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용울음이 울린 후 창고 안은 순간 고요해졌다.
화살을 겨누고 있던 사수들이나 적세인, 양굉도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장건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동안 장건의 오른팔을 휘돌던 삼매진화의 정수는 스르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외쳤다.
“···쏴라! 쏴-!”
그는 그렇게 외치며 시위를 놓았다. 거기 걸려있던 화살이 피잉-소리를 내며 장건의 머리를 향해 날았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이 낭창거렸다.
동시에 정면을 향해 손바닥을 펼치고 있던 장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직선으로 날아오는 그 화살을 막거나 피하고자 재빨리 움직일 법도 한데, 그의 허리춤에 있던 왼손은 느릿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왔다.
아니, 느리지 않았다. 최단 직선거리로 움직인 것이 아님에도 장건의 왼손은 날아드는 화살과 만나기에 충분히 빨랐다. 그의 손바닥과 낭창거리던 화살대가 만나고, 손바닥은 부드럽게 회전을 그리며 화살의 경로를 바꿨다. 화살은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인도를 따랐다.
장건의 움직임이 멈추며 그의 손과 팔뚝을 타고 흐른 화살이 창고 바닥에 틀어박혔다.
“컥!”
화살은 정확히 사수의 목을 관통했다. 덜커덩 활을 떨어뜨린 그는 목을 부여잡고 스르륵 쓰러졌다. 끄르륵 가래 끓는 소리가 희미하게 이어지다가 금세 끊어졌다.
이후 다시 한번 창고 안이 고요해졌다.
조금 전과는 다른 침묵이었다. 배원형이 날아갈 적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람이었다면, 지금은 그저 경악이었다. 화살통을 비운 사수들은 일 층 바닥을 시커멓게 채운 검은 화살꽃들과 그 한가운데 여백으로 그린 태극 문양을 볼 수 있었다.
양팔로 머리를 가리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양굉은 주변이 조용해진 것을 느끼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머리를 들어 주변을 둘러본 그의 표정은 이 층 사수들만큼이나 멍청해 보였다.
화살비와 장건의 움직임이 멈추며 자연스레 같이 동작을 멈춘 적세인 또한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그녀는 땀이 줄줄 흐르는 것과 옷 여기저기에 조그만 구멍이 뚫린 것 빼고는 멀쩡해 보였다.
그런 적세인과 멍한 양굉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장건을 바라보았다.
화살을 되돌려준 동작 그대로 서 있던 장건은 고개를 돌려 그들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는 씨익 웃었다.
“이제 내 차례군.”
적세인과 양굉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장건이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이어서 날렵한 동작으로 공중제비를 돈 장건은 그대로 이 층 난간에 내려앉았다. 사수들은 이 층 바닥을 짚고 앉은 그를 보며 정신을 차렸다.
“이놈!”
장건과 제일 가까이 있던 사수 하나가 반사적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리춤의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스르륵 일어서는 장건을 향해 휙 칼을 내려찍었다.
그러나 장건은 뒤로 슬쩍 물러나는 것만으로 칼을 피했다. 그 순간 칼날과 그의 몸 사이는 한 치는 될까 싶을 정도여서 언 듯 칼에 맞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칼을 휘둘렀던 사수는 눈으로 본 것과 손에서 느껴지지 않는 감각의 불일치에 잠깐 멈칫했다.
장건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부드럽게 사수의 몸쪽으로 파고들며 손바닥을 뻗었다. 그의 기혈을 타고 격렬히 휘몰아치는 열기가 불그스름한 화룡을 그리며 오른 손바닥에 담겼다.
“꺽!”
가슴팍 한가운데에 항룡장을 얻어맞은 사수는 짤막한 비명 한 번 내지르며 쭉 뒤로 밀려났다. 조금 전 배원형이 맞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에 밀려난 사수는 다른 사수 하나를 덮치며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나뒹구는 동료를 본 사수들이 두 눈에 불을 켜고 장건을 노려보았다. 이후 더는 쓸모 없어진 활과 화살통을 바닥에 내던진 그들은 각각 칼과 검을 뽑아 들고 고함을 내지르며 장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을 맞이하는 장건은 자세를 낮추며 두 손은 자신의 눈높이 정도로 높게 들었다. 굳건한 하체에서 시작된 힘이 상체를 타고 올라 양어깨를 거쳐 두 팔과 손에 붉은 용을 그렸다. 외부로 발산된 열기로 공기가 진동하며 우우우-용이 우는 듯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쓰러진 동료를 뛰어넘어 달려온 사수 하나가 두 손으로 칼을 잡고 도끼를 내려찍듯 장건의 정수리를 노렸다. 장건은 그 칼이 내려오길 기다리지 않고 먼저 치고 나가 그의 몸통에 왼손바닥을 찍어주었다. 우득 소리가 한 번 울리고 가슴팍이 내려앉은 사수는 달리던 힘 그대로 엎어져 장건 뒤로 나뒹굴었다.
창고의 이 층 난간은 넓지 않았다. 두어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길이 막힐 넓이였다. 그래서 이어진 사수들은 한꺼번에 장건을 공격하지 못하고 한 명, 혹은 두 명씩 차례차례 장건을 공격했다.
장건이 전형적인 신대륙 무인이었다면 도리어 감당하기 힘든 연속 공격이었을 것이다. 한두 번에 많은 것을 쏟아낸 이후 뒤이은 공격을 막아내기 힘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장건은 그런 식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경지였고, 그래서 날붙이를 들고 달려드는 사수들의 몸통에 손바닥 자국 하나씩 남겨주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사수들 대여섯이 순식간에 쓰러진 순간, 뒤쪽에 있던 사수 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감랑삼대紺狼三隊! 흔적을 감출 때가 아니다! 전력을 다한다!”
그 외침이 신호가 되었다는 듯 열댓 명 남은 사수들의 눈에서 거뭇한 기운이 줄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복면 위로 보이는 눈가에서는 울긋불긋 흉하게 일어난 혈관들이 꿈틀거렸고, 검은 무복 안 몸뚱이에서는 순간적으로 늘어난 근력을 이기지 못한 관절들이 으드득거리는 소리를 냈다.
난폭한 마기를 줄줄 흘리는 마인이 된 사수들이 미친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장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양팔에 화룡을 두르고 항룡장을 토해내던 장건은 그런 마인들을 보고도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고원성에서 얻은 마인 구분하는 감각은 창고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고를 보내주고 있었다.
그는 그저 기혈 속에서 격렬히 마찰을 일으키던 내공을 가라앉히며 허리춤 청룡의 손잡이를 붙잡았고, 이어서 번쩍, 청룡이 칼집을 벗어나며 섬광을 그렸다.
마공을 일으키고 제일 앞에 달려오던 마인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각각 허공을 날았다. 몸을 낮추며 피와 시체를 피한 장건은 두 손으로 청룡을 잡고 오른쪽 허리 가까이 붙이며 자세를 웅크렸다. 방금까지 음양으로 나뉘어 격렬히 회전해 마찰열을 일으키던 내공이 그 순간 깊은 밤 중의 호수처럼 고요해졌다.
다음 순간 완전히 가라앉았던 내공 속에서 한줄기 벼락이 솟아올랐다. 장건은 전신으로 치닫는 그 벽력을 그대로 내뿜으며 정면으로 쏘아져 나갔다.
벼락이 무수한 직선과 직선의 연결을 통해 곡선을 그리는 것처럼 장건도 이 층 난간을 길게 채운 마인들 틈을 헤집고 나아갔다. 그 변곡점의 순간순간마다 청룡이 섬광을 그렸고, 마인들의 몸뚱이는 진흙처럼 갈라져 버렸다.
뒤에서 감랑삼대를 외치던 마인은 느릿하게나마 장건의 움직임을 따라와 그 칼날을 막으려 했지만, 그의 손이 올라오는 것보다 청룡이 그의 상체를 사선으로 썰어버리는 것이 더 빨랐다.
장건이 멈췄을 때, 그의 칼날에 잘려 나간 몸뚱이들은 뒤이어 몰아친 난폭한 공기의 움직임에 휘말려 사방으로 피를 흩뿌렸다.
우당탕 쓰러지는 마인들을 뒤로한 장건도 그제야 푸우-하고 참았던 호흡을 내뱉으며 청룡을 늘어뜨리고 바로 섰다. 느릿하게 뒤돌아보니 네모난 창고 벽을 따라 이어져 있던 난간을 한 바퀴 돌아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다.
일 층으로 고개를 돌리니 멍한 얼굴의 적세인과 이젠 질린다는 듯한 표정의 양굉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던 장건은 청룡을 휘리릭 돌려 털어내고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이후 잠시 그 자리에 서서 크게 쏟아낸 내공이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대전사이자 정령이었던 미쳐 날뛰는 말에게 기운을 건네받은 후 전보다 훨씬 묵직하던 단전이 잠깐 사이에 홀쭉해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도리어 격한 운동 후 땀을 쭉 뺀 듯한 상쾌함이 있었다.
“이런.”
문득 상쾌하다고 생각했던 장건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사람 스무 명쯤 쳐 죽이고 상쾌하다니. 그들이 장건을 죽이려 한 자들이고, 또 마공을 익힌 것으로 보아 부족 연합이 말하던 서쪽으로 사라진 마인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동정하지는 않더라도 무슨 허수아비 베어낸 것처럼 무감정할 일은 분명히 아니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붕 뜨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이후 그 눈이 다시 열렸을 때는 평소 같은 차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괜찮소?”
장건이 눈을 뜰 때쯤 계단으로 올라온 적세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그녀는 장건이 보여준 무공에 놀라면서도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보며 무슨 일인가 염려되는 얼굴이었다.
“에이, 장 형이야 괜찮지. 난 이 양반이 어디 잘못되는 게 상상이 안 되는걸. 그리고 그새 무공이 더 높아진 것 같은데, 어디서 뭐 영약 같은 거 주워드셨소?”
적세인의 걱정에 옅게 미소 짓던 장건은 그녀 뒤에서 올라오며 너스레를 떠는 양굉을 보며 픽 하고 웃어버렸다. 얼굴 철판 하나는 확실한 놈이었다.
그 웃음을 본 양굉은 그제야 여태 납작 엎드려 있던 것이 찔리는지 실실 쪼개며 장건의 눈치를 보았다. 고개를 살살 내저은 장건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배원형을 죽이진 않았소. 뭐라도 캐봅시다.”
적세인은 그제야 처음에 나가떨어진 배원형을 찾아볼 생각을 했다. 다행히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 층 난간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도망가고 있는 자는 그 하나뿐이었으니까.
눈치를 보던 양굉이 얼른 뛰어가 기어가던 배원형을 붙잡았다.
“새끼, 어딜 도망가냐?”
“끄윽···”
양굉은 배원형을 끌어다가 한쪽 벽에 처박았다. 배원형은 고통에 겨운 신음만 흘리며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가슴 한가운데에 마치 손바닥 모양 인두로 지진 듯 타버린 옷과 화상을 입은 맨살이 보였다.
그는 상체를 벽에 기대고 앉아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그와 장건의 눈이 마주쳤다.
“크, 큭··· 이거··· 생각보다, 훨씬 굉장한 고수를··· 못 알아봤군···”
그는 애써 여유를 가장하고 싶은 듯 보였다. 잠시 그를 내려다보던 장건은 천천히 쭈그려 앉으며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장건은 위협이나 협박 없이 그냥 담담하게 물었다.
“저 마인들을 백림방에서 키운 것 같지는 않군. 그래도 명색이 천후성 명문정파인데. 저들이 누군지는 알고 있나?”
“···내가, 뭔가 말해주리라 생각한다면··· 그런 망상은 집어치워라···”
결연히 대답하는 배원형을 장건이 가만 바라보고 있자, 옆에 있던 양굉이 슬쩍 끼어들었다.
“장 형, 길게 갈 것 없이 그냥 그거 씁시다, 그거. 손가락으로 푹푹 찌르는 거 있지 않았소. 괜히 털어놓으라고 시간 길게 끌지 말고 얼른얼른 갑시다.”
그런 양굉의 말에 팔짱을 끼고 심각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적세인은 물론이고 배원형을 마주 보고 있던 장건도 고개를 돌려 양굉을 바라보았다. 배원형마저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바라보자 양굉은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알았으니 닥치고 있겠다는 것 같았다.
양굉의 입을 다물게 한 장건은 목덜미를 슬슬 긁으며 다시 배원형에게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저놈 말대로 고통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너의 시간을 줄이는 것밖에 안 될 것 같군. 아무 말도 하기 싫다면 그냥 그렇게 해. 어차피 네 아버지를 찾아가야 하니까.”
도저히 심문하는 것 같지 않은 무던한 어조에 도리어 배원형의 결연함이 흐려졌다. 그는 고개를 떨궈 자신의 가슴팍을 내려보았다. 허공을 격하고 날아온 장건의 내력이 그의 내장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황궁 깊숙한 곳에 있다는 갑甲급 무공이 이런 것일까? 배원형은 여태 자신이 익혀온 무공과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삶에 허망함을 느꼈다. 그렇게 의지가 흩어져서인지 눈앞도 흐려지는 것 같았다.
장건은 얼굴을 떨군 그의 호흡이 약해지는 것을 보며 품에서 연초를 꺼내 말았다. 아무 말 없는 두 사람을 보며 적세인과 양굉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장건이 잘 말아 입에 문 연초에 불을 붙이고 첫 모금을 후 뱉어낸 순간, 고개를 떨구고 있던 배원형의 입이 열렸다.
“···원로원, 맹주··· 둘 다 크게 다를 것, 없는 자들이다··· 원로들은 각 방파의 노회한 고수들이지··· 무공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당연히 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어··· 나와 아버지 뒤에 그들이 있다는 걸···”
듣고 있던 적세인이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원로원이 신사천에 스며든 마궁을 짐작하고 있었다고?”
“그래··· 물론 맹주도, 마찬가지··· 그들에게 황군의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 원로원과 맹주 모두, 알면서도 상황을 이용할 생각에··· 모른 척할 뿐이다···”
적세인과 양굉은 끊어질 듯 말 듯 느릿한 배원형의 말에 심각해졌다. 그들은 무림맹 최상부의 음험한 비밀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쭈그리고 앉아 연초를 문 장건만 연기를 흘리며 별 동요 없이 뚱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