별한 세력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잠행 황군이 떠오르는 배경이지만, 아니라면 장차 무림을 주도할 젊은 고수의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접객당 손님들은 장건에게 말이나 한번 붙여보고 친해질 생각에, 그리고 가능하다면 자기 방파로 끌어들일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볼 기회를 엿봤다.
물론 이틀째부터 깊게 가라앉은 그의 표정을 보고 다짜고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인사한 이들도 장건의 짤막한 대꾸에는 결국 몸을 돌려야만 했다.
그 덕을 본 것은 양굉뿐이었다. 장건이 어려워 보이자 그와 친한 듯한 양굉에게 이런저런 정보를 알아내려 한 손님들이 있었고, 양굉은 도리어 그들의 정보를 뽑아내며 본인 일을 마무리해갔다.
무림맹 원로원으로 들어갈 선물 하나를 알아낸 양굉은 흡족한 얼굴로 장건 맞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뒤집혀 있는 찻잔 하나를 집어 쪼르르 채우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으, 따뜻한 게 좋구먼. 맛 좋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던 양굉은 문득 앞에 앉은 장건의 시선을 느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장건의 뚱한 시선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헤, 헤헤. 차 맛이 좋구려. 위 당원이 신경 써 끓인 게 분명하오. 덕분에 좋은 차 얻어먹고 있소.”
하지만 장건은 대답 없이 한참을 가만 그를 바라보기만 했고, 그 시선을 받은 양굉은 점점 불편해 죽겠다는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 뭐냐··· 뭔 일인지 설명이라도 해줘야 나도 돕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니오. 맹주부와 원로원에서 무슨 일인지 정문 봉쇄를 나흘째 이어가고 있는 거 아시잖소? 전에는 길어도 하루 이틀이면 풀던 것을 말이오. 그날 장 형이 들어온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쪽 문제와 얽힌 모양이신데··· 그 두 곳은 우리 쪽에서도 극히 잠입과 정보수집이 어려운 장소로 여겨지고 있소이다···”
“누가 뭐랬냐?”
장건의 짤막한 대꾸에 눈을 내리깔던 양굉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럼 왜 그렇게 보는 것이오? 불편하잖소.”
“불편하냐?”
구겨졌던 양굉의 표정이 빠르게 펴졌다. 말하는 장건의 표정이 굳은 그대로였기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양굉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식은땀이 또르르 이마와 뺨을 타고 흘렀다.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그, 뭐냐··· 진짜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진짜 불편하게 해줄까?”
양굉의 얼굴에서 나던 식은땀이 물이라도 끼얹은 듯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잔뜩 움츠러든 몸을 더 웅크리며 장건의 얼굴과 그의 손을 번갈아보았다. 찻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의 손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나와 목을 움켜쥘 것 같았다.
그런 양굉을 구해준 것은 접객당 정문을 벌컥 열며 등장한 적세인이었다.
“장건!”
어째선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던 양굉은 장건의 눈이 적세인을 향하고 나서야 몸의 자유를 되찾고 탁자에 철퍼덕 엎어졌다.
“···어우, 시발···”
그가 욕설을 내뱉는 동안 심각한 얼굴로 얼른 다가온 적세인이 대뜸 말했다.
“큰일이오! 남궁 노사가 처형되게 생겼소, 원로원을 막아야 하오!”
두서없는 말이었음에도 장건은 도리어 짧게 물었다.
“내 도움이 필요하시오?”
“···그렇소!”
장건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의자에 걸어두었던 삿갓을 집어 머리에 쓰며 일어섰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