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West Murim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 * *
마인들과 무림맹 무사들의 싸움이 시작되었을 때 양굉은 냉큼 몸을 빼려 했으나, 가까이 있던 마인이 그를 덮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칼을 뽑고 싸움에 휘말렸다.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린 마인이 시커먼 마기가 줄줄 흐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칼을 휘둘러오니 등을 보이면 당장이라도 뒤통수가 쪼개질 판이었다.
이후 차마 그 칼을 정면으로 받아내진 못하고 정신없이 몸을 굴려 가며 이리저리 피하고 도망치다가 머리를 들어보니, 그래도 어느새 흉악한 마인들 틈은 빠져나와 무림맹 무사들 뒤쪽에 도착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땀범벅이 된 채 바닥을 굴러 흙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쓴 얼굴로 꿀꺽 침을 삼켰다.
“···됐다, 튀자!”
“튀자고? 어딜?”
싸움터를 바라보던 양굉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남궁천이 요놈 봐라, 하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얼른 주변을 살펴보니 양굉은 구르고 구르다가 어느새 맹주부 정문 낮은 계단 앞까지 굴러온 것이다. 그런 양굉을 남궁천과 제운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양굉은 냉큼 일어서서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실거렸다. 동시에 슬그머니 뒤로 몸을 뺐다.
“아, 나는 무림맹 사람은 아니고··· 접객당 손님인데 싸움에 휘말렸소이다. 그, 좀 빠져나가도 되겠소? 미안하지만 난 무림맹 영웅분들과는 다르게 무공이 시원찮아서···”
제운성이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장 무사와 아는 사람 아니요? 오늘 맹주와의 면담 때 함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예? 아, 그게, 뭐냐 그···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고···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요.”
“얼굴만 아는 사이에 맹주부까지 함께 왔다는 말이오?”
제운성은 양굉의 모습이 의심스럽다는 듯 추궁했다. 양굉은 거기에 굽실거리며 대충 대답하고 슬그머니 몸을 빼려 했으나, 주변에 다른 맹주부 무사들이 이미 빠져나갈 길을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축 처지는 그의 얼굴을 본 제운성이 다른 무사들에게 슬쩍 눈짓했다. 그러자 싸우고 있는 맹원들을 제외하고 맹주부 입구를 지키고 서 있던 무사들이 천천히 양굉에게 다가왔다.
그들이 그러는 동안 남궁천은 눈을 돌려 한창 전투가 이어지는 무림맹 무사들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맹주 혁련위진이 다른 무사들을 독려하는 동시에 번쩍 검을 찔러 마인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감랑대라는 마인들보다 내력과 힘이 모자라 일 대 일로는 이기지 못했으나, 최소 셋이 하나를 상대하고 맹주와 원로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며 비등한 싸움을 보였다.
맹주 혁련위진은 단연 그중에서도 눈에 띄었다. 그 크고 웅장한 목소리로 맹원들을 격려함과 동시에 번쩍번쩍 화살처럼 날아가 위기에 처한 이를 구했다. 덕분에 맹원들은 치명상을 입으면 뒤로 빠져 상처를 돌볼 수 있었고, 상처입은 맹수처럼 고함을 지르다 풀썩 쓰러지는 감랑대와는 다르게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
무림맹에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감랑대는 전멸할 터였다. 그들에게 제일 중요한 전력인 당사운이 장건에게 묶인 이상 예견된 모습이기도 했다.
남궁천은 그렇게 죽어 나가는 감랑대를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또한 저들과 같은 뜻을 따랐다. 안타까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던 그때 남궁천은 휙 고개를 돌려 장건과 당사운 쪽을 바라보았다.
장건의 호신기가 당사운의 암기를 막아낸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제운성도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그걸 보고는 자기가 뭘 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좁혔다. 이어서 쇠침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본 남궁천만 감탄을 흘렸다.
“···내공으로 허공에 벽을 세운다? 아니, 벽보다는 촘촘한 그물인가? 기공의 활용에는 정말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었군, 그저 냉혹한 폭풍만이 아니라···”
“뭐요? 방금 장 무사가 뭘 한 것이오? 좀 설명해 주시오, 남궁 노사.”
남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남의 무공을 어찌 함부로 떠들겠나. 나중에 직접 물어보게. 나도 사실 눈으로 보고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군.”
제운성은 남궁천이 일부러 더 말하지 않는다 여기면서도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어차피 마궁에서 이렇게까지 그를 죽이려는 것으로 보아 그가 중요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괜히 지금 그와 날을 세워 나중에 잘못된 정보를 받는 것보다는 그냥 무공 한 자락 모르는 게 더 나았다. 적어도 제운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와중에 양굉의 양팔을 무사들이 좌우에서 붙잡고 칼을 빼앗았다. 제운성이 그걸 보고 말했다.
“잡아서 한쪽에 앉혀놓게. 싸움이 끝나면 그자의 정체를 장 무사에게 물어봐야겠군.”
덕분에 양굉은 맹주부 정문 한쪽에 구겨져 앉아야 했다. 그래도 당장 마인으로 몰려 목이 베이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양굉은 조용히 있다가 틈을 보기로 했다.
그는 입을 다물고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장건이 있는 이상 그에게 사람들의 주목이 쏠리는 순간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가 아는 장건은 그럴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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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운은 쏘았던 쇠침들이 허공에 멈췄다가 후두둑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정말 순수하게 놀랍고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내공으로 일종의 파동을 만들어 퍼트리는 건가? 북천제왕검과 비슷한 면이 있군. 하지만 그런 파동만으로 실체가 있는 쇠침을 붙잡다니··· 주술이나 술법은 아닌 것 같은데, 대단한 무공이야.”
그는 장건에게 달려들려던 자세도 바로 세우고 서서는 암기를 쏘아내던 철봉으로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는 입술이 마른다는 듯 침을 바랐다.
“자네가 무림맹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우린 자네에 대해 좀 조사해 보았네. 중원 호남 장씨 세가의 둘째 아들, 장건. 그런데 깊게 조사할 시간이 모자랐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흘간 자네 집안이 좀 부유했다는 것 말고는 별달리 알아낼 게 없었지. 신대륙에 도착한 이후로는 그저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기만 한 모양이고.”
당사운은 바닥에 떨어진 쇠침들과 그 앞에 우뚝 서 있는 장건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도대체 그런 배경에서 어찌 자네 같은 무인이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군. 황군과 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림맹의 후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고대 세가의 후손인 것도 아니고. 혹시 진짜 장건은 죽은 지 오래고, 자네는 황실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비밀병기 같은 거 아닌가? 차라리 그런 거라고 하면 이해하겠네.”
“지랄 마.”
그는 장건의 짤막한 대답을 듣고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머리가 아프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다가 자연스럽게 품 안에 집어넣어 조그만 단검 몇 자루를 꺼냈다.
“너무 놀라서 그렇네. 사공의 술법을 볼 때도 지금처럼 신기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니 몇 번 더 봐야겠네.”
다음 순간 당사운의 단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어서 조금 전의 떨림이 다시 한번 땅을 울리고, 단검들은 앞서 쇠침들처럼 장건에게서 한 뼘을 남기고 멈춰서 파르르 떨었다. 조금 전 쇠침들에 비해 단검이 크기 때문인지 그 칼날의 진동이 더 눈에 띄었다.
그때 당사운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단검이 막히는 것을 보지 않고 연이어 암기 수십여 개를 던졌다. 암기를 뽑아 던지는 동작이 어찌나 빨랐는지 순간적으로 당사운의 상체가 뿌연 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날아간 다양한 날붙이들 모두 장건의 한 뼘 허공을 앞에 두고 멈췄다.
당사운이 참았던 호흡을 내뱉을 때, 그 암기들 모두 힘을 잃고 후두둑 바닥에 쏟아졌다. 당사운은 그걸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너무하는군.”
호신기로 모든 암기를 막아낸 장건은 그런 당사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앞으로 한 발짝 디뎠다. 그저 걸음 하나일 뿐인데 쿵-하는 진동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당사운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가 우뚝 멈춰서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장건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역시 조잡한 계획에는 항상 문제가 생기는군. 자네 같은 변수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나? 뭐, 사실 완전히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긴 하지. 그래서 또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거고.”
그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들고 있던 철봉을 바닥에 푹 틀어박았다. 사람들이 밟고 밟아 단단해진 흙바닥에 쇠막대가 파고들었다. 그렇게 양손에 자유를 얻은 당사운은 겉옷의 끈을 풀어 벗으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 거리에서 본 모습과 지금 그 재주를 보아하니, 남궁천 저 친구가 자네에게 패배하고 사로잡힌 게 이해가 되는군. 아, 혹시 나도 사로잡을 건가?”
장건은 고개를 저었다.
“둘은 필요 없다? 하긴. 장군 한 사람이면 황군에게 필요한 정보는 다 알 수 있지. 마궁의 위치나, 대략적인 전력이나.”
겉옷을 벗은 당사운의 몸 위에는 쇠갑옷처럼 보이는 옷이 있었다. 그 쇠갑옷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 갑옷은 사슬갑옷이었고 그 고리와 고리 사이에 온갖 날붙이들이 붙어서 마치 갑옷의 철편처럼 보이고 있었다.
장건은 그가 그렇게 자기 무장을 드러내는 걸 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그가 암기를 막아내는 동시에 곧장 달려들지 않은 이유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호신기를 이렇게 실전에서 직접 사용해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몸과 내공의 작용을 살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은 가벼운 투사체가 날아오는 정도만 막아낼 수 있는 듯했고, 또 생각보다 내공의 소모도 심했다. 청룡을 진동시키는 동시에 기감을 뻗어내며 단전의 내공 또한 뿜어내자니 집중력이 떨어져 쉬이 움직일 수 없다는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오늘 경험을 표본 삼아 잘 다듬으면 그때는 호신기라고 정의할 정도가 아니라 호신강기護身罡氣라 명명해도 될만한 기술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생각을 정리한 장건의 눈에 갑옷을 번쩍이는 당사운의 모습이 잡혔다.
무림맹 무사들과 마공을 폭주시키는 감랑대 마인들의 싸움에선 큰 고함과 비명, 악다구니가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이른 저녁으로 넘어가는 태양은 이제 어쩐지 끈적이는 것만 같은 주황빛 석양으로 서쪽 하늘을 덧칠하고 있었다. 전각과 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와중에, 무사들의 칼날은 번뜩이는 반사광을 휘두르며 상대의 피를 쏟아 그 그림자들을 붉게 더럽혔다.
당사운의 갑옷은 움직이고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 있는 어떤 칼날보다 더 섬뜩한 반사광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 갑옷을 드러내며 가슴을 활짝 펴고 선 당사운과 장건의 눈이 마주쳤다.
“···확실히 신기한 재주이긴 하네. 쉽게 뚫리지 않을 것 같군. 하지만 알아두게나. 우리 궁의 무공이 상대하려는 자들은 어설픈 일격 무공이 아니라 한나라의 군단이라는 걸. 갑옷을 꿰뚫을 화살도 당연히 준비하고 있지.”
당사운의 갑옷에서 다르르륵 하는 조그만 소음이 울렸다. 마치 단단한 비늘들이 움직여 서로의 몸을 비비며 나는 소리 같았다.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낀 장건도 다시 늘어뜨렸던 청룡을 바로잡았다. 그의 호신기를 당사운이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장건 또한 저 갑옷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대충 봐도 지금 시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물건이었다.
그때 전투의 소음 속에서도 뚜렷이 들리던 갑옷의 소리가 멈췄다. 당사운의 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장건은 청룡을 울려 호신기를 일으키며 당사운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몸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기며 허공이 일렁거렸다.
직후 바르게 누워있던 당사운의 갑옷 비늘들이 일제히 바싹 일어나며 마치 온몸의 털이 곤두선 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섬광들이 발사되었다.